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
죽고 나서 좋은 곳에 가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모든 인간이 바라는 소망이다.
그러나 죽고 나서 아무리 좋은 곳에 간다 한들, 살아생전 조그만 행복 하나 느끼고 사는 것만 못하다.
죽고 나서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제사를 받든다 한들, 살아생전 술 한 잔 올리는 것만 못하다. 는
옛 선현(先賢)들의 말씀은, 행복은 결국 저 세계가 아닌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있다는 말이다.
사후(死後)에 만반진수(萬飯珍羞)
불여생전(不如生前)에 일배주(一杯酒)
<논어>에 보면 공자의 제자였던 자로가 스승인 공자에게 죽은 뒤의 세상에 대하여 질문하는 내용이 실려있다.
인간이면 당연히 당면하는 죽음에 대하여 자로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스승인 공자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자로야! 사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죽음에 대하여 무엇이 그리 궁금하냐?"
未知生(미지생) 사는 것도 알지 모르는데 焉知死(언지사)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예! 사는 동안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찾는것이 중요하지, 죽고 난 세상에 대하여 더 이상 고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사는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들, 이웃들에게 최선을 다해 배려하고 존중하며, 조그만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
죽고 나서 어디 가서 무엇이 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공자의 인본주의 철학이 담긴 말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려보기도합니다. 그 상상과 추론에 근거하여,
인생을 조율하고 반듯하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너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매달리고, 사후세계에 집착하다 보면 진정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지생인데 언제 잘 살리오? 사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바로 지금
오늘이 가장 젊은 날, 내가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이 순간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 오늘의 세상 이야기
최근 홍준표의 행동을 보면서 조선시대 대표적인 간신 류자광이 떠올라 그의 대표적인 간신 행적을 기술해 봅니다.
류자광은 1439년 전라도 남원에서 부친 류규 (柳規) 와 노비(奴婢 : 여종)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 이었습니다.
서얼 이란 같은 첩(妾) 이라도 신분이 양반이 아니고 종(노비)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서자(庶子) 보다 못한 신분을 말합니다.
류자광이 서얼로 태어난 것은 부친 류규가 낮잠을 자다 백호(白虎) 꿈을 꾸고 정실 부인과 동침을 하려 하였으나 부인이 거절 하는 바람에 여종과 동침 하였는데 거기서 태어난 아이가 류자광 이었습니다.
류자광은 머리가 남달리 총명하 였으나 신분이 낮아 과거시험을 볼수가 없어 평소에 닦은 무술실력 으로 경복궁 건춘문의 경비원이 되었습니다.
당시(1467년) 함경도에서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정부는 이를 진압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류자광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신분을 세탁해 보고자 세조 (世祖)에게
"왜 군사를 동원하여 반란을 진압하지 않으시나이니까.
저를 보내주신다면 반드시 이시애의 목을 베어 전하께 바치겠나이다." 라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상소문을 받아본 세조는 류자광을 불러 그의 무예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류자광의 무예는 세조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습니다.
세조는 즉시 남이(南怡) 장군을 반란 진압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그 휘하에 류자광을 배속시켜 이시애의 난을 평정토록 하였습니다.
과연 류자광은 용맹스럽게 싸워 이시애의 목을 베어 세조에게 받쳤습니다.
이에 세조는 크게 기뻐하며 正5품 벼슬인 병조 정랑(국방부 과장급)에 임명하였습니다.
서얼 출신이며 과거도 안치른 사람에게 파격적인 벼슬을 안겨 주었다고 불평을 하는 무리들이 있어 이를 잠재우기 위해 세조는 특별시험을 치루게 하여 장원급제를 시켜 그의 약점을 벗겨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세조는 그들에게 "너희들은 나라가 어려울때 무엇을 했느냐? 류자광은 솔선하여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지 않았느냐? 너희들은 부끄럽지도 않느냐?" 라며 혼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류자광은 세조가 승하(昇遐)한 후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보호해 주던 세조가 죽고 예종이 보위를 이었는데 예종은 남이(南怡) 장군을 몹시 싫어하였습니다.
류자광은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이(南怡)장군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예종은 즉시 남이(南怡)장군을 취조하고 목을 쳤습니다.
류자광은 공신반열에 올라 한명회, 신숙주 등과 같은 노회한 정치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 이었습니다.
예종이 승하한 것입니다.
새 임금은 13세의 성종이었습니다.
성종이 20세가 될 때까지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습니다. 이때 류자광은 "임금이 성인이 되었으니, 수렴청정을 거두고 임금에게 정권을 넘겨주어야 합니다."라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이는 한명회와 신숙주의 반대로 무산되고 관직에서 쫒겨났습니다.
