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보수 정권의 死因은 '김건희'인가

太兄 2025. 7. 4. 19:56

[광화문·뷰] 보수 정권의 死因은 '김건희'인가

보수 몰락의 원인 지목 '김 여사'
'여성 혐오' 기획에 스스로 '투신'
그런데 정말 '결정적' 이유 맞나
속 쓰려도 '탄핵의 부검' 해야

입력 2025.07.03. 23:56업데이트 2025.07.04. 09:56
 

윤석열 정부는 왜 실패했나. 이 질문이 아직은 좀 이른 듯하다. 지금은 ‘지혈’의 시간이니까. 하지만 보수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에도 몰락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았다. 낱낱이 들여다보면 오롯이 박근혜만의 오류였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각자의 기여분, 그에 따른 책임, 분열, 그게 무서워 보수는 정권의 시체를 들여다보며 ‘부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방치된 사체에는 들짐승이 달려든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 딱지를 붙여 사망한 권력을 모욕하고, 공무원과 군인을 탈탈 털어 옥살이를 시켰다.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의 ‘정치적 자살’로 보수는 정권을 빼앗겼다. 예정된 패배였다고 그냥 두지 않는다. 이번에도 전 정권 관련 3대 특검이 돌아간다.

2021월 6월, 서울 강남에서 자신의 점포 앞에 그려놨던 '줄리 벽화'가 지워졌다며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이후 '줄리' 루머의 봇물이 터졌다. /뉴시스

과거 윤석열 수사팀장이 주도했던 ‘박영수 특검팀’은 검사가 공소를 유지해 유죄판결을 받는 것보다 수사 생중계로 여론을 자극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걸 보여줬다. 선정적 아이템으로 무장한 이른바 ‘극장식 수사’다. 이번 특검도 이런 재주를 장착한 검사들이 맡았다고 한다.

이런 전망이 나온다. “내란 특검에서는 큰 게 나올 게 없어 보인다. 국민들도 정권 바뀌었으니 된 거 아니냐 그런 마음도 있고.” “김건희 인사 개입설이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막장극이 전개될 것이다.” 기본 옵션인 법사님과 무속, 샤넬백과 목걸이를 넘는 화끈한 소재가 발굴될 것이다.

비아그라, 오방색, 팔선녀, 굿판 같은 제목의 ‘특종’ ‘단독’이 넘쳐났던 ‘박근혜 탄핵’ 전후가 떠오른다. 미혼의 여성 대통령을 직에서 끌어내린 것은 무능 프레임과 거대한 여성 혐오적 소재였다.

김건희 여사는 보수의 ‘지뢰밭’이었다. 하지만 지뢰가 왜, 어떻게 폭발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저쪽의 공격력이 대단했다. 대통령 부인 중 스토킹 촬영, 몰카에 찍힌 전례가 있었나. 대통령 부인의 ‘과거’를 야당 의원까지 가세해 공격한 적이 있었나. 좌파는 ‘악녀 김건희’의 밑그림을 집요하게 그려냈다. 야당의 주장에 발맞춰 김 여사는 부적절한 행동을 반복했다. 측근과 장관들마저 여사를 두고 뒷담화를 퍼뜨리는데, 용산은 ‘능력자 여사님’ 놀이를 시작했다. 강보엘(강남, 보수, 엘리트)이 보기에 김 여사는 씹을 거리가 무궁무진한 사람이었다. 여성의 외모와 태도, 처신에 대해 잣대가 엄격한 보수는 자연스럽게 ‘안티 김건희’가 됐다.

‘김건희 악마화’는 좌파가 기획하고, 대통령 부인이 실연(實演)해 보수가 시청률을 올려준 드라마였다. 특검은 그걸 시리즈물로 업그레이드할 뿐이다.

2016년 1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련된 특검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어방용 수사지원단장, 윤석열 수사팀장, 양재식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검, 이용복 특검보, 이규철 특검보, 조창희 사무국장.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는 대권 후보 ‘재생산’ 능력을 상실했다. 눈물을 머금고 ‘신체 포기 각서’를 쓰고 후보 윤석열을 영입했다. ‘대권 연합체’는 가치관과 이념 공동체가 아닌 오로지 이기는 것이 목표였던 집단이었다. 대통령은 취임 후 독주하며 의사, 군인, 과학자 집단을 적으로 만들고, 나머지 세력은 비평꾼이 됐다. 동료가 부상당해도 자기 양복에 흙탕물 튈 것을 더 걱정하는 이익 연합체는 순식간에 해체됐고, 독주는 ‘계엄 급발진’으로 이어졌다.

한덕수 전 총리가 대선에 나온다고 하자 ‘총리 부인 무속 중독설’을 야당 인사가 집중적으로 퍼뜨리고, 보수 인사들이 거기 또 혹하는 걸 봤다. 김 여사를 욕하는 건 얼마나 시원하고 편리한 일인가. 하지만 이런 식의 결론으로는 앞으로도 보수는 같은 방식으로 몇 번이고 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권력에 대한 성찰과 민주적 절차, 동지애에 대한 공감대를 잃은 보수는 이제 스스로에게 ‘부검의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 그래야 일어설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