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민노총 장관에게 '노사 균형' 기대나 할 수 있겠나

太兄 2025. 6. 25. 18:15

 민노총 장관에게 '노사 균형' 기대나 할 수 있겠나

조선일보
입력 2025.06.25. 00:10업데이트 2025.06.25. 08:08
34년 간 철도 기관사로 근무한 김영훈(왼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한 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앞에서 농성중인 전국금속노조 김정봉(오른쪽) 부지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에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명했다. 민노총 출신을 노동부 장관에 발탁하는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인선 배경에 대해 “민노총 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며 “산업 재해 축소, 노란봉투법 개정, 주 4.5일제 등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라는 점에서 파격적 인선이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그가 “민주노총 출신이지만 합리적 성향이라 온건파로 분류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부 장관은 노사 양쪽의 균형을 잡고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동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하는 자리다. 노동계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라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 자리에 노동계 출신, 그것도 그동안 극한 강경 투쟁을 주도해 온 민노총의 위원장 출신을 앉히려는 데에 우려 목소리가 작지 않다. 새 정부가 노사 균형과 노동 개혁 기조에서 벗어나는 정도를 넘어 완전히 노조 일변도 정책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경제 단체들은 그의 지명에 대해 논평을 내지 않았다. 속으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우리 노동시장은 노조 권익 향상보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등의 노동 격차, 양극화가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인 상황이다. 노동시장에서 강자가 기업이 아니고 노조로 뒤바뀐 지도 오래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정규직의 이익을 대표해 귀족 노조라고 하는 민주노총의 수장 출신을 장관에 앉히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 사이의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점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귀족 노조는 더 좋아지고 열악한 노동자들은 더 힘들어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 때문에 민노총 출신을 장관에 앉힌 이 대통령의 노동 문제 인식을 우려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이미 이 대통령 공약집은 노란봉투법 통과, 노동시간 단축, 초기업 단위 교섭 활성화,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 근로감독관 증원 등과 같은 친노조 정책으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 민주노총이 요구해 온 것이다. 김영훈 후보자는 이런 노동 공약을 만드는 데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생산성 향상 등 우리 노동시장의 고질적 문제 개선책, 경영계가 노동 문제에서 요구해 온 사항에 대한 공약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노동 개혁은 우리 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이제는 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로 변했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경제는 결국 기업’이라는 말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실제 정책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앞으로 노란봉투법 등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민노총 장관’은 그 예고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