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 원칙(原則)과 반칙(反則),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외3.

太兄 2026. 2. 22. 21:05

  < 원칙(原則)과 반칙(反則),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만인(萬人)이 추구하는 행복은 원칙(原則)을 잘 따를 때에 획득된다. 원칙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인간으로서 사는 원칙, 동물의 원칙, 식물의 원칙, 우주의 운행 원칙 등이 있다. 이 원칙들을 따라서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천을 하여 좋은 실적을 만들고, 행복한 결과를 많은 이들과 두루두루 공유해야 한다. 그러면 순풍(順風)에 돛을 단 듯이 만사(萬事)가 잘 풀린다. 그만큼 행복이 창조되고, 성장 부흥하고, 흥겨운 축제를 즐기면서 살게 된다.
  인간사회에서 원칙은 무엇일까? 국가에 대한 충(忠)과 애국(愛國), 부모와 자녀 사이의 효, 부부사이의 순결과 정절, 공유와 공생, 정직, 존중, 봉사를 통한 함께하는 행복공동체 구현이다. 이는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함께하는 건강하고 이상적인 통합행복공동체이다. 원칙을 준수할 때에 웃음이 있고, 생명문화의 꽃이 만발하고, 환희(歡喜)와 황홀(恍惚)을 체감(體感)한다. 그런 세상이 천국이고 극락이 아니겠는가? 이 원칙이 국가와 세계 차원에서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주의, 평등주의 등으로 확대된다.
  행복을 부르는 원칙과 반대가 되는 것이 불행을 자초하는 반칙(反則)이다. 원칙을 거스르는 반칙이기에 그만큼 부자유(不自由))하고, 힘들고, 비생산적인 경비가 투입되고, 쇠퇴하게 되고, 불행이 찾아온다. 반칙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는 원칙과 반대이다. 국가를 악용하는 매국(賣國), 가정 파탄, 거짓, 독점, 무시(갑질), 통제, 지배, 전쟁 강화 등이다.
  현재 중국이 정치 경제 분야에서 곤경에 처해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세계의 G2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잘 나가는 국가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원칙을 따르는 것보다 반칙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자유가 아닌 통제, 민주가 아닌 독재, 공산당이 최고 기관에 머물면서 각 분야(정치, 경제, 교육, 문화, 부동산 등)를 감독 감시한다. 공산당의 눈에 거슬리면 사정없이 징계를 받고 강퇴(强退)를 당한다.
  예를 들면, 1999년에 Jack Ma가 항저우에서 설립한 알리바바 그룹(Alibaba Group)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온라인 쇼핑)를 잘 하는 IT기업이었다. 많은 플랫폼을 설립하여 돈도 벌었고, 그만큼 중국 및 세계에서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다. 그러자 공산당이 통제를 강화했고, 또 다른 여러개의 이커머스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경쟁도 심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하여 압력도 거세졌다. 그래서 지금은 약세(弱勢)에 처했으며, 또 굳이 잘 나가는 기업이 되어서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게 되기를 꺼린다. 그만큼 활발한 사업이 되기 힘들 것이고, 결국 중국도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지난 20년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부흥을 도우려고 했다. 이 국가들은 인류애(人類愛)의 차원에서 중국과 연대(連帶)하기를 바랐고, 또 중국 인구가 많았기에 무역 차원에서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생의 파트너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중국이 정직하지 못한 모습, 짝퉁 제품, 현대사회 트렌드에 부적합한 독재체제, 외국 기업에 대하여 정치적 잣대로 경제를 재단(裁斷)하는 과도한 규제, 세계지배 야욕에서 비롯된 부정선거 조장 등이 드러났다. 결국 그런 반칙이 부메랑이 되어서 지금 중국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불안(시진핑과 장유사 사이의 군사 대결), 부동산 침체, 국제사회에서 소외(疏外)를 당함, 청년 실업(失業) 증가, 인구 감소, 통계수치 조작, 시장이 아닌 정부 중심의 건축, 군비(軍費) 증강, 중국산 금괴(金塊)의 국제시장 거래 곤경 등이 중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에 금이 가고 있다. 원칙을 거부하고 반칙을 따르는 국가 운영이 되었기에 이제 그런 부작용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셈이다.
  모든 개인, 민족, 인류, 국가들이 원칙을 따르면서 공생 공영해야 한다. 인간의 삶이 힘들고 팍팍하지만, 그래도 원칙을 따를 때에 대중이나 인류가 행복을 구가(謳歌)할 것이다. 인류는 대가족이다. 누구든지, 어느 나라든지, 쇠퇴하거나 망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함께 번영하고 행복해야 한다. 그 방법은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간단하다. 과도한 욕심이나 욕망을 자제하고, 맑은 마음으로 원칙을 바라보고 전진하는 것이다. 거대한 중국이 쇠퇴하지 않고, 휘청거리지 말고, 원칙을 따르는 국가로 전환하여서, 진정한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부흥하여서 행복을 세계로 송출하여 주기를 바란다. (一光 趙應泰)

 

