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셈 워커 대위 외2.

太兄 2026. 4. 21. 21:21

셈 워커 대위

하버드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해 28세의 나이로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이야기를 썼다.
글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이런 분이 계신 줄 몰랐다", "너무 부끄럽고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반응들이 내게는 조금 충격적이고 씁쓸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매일 숨 쉬고 밥을 먹으며 당연하게 누리는 이 나라의 평범한 일상이, 실은 남의 나라 청년들의 찢어지는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기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철저하게 잊고 살았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먹먹한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고자,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았던 또 다른 기가 막힌 사연 하나를 더 써볼까 한다.

1950년 여름, 6.25 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 앞에서 대한민국은 멸망 직전이었다. 임시 수도 부산이 지척인 낙동강 방어선. 미 제8군 사령관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후퇴를 입에 올리는 미군과 한국군 지휘관들을 모아 놓고 권총을 빼들며 그 유명한 명령을 내린다.
"Stand or Die (버티거나, 아니면 죽어라)."
"우리가 여기서 밀리면 수백만의 한국인들이 바다로 쫓겨나 학살 당할 것이다.
덩케르크는 없다.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

그는 그 절망적인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며 기어이 대한민국의 숨통을 살려냈다.
우리가 아는 서울 워커힐(Walkerhill) 호텔의 이름이 바로 이 장군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은 익히 알려진 유명한 일화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당시 그 끔찍한 전장에는 8군 사령관인 아버지 워커 장군뿐만 아니라, 그의 외아들인 24세의 샘 워커(Sam S. Walker) 대위도 미 제24보병사단의 중대장으로 소총을 들고 최전선에서 함께 뒹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최고의 장성이 자신의 귀한 외아들을 가장 위험한 사지로 밀어 넣은 것이다.

비극은 1950년 12월 23일에 찾아왔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다시 악화되던 매서운 겨울, 전선을 시찰하러 이동하던 워커 장군의 짚차가 서울 도봉구 부근에서 한국군 트럭과 충돌해 전복되었다. '낙동강의 영웅' 워커 장군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도쿄에 있던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최전방에서 중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고 있던 워커 장군의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특별 지시를 내린다.
"부친의 유해를 모시고 당장 미국 본토로 귀환하라."
아버지가 전사했다. 장례를 치러야 한다. 최고 사령관이 직접 귀국을 명령했다.
그 어떤 누구도 이 24살의 청년 장교가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합당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완벽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얼어붙은 참호 속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들은 청년 장교는, 그 달콤하고도 합당한 생존의 동아줄을 단칼에 찢어 버린다.
샘 워커 대위는 맥아더의 귀국 명령을 거부하며 이렇게 타전했다.
"나의 부하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악전고투하고 있습니다.
중대장인 제가 어찌 부하들을 이곳에 버려 두고, 나 혼자 살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남겠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차가운 관을 홀로 태평양 너머 알링턴 국립묘지로 돌려 보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대신, 그는 다시 수류탄을 챙기고 눈 덮인 전방의 참호 속으로 걸어 들어 갔다.

아버지는 타국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불사했고, 아들은 자기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아버지의 장례식마저 포기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모를 나라에 총과 대포만 보낸 것이 아니다.
미국 상류 사회의 가장 고결한 도덕과 핏값을 함께 보낸 것이다.
이것이 얄팍한 이념 장사꾼들이 틈만 나면 훼손하려 드는 '한미동맹'의 진짜 밑바닥에 흐르는 묵직한 본질이다.

화사한 봄꽃이 피어나는 출근길. 우리가 숨 쉬듯 당연하게 누리는 이 4월의 아침은 아버지의 관을 태운 비행기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다시 총을 쥐었던 24세 이방인 청년의 그 거룩하고도 고독한 뒷모습 위에 세워진 기적이다.
위기가 닥치면 특권 뒤로 숨기 바쁜 비루한 시대에, 진짜 어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가슴을 서늘하게 짓누른다.

[기록]
"My men are fighting hard. I cannot leave them. I will stay here."
[해석]
내 부하들이 악전고투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떠날 수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 남겠습니다.
-1950년 12월, 부친상으로 인한 귀국 명령을 거부하며 샘 워커 대위가 맥아더 장군에게 타전한 내용입니다

-박주현 변호사- 

 

❤️  재미 있는 우리말 어원과 由來  

♧ 숙맥 (菽麥)
콩숙 (菽) / 보리맥 (麥) -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을 기리키는 말.

♧철부지 ( ~ 不知)
아니불 (不) / 알지 (知) 앞에 '철' 은 계절의 변화를 가르키는 말로 겨우내 여름 옷을 입고 있거나 반대로 여름내 겨울옷을 입고 다닐만큼 감각이나 생각이 없는 아이들을 이르는 말.