성종은 한명회와 신숙주를 제거하려면 류자광이 필요함을 느끼고 반년만에 류자광 을 불러들여 도총관 (수도방위 사령관)에 임명 하였습니다.
그러다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이 승계하였습니다.
류자광은 이때도 즉시 기회를 잡았습니다.
사림파인 김일손이 사관(史官)인데 그의 사초(史草: 역사 기록초안)에 세조를 비방 하는 글이 있다는 정보를 이극돈이 류자광에게 제공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얼 출신이라고 자기를 무시하는 사림파를 제거하고 싶었는데 잘 걸린 것이었습니다.
류자광은 연산군에게 김일손의 스승이요 사림파의 거두였던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 :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를 찬탈한 일을 비판한 글)을 낱낱이 고변하여 연산군의 꼭지가 돌아버리게 하였습니다.
연산군은 즉시 사림파를 잡아들여 처형하고 이미 죽은 김종직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 (剖棺斬屍)를 하였습니다.
이 일로 류자광 은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류자광은 연산군에게 찰삭 달라붙어 연산군이 폭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간신이 되었습니다.
즉 연산군으로 하여금 온갖 패악질을 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귀양을 보내도록 한 것입니다.
기가막힌 체세술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 같은 처신이었지요.
"간신의 특징" 중 하나는 "배반의 아이콘"을 가지 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빌붙어 당대표를 했던 김모씨, 박근혜가 국회의원이었을 때 비서실장을 했던 유모씨,
문재인이 김정은에게 USB를 갖다 주고 9.19 군사합의를 하도록 하고, 해수부 공무원이 적에게 맞아 죽는 모습을 방관하고 내 팽개친 박지원 국정원장, 청와대 서훈 안보실장, 서욱 국방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에게 빌붙어 법무 장관을 하고도 배신한 한동훈 등,
전과가 4범이나 되는 者를 좋다고 떠받들며 희희낙낙하는 모리배들, 이런 者들에게서는 애국이니, 국익이니, 애민이니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한나라당 당대표,국힘당 간판으로 대통령 후보 출마, 대구시장을 해먹은 온갖 단물을 다 빼먹은 홍준표는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민주당 김부겸에게 붙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간신의 표본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양아치 들이지요.
인지가 발달되면 그렇지 않으려니 했지만, 몇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니 한심스러운 세상 이라고 생각 됩니다.
💚 부모님을 개처럼 모셔라.
"부모님을 개처럼 모시면 좋겠다“라는 모 구청장의 감명 깊은 글이 있어서 공유해 봅니다.
개 끌어안고 다니듯이, 거동 불편하신 부모님 업고 다니며, 개 아프다고 생돈 들여 보살피듯, 부모님 모시고 병원 다니길 바라며, 개 이빨 닦아주고 귀 청소해 주듯, 부모님 양치와 귀 청소해 드리고, 개 배설물 치우고 똥 닦아 주듯이,
부모님 입원하면 대소변 받아내고, 개 씻어 주듯이, 부모님 목욕해 드리고,
개 미용하듯이 부모님 용모, 의복 살피고,개 짖는 것 이뻐 좋아 하듯이, 늙은 부모님 헛소리도 들어 드리고,
개 잘 자나 살피듯이, 부모님 잠자리 살펴 드리고,
개 죽어 통곡하듯이, 부모님 돌아 가시 거던대성통곡(大聲痛哭)하는 자식 이길 바랍니다.
사람아, 사람아~!
사람 되거라.
부모님 돌아가시면 삼일 탈상(脫喪)에 모든 걸 다 끝내 정리하지만,
개 죽으면 핸드폰 사진, 동영상에다, 탈상은 커녕 일년내내 수시로 들여다보며
눈물 찔끔 거리네,
모름지기 인간의 도리 다 못함을 ‘금수(禽獸)만도 못하다.’ 하는데, 뭣이 옳은 도리인지 생각 해봤으면 합니다.
강아지한테 지극정성이듯, 날 낳고 기르신 부모님과 내가 있기까지의 조상님공덕(功德) 살피라는 겁니다.
< 자기가 갈 길을 묵묵히 즐기면서 가는 자가 행복하다 >
의외(意外)로 우리 주위에는 험담이나 소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때로는 우리가 그런 류(類)에 속하기도 한다. 남의 불행을 자기에게 꿀맛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속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런 유혹에 스르르 빠져들기도 한다.
