교 양

晩齡(늦은 깨달음) 외3.

太兄 2026. 5. 22. 20:34

   ♡ 晩齡(늦은 깨달음)                            

우리는 人生을 살면서 끊임없이 배우지만, 어떤 眞理는 나이가 들어야만 穩全히 理解됩니다.
젊었을 때는 當然하게 여겼던 것들이 歲月이 지나면서 얼마나 所重한지 깨닫게 되고 絶對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믿음이 한 瞬間에 무너집니다. 
時間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늦게라도 깨달았다면 다행(多幸)입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남은 時間을 더 智慧롭게 살아볼 수 있는 機會가 열리는 것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나이들면서 共通的으로 깨달은 다섯가지 인생 진리에 대해 살펴봅니다.
① 사람은 절대 같을 수 없다.
젊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모든 사람이 다 다르다는 事實을 처절(悽絶)하게 깨닫게 됩니다.
家族이라도, 親舊라도 심지어 夫婦라도 서로 다른 思考方式을 가지고 있습니다.
他人을  내 基準으로 判斷하는 순간 갈등(葛藤)이 始作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저 사람은 元來 저렇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重要한 지
깨닫게 됩니다.

② 結局 인생은 혼자다.
누군가 平生 곁을 지켜줄 것이라 믿지만 結局 중요한 순간엔 '나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는 떠나고 자식은 成長하며 配偶者도 언젠가는 먼저 世上을 떠날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이 씁쓸한 듯하지만 反對로 생각하면 自由로울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내 인생을 責任지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을 더
主體的으로 살게 됩니다.
타인의 期待에 맞추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③ 健康이 全部다.
젊을 때는 '몸이야 좀 피곤(疲困)해도 괜찮겠지'라며 무리하지만 나이가 들면 健康이 삶의
質을 決定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所用이 없습니다.
건강이란 單純한 病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
精神的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좋은 關係를 維持할 수 없고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④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젊을 때는 成功이 중요하고 돈이 必要하며 명예(名譽)가 매력적(魅力的)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가족, 친구, 배우자, 자녀,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없어 어떤 성공도 空虛할 뿐입니다.
사랑은 '存在'가 아니라 '行動'입니다. 사랑한다면 表現해야 합니다.
後悔하지 않으려면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표현하세요.
삶이 끝날 때 후회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⑤ 幸福은 巨創한 것이 아니다.
젊을 때는 행복이 큰 成就나 目標를 이뤄야 찾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행복은 아주 사소(些少)한 日常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맛있는 한 끼 食事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좋아하는 노래 한곡 햇살이 따뜻한 날의
散策 이런 순간들이 모여 행복한 삶을 만듭니다.
지금 이순간을 온전히 즐길 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삶의 態度입니다. 
사랑도, 관계도, 건강도, 행복도 본래 固定된 實體가 아니라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는 인연因緣입니다.
- 석양에 길손이 옮긴 글이지만 공감하는 글귀입니다.

삶의 흔적(痕迹)을 되 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들어 적어봅니다.
天日言立生死道 有無同生忠孝禮
(하늘은 사는길과 죽음의 길을 분명히 선언(言立)하였다, 사는길은 육체를 지니고 살아있는 후손(有)과 보이지 않는 영(靈)으로 존재하는 조상이 함께해야 갈수있는 길로 이를 위하여 인간은 거짓없이 남을대하고(忠) 부모와 조상께 孝하고 이웃과 친지 친구와 예(禮)를 다해야 한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정보화시대의 정보 홍수속에 삶의 질은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젔으나 반면 이기심이 팽배하고 헌신과 배려가 고갈, 인성이 메말라 삭막한 사회가 되었으니 어찌 사람사는 사회라 할수 있겠는가 묻습니다.
인간 본성의 善한 正道의 사회를 이룩하는 人本社會 弘益人間의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太兄財團 竹垣  

 

              ♧ 바름이란

바를 정(正)자를 풀어보면 '하늘(一) 아래 멈춘다(止)'라는 뜻인데, 바름이란 적당한 때에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역사를 무시하면 반드시 큰 화를 입고 멸망하게 됨을 알 수 있다.

당태종의 후궁이었던 무조(武照)는 아들 중종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황제가 되는데, 이 사람이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다.

잔인한 숙청과 독단적 정치 행태를 거듭하다가 신하들의 반발에 부딪힌 측천무후는, 결국 친위대의 쿠데타로 폐위된다.

