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의대 말고 공대를 가게 하려면

太兄 2025. 4. 13. 18:16

[특파원 리포트] 의대 말고 공대를 가게 하려면

입력 2025.04.12. 00:13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하버드대./EPA 연합뉴스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 반도체 등 치열한 기술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최첨단 분야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 중국의 부상(浮上)을 피부로 느낀다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중국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해 일부러 질문지에 넣어 묻기도 했다. 돌아오는 답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각 분야에서 석학 반열에 오른 영미권 과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의 과학은 세계 일류 수준이 된 지 이미 오래”라고 했다.

중국이 앞서 나가는 분야도 특정 영역에 치우치지 않았다. 작년 11월 만난 서배스천 승 프린스턴대 교수는 인간의 뇌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작은 곤충의 뇌(腦)를 연구하는 분야에서 중국 연구진의 성과는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세계 4대 AI 석학으로 불리는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 회사가 개발한 모델의 소스를 공개해 서로 응용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을 쓰는 중국이 현재 발전 속도를 유지하면 조만간 글로벌 AI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차세대 글로벌 전쟁터가 될 것으로 점찍은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도 중국 기업이 야금야금 점령 중이다. ‘짝퉁의 천국’이라고 비웃던 중국은 정말 과거의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이 공산당 일당 독재이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해 집약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최근 연구실에서 만난 윤석현 하버드 의대 교수는 “그 이상의 요소가 있다”며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광(光)의학 분야 석학으로 하버드대에서 20년간 학생을 가르쳐온 그는 “상당수 중국 학생들이 돈보다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갖고 온다. 그 열정이 미래의 중국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 학생들의 눈빛에서 ‘결기’를 보게 된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에 대해 알지 못했던 이면을 보는 듯했다.

한국에서 젊고 유능한 학생들이 고수익의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 의대로 몰린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공대 등 더 다양한 세상으로 끌어낼 방법이 없지는 않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젊은 세대는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기 원한다. 의대가 아닌 공대를 가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스타트업이나 빅테크 취업을 통해 충분히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자신의 영역에 집중해 뛰어난 성과를 낸 빅테크 기술자들은 30대에도 수억~수십억 원을 번다. 젊은 세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세우고, 얼마든지 세계와 당당하게 겨룰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도 필요하다.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반짝할 때 정체되어 있는 한국의 국가 경쟁력도 되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