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관혼상례

숙정문(肅靖門)

太兄 2023. 6. 17. 17:45

2020-07-11 23:30:57


숙정문(肅靖門)

박원순시장이 자살했습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삼청각 인근 아랫쪽에 위치한 숙정문 돌담 밑입니다 .북한산에 위치한 삼청각과 숙정문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숙정문(肅靖門)은 서울 성곽 4대문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북대문 또는
北淸門이라 했는데 인조이후에 숙정문이라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북대문 즉 북대문이 숙정문입니다.

북대문은 이성계 태조때 음양오행설에 따라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숙정문(북대문)을 개방하면 숙정문이 陰의 기운이라 조선 여성들이 바람이 나고 남녀 간에 풍기가 문란해지니 그 문을 폐쇄해야 한다는 건의가 있었답니다.

그후부터 약 600년간 숙정문은 세인으로 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북한산 북쪽에서 내려오는 계곡에 위치한 숙정문 일대에서밀애를 즐기면 액땜을 면한다 하여, 그곳은 남녀간 은밀한 정사를 나누던 곳이라서 남녀간의 性문제를 엄히 다스리려 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

바로 그 곳에서 性문제로 박원순이 자살을 했습니다. 박원순이 이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자살 장소로 숙정문을 선택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특히 병자호란시에 중국에 조선 처녀 유부녀 등 50여만명이 성노리개, 인질, 포로로 중국에 끌려갑니다. 이 조선 여자들이 중국에서 탈출 귀국문제, 사생아 출생이 사회문제가 되자 북한산 줄기에 흐르는 물 홍제천ㆍ연신내 물로 여성 성기를 세척하면 다시 처녀로 인정한다는 인조의 왕명도 발표됩니다.

중국에서 고향으로 귀국한 여성은 환향녀ㆍ
(還鄕女)라 불리었습니다. 그런데 이 발음이 화냥녀로 불리게 되고 자식은 포로로 끌려간 화냥녀의 자식이라 하여 호란때 포로로 잡혀간 처녀가 낳은 자식이라 하여 멸시 대상으로 胡虜ㆍ호로새끼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숙정(肅靖)이란 뜻은 엄히 다스려 편안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병자호란시 1636년에 조선 처녀들의 性은 무자비하게 중국에 짓밟혀서 조선여인의 성에 관한 정숙한 이미지가 상실되어 그 후에 숙정문으로 개명하면서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남녀간의 풍기문란도 금지하기 위해 북대문에서 숙정문으로 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삼청각 (三淸閣)
삼청각은 삼청동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숙정문위에 있는 옛날 요정입니다. 약 6천평. 서울의 4대 요정은 종로 3가에 있던 1.오진암, 2.현재의 길상사 자리에 있던 대원각, 3.청운각, 그리고 4.삼청각으로, 그 당시 요정정치의 상징 4대 요정입니다.

박정희 김종필 이후락 정일권 차지철 등 실세 정치가들이 이용했던 요정입니다. 성균관대 뒷산 옥류정, 중앙고 후문, 감사원 윗길 와룡공원 위에 자리잡은 삼청각은 그 경치가 매우 좋아 성북동, 동대문이 한눈에 보이고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보면 서울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이 곳은 인조 반정시 논공행상에 불만을 가진 이괄이 난을 일으킬 때 ,그리고 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할 때의 루트입니다 .

조선시대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용했던 북한산 등반 코스입니다.

삼청각 요정은 그 당시 국회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던 오빠의 손에 죽은 정인숙 사건이 발생했던 요정이기도합니다. 정인숙이 낳은 자식이 박정희 자식이냐 그 당시 총리인 정일권의 자식이냐로 문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훗날
정일권의 아들로 친자확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로가 구멍동서인 그 시절 요정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산 삼청동 반대편 성북동에 위치한 대원각은 약 7000평. 지금의 길상사는 포철 신화 박태준의 단골술집입니다. 길상사는 김영한 (女) 이라는 대원각 술집주인이 법정스님에게 기부하여 길상사로 바뀌었는데 원래는 남로당 당수로 사형당한 박헌영의 집이었습니다. 그 후 어떻게 김영한 이름으로 넘어갔는지 불분명합니다

박원순이 역사적으로 성문제 시비가 있는 음지의 지역 숙정문 삼청각 인근에서 자살한 것 또한 아이러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