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KOREA & USA 외2.

太兄 2026. 2. 24. 22:14

■ KOREA  &  USA

자주국방이라는 모토로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코리아로 가져와야 하겠다는 주장이 있는가 보다.
자고로 주제와 분수를 모르면 쥐도 새도 모르게 한 방에 가는 수가 있는데 그게 요즘 코리아가 보여주고 있는 작태가 그것이다.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보따리부터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이 21세기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기고만장하는 코리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코리아는 미국 덕분에 태어나서 미국 덕분에 연명하고 미국 덕분에 성장하여,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제시대 독립군 타령을 무지하게 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2차대전에 참전도 못하고 자주적인 독립은 커녕 일제로부터의 해방부터가 미국의 원폭 덕분에 얻어걸린 것 아니냐?
신탁통치를 마치고 건국 후 미국은 순순히 돌아갔다.
헌데, 철수한지 얼마나 됐다고 북괴로부터 침공을 당하여 낙동강까지 밀려났다.
만일 그때 하루 이틀만 미국의 지원이 늦었으면 대한민국은 지금 지도에서 없었을 가능성이 5만 8천프로이다.
전시작전권이라는 것도 그때 대한민국의 찌질한 똥별 덕분에 국군이 몰살되는 바람에 스스로 미국에 양도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미군이 있었고 미군이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나마 연명도 하고 이만큼 성장도 하고 발전도 했던 것을 부인할 수 있으면 한미관계에 관한 어떠한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바로 이 역사적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코리아가 언제부터 명품백을 들고 다니며 비데 위에서 똥싸고 살았는지 모르겠으나 미군에 원조 받은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때 원조가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굶어 죽었을지 상상만 해도 참 고맙고 감사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닐 수 없다.
K-예절, 동방예의지국 이래매?
예의는 커녕 언제부터 배은망덕의 나라가 되었나?

미국이 6,25때 대한민국을 지키느라 전사한 숫자만 3만 6천명이다.
당시 미국 인구가 1억 5천이었으니 오늘날 한국인구 5천만에서 환산한다면 한국군 1만 2천병이 희생된 셈이 된다.
미국이 돈도 많은 강대국이지만 대한민국만큼은 돈으로 지켜준 나라가 아니다.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 대한민국은 이 정도의 희생을 할 수 있는 의향이 있는가?
이런 희생을 감수하며 지켜주었더니 이제 먹고 살만 하니까 전시작전권 내놓고 나가달라?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인가?

미국이 그동안 한국에 갖다 쏟아부은 돈이 얼마나 될까? 그게 몇년 정도 갖다 부은 것이 아니고 햇수로 80년이다.
수십년간 대한민국 국방비의 90프로를 미국에서 부담했다는 통계도 있다.
돈과 무기는 물론 한국에서 수출을 하겠다면 본국의 시장도 내주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수출이란 것을 하던 시절 미국에서 기침을 하면 한국은 독감이 된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었다. 그만큼 한국의 경제발전에 미국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미국의 존재 없이 오늘날 코리아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뭐 이 말에 켕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반박을 할 수 있다면 반박을 먼저 해 보시던지.

전시작전권 환수의 포인트는 이것이다. 나라가 백척간두에 몰렸을 때 간청하여 참전했고 그 덕분에 연명을 하였는데, 이제 볼장 다 봤으니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자주국방하겠다?

상식적으로 자주국방을 하겠다면 그간 생돈 들여 지켜준 미국 입장에선 한시름 놓을 일일 법도 하겠지만, 진짜로 자주국방을 할 수 있는 역량은 있는 건지, 아니면 나라를 그냥 통째로 북한이나 중국에 갖다 바치기 위한 계략인지 석연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다 떠나서, 간청하여 들어와 적지 않은 희생을 치루어 이 나라의 성립에 적지 않은 공적과 지분이 있는데, 평상시 미군의 존재에 감사하지도 않던 세력에 등 떠밀려 떠나는 것이 맞나? 충분한 감사도 표하고 섭섭지 않게 보상도 하고, 그리고 나서 어렵게 말을 꺼내서 의견을 물어보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도리 아냐?
막말로 코리아는 미군이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영구 주둔을 한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 아닌가?

미국은 코리아에 한량 없는 자비를 베풀었다.
국방이니 경제니...그런 것 다 빼고 하나만 얘기할께. 대한민국은 여전히 중국에 이은 세계적 고아 수출국이다. 전세계 1위라는 루머가 있었는데, 그건 아니고 전세계 4위란다.
헌데, 인구비율로 따졌을 땐 중국 보다 7배나 많은 영아들이 세계로 수출되고 있단다.
세계 10위의 경제국가에 K-푸드니, K-팜이니 하면서 온갖 가오를 잡고 있지만 K-분야의 원조는 이런 것들이 아니라 K-고아수출이고, 그 고아들을 가장 많이 거두어주었던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자기 새끼도 안 기르고 다른 나라로 수출하고 있는 입장에서, 자주국방?