소안환(蘇安桓)이 그녀의 자진 퇴위를 권유하며 올린 ''물극필반 기만즉경 (物極必反 器滿則傾)"의 상소가 그대로 이뤄진 반전의 역사였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뒤집히고, 그릇이 가득 차면 기울어 넘친다"는 뜻이다.

근세사에서도 1936년에 실시된 독일 의회 선거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98.8%의 득표율로 집권당이 된다. 독일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로 전대미문의 권력을 거머쥔 총통 히틀러는 법관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만약 그대들이 총통의 자리에 앉아 있다면 어떻게 판결할 것인지 생각하고 재판하라! 사법은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히틀러는 법 위에 군림하고, 삼권분립은 무너졌다.]

희대의 살인마에게 입법권과 행정권에 이어 사법권까지 통째로 안겨준 독일 국민은, 수백만 유대인 집단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의 참패를 겪게 되자 비로소 잘못된 선택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저들은 악마를 천사로 착각했다. "악마는 빛나는 천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에" 독일은 지금도 그때의 과오를 뉘우치며 몸서리를 친다.

조선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어 이름을 날린 도공(陶工) 유명옥은 음주가무의 방탕한 생활로 삶이 파탄에 이르게 되자,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눈물을 쏟으며 계영배(戒盈杯)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득 찬 것을 경계하라"는 뜻의 이 잔은 술이 7할의 높이를 넘으면 잔 밑으로 새어나가도록 설계되었는데, 그 안에는 말굽 모양의 관이 있어 대기압과 중력의 차이로 높은 곳의 액체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도록 되어있었다.

훗날 계영배로 술을 마시던 거상 임상옥은 술이 자꾸 새어나가자, 화가 나서 잔을 던져 깨뜨렸다가 문득 잔에 담긴 비밀을 알게 된다.

그 뒤로 도공의 눈물이 담긴 계영배를 늘 곁에 두고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을 다스렸다고 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최인호의 소설 商道의 주된 내용이다.

계영배에 흐르는 도공의 눈물에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깨우침이 짙게 배어 있다.

일도, 사랑도, 공부도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 출세나 성공도 사람 됨됨이나 지닌 역량에 비해 지나치면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에 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생생히 경험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은 [계엄 - 탄핵 - 보복]의 극한과 극단의 독선을 부르는 반전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

풀코스 마라톤 경기에서도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들르는 짧은 멈춤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자유민주국가의 정치행로에서 민주당의 멈출 줄 모르는 극단의 질주는 반전을 부르고 결국 파멸의 길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히틀러가 독일 법관들에게 요구한 '삼권분립 없는 껍데기 사법'이 '오늘날 한국의 법 위에 군림하는 이재명과 민주당의 절대권력'을 연상케 한다.

절대권력자 히틀러의 종말은 패전과 자살이었다. 하늘처럼 높은 가치 앞에서는 '멈출 줄 아는' 지지(知止)가 바른 지혜다.

달려야 할 때 달리지 않고 머뭇거리면 실패가 불보듯 뻔하지만, 멈출 줄 모르고 마냥 달리기만 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짓이다. 마치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무법차량이나 다름이 없다.

자기편만 옳고 정의라는 정치 집단은 사람다움의 공동체라기 보다, 탐욕에 찌든 천박한 자기 확증 편향의 집단일 뿐이다.

나치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가 하늘을 찌를듯 높고 히틀러에 열광하던 시절, 악마의 실체를 꿰뚫어 본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정치 선동에 휘둘리는 대중을 '신앙 없는 광신의 집단' 이라고 꾸짖었다.

영혼 없는 질주, 절제 없는 탐욕,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법칙이자 역사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도 '물극필반 기만즉경(物極必反 器滿則傾)'의 상소를 올릴 진정한 충신이 한 두 사람 기다려진다.
          
              - '받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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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은 그저 냉전 시대가 끝날 무렵, 툭하면 보드카에 취해 카메라 앞에서 비틀거리며 기행을 일삼던 러시아의 우스꽝스러운 '술고래 할아버지' 정도로 기억된다. 하지만 1989년 가을, 그가 미국 텍사스의 어느 평범한 동네 슈퍼마켓인 Randall's 문을 열고 들어갔던 그 날의 15분은, 20세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서늘하고도 결정적인 '체제 붕괴'의 시발점이었다.

