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결됐으나, 타결되지 않은' 한미 관세협상…문서교환 없는 한미

전 국민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한·미 관세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고 한다. 막판까지 안갯속에서 헤매던 상황이었지만, 10월 29일 저녁 7시쯤 타결 소식이 외신을 통해 터져나왔다. 신문·방송을 통해 알려졌듯이, 전체 3500억달러 정부 투자 가운데 현금 2000억달러, 조선 1500억달러가 핵심이다. 현금투자의 경우 외환위기를 고려해 1년간 200억달러 상한이란 조항도 넣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셈법이 이뤄지겠지만, 전체 윤곽은 잡힌 것으로 보인다. 지면을 빌려 수차례 강조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관세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불공평한 투자금을 내는 것보다 관세를 내면서 버티자는 21세기판 ‘대원군 신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정신나간 ‘천동설’과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세안 회의를 통해 베트남·캄보디아와 관세협상 문서화에 들어갔다. 사회주의 국가든, 중국 반식민지 나라든 상관없이 미국 주도 관세경제권에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명실상부 한국의 정치·경제·외교·군사 문제에 가장 깊숙하게 연관된 나라다. 21세기 들어 중국이 커지면서 대륙파 세력도 나타나고 있지만, 75년 현대사의 흔적 속에 미국은 깊숙이 새겨져 있다. 글로벌 정세는 자국의 이익과 관계없이 대세대로 흘러간다. 버틸수록, 멀리할수록, 숨을수록 손해다. 사실 한국 혼자 미국 관세에 정면대응하면서 트럼프에 맞설 실력이나 능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수요일 타결 소식은 오랜만에 불어닥친 ‘굿뉴스’로 느껴진다.
주목할 부분은 이번 타결이 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란 사실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스타트다. 지극히 주관적 판단이지만, 전체 공정 가운데 30% 정도 완결 상태로서의 타결이라고 할까? 트럼프 2.0 시대에 남아 있는 70%는 지금부터 밀려들 숙제이자 운명이다. 우리 정부의 공식발표만 보면 아주 잘된 타결로 느껴진다. 일본보다도 훨씬 유리한 타결안이 도출됐다고 한다. 국민 모두 한숨 돌린 듯하다. 2개월 전인 지난 8월 말 이재명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당시 상황에 비견된다.
불경스럽고 미안한 얘기지만, 필자는 ‘타결=안심과 희망’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타결 자체는 적극 환영한다. 그러나 타결을 전후한 협상과정과 앞으로 밀려들 상황을 생각하면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 투명성과 무관한 비밀 협상 과정도 문제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이재명 정부의 언동을 보면 불신감부터 생긴다. 관세협상 타결이라고 하지만, 눈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통한 불확실성이 도처에 표류한다.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가 말한 ‘한·미 양국에 떠도는 구름’이라고나 할까? 대한민국 국익이란 관점에서 볼 때 어둡고도 답답하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주류지만,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본 한·미 관계 나아가 한반도 주변 정세를 조망해본다.

합의문서 없는 한·미 정상회담
이 글은 10월 30일 이른 오후에 작성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 임했고, 이 대통령은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와 한·일 정상회담에 나설 시간이다. 문제는 한·미 공식문서다. 수요일 한·미 정상회담이 하루가 지난 시점이지만, 문서가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항상 강조하지만, 문서야말로 회담의 실체이자 전부다. 샴페인 잔을 높이 들고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도, 종이에 담긴 약속이 최우선이다. 국가의 지도자끼리 맺는 약속이 문서 속 구체적인 단어를 통해 확정된다. 한·미 정상회담 시작 전 ‘양국 간 공동합의문’이 있을 것이란 발표가 흘러나오긴 했다. 그러나 직접 약속인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은커녕 공동의제를 함께 인식하면서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공동선언(Joint Declaration)’도 등장하지 않은 상태다. 이 글이 나갈 때쯤 약식 문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회담 하루가 지나도 문서화가 없다는 점에서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국빈방문이다. 외교 의전의 기본이지만, ‘국빈방문=공동성명 발표’라 보면 된다. 국빈으로 올 정도니까, 양국 간 미래와 협력을 ‘최상급 문서’로 남겨 보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한 한국 대통령은 그 흔한 공동 기자회견은 물론, 공동성명, 공동선언, 공동발표 그 어느 것 하나도 보여주질 못했다. 관세협상이 타결됐다고 하지만, 한·미 두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아우르는 약속이나 합의문서 자체가 없는 기묘한 행적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직전에 이뤄진 도쿄의 미·일 정상회담 연장선에서 분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직접 사인과 함께 수많은 문서를 주고받았다.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군사·안보 전 분야에 걸친 문서화다. 정상만이 아닌 경제·안보·외교 장관들이 각개전투로 뛰면서 분야별로도 문서화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던 같은 시간대,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과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 사이의 회담이 진행됐다. 당연하지만, 회담 직후 곧바로 공동성명서가 채택됐다. 인도태평양 방어, 방위비 증액, 미제무기 구입이 미·일 공동성명서 내용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보면 장관급 사이는커녕 대통령끼리의 합의된 문서나 발표도 없다. 주목할 부분은 관세협상 타결 결과도 두 정상이 입을 맞춰 발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 미국 장관의 발언 하나가 외신으로 퍼져나가면서 각론만 알려지는 모양새다. 텍스트로 된 문서가 없기 때문에 각론 부분에서의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뭔지 언론도 알 수 없다.