일단 코리아는 자주국방같은 쌉소리는 걷어치우고 80년 넘게 의리를 지키며 지켜주고 있을 때 감사히 받아먹으며 그 여력으로 기초 쳬력을 좀더 키우는 것이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첩경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이 아니라 중상은 할 수 있는데, 스스로 자기 밥그릇 걷어차고 국제고아가 되어 동네북이 되는, 그러다가 또다시 어느 나라에 정복되어 노예나 식민지로 전락하고 싶은가? 새파란 젊은 아이들이 춤 잘 추고 노래 잘 불러 인기가 좋으니 강대국이 된 것같아?
이미 나락은 가고 있지만 이만큼이나마 이룬 것이 코리아 자체가 홀로 잘나서 이렇게 되었을까?
미국이 이런 얘기를 체면 생각해서 차마 안 하니까 자꾸 호구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 이란한테 하는 것 봤지?
중국도 손쉽게 팔 비틀고 시진핑을 사지로 몰고 있는 것 보이지?

코리아가 뭐가 예뻐서 그랬는지 몰라도 1945년부터 무려 80년을 뒤를 봐주었다. 싸가지 없는 조센칭이 하는 소리가 있다.
미국도 이익이 있으니 그랬을 것이라고. 3만 6천의 청년을 남의 나라에서 죽이고 얻는 국익이란 없다.
그런 반인륜적 잣대로 남들을 재단하니, 조센칭이란 칭호도 아깝다.
설령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로 이익을 얻었다 한들, 양국의 거래로 어느 쪽의 이득이 더 컸는지, 조금만 생각해도 그런 발상은 그 동기가 불순하다고 하겠다.
미국은 코리아에 내 새끼한테도 베풀기 어려운 혜택을 베풀었다.
생각해봐라. 상해에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장개석이 얼마나 많이 도왔나. 그런 혜택을 받아놓고 중국과 수교를 한다고 하루 아침에 대만을 팽개쳤지. 이번엔 미국에게도? 자주국방을 위해서? 자기 새끼도 수출하는 주제에? 코리아의 정체성은 배은망덕인가?

다 좋은데, 고아수출 정도는 이제 중단하고 자기 나라에서 출생한 영아 정도는 스스로 책임을 지면서 자주국방을 추구하시든지 말든지.
제발 코리아는 자주국방 이전에 메타인지부터 챙겼으면 좋겠다. 주제파악을 먼저 해 달라고.

*군대도 안간 사람들이 대통령과 국방장관을 하는데,  어떻게 자주국방을 할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받은 글 입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집안에 아직 초등학교를 마치는 아이가 없어 무심히 넘겼는데 어제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초등학교 졸업식 이야기로 한담하시는 동네분들 틈에 끼이다 보니 
갑자기 제가 어릴때 만난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던시골 국민학교 졸업식에서 
불렀던 졸업식 노래가 생각나고 우연히 알게 된 그 노래의 탄생 배경이 생각나서 차제에 이곳에  옮겨 나누기로 작심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방송인으로, 記者이자 PD로 이름을  날리던 "김형민"씨가 들려준글입니다. 

나이드신 분들은 기억이 나시겠지만 탄생배경 까지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졸업식 노래의 탄생비화 "

1946년 6월 6일 해방된 지 겨우 1년... 중앙청에 성조기가 나부끼고 미군 육군 중장이 38선 이하의 조선 땅을 통치하던 무렵, 군정청편수국장 직함을 가지고 있던 외솔 최현배가 한 아동문학가를 찾았습니다.  

“여보 석동. 노래 하나 지어 주시게.”  

석동이라는 아호를 가진 이 사람의 본명은 윤석중(尹石重)이었습니다.  

석동이라는 아호는 어느 신문에선가 그를 소개하면서 윤석동(童)이라고 잘못 쓴 걸 보고 춘원 이광수가 “석동이라는 아호가 좋네. 누가지어 준 거요?"라고 칭찬하면서 그대로 아호가 돼 버렸다고 합니다. 

“졸업식 때 쓸 노래가 마땅하지 않소. 그래서 외국 곡을 이것저것 가져다 쓰는 형편이니 석동이 하나 지어 줘야겠소.”  

윤석중은 해방 직후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작사하여 해방된 조선의 어린이들이 목청껏  ‘'새나라우리나라'’를 부르게 해 주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최현배가 보기에 일제 때부터 동요 작사가로 이름을 날린 윤석중은 졸업식 노래를 만들 최적임자였을 것입니다.  