당시 옐친은 미국 휴스턴의 우주센터를 방문한 참이었다. 돌아가는 길, 그는 예정에 없던 일정을 요구했다. "보통의 미국인들이 가는 진짜 상점에 가보고 싶다." 그는 미국 정부가 자신에게 화려한 쇼윈도만 보여줄 것이라 의심하고, 지나가던 길에 보이던 아무 마트나 불쑥 들어간 것이다.

자동문이 열리고, 텍사스의 그 흔하디흔한 대형 마트에 들어선 순간, 소련의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이었던 옐친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끝없이 펼쳐진 진열대. 그 위에는 무려 3만여 종의 고기, 치즈, 빵, 과일, 그리고 온갖 종류의 소시지들이 빈틈없이 쏟아질 듯 쌓여 있었다. 계산대에는 사람들이 수레 한가득 먹을 것을 싣고 줄을 서 있었다.

옐친의 뇌는 이 압도적인 풍요를 처리하지 못했다. 모스크바에서는 감자 한 알, 딱딱한 빵 한 덩이를 사기 위해 온종일 눈보라를 맞으며 줄을 서야 했다. 당 최고위급 간부인 자신조차 구경하기 힘든 최고급 식재료들이, 미국의 평범한 노동자들의 장바구니에 쓰레기처럼 흔하게 담기고 있었다.

그는 미국인 안내원에게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들은 나를 속이기 위해, 내가 올 줄 미리 알고 이 거대한 세트장을 지어놓은 거요? 이건 미국 중앙정보국의 함정이지?"

안내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닙니다. 미국엔 이런 마트가 수만 개나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대로 살 수 있죠."

그제야 옐친은 시식용 고기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곳의 매니저와 직원들을 붙잡고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 물건들은 어디서 오는지, 누가 배급하는지, 국가가 가격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대답은 늘 같았다. "국가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시장이 알아서 채워 넣습니다."

마트를 나선 옐친은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평생을 자본주의의 멸망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완성을 부르짖어온 이 늙은 공산주의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다.

동행했던 보좌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우리 소련 인민들이 저 마트를 보게 된다면... 당장 내일 혁명이 일어나 우리를 모조리 가로등에 매달아 죽일 것이다."

그가 평생을 바친 위대한 이념, 소수 엘리트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면 완벽한 평등의 지상 낙원이 올 것이라는 그 거만한 확신은, 텍사스 동네 마트의 소시지 매대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 났다. 그날 이후 옐친은 공산당을 탈당했고, 불과 2년 뒤 그는 개방 개혁을 반대하는 쿠테타를 막아내고, 스스로 소비에트 연방의 문을 닫았다. 소련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영원히 퇴장했다.

머리로만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자들은 언제나 아름답고 완벽한 계획표를 들이민다. 국가가 부자들의 곳간을 털어 모두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주면 아무도 굶주리지 않을 것이라는 달콤한 선동. 그들은 자본주의의 불평등과 탐욕을 조롱하며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환상에 취해 산다.

 

🌹 지금이 참 좋다.  

환하게 웃어주는 햇살의 고마움으로 아침 창을 열면, 
여리게  미소짓는 바람이 있어서 참 좋다.
흩어진 머리카락 쓸어 올리며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처럼 비틀거리는
하루지만, 걸을 수 있는 고마운 두 다리가 있어서 참 좋다 !

땀방울 방울방울 이마에 맺혀도 열심히 살아가는 얼굴에 미소가 넘쳐서 참 좋다 !
힘들고 고달픈 삶이라지만, 내 곁을 지켜 주는 옆지기가 아직 있어서 더욱 좋다.
시간이 멈춘다 해도 오늘이라는 성적표에 부지런히 살았다는 표시로, 밤하늘
달님이 친구가 되어주니 참 좋다 !

멀리 있어도 가끔은 폰이나 카톡이라도 안부를 묻곤하는 사랑하는 친구가 있어 마냥 좋다 !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지금이 참 좋다 !
"나는 지금이 가장 좋아요 !"
여성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인권 사회운동을 펼쳤던 대지의 작가 펄벅여사가
일흔살 됐을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신가요?"
그런데 그녀는 전혀 고민없이 아주 단호하게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치룬값이 얼마인데요! 나는 그것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 나는 지금이 가장 좋아요! ☆
지금을 누리기 위해서 살아온 겁니다"
흔히들 나이가 들면 젊었을때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으로 힘들고 서글퍼 질때가 있다는데요 !
"나는 지금이 가장 좋아요"라는 말로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의 가치를 가장 높이 평가했던펄벅여사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금이  참 좋으네요.

