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부인의. 추모사 [ 전두환 대통령 ] 4주기를 맞이하여
[ 전두환 대통령 ] 4주기를 맞이하여
오늘도 어김없이 당신의 사진 앞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올려놓습니다.
당신이 좋아하시던 커피 향이 당신의 사진 위로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그 사진 앞에 앉아 당신과 지내온 수많은 시간을 떠올립니다.
지나고 보니 찰나의 시간들 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참모장이었던 내 아버지 집에 친구들과 함께 찾아와 점심을 먹고 가던 패기 넘치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여중생이던 나에게 아저씨로, 오빠로 다가왔던 당신. 가족처럼 지내다 어느새 사랑이 싹트던 그 수줍던 시간.
"가난한 군인의 아내로 살게 할 수 없다"며 나를 떠나려 했던 당신.
그런 당신을 기다리다 못해 이화여대 의대 1학년을 중단하고 결혼했던 1959년 겨울~.
그 날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합니다.
결혼 후 다섯 달 만에 미국의 특수전학교 혹독한 교육과정.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무서운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 대한민국 국군의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힘을 쏟았던 당신....
5·16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박정희 소장을 만나 혁명의 뜻을 확인하고, 육사 생도들을 설득해 혁명 지지 퍼레이드를 주도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조국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제안했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군으로 돌아갔던 당신.... 제1공수특전단 2대대장으로 부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맨 앞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대대장 시절에는 모두가 반대하는 가운데 청와대에 박격포 설치를 건의했고, 후에 그 박격포의 조명탄이 김신조 일당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1970년 11월, 백마부대 제29연대장으로 탄약 냄새 자욱한, 베트남전에 참전했습니다.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고 그리움이 짙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은 베트남전에서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힘으로 지켜내지 못하는 자유와 이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는 국토는 아무리 강대국이 도와줘도 지킬 수 없다."
당신은 베트남전에서 돌아오자마자 공수특전단 단장이 되어 장병들과 하나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당신은 임지가 바뀔 때마다 100일 동안 부대에서 숙식하며 모든 장병의 이름과 직책, 부대의 전반적인 상황을 철저히 파악했습니다.
그 100일 동안은 나도 아이들도 당신을 만날 수 없었지요.
당신이 늘 외치던 천하 제1사단에 근무할 때 발견한 제3땅굴. 당신은 조국을 위해 늘 최선을 다했던 군인이었습니다.
그랬던 당신의 인생이 돌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은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국군보안사령관에 임명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달 후 박 대통령이 시해되고, 당신은 자동으로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었습니다.
얼굴이 잿빛이 되도록 수사에 몰두하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육군소장에 불과했던 당신이 막강한 계엄사령관을 상대로 조사해야 하는 상황. 그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맡겨진 책임을 다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가족으로서도 두렵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오로지 조국과 박 대통령이 맡기신 역사의 무게를 온몸과 마음으로 감당했습니다.
역사는 당신을 대한민국 제11대, 12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 놓았습니다.
평생을 군에서 헌신했던 당신은 밤낮없이 각 분야 전문가에게 토론하고 배우며 정책을 펼쳤습니다.
석유파동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긴축재정과 고통스러운 안정화 정책을 통해 물가를 잡고 경제를 안정시켰습니다.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풀고 민영화를 추진했으며, 중산층을 확대 했습니다.
동시에 복지정책도 본격화해 의료보험을 확대하고 국민연금을 실시했습니다.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는 일도 계속 했습니다.
IT와 반도체 개발에 앞장섰고, 경수로 기술의 국산화를 성공시켰습니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 했던 미국을 설득해 한미동맹을 강화했고, 일본으로부터 40억 달러 차관을 받아냈습니다.
모두가 반대했던 88올림픽을 유치했고, 정권 초기의 약속대로 평화적 정권 이양을 실현했습니다.
그리고 국가부채를 모두 갚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정권 내내 끊임없는 시위가 이어졌고, 북한의 대남 도발이 계속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있었지만, 자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은 온갖 비난과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청와대를 떠난 후의 시간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 이었습니다. 숙원이었던 88올림픽 개막식에 초대받지 못했고,
백담사에 769일 동안 유폐되어 매서운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후 수없이 치러진 재판과 사형선고, 추징금 환수라는 이름의 재산 몰수. 왜곡된 언론과 드라마, 영화는 당신을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당신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 당신은 이렇게 말씀 하셨지요.