25%에 달하는 자동차 관세가 15%로 곧 내려갈 것이라는 한국 정부 측 설명을 예로 들어보자. 당장 궁금한 것은 ‘언제부터 인하되는가’라는 점이다. 문서가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15% 관세 행정명령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젠가는 인하될 것이지만, 한·미 정상회담 후 그 같은 간단한 의문을 풀 문서 자체가 없다. 추정컨대 이 대통령의 워싱턴 재방문을 통해 최종 문서화 작업이 이뤄질 수도 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종이에 찍힌 텍스트 약속을 보기 전까지는 어둡고도 답답하다.
트럼프는 ‘동맹’ 대신 ‘커뮤니티’
필자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 전체를 통틀어 특정 단어 하나에 주목했다. 한·미 동맹이란 말이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의 발언 하나하나에 신경쓰면서 한·미 동맹이란 말에 귀를 모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미 동맹이란 말은 유일하게 이 대통령 환영사 마지막 부분에 단 한 번 등장한다. ‘양국이 잘해보자’는 문장의 일부로서 한·미 동맹이란 단어가 나온다. 통상 사용되는 ‘한·미 동맹을 통한 물 샐 틈 없는 방어망’이란 의미와 무관하다.
트럼프는 어떨까? 정상회담 도중 한·미 동맹이란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기묘하게도, 트럼프가 한·미 두 나라 결속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한 것은 ‘커뮤니티(Community)’, 즉 공동체란 의미의 단어다. 한·미 우호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커뮤니티, 지도자, 국민’이 서로 가깝다는 점을 강조한다. 놀라운 발상이지만, 군사적 차원의 동맹이 아닌 사회적·사교적 차원의 커뮤니티가 한·미 관계 현주소다.
사실 트럼프가 1박 2일 한국 체류 전체를 통틀어 한·미 동맹이란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기는 하다. 딱 한 번으로, 시진핑과 회담을 위해 부산에 가기 직전 소셜트루스를 통한 메시지에 등장한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들어질 핵추진 잠수함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한·미 동맹’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핵추진 잠수함을 필라델피아에서 만든다는 것은 한국이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잠수함을 구입한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이 한국 기술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미국에서 만든 이상 돈을 주고 구입해야만 한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핵추진 잠수함 한 대에 무려 30억달러에 달한다. 따라서 트럼프가 말하는 한·미 동맹은 돈을 통한 초대형 무기거래 관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자주적·주체적 ‘국방’을 원하는 이 대통령의 생각이기도 하고, ‘돈’을 키워드로 하는 트럼프의 뜻이기도 하지만, 피를 나눈 혈맹으로서의 한·미 동맹은 적어도 트럼프의 머릿속에서 멀리 사라져가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일본에 대한 트럼프의 동맹관이다. 미·일 동맹에 대한 트럼프의 관심은 아직 식지 않았다. 일본 체류 중 미·일 동맹이란 단어를 곳곳에 흘렸다. 다카이치와 함께 핵항모에 올라 미·일 동맹의 뿌리와 실체를 재확인했다. 물론 트럼프의 미·일 동맹관의 기반 역시 일본의 돈에 있다. 미제 첨단무기 구입에 엄청난 예산을 쏟을 것이란 전제하에서의 미·일 동맹이다. 무기 규모로 보면 한국의 구매능력은 일본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
이 대통령 입에서 사라진 중국
중국이란 단어는 필자가 주목한 한·미 정상회담의 또 다른 키워드다. 이 대통령은 실리외교를 강조한다. 중국인 관광객과 주한 중국대사관 안전을 배려해 반중국 시위를 불법시할 정도다. 누가 봐도 친중 지도자로 비친다. 과연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도중 중국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언급했을까? 딱 한 번이다. 환영사 중간부분에 핵추진 잠수함 개발과 관련해 중국을 언급했다. “중국·북한 잠수함 탐지를 위해 한국산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미 동맹에 기초한 방어나 공격은 물론 능동적 군사행동과 무관한, 단순 탐지 대상으로서의 중국, 중국 잠수함이다. 앞선 미·일 정상회담에서 강조된 ‘법과 자유에 기초한 인도태평양 질서’에 근거한 반중전선과 전혀 무관한 중국관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중국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아예 중국이란 단어가 지워진 듯하다.
