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사람이 내뿜는 정기(精氣)

太兄 2023. 6. 19. 18:27

2020-08-16 22:40:14


사람이 내뿜는 정기(精氣)

엄상익(변호사)

구치소는 속칭 우리들이 말하는 감옥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오랫동안 구치소를 드나들었다. 구치소의 변호사 접견실에서 기다리다 보면 간간이 철창이 막혀 있는 어둠침침한 통로로 많은 죄수들이 검은 그림자를 끌면서 나오곤 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감옥 안에서 내가 찾아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독특하게 개인적으로 느낀 것들이 있다. 마주앉은 사람에게서 회색이나 검은색의 어두운 안개가 피어올라 허공을 채우는 듯한 환상 비슷한 것을 보았다. 살인범들에게서는 또다른 것을 보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섬뜩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기 스파이크 비슷한 느낌인데 아주 기분 나쁜 것이었다. 나의 선입견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런 느낌을 억누르기도 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겸손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할 때면 그 주변이 밝은 노랑빛이나 연한 녹색이 감도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마치 젊은 시절 화사한 미인을 대하고 있으면 그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과 비슷했다. 사람마다 뿜어져 나오는 어떤 신비로운 기운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얼굴이 예쁜 여자라고 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판사 사위가 사귀는 것으로 오해한 여성을 청부살인한 준재벌급 회장 사모님이 있었다. 사회적 여론이 들끓고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한 사건이었다. 법정에서 그 여성을 봤을 때 분명 미인이었다. 계란형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법정에서도 세련된 옷을 입고 말도 사회명사의 아내답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주변에서 침울하고 어두운 붉은 빛이 서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다른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유명한 사회명사인 여성이었다. 얼굴도 미인이고 사회봉사를 한 경력도 화려했다. 여성들은 감옥 안에서도 본능적으로 꾸미려고 한다. 변호사 접견실로 나갈 때면 연필의 흑연가루로 눈썹을 그리기도 했다. 대통령이 그녀를 인정해주고 정계거물이 될 수 있는 여성이었다. 감옥 안에서도 화려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는 그녀의 주변에서는 강한 악취와 함께 회색안개가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느낌은 내게는 사실이고 생생한 것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사기죄로 구속이 된 대학교수가 있었다. 백억이 넘는 거액의 사기꾼이라는 일심의 유죄판결이 선고된 사람이었다. 그를 처음 볼 때였다. 구치소의 어두운 통로 저쪽에서 나와 그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했다. 그의 주변만 희미한 하얀빛이 비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좁은 접견실로 들어와 마주앉았을 때였다. 그의 얼굴에서 맑은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분명히 보았다.

“왜 여기 감옥으로 들어와 있습니까?”

내가 그에게 선문답같이 물었다. 명문고와 명문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국에 가서 세계적인 첨단기술에 대해 연구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비닐같이 휘어지는 핸드폰이나 텔레비전을 만드는 기술의 권위자였다. 딱딱한 반도체상의 회로를 부드러운 비닐 위에 설정할 수 있는 기술을 완성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공학자였다. 그의 기술을 탐내 거액을 투자한 인물이 로펌을 고용해 사기로 모략해 그를 감옥으로 보낸 것이다. 정교한 모략공작은 판사의 눈을 흐리게 해서 그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나는 그의 억울한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선문답의 화두같이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나님이 공학 공부만 하지 말고 감옥 안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네요. 같은 감방의 옆에 있는 분에게 말씀을 전했는데 단번에 받아들이고 무릎을 꿇으면서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하네요. 감옥 안에서 독특한 체험을 합니다.”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법정에서 검사가 나를 보며 사기범이라고 하는데 속으로 놀랐어요. 검사나 판사가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라 진실을 밝혀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좀 실망스러웠죠. 이 안에서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변호사님을 보내 주신 것 같아요.”

그는 모든 걸 잃었다. 그동안 쌓아왔던 명예도 퇴직금도 박탈당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평안했다. 그에게서는 맑고 하얀 빛이 분명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람이 내뿜는 정기의 빛이 있는 것 같다. 그건 육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것 같다. 탐욕이나 증오같은 저속한 상념이 지배하면 침울하고 어두운 검은색이나 회색이 그 사람의 주변을 감돌았다. 사랑이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의 경우는 밝고 맑은 노랑이나 녹색이 감도는 것 같았다. 변화산 상에서 눈부신 하얀빛으로 변한 예수도 그런 내면이 뿜어져 나온 게 아니었을까 혼자 상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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