"내가 퇴임한 후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속상해하지 마시오.
나는 군인으로서 맡은 임무를 죽을 각오로 임했소.
박정희 대통령께서 나를 보안사령관으로 임명하지 않으셨으면 나는 군인으로 만족하고 살았을 것이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1사단장 임무가 1년 남은 나를 보안사령관으로 임명하셨소.
그 후 7개월 만에 돌아가셨고 계엄령이 확대되고 나는 자동으로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박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를 맡게 되었소.
세상은 내가 계엄령을 내렸다는 거짓 정보를 퍼뜨리기도 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했소.“
그리고 당신은
"설사 악법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을 지냈던 내가 솔선수범해서 지키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광주에 내려가 모진 비난과 모멸을 감수하셨습니다. 결국 그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당신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남자로 태어나 나라를 위해 할 일을 원 없이 했소.
그걸로 만족하오. 대우를 받고 안 받고는 나의 몫이 아니요.“
오늘은 당신의 4번째 기일입니다.
당신을 기억하고 찾아주시는 많은 분이 당신의 유해가 집 안에 계시는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저는 그 분의 유골함이 집에 계셔서 마음이 편합니다.
언젠가 각하의 명예가 회복되면 나라의 처분에 따라야죠.
그때가 되면 한 몸 뉠 곳이 없겠습니까.”
나의 애인이었고, 신랑이었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당신.
당신을 만나 일평생 잘 살았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당신과의 기억을 잘 간직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전두환대통령의 서거 4주기를 맞이하여 영부인 이순자女史가 face book 에 올린 글.
아름다운 소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400여 년 전 어느 날 송별연에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모여 저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라고 떠들며 취흥을 돋웠다.
주고받은 술에 거나해진 송강 정철이 가장 먼저 읊었다.
“청명한 밤, 밝은 달빛을 살짝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 소리.”
일송 심희수가 뒤를 이었다.
“단풍 깊게 물든 먼 산봉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서애 유성룡이 애주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새벽 잠결 창을 두드리는 술방울 떨어지는 소리.”
가장 젊은 월사 이정구는 오히려 점잖을 뺐다.
“산골 초가집에서 뛰어난 젊은이가 시 읊는 소리.”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이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툭 던졌다.
“깊은 밤 그윽한 방에서 고운 님의 치마 벗는 소리.”
모두들 박장대소 하며 최고라고 외쳤다.
조선 시대 설화집 ‘고금소총’이 홍만종의 ‘명엽지해’ 에서 따온 글이라며 소개한 장면이다.
해학과 풍자로 가득 찬 ‘고금소총’이 굳이 이 글을 넣은 이유는 아마도 인간 본능의 소리를 솔직하게 읊은 백사의 ‘치
마 벗는 소리’ 때문이지 싶다.
학문하는 선비들의 이같은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아름다운 소리에 반해 서민들은 아름답고 좋은 소리를 4가지로 꼽았다.
갓난 아기 우는 소리,
아이의 글 읽는 소리,
저잣거리의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 그리고 먼곳에서 들려오는 여인네의 다듬이 소리….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도 솔바람 소리, 시냇물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두는 소리, 섬돌에 비 떨어지는 소리, 창 밖에 눈
흩날리는 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꼽으면서도 그 중 최고는 ‘내 아이의 글 읽는 소리’ 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는 가장 듣고 싶은 소리이기도 할텐데 여러 나라에서 수차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소리는 ‘사랑’ 이었다.
연인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친구, 직장 동료, 선후배에게 ‘사랑한다'란 말을 듣는 것이 제일행복’ 하다고 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힘내세요’
‘괜찮아?’ 도 '사랑해’와 비슷하게 듣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말들이다.
이 말은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는 이도 행복 하게 만드는 소리다.
이들 말이 하는 이와 듣는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이유는 그 말속에 배려하는 마음, 함께
느끼는 마음, 그리고 정이 듬뿍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건행하옵고 좋은 날 되시라.
한류열풍이 삼켜버린 일본 도쿄 발칵 뒤집혔다! 일본MZ부터 기업까지 한글 한국제품으로 도배 되고 있다. - https://youtube.com/watch?v=334mYo1r100&si=ujq31r0spZl98D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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