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로잡을, 한국이 가진 최고의 카드 [송의달 LIVE]
지난달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속도로 연일 미국과 세계를 상대로 ‘혁명적 변화’를 터뜨리고 있다. 그의 행보는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의 연속이지만 기실 대부분 예고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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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종전 협상, 관세의 무기화, 연방정부 구조조정,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철폐 등은 그의 대선 핵심 공약이다. 불법 입국자 강제 추방, 펜타닐 등 마약 단속, 좌파 교육 청산도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 가자(Gaza) 자치 지구를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은,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이 2024년 2월 꺼낸 뒤 10개월 넘게 내부적으로 검토해온 사안이다.
◇트럼프 1기 첫 한달 대비 6배 속도
트럼프는 그간 벼려온 정책과 아이디어들을 최근 한달(31일)간 서명한 72건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으로 구체화했다. 이는 집권 1기(2017~21년) 같은 기간 행정명령(12건) 보다 6배 많은 규모로 조지 W 부시(54건)·버락 오바마(40건) 전 대통령과 트럼프 1기(55건) 처음 1년동안 서명한 행정명령 건수 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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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트럼프가 ‘광야의 외로운 늑대’ 같았다면, 지금 그는 연방의회, 연방대법원, 주정부·의회까지 장악한 사실상 ‘황제급 대통령’이다. 미국 주류 엘리트 매체들의 저주(詛呪)에 가까운 공격으로 상당수 정책이 좌절됐던 1기와 정반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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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폭주하는 그의 행보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뜨겁다. 리얼클리스폴리틱스(RealClearPolitics)가 이달 3일부터 25일까지 실시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job approval) 평가 여론조사 결과를 이달 27일 종합한 결과, 긍정 평가는 49.1%에 달했다. 이는 트럼프 1기 재임 중 최고 지지율(2017년 3월과 2020년 5월의 45%) 보다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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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방송과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선 70%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53%는 트럼프의 국정 운영을 긍정 평가해 트럼프의 대선 출마 선언(2016년 6월)후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이달 25일 종료된 라스무센과 이코노미스트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각각 48%, 50%였다.
미국 국민들의 트럼프 지지도를 보면 “돈만 챙기는 장사꾼” “동맹을 버리는 파괴자” “인격 파탄자”라며 일부 한국인들이 그를 경멸(輕蔑)하는 게 효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미국 주류 언론과 민주당 지지층을 포함한 반(反)트럼프 세력이 퍼뜨리는 ‘트럼프 악마화’를 추종해서는 적어도 우리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
◇트럼프 악마화할수록 한국에 不利
미국의 본질적인 변화와 트럼프의 특성에 대한 파악을 건너뛰고 ‘한반도 천동설’에 근거한 희망적 사고를 고집할수록, 우리의 트럼프 대응은 백전백패(百戰百敗)할 수 밖에 없다. 트럼프주의에 대한 미국 내 인기와 국민들의 기대는 의외로 높다.
트럼프는 남은 3년 11개월 동안 미국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와 70년 넘은 기존 세계 질서의 파괴후 재구축이라는 목표를 더 강도높고 철저하게 밀어부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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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심사는 세계 질서의 새판짜기와 다름없는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기에 대한민국의 안보와 번영을 여하히 유지·발전시키느냐에 있다. 한국은 지난 70여년 동안 미국이 이끄는 글로벌 정치·군사 및 경제·통상 환경의 최대 수혜자로서 이를 잘 이용해 후진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더 이상 동맹국들의 호구(虎口·sucker)가 되지 않겠다”며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의 황금시대’를 국정목표로 내건 트럼프 2기 들어 호시절(好時節)은 끝났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엄동설한(嚴冬雪寒)의 폭풍이 다가올 수 있다.
◇세계질서 새판짜기...‘엄동설한’의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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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권의 2인자인 J D 밴스 부통령이 이달 중순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왔다(there is a new sheriff in town under Donald Trump’s leadership)”며 “유럽 안보는 유럽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그 예고편이다. 트럼프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에까지 등을 돌리고 있다.