윤석중이 누구시더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을 위해서 노래 몇 개만 흥얼거려 보겠습니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그리고 어린이날만 되면 울려 퍼지는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이쯤 되면 아! 아! 아! 하시면서 고개를 상하로 크게 흔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최현배가 졸업식 노래를 의뢰한 게 1946년 6월 5일이었습니다. 최현배의 부탁을 받자마자 윤석중의 머릿속에는 시상(詩想)이 번득인 것 같습니다.  

원래 악상(樂想)이나 시상은 배차 시간 쫓기는 기사가 모는 버스 같아서 제때 손 들지 않으면 휙 지나가 버리는 법.   윤석중은 그날이 가기 전에 가사를 완성합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윤석중이 또 급히 찾은 것은작곡가 정순철이었습니다. 

바로 <새나라의 어린이> <엄마 앞에서 짝짜꿍>의 작곡가. 

정순철 작곡가의 아드님의 회고에 따르면 정순철 또한 가사를 받고 악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허겁지겁 피아노를 두들기다가 악보에 콩나물을 급하게 그려 뛰어 나가던 모습을 회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성미 급한 작사가와 작곡가는 설렁탕집에서 만났습니다.  

“비이잋 나는 조오올업장을  타신 언니께~~~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원래 흥에 겨운 예술가들의 얼굴 두께는 빙산처럼 두터워지는 법. 

설렁탕 집에서 때아닌 고성방가는 

“거 조용히 합시다!”
라는 지청구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졸업식 노래는 그렇게 엉겁결에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사와 가락은 결코 엉성하지 않았습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하는 1절은 교과서도 제대로 없어 선배들 것들을 물려받아 공부해야 했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시대와는 좀 맞지 않지만요)  

그런데 뭉클한 것은 2절이고, 사실 2절을 부를 때 졸업식은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그리고 또 나오는 '‘새나라’'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3절은 졸업이 아닌 다짐의 합창.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강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당장 편수국 전 직원들 앞에서 이 노래가 처음 불렸고 열화와 같은 호응을 거쳐 
졸업식 노래로 공표된 것이 1946년 6월 6일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역시 커다란 환영을 받으며 각급학교에서 불렸습니다.  

때아닌 돈벼락을 맞은 것이 당시로서는 몇 집 안되던 꽃집들이라고 합니다.  
각급 학교 졸업 때마다 꽃다발 주문 홍수가 일어난 것입니다.  
원래 윤석중의 의도는 “마음의 꽃다발"이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 윤석중 작사가와 정순철 작곡가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크나큰 상처를 입거나 아예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윤석중의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이복동생은 충남서산에 살고 있었는데 
새어머니 쪽이 좌익과 관련되었다고 합니다.  

전쟁 와중에 벌어진 피의 학살극에 윤석중의 가족은 몰살당하고 말았답니다.  

윤석중이 원래 서산으로 피난 오려던 것을 아버지가 
“전쟁 통에는 떨어져 있어야누구든 산다"고 만류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천행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작곡가 정순철의 불행은 본인에게 찾아왔습니다.  

다 피난간 학교(성신여고)를 홀로 지키다가 거의 서울이 수복되던 9월 28일경 
인민군에게 납북되고 만 것입니다.  

이후 그의 생사는 알려지지 않는답니다.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이자 의암 손병희의 사위였던 그의 제삿날은 그래서 수복 다음날인 9월 29일이 됐답니다.  

후일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윤석중은 이렇게 연설합니다.  

“정말로 국경이 없는 것은 동심인 줄 압니다. 동심이란무엇입니까? 인간의 본심입니다. 
인간의 양심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물이나 목성 하고도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 곧 동심입니다.”  

간악한 일제 통치를 받을 때에도, 해방의 혼란과 설렘 와중에서도, 자신의 일가족을 학살하고 절친한 작곡가의 생사를 가린 전쟁의 공포속에서도, 가난의 무게가 전국민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을 때에도 

윤석중은 그 어둠을 밝힐 빛으로 ‘'동심’'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졸업식 노래>는 그중 하나였습니다.  

요즘 졸업식에서는 ‘'올드랭사인’'을 많이 부른다고 알고있습니다. 

돌이켜보면 1988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그 노래를 불렀던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바뀌었을까요.  어느 철없는 문교부 당국자가 “요즘 세상에 누가 교과서를 물려주나? 바꿔!” 
한 것인지 아니면 가사가 초등학생스러워서 목소리 굵어진 청소년들이 부르기엔 좀 어색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정히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 가사를 조금 바꿔서라도 우리나라만의 졸업식 노래로 가꿔 갈 수도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대로 교사(校舍) 하나 갖추지 못한 천막 학교에서 손을 갈퀴 삼아 일하면서도 
자식만은 학교에 보내려던 퀭한 눈의 부모 앞에서 얼기설기 만든 꽃다발을 든 졸업생들이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를 부르다가끝내 엉엉 울었고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을 젖은 목소리로 함께 하던 졸업식 풍경은 수 세대에 걸쳐 
우리나라 곳곳에서 행해진 살가운 역사의 한 페이지였는데......  

