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평화의 셈법은 바로 '힘'...北 전술 변화에 일희일비 안해"
[월간조선]
"북한에 가장 큰 체제 위협은 같은 민족인 대한민국이라는 존재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
대통령실은 8월 12일 외교안보라인 개편을 발표했다. 신원식(申源湜·66) 국방부 장관이 물러나고 김용현 경호처장이 새 국방부 장관이 됐다는 소식에 한순간 멍했다. 불과 엿새 전인 8월 6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인터뷰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 장관이 야인(野人)이 된 것이 아니라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이었다. 다른 일들을 처리하느라 미루어두었던 인터뷰 녹취록을 읽어보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방부 장관’ 자격이 아니라 ‘안보실장’ 자격으로 인터뷰를 하기라도 한 것처럼, 군사·국방 정책 차원을 넘어서 대북(對北) 관계나 한미동맹, 국제안보 정세, 경제안보 등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 북한 김정은은 작년 말 이래 남북한 관계를 민족 내부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두 국가 간의 관계’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군은 불모지 조성, 지뢰 매설, 대전차 방벽 설치 등 소위 ‘국경선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우리가 북한을 바라볼 때, 분명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대남(對南) 적화(赤化)를 해서 한반도를 자기 손아귀에 넣겠다는 전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 물론입니다.
“북한에 가장 큰 체제 위협은 같은 민족인 대한민국이라는 존재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종국적(終局的)인 체제 안정, 평화는 한반도 전체를 김정은의 지배 아래 두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하에서 본다면 통일전선전술에 의해 우리 내부에 지하당을 구축하거나, 어떤 세력을 부추긴다거나, 아니면 핵(核)을 앞장세워 한미동맹을 이간시키고 우리를 위협해서 굴복시키거나 하는 것은 방법론의 차이일 뿐입니다.”
- 북한이 종래의 통일전선전술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핵 무력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북한은 몇 년 전부터 핵무기야말로 무력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다른 하나는 북한에 위협이 되는 외부 사조(思潮)와 정보를 차단할 필요입니다.”
- 남북한 관계를 ‘적대 국가 간 관계’로 규정하는 것이 외부 정보 차단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물론 그런다고 해서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그래도 ‘같은 민족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전혀 다른 존재인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체제 안정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남북 관계를 길게 볼 때에 북한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는데 북한의 전술 변화, 용어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지난 70여 년간 그래온 것처럼 ‘힘에 의한 평화’ 체제를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색지대 전술’
- 앞으로 북한은 어떤 식의 도발을 해올 것이라고 봅니까.
“오물·쓰레기 풍선의 지속 살포,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 집중 호우 시 남북 공유 하천 댐 무단 방류 및 지뢰 살포, 접적(接敵) 지·해역 무인기 침투, 총·포격 도발 등이 예상됩니다. 우리 군은 북한군의 이런 회색지대(灰色地帶) 또는 성동격서(聲東擊西)식 도발을 억제, 대응하기 위해 한미연합정찰자산을 활용하여 북한의 활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북한이 도발한다면 ‘즉(즉시) 강(강력히) 끝(끝까지) 원칙에 따라 단호히 응징할 것입니다.”
- 회색지대 전술이라는 것이 천안함 사태 때처럼 누가 저지른 것인지 짐작은 가지만 명확한 증거는 남기지 않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는 것인데, 단호한 응징이 가능할까요.
“천안함 사태 같은 도발을 해올 경우, 우선 조기(早期)에 북한이 도발의 주체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진 그 시점을 도발 시각으로 보고 대응할 것입니다.”