■사는 하루가 기적!!■

우리가 사는 지구는 지표면에서 중심까지 약 6400km랍니다.
그중에서 지표면 흙의. 두께는 15~35km 정도
지구 전체 깊이에서 본다면 지표면은 불판 위에 올려진 철판 두께처럼 얇습니다.
지구 중심 내핵의 온도는 약 4500도이고, 지표면은 15도 정도입니다.
아래에서는 4500도가 넘는 불덩이가 있고 그 위에 아주 얇은 지표면 위에서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땅속뿐만 아니라 땅 위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층,
사람이 숨을 쉬며 살아가고 날씨 변화가 일어나는 대기권은 지상에서 대략 10km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10km라고는 해도 실제로 2000m 정도의 높은 산에만 올라가도 호흡이 곤란한 것을 생각하면,
실제로 인간이 자유롭게 숨을 쉬며 생활할 수 있는 공기 두께는
지구 전체 크기나 우주에서 본다면, 마치 아주 얇은 비닐 막 정도에 불과합니다.

밑은 수 천도의 뜨거운 불덩이 위는 아주 얇은 공기층,
바로 그사이 좁은 공간에서 80억의 인구를 비롯 다양한 생명체가 제방식대로 진화해 가며 크게 보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입니다.
요즘 온난화니 열대야니 난리 법석이지만 지구역사로 봤을 땐 근래 5,000년이 가장 평온한 시기랍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자체가 기적인 것입니다.
코를 꼭 잡고 입을 열지 않은 채 얼마쯤 숨을 쉬지 않을 수 있는지 참아보십시오

30초를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숨을 쉬지 않고 참아보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숨을 쉬려고 노력했습니까?
훗날 병원에 입원해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숨을 쉴 때야 비로소 숨 쉬는 게 참으로 행복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이미 행복을 놓친 것입니다
뛰는 맥박을 손가락 끝으로 느껴보십시오
심장의 박동으로 온몸 구석구석 실핏줄 끝까지 피가 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날마다 무수히 신비롭게 박동하고 있는 심장을 고마워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기적을 일구고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고 숨이 끊기지 않는 기적을 매일매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나지 말고 20초 정도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읊조리듯 말하십시오

첫째,
오늘도 살아있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둘째,
오늘 하루도 즐겁게 웃으며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셋째,
오늘 하루 남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서너 달 만해보면 자신이 놀랍도록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물론 말로만 하면 자신에게 거짓말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말한 대로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잔병치레도 하지 않게 됩니다.
아픈 곳에 손을 대고 읊조리면 쉽게 낫거나 통증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당신은 1년 후에 살아있을 수 있습니까?
1년 후에 우리 모두 살아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살아있어야 합니다.
살던 대로 대충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웃고. 재미있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신나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십시오.
내 육신을 학대하지는 않았는가?
마음을 들쑤시지는 않았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몸이 원하는 것 이상의 음식을 먹는 것도 학대이며
몸의 요구하는 편안함을 거부하는 것도 학대이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는 것도 학대입니다.
인생황혼의 남은 여생을 무병장수하도록 매사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오늘도 숨을 쉴 수 있음을 감사하며....

 

♣ 끝내 남는 한 사람 ♣

미국의 한 대학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수업이 끝날 무렵, 교수는 학생들에게 잠시 펜을 내려놓고 작은 놀이를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두가 웃으며 긴장을 풀고 있을 때, 한 여학생이 교탁 앞으로 나왔습니다.
교수는 칠판에 “지금 당신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 스무 명의 이름을 적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여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웃, 친구, 친척, 직장 동료… 그리고 가족의 이름까지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습니다.
칠판은 금세 빼곡해졌습니다.

교수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중에서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 사람의 이름을 지워보세요.”
여학생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웃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다시 한 사람을 지워보세요.”
이번에는 직장 동료의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또 하나씩 이름은 줄어들었습니다.
교실은 점점 조용해졌고, 웃음은 사라졌습니다.
마지막에 칠판에는 네 사람의 이름만 남았습니다.
부모님, 남편, 그리고 아이.

교수는 다시 말했습니다.
“한 사람을 더 지우세요.”
여학생의 손이 멈췄습니다.
교실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오랜 망설임 끝에 그녀는 부모님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숨죽인 강의실.
교수는 또 말했습니다.
“한 사람을 더 지우세요.”
이번에는 손이 떨렸습니다.

여학생은 결국 아이의 이름을 지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을 가린 채 고통스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교수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왜 남편을 남겼습니까?
부모님은 당신을 키워주셨고, 아이는 당신이 낳은 존재 아닙니까?”
교실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습니다.
여학생은 눈물을 닦고 천천히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은 먼저 저를 떠나실 것입니다.
아이는 자라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제 곁에서 평생을 함께 걸어갈 사람은 남편뿐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아무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삶은 양파와도 같아서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끝내 눈물 나게 만드는 진실이 하나쯤 남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 속에서 살아가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끝까지 함께 걸어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소홀히 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문득 돌아보게 됩니다.
사랑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깊이 아끼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 당연하게 여겼던 그 한 사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면 어떨까요.
끝내 남는 이름 하나를 지키는 일, 그것이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사랑의 방식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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