 

< 머리와 옷 패션으로 본 심리 이해와 행복 증진 >

 

  한국 사람은 옷과 형식에 민감하다. 생활필수품이 의식주(衣食住)로 압축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식의주로 표현하기도 한다. 선물 포장지를 화려한 것으로 감싼다. 실용적인 문화보다 형식적인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주는 편이다.
  사람은 누구나 옷이나 형식에 관심을 많이 갖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옷이 날개다”라는 속담이 있다. 옷은 남의 눈에 바로 띄는 옷이기에 그 옷을 입은 사람에 대한 평가도 곧장 이루어질 수 있다. 몸과 마음을 감싸고 있는 외형이 옷이다. 옷은 춥거나 더울 때에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멋을 자아낸다. 이 멋을 자아내는 방법과 기교가 다양하고 독특하다.
  또 헤어스타일도 눈길을 끈다. 일반사람은 바꿀 수 없지만 과거의 궁중(宮中) 여인들은 머리에 육중한 가발을 얹어놓았다. 그 가발의 높이가 신분을 상징했다. 실제로는 얼마나 불편하고 목이 아프고 두통(頭痛)이 심했을까?
  이처럼 몸이나 얼굴 자체는 쉽게 바꿀 수 없지만, 옷이나 헤어스타일은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옷 가게와 미용실이 많다. 헤어스타일로는 탤런트나 스포츠선수들이 새 유행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거리를 지나다보면 유달리 화려한 헤어스타일이나 옷을 입은 사람이 있다. 청년도 있고, 중년도 있고, 노년층도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지나가는 행인(行人)들이 눈길을 한번쯤 주고서 자기 갈 길을 간다. 속으로 뭐라고 평가를 하고 지나갈까?
   유달리 눈에 띄는 패션을 한 사람의 속 마음은 어떨까? 이를 세 가지로 나누어 추정할 수 있다.
  1)자기 현시(顯示) 욕구가 강해서 눈의 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2)로맨틱한 사람이다.
  3)밝고 명랑해서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를 심리학적으로 세분해 보면,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차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즉 긍정적으로 보면, 마음 현상과 화려한 옷과 헤어 패션이 일치할 수도 있다. 부정적으로 보면 마음과 전혀 반대로 패션을 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마음이 밝고 좋고 명랑하고 소망이 넘쳐서 겉으로 화려한 패션의 옷이나 헤어스타일을 할 수도 있다. 화창한 봄날,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좀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고 화려한 차림새를 한다. 생일날이나 축제일에는 화려한 패션을 한다. 새들도 그런 경향을 갖는다. 부리로써 깃털을 가다듬고, 기름을 칠하고, 공작새처럼 꼬리날개를 최대한 멋지게 펼치는 새도 있다.
  문제는 부정적인 입장에서 그의 심리를 읽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이다. 즉 슬프거나, 충격을 받거나, 고독을 이기려고 하거나, 자기라는 존재를 돋보이게 하려고 하거나, 복수를 하려고 결심을 하고서 외형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경우이다. 안과 밖이 불일치한 패션이기에,  속 마음과 화려한 패션이 불일치하므로, 일단 잠시 지켜보면서 그의 내면을 분석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은 참으로 오묘(奧妙)한 존재이다. 계절의 변화보다도 더 변덕이 심하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경우보다 일치하지 않는 경우, 정반대의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해한 존재이다. 그렇다고 남을 무시하거나 경시(輕視)할 수도 없다.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각자 대단한 고집을 가지고, 변화무쌍한 심리를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상대방에 대해서 이해를 잘 하게 되면 알록달록한 무지개 빛 행복을 같이 공유하면서 행복을 증진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겉만 보고 판단하면 오해가 발생하고 충돌하고 싸울 수 있다.
  주위의 지인이 갑자기 화려한 변신을 했다면, 잠시 지켜보면서 내면에서 무슨 사연이 일어났는지를 관찰해 보고서, 적절하게 접근을 하거나 응대(應對)를 하면 좋을 것이다. 행복은 작은 이해에서부터 물안개처럼 피어나고 주위로 확산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日光 趙應泰 0103407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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