- 천안함 사태 때 보았지만, 북한이 회색지대 전술을 사용할 경우, 그것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회색지대 전술을 사용하는 목적은 기본적으로 군사적이라기보다는 정치·사회·심리적인 것입니다. 언론, 정치권, 국민들이 북한이 조장하는 남남(南南) 갈등에 휘말리지 않도록 군(軍)과 정부 모두 소통을 강화해야 할 것이고, 국민들도 그에 대해 신뢰를 해주셔야 합니다. 우리 내부만 튼튼하면 북한의 어떤 회색지대 전술도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 얼마 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전단 살포 지점에 대한 총·포격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뭔가 그런 징후가 있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일본 언론 보도는 지면이 제한되다 보니, 앞뒤의 가정(假定), 전제가 생략되었습니다. 북한이 민간단체들이 풍선을 띄우는 시각과 장소를 알지 못하는 한, 총격이나 포격을 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다만 어떤 단체는 미리 풍선을 날리는 시각이나 장소를 공개하기도 하고, 또 일부 지자체나 단체가 그걸 막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현장에서 불필요한 충돌이 벌어지고 그 충돌이 길어질 경우에는 (북한이 일을 저지를 수 있으니) 우리가 좀 유의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게 ‘북한이 총·포격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되어 국민들께서 좀 걱정을 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정신전력의 중요성 일깨워”
-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전훈(戰訓)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굉장히 다면적입니다. 군사적인 면, 전략적인 면으로 나누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은 과거와 미래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기관총과 철조망이 위력을 떨치던 100여 년 전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스타링크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주를 기반으로 한 통신체계, 드론, 첨단 미사일에 의한 전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둘째, 정신전력(精神戰力)의 중요성입니다. 러시아가 고전(苦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경제력이 강하고 무기만 좋으면 이긴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전쟁사를 보면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를 이긴 적이 훨씬 많습니다.”
- 전통적인 군사 강국이었던 러시아가 저렇게 고전하는 것은 뜻밖입니다.
“러시아가 세계 2위의 군사 대국이라고 하지만 군기(軍紀), 사기(士氣) 외에도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쇼이구 같은 사람이 국방부 장관을 맡았던 데서 보듯, 장수(將帥)들의 지휘통제 능력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무형전력(無形戰力)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줬습니다.”
- 정신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몇 년 전 제대한 제 조카 말로는 훈련소에서 총검술도 안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완전히 복원되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 장병들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적관(對敵觀)과 국가관이 확실합니다. 이제 그런 것은 거의 정상화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평화의 셈법’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군사적 전훈에 대해 얘기한 신원식 실장은 이 전쟁의 전략적·국제정치적 의미로 말머리를 돌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정세의 흐름에서도 굉장한 터닝 포인트입니다. 아시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 베를린 봉쇄, 1949년 나토 창설 등을 거치면서 구냉전(舊冷戰)이 진행되었는데, 이 구냉전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6·25 전쟁이었습니다.”
- 그렇죠.
“원래 구냉전의 주된 전장(戰場)은 유럽인데, 막상 6·25 전쟁은 보조 전장이었던 아시아 끝에서 벌어졌습니다. 지금 신(新)냉전이라고 하는 미·중 전략적 경쟁의 주된 전장은 동북아(東北亞)인데, 전쟁은 저 반대쪽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습니다. 구냉전의 시계로 보면 지금은 1952년 말쯤 될까요? 하여튼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시작된 탈(脫)냉전 시대는 이제 확실히 저물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 평화의 방정식, 평화의 셈법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 평화의 셈법이 바뀌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역사를 지배해오던 평화의 셈법은 ‘힘에 의한 평화’였습니다. 하지만 탈냉전 30년을 거치면서, ‘힘에 의한 평화’는 본질적으로 유효했지만, ‘상호의존성을 심화하고, 상호 가치를 공유(共有)하다 보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또 하나의 ‘평화의 셈법’을 생각해 내게 되었습니다. 신냉전은 그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무슨 말씀인지 알 만합니다.
“중국은 경제적 풍요에 따라 시민사회가 발전하면서 자유시민사회에 가까워질 줄 알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러시아는 선거를 한다고는 하지만, 선거 같지도 않은 선거를 하니, 변하지 않은 것이고. 결국 세계는 전통적인 ‘힘에 의한 평화의 셈법’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풍요의 셈법’도 바뀌었습니다.”