트럼프는 “수십 년 된 동맹국이라도 미국에 기여하는 게 없으면 더이상 경제적 특별대우나 군사적 보호를 해줄 수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동맹국들은 미국에 제공하는 것 보다 항상 더 많은 것을 챙겨갔다. 동맹국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 무기와 군사력 의존도를 줄이고, 스스로 국방비를 늘리고 미국을 위한 경제적 기여(寄與)를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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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같은 표변(豹變)과 변심(變心)은 한국에 엄청난 부담이자 실존적 충격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과 안보를 70년 동안 떠받쳐온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기반한 세계 질서와 자유무역 환경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서다.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미국과 러시아가 벌이는 종전 협상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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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변심...‘코리아 패싱’ 가능성도
한국은 우크라이나, 대만과 더불어 신냉전 진영 갈등의 최전선(最前線)에 있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한반도의 운명이 또 다시 한국 없는 상태에서 결정되는 ‘코리아 패싱(passing)’ 가능성은 상존(常存)한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이달 7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1조 달러(약 1450조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6%에 3%로 늘린다는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일본은 왜 아베 신조 총리 이래로 “트럼프의 푸들”이란 조롱을 들으면서도 그에게 ‘아부의 기술’을 펼치는 걸까? 이는 세계 3위 경제대국 조차 지정학적 격변기에 자칫 ‘국가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인식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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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후 한국을 겨냥한 어떠한 발언이나 정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캐나다·멕시코·파나마·그린란드 같은 인접국에 집중하던 그는 최근 중동,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으로 옮긴 상태다. 한국은 조만간 시작될 다음번 과녁 목록에 올라 있다.
그는 1기 시절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나 한미(韓美)합동 군사훈련 중단 정도 보다 훨씬 강도높고 판 자체를 흔드는 태풍급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각국을 상대로 한 개별 양자(兩者) 협상에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요구를 내놓고 있는 트럼프의 언행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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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철수 통보 언제든 날라올 것
오는 4월 초로 예정된 한국제품을 포함한 철강·자동차·반도체 등에 대한 25% 관세 부과는 몸 풀기용 서막(序幕)에 불과하다. 한국에 전시(戰時)작전 지휘권을 넘겨주고 한반도 방어는 한국군이 책임지고 주한미군은 중국 견제 억제용으로 역할을 바꾸고 주한미군을 부분 철수한다는 통보가 언제든 날라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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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통화로 중요한 한반도 현안을 논의하고 한국과 사전(事前)협의 없이 미·북 관계 개선을 발표할 가능성도 엄존한다. 북한 핵무기는 동결해 놓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는 대신 대북(對北)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미국의 발표가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미국은 이미 1971년 3월 27일,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2개 사단 중 1개 사단(제7사단·2만2000명)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킨 전례(前例)가 있다.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괌 독트린(1969년 7월 25일) 발표로부터 2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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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부재 상태인 한국을 트럼프가 상대하지 않아 시간을 벌었다”고 여유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세계질서의 판이 바뀌고, 한반도 문제가 미·중 신냉전이란 맥락에서 재정의되는 상황에서 어설픈 대응은 국난(國難)을 초래할 수 있다.
◇트럼프 만족시키며 安保·經濟 살려야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상상을 초월하는 승리 욕구와 엄청난 자아(自我) 의식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면서 우리 안보와 경제적 실리(實利)를 챙기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뜩찮은 면이 많더라도 그와 손잡고 한반도 안보에 빈틈을 없애고 한국 경제의 성장 활력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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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트럼프의 마음과 가슴을 사로잡으려면 ‘통큰 선물’을 준비하거나 미국이 체감(體感)하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최근 워싱턴DC를 찾은 우리나라 경제 사절단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으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 이상 투자하면 급행 서비스를 해주겠다”는 제안만 듣고 왔다. 복안(腹案) 없이 한미동맹 70년의 의리(義利)만 강조해서는 빈손 대접일 뿐임을 확인한 자리였다.
확실한 특효약(特效藥)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일이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주필을 지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 이사장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은 미국의 3등급 동맹이다. 운명 공동체적인 1등급 국가들(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과 국가이익이 일치되는 2등급(이스라엘, 싱가포르, 나토 핵심국들)에 이어 한국은 필요한 경우 서로 도와주는 파트너 동맹 정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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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를 돌파하는 전략 카드로 제조업 강국이라는 한국의 장점을 살려 미국과 협력을 증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2차전지·조선·반도체·원전 등에서 한국은 중국을 제외하면 독보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해군력 중흥을 위해 한국 조선 산업과의 협력을 먼저 부탁해 왔다.