윤석중과 정순철 두 사람이 설렁탕집에서 부르며 만든 노래. 흘낏 떠올려도 아련한추억이 슬라이드처럼 흘러가는 노래 <졸업식 노래>가 

1946년 6월 6일 우리 곁으로 왔음을 기억합니다. 

 

  < 시대 변화를 따라가야 성장한다. ; 베트남 오토바이의 변신 >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다 온 이들이 많다. 가서 받은 인상 중에서 누구나 공통으로 느끼는 것 네가지가 있다. 1)넘쳐나는 오토바이와 무질서와 지독한 매연(煤煙), 2)베트남 전쟁(1955~1975) 중에 공산당에 의하여 성인(成人)들이 전사하거나 살해를 당하였고, 그들의 후손이 지금 청년이 되어서 중심인구 계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 3)왕성한 경제 활동, 4)공산당이면서도 국가를 위해 일한 호치민의 이미지이다. 이 중에서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많은 오토바이가 도로를 차지하여 무질서하다는 것과 매연(煤煙)이 공기를 오염시켜서 숨을 쉬지 못할 정도가 된 것이다.
  하도 오토바이가 많아서 ‘오토바이 천국’으로 불린다. 인구 800만명 중에서 거의 80%가 오토바이를 갖고 있고, 수도(首都) 하노이에는 매연을 뿜어내는 오토바이가 도로를 질주한다. 오토바이 천국이 매연 지옥으로 불릴 정도이다. 왜 도로에 오토바이가 많은가? 도로 구조가 자동차가 다닐 정도로 폭이 넓은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미줄처럼 골목들이 조밀하게 얽혀있기에 자동차 대신에 오토바이가 증가한 것이다. 날씨도 후덥지근하다. 그만큼 매연이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고 도로에 가득하다. 숨을 쉬면서 걷기가 힘들다. 현지인들도 걷는 것이 숨쉬기에 힘들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단거리 이동을 할 때에도 오토바이를 사용한다. 그것은 또 매연을 뿜어내어 공기를 탁하게 만든다. 일종의 악순환(惡循環)이다.
  마침내 베트남 국가가 정비에 나섰다. 기름을 사용하여서 매연을 배출하는 오토바이를 줄이고 전기를 사용하는 오토바이들이 다니게 하려는 것이다. 앞으로 6개월 안으로 국민들은 전기를 사용하는 오토바이를 구입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또 발생한다. 엔진구조가 완전히 달라졌기에 새 오토바이를 구입해야 하고, 여기서 구입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국가차원에서 전기 충전소를 많이 건설해야 하고 충전 시간이 빠른 것을  설립해야 한다는 과제도 큰 고민거리이다.
  어쨌든 베트남은 변해야 한다. 특히 1976년에 통일된 베트남의 수도(首都)가 된 하노이에서는 매연 공해가 심하기로 소문이 났다. 당장 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염된 공기로 인하여 베트남 국민들의 건강이 위협을 받을 것이며, 관광객도 줄고, 국가 이미지가 추락할 것이다. 또 지금은 청년층이 많지만 향후 10년이 지나면 자연히 노인층도 증가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를 하여서 내년 2027년에는 달라진 베트남, 무공해 청정(淸淨) 공기를 갖고 있는 베트남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의 자동차 업계도 에너지 변화 추세를 따라가야 한다. 이를 거절하면 경쟁에 뒤지게 된다. 민노총이 자동차 공장에서 로봇도입과 전기차 생산을 반대하여 왔다. 결국 기업의 외국 이전 및 직장 폐쇄로 인하여 직장을 잃게 되는 불행을 자초하였다. 회사와 근로자가 같이 변화에 맞추고 따라가기 위한 협력을 하지 못한 까닭에 곤경에 처해 있다. 그것은 또 한국의 국가적인 차원의 위협 요소가 된다.
  모든 분야가 다 그 분야에 맞는 새로운 변화, 변신, 도전,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뱀이 허물을 벗듯이, 구각(舊殼, 옛 껍질)을 던지고 새 옷을 갈아입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먼저 개인이나 직장이나 국가는 자기가 속한 분야가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거기서 각자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고심해야 한다. 그것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오해하고 싫어하면 성장이 멈춰진다. 동물과 식물도 성장을 위해 스트레스를 감내한다. 스트레스를 극복해야 발전과 부흥과 성장이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최종 목표가 하늘공경, 홍익인간, 인류대가족이라는 선(善)하고 광명(光明)할 때에 번영과 융성에 시너지 효과가 생길 것이다. 한국이 앞서 가보자.(一光 趙應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