아마도 인간의 내면(內面), 피 속에 흐르는 악마적 혈통이 수시로, 기회만 생기면, 강하게 준동(蠢動)하는가 보다. 성경 창세기 4장을 보면 힘이 센 형(兄) 가인(Cain)이 동생 아벨(Abel)을 돌로 때려죽였다. 그로부터 온갖 비본래적인 가치관과 신념과 언행(言行)들이 비롯되었다. 이는 인간 세상에 상존(常存)하는 죄(罪)가 있는 세상에 대한 기원을 알아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기원론담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쏟고, 다시 충전한다. 이 둘이 밤과 낮처럼 반복 순환된다. 문제는 에너지를 투입하는 내용과 방향이 어떤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명인사의 스캔들, 이혼 등의 사건에 집중하면서 그것을 갖고 루머를 만들고, 험담(險談)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많다. 이런 과정에서 사건은 굴러가면서 눈사람처럼 덩치가 커지는 것이다. 선천적인 창조력이 고약하게 발산되는 경우이다.
이런 대화에 집착하다보면, 본래 사건을 확산시키거나 침소봉대(針小棒大)가 되는 것이 빈번하다. 이런 말을 하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묘하게도 모순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 순수한 인간 진인(眞人), 아라한(阿羅漢)의 이미지는 등 뒤로 사라지고, 침을 흘리면서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와 같은 흉측한 흉안(兇眼), 거기에 음침한 미소를 짓는 흉소(兇笑)가 번진다.
이런 이유가 무엇일까? 속으로는 참아야지 하면서도 입으로 마구 퍼뜨려버리는 이유가 무얼까? 네 가지로 분석이 가능하다.
1)정보를 공유하려는 인간 본성의 발현(發現)이다. 함께 공생 공영하려는 욕구가 발동하여서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체성을 드러낸다.
2)사람은 가슴에 뭔가 비밀을 갖고 있으면 그것을 가만히 담아두지 못하고 발설(發說)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점점 사건을 확대시켜서 말한다. 대개 좋은 것을 키워서 말하기는 드물고, 나쁜 것은 더욱 확대하여서 떠든다. 이는 상당한 유혹이고 절제가 쉽지 않다. 그 배경에는 악마의 속삭임이나 배후 조종(操縱)이 있다. 그래서 종교인들의 수도(修道) 생활에는 침묵이 공통적으로 강조된다.
3)불평불만이 있으면 마음 속에 독기(毒氣)가 차게 되고, 악취가 나고,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든지 밖으로 쏟아내어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써 긍정적으로는 웃음, 수다떨기, 운동을 하면서 소리지르기, 등산, 등의 방법이 있지만, 이보다도 부정적인 표현 방법이 험담을 퍼뜨리는 것이 더 많다.
4)남의 뒤에서 험담을 하거나 비난을 하는 현상을, 그 내용을 뒤집어 보면, 반전(反轉) 시켜서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자가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에 굶주려 있는 심리를 가진 사람이다. 험담을 많이 하는 자일수록, 주변의 상황들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해 주고 유심히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신에, 누군가 나를 도와달라고 하기보다,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고 즐기는 것으로써 자기 불만을 해소하려고 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큰 공간이 있고, 거기에 사랑, 희망, 칭찬, 격려, 성공, 승리, 등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래서 바람이 충분히 들어간 풍선처럼, 마음의 상태가 긍정적인 입장에서 팽팽해져야 한다. 이것이 부족하면, 바람의 일부가 빠져서 우글쭈글해진 풍선처럼, 마음의 주머니가 일그러지고 뒤틀어진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는 남의 좋은 점도 삐딱하게 보고, 남의 장점도 비웃음의 대상으로 여긴다.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인 시기(猜忌), 자기 소신을 마음껏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에 대한 선망(羨望), ‘행복한 가정을 가진 사람’에 대한 질투(嫉妬) 등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극복할 대안이 무언가? “행복하고 충실한 삶을 사는 자는 세간의 스캔들에는 거의 관심을 안 갖는다.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즐기면서 산다.”는 것을 수용하고 실천해 보는 것이다.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이고, 벚꽃은 벚꽃이다. 각자 고유한 특징과 아름다움을 갖는다. 이처럼, “나는 나다.” “나는 세계에서 유린한 개성진리체이다.” “나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귀한 존재이다.”는 자의식을 굳건히 가져 보자. 자신의 현실 삶에 당당해져보자. 묵묵히 자기가 갈 길을 가면서 행복을 끌어당겨보자. (日光 趙應泰 0103407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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