하지만 미국 국내로 기업 유치를 통한 제조업 부흥을 중요 국정 과제로 삼는 트럼프 정부에게 한국이 내미는 ‘제조업 협력’ 카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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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협력보다 對中 봉쇄 동참이 특효약
미국이 한국에 더 바라는 것은 대중(對中) 봉쇄·억지 전선 참여다. 이달 13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꺼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억지는 미국 만으로 불가능하다. 한국 등 동맹·파트너국과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발언에 공략 포인트가 있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혼자 저지하는데 한계를 느끼는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구체적으로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일대 방위에 동맹국들의 군사적 지원과 동참을 절실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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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에만 캐나다 순양함이 대만 해협 통과 기동 작전(16일)을 벌였고, 프랑스 샤를르 드골 항공모함은 미국, 일본 항모 등과 필리핀 인근 해역에서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영국과 터키·네덜란드·독일 등도 항공모함 등을 보내고 일본에 수시로 기항하며 대만해협 유사시 등에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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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그러나 미국 주도 ‘항행의 자유 작전’에 11년째 불참하고 있다. 해외 파병이 금지된 일본을 제외하면 미국의 동맹국들 중 유일한 케이스다. 수출입 물량의 40%가 통과하는 한국 경제·안보 생명선인 남중국해 해상수송로 수호 활동에 한국은 빠져 있다.
한국은 오히려 대(對)중국 압박 전선 약화(弱化)에 주력한다. 이달 15일 뮌헨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부 장관 공동성명에서 ‘적절한’ 등의 문구를 추가해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지지’라는 당초 미·일 정상회담 성명 문안 내용을 완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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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눈치보기’...한국에 독(毒) 될 우려
트럼프 정부로서는 ‘중국 눈치보기’를 하는 한국이 미국 편을 들지 않는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같은 접근은 한국 정부에 독(毒)이 될 우려가 있다. 미·중 대결을 ‘생사(生死)의 문제(life and death issue)’라 규정하고 중국 격퇴에 국력을 총집결하는 트럼프 정부는 미·중 가운데 한국의 양다리 걸치기에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이 트럼프 시대의 격랑(激浪)을 헤쳐나가려면 이런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동맹의 기본인 ‘상호주의적 지원’에 충실해야 한다. 1960년대와 2000년대 초 병력 부족으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하려 할 때, 박정희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베트남 파병과 이라크 파병으로 각각 미국을 도운 전례(前例)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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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조 달러 넘는 국가 부채(national debt)를 지고 이자(利子) 비용으로 매년 국방비 총액 보다 많은 1조 달러를 부담하는 미국에게 한국의 군사적 지원과 동참은 ‘가뭄에 단비’ 이상의 결정적인 선물(膳物)이 될 것이다. 서해 무인도에 중국 군함 상시 정찰·감시 카메라 설치 같은 것으로 시작으로 단계적이고 다각적으로 한국의 대중(對中) 억제 전선 참여 강도와 빈도를 높여야 한다.
트럼프 2기를 한국에 ‘기회’로 만들려면, 미국이 다시 강해지고 위대해지려는 과정에 한국이 총력을 다해 동참하고 도와줘 ‘미국의 진정한 친구’가 돼야 한다. 달리 말하면 한미 동맹이 굳건해야 하는데, 한미 동맹을 질적으로 도약시키는 지렛대로 대(對)중국 억제·봉쇄 전선 동참 외에는 마땅한 대안을 찾기 힘들다.
이런 ‘특별한’ 기여와 헌신이 있을 때, 한미 양국은 경제·기술·과학·통상·우주·AI(인공지능) 등 전방위 분야로 동맹을 ‘특별’하게 확대·심화할 수 있다. 전면적인 협력을 통해 한국은 미국, 일본 등과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고 새로운 경제·산업 공급망 만들기를 주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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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에 ‘특별 기여’해야 한국 ‘특별 대우’
중국이 배제된 새로운 경제 공급망에서 한국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때, 중국의 공세로 무너지고 있는 한국 제조업은 부활의 승기(勝機)를 잡을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은 자유주의 국제 진영 안에서 선진 강국으로 우뚝 설 것이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 지식인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곧 닥쳐올 트럼프발(發) 폭풍의 본질과 성격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길이 제대로 보인다.
미국이 바라는 바는 외면하고 우리의 희망사항만 고집할 경우, 트럼프 시대 4년은 한국에 치명적인 재앙(災殃)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을 역지사지(易地思之) 관점에서 대하면서 ‘한미(韓美)의 황금시대’를 주도적으로 열고, 미국에 원하는 우리의 목표를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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