이 대통령은 ‘중국산 태양광·풍력 기자재=한국 AI 동력원’으로 결정했다. 중국이야말로 이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을 지탱하는 중요한 나라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이란 단어 자체를 멀리했다. 미국이 원하는 반중전선 동참을 피하려는 생각 때문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술 더 떠서 중국 잠수함이 아닌 “중국 연안 바다에서 행하는 일상적 탐지라는 의미에서의 중국일 뿐”이라 항변했다. 다카이치는 아세안 11개 나라와 더불어 ‘법과 자유에 기초한 인도태평양 질서’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이란 단어는 피했지만, 반중국 전선이란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보면, 한국은 그 같은 흐름에서 멀리 떨어진 ‘동방의 조용한 나라’로 변한 듯하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지난 10월 30일 오전 회담을 통해 희토류 규제 완화와 대중 관세를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일단 확전은 피했지만 미·중도 양국 간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 볼 순 없다. 트럼프 관세정책의 최종 타깃은 중국이다. 일단 다른 모든 나라들과의 문제를 해결한 뒤, 최후의 결전으로서의 중국인 셈이다. 아직 그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다. 양국이 정면충돌할 경우 피해는 미·중은 물론, 전 세계로 확산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신문·방송에서 자주 접하는 ‘중국 최종 승리’는 너무도 어리석은 결론이다.
트럼프와 시진핑 회담이 이뤄지는 테이블 위를 자세히 보기 바란다.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참가자 모두 자료와 종이로 무장해 있다. 미국은 트럼프부터 시작해 자료·서류와 무관한 캐주얼 대응방식으로 임한다. 한국인이 보면 시진핑과 주변 참모들의 준비와 대응을 고평가할 것이다. 트럼프는 아예 준비도 없고, 전부 애드리브로 대하는 불량학생 정도로 해석할지 모르겠다. 중요한 핵심 하나를 놓친 판단일 뿐이다. 갑자기 문제가 터질 경우, 트럼프와 주변 참모들은 임기응변으로 대할 수 있다. 시진핑 일당독재 체제는 다르다. 준비한 자료와 대책에 맞지 않는 비상상황이 나타날 경우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중국이 자랑하는 희토류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간단히 말해 시진핑의 희토류 약발은 길어야 5년이다. 희토류는 석유와 달리 전 세계 곳곳에 매장돼 있다. 가공·이동·정제의 문제일 뿐이다. 이미 미국이 국내 광산을 열고, 일본이 심해채굴에 나서면서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당분간은 미국과 서방에 불리하다. 그러나 몇 년 뒤 어느 정도 공급선이 확보되는 순간 서방 측의 ‘대중국 보복’이 시작될 것이다. 설상가상 중국발 희토류 수출규제는 서방만이 아닌, 중국 기업 자체의 손해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28일 보도지만, 미국에 세운 중국 배터리 기업 ‘궈시안(國軒)’의 23억달러 공장건설 계획이 전면 중단됐다고 한다. 중국 정부의 희토류 규제와 함께 중국산 배터리 기업도 피해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의 생각과 달리 ‘희토류 카드’는 잠시 통할 단기적 수단에 불과하다. 서방의 보복과 중국 자체 피해도 불러일으킬 종이호랑이란 점에서, 시진핑도 마냥 반대만 할 수가 없다.
관세협상이 타결됐다고 하지만 어두운 구름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필자의 30년 친구 일본인 언론인과의 대화지만, “한국은 정권을 위해, 일본은 국익을 위해 트럼프와 만났다”는 평가를 들었다. 한국의 협상 과정과 내용은 줄곧 베일에 싸여 있다. 글을 마치는 순간 러트닉 상무장관이 “한국은 자국 시장을 완전히(100%) 개방하는 데 동의했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농산물 완전개방을 의미하는 듯하지만, 한국 정부 그 누구도 분명한 답을 피하고 있다. 국익을 위한 100% 개방이라고 할 때, 반대할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수도 실패도 할 수 있다. 감추고 과장하기보다 교훈으로 삼을 경우에 한해서만, 어두운 구름도 뚫고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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