♧시치미떼다
매 (鷹)사냥을 하던 옛날에 자기의 '매'를 표시하기 위해 쇠뿔로 만든 이름표(시치미)를 '매'의 다리에 달아 남의 '매'와 바뀌지 않도록 하였는데 남의 '매'가 탐이나면 이름표(시치미)를 떼어 자기 '매'에 달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

♧ 아수라장(阿修羅場)
'아수라' 는 원래 불교에서 사용하는 말로 성질이 포악하고 싸움을 잘하며 좋은일이 생기면 쫓아가 훼방을 놓는 악귀(惡鬼)를 뜻합니다.이런 '아수라'들이 모여 놀고있는 모습은 늘 시끄럽고 엉망진창일 거라고 생각하여 '아수라장' 이란 말이 생겨남.

♧푼돈
'푼' 은 옛날 화폐로 사용하던 엽전(葉錢)의 가장 낮은 단위로 엽전 한잎이 1푼 이므로 푼돈 이라고하면 작은액수의 돈을 뜻하는 말.

♧싼게 비지떡
값이 싼 것이 아니고 보자기에 싼 것이 비지떡
옛날 먼길을 가던 나그네가 주막에서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가면서 주모에게 사정해서 얻은 콩비지를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갔다는 데서 유래한 말.

♧굴뚝같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중에 하나로 예를 들자면 명절이 되니 고향에 가고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라는 말을 하곤 하지요. 이말의 어원은 먹을 것이 많지않던 시절 어쩌다 '떡'을 먹을 기회가 있을 때
'꿀'을 떡에 발라서 먹으면 그 맛이 어땠을까요?
꿀떡맛 ~ 여기서 파생된 말이 꿀떡같다  에서 굴뚝같다 로 오용된 것 이라고 합니다

♧양치질
우리가 칫솔로 이빨을 닦는 것을 양치질 한다고 하지요.

이 말의 어원은 양지(楊枝/버드나무가지)에서 비롯된말 입니다. 고려시대 문헌 겨림유사에도 등재되어 있고 한글 문헌에도 양지질로 표기되어 있답니다. 즉 양지(楊枝/버드나무가지)로 이(齒)를 청소 하였으며 오늘날 이쑤시개 처럼 소독이 된다고 믿었던 버드나무 가지를 잘게 짤라 사용 했답니다. 이와같이 이(齒)를 청소하는 것을 양지질 이라고 하였는데 점차 어원이 변하여 전혀 다른 뜻의 이의한자(異義漢字)인 치(齒)와 연결시켜 접미사인 질(質)이 붙어 오늘날 양치질로 변화됨

♧어처구니(없다)
황당하고 기막힌 일이 생겼을 때 쓰는 말 입니다.
궁궐지붕(추녀마루)의 가장자리에 마무리 조각물(사람/동물)토우를 3~11개 정도 올려 건물의 권위와 기능을 상징 하는 조각물을 어처구니 라고 하는데 그 조각물을 빠트린 상황
맷돌의 손잡이(맷손)를 어처구니 라고 하는데 먼 친척 집에서 빌려온 맷돌이 손잡이가 없을때 처럼 황당한 상황을 이르는 말

 

한국병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고 1970년대 말까지 영국을 휩쓴 영국병,
탄광노조의 파업을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극복한 인물은 영국의 최초 여성 총리이자 철의 수상으로 불리던 대처였다.
매년 두 자리 숫자의 인프레이션 속에서도 복지에 매달린 결과 침몰하던 영국경제를  살려 영국병을 고친 것이다.
대처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였다.

적자에 허득이던 공기업을 과감하게 민영화 시켜 시장에 맡기고 공기업을 매각한 자본으로 국가부채를 줄였다.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를 우리는 사회주의 정책이라 하니 사회주의가 성공한 예는 드물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떤가?
영국병을 앓았던 대처수상 이전의 영국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천수백 조의 국가빚 혹자는 사천수백 조라 부르는 국가빚 국민 일 인당 억대의 빚을 두고도 선심성 공돈 풀기에 바쁘고 국민은 이에 환호하니 사회주의 국가와 무엇이 다른가?
와중에 노란 봉투법으로 기업을 옥죄고 고액을 받는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을 예고하니 21세기형 한국병 환자 나라가 되었다.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은 실업자에게 돈을 나누어 주어 국가가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활성화 시켜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진짜 복지다.
시장경제에 어찌 허점이 없겠는가?
아무런 희생도 없는 개혁은 천당이나 극락에만 존재한다.

無 碍   성 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