‘경제 안보’
- ‘풍요의 셈법’이요?
“탈냉전 이후 거대한 세계화(世界化)의 흐름이 진행되었습니다. 탈냉전 기간 중에는 글로벌 공급망이 면밀하게 엉켜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마트에 가면 러시아산이든, 중국산이든, 콩고산이든 제일 싼 물건을 사서 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이런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이를 밸류체인이 바뀌었다고도 하고, 경제 안보라고도 표현하는데, 가치(價値) 중심으로 이 공급망 사슬이 바뀐 것이지요. 경제하는 분들에게는 좀 주제넘은 말씀이지만, 이제 탈냉전 때 누렸던 골디락스(Goldilocks·영국 전래 동화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경제적 조건이 적당하게 딱 좋은 상태)는 당분간 잊어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조달(調達) 비용 자체가 증가할 수밖에 없어요. 탈냉전 시간 동안에 ‘저(低)인플레이션 고(高)성장’이었다면, 이제는 ‘중(中)인플레이션 중성장’이라는 식으로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처럼 풍요의 큰 흐름이 바뀌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동맹의 중요성
-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다른 교훈은 무엇이 있을까요.
“동맹(同盟)의 중요성이겠지요. 우크라이나에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동맹이 있었다면, 유엔군사령부가 키이우에 있었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地政學的) 환경을 가진 나라에는 자체의 힘도 있어야 하지만 동맹과의 연대(連帶)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우크라이나 전쟁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초기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많이 버텼지만, 지금은 거의 자유 진영의 도움으로 전쟁을 하고 있잖아요? 사실 초기에도 서방 각국이 지원해 준 재블린 미사일 같은 것의 도움이 없었다면, 버티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정말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됩니다.
“탈냉전 때는 중립 외교, 전략적 모호성 같은 것들이 현명함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신냉전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 같은 나라는 중립 외교나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다가 잘못되면 힘의 공백 지대로 내몰려 낭패(狼狽)를 당할 수 있어요. 공백지대로 내몰리면, 반드시 강대국 간의 전쟁터가 됩니다. 청일 전쟁, 러일 전쟁, 6·25 전쟁, 다 마찬가지 상황이었어요. 6·25 때는 자유 진영에 속해 있기는 했지만 전략적 가치가 높지 않아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외되어 공백지대로 내몰렸잖아요?”
-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의 소중함을 잘 모르거나, 이를 훼손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탈냉전 시대에는 중립 외교, 전략적 모호성이 현명함의 상징이었지만, 신냉전 구도하에서도 거기에 계속 집착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수구(守舊) 세력입니다.”
“전쟁의 목적은 보다 나은 평화질서 구축하는 것”
- 모사드와 같은 막강한 정보기관이 있고, ‘상승(常勝)군대’의 이미지가 강한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에 속절없이 당했습니다.
“사실 군사적으로만 보면 이스라엘은 초기에 기습을 당했지만, 적응력이 있어 바로 반격을 해서 하마스를 격퇴하고 군사적 승리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끌려간 인질들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이 전쟁이 적(敵) 주력 부대의 격멸, 특정 지역의 점령 같은 전통적인 군사 작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전쟁이라는 데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전략가 리델 하트의 말처럼, 전쟁의 목적은 전후(戰後)에 보다 나은 평화질서를 구축(構築)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 하마스나 헤즈볼라, 후티반군 등과 더 좋은 평화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지. 군사적 성공을 전략적 성공으로 연결시키려면 지도자들의 전략적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 제가 어렸을 때는 ‘60만 대군, 70만 대군’이라던 국군이 이제는 병력 30만 명, 20만 명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50만 명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2030년대 중반에 2차 인구 절벽이 오게 되면, 2040년대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30만 병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미래의 병력 자원 감소는 ‘확정된 미래’입니다.
“저병력 고효율 과학기술군으로 가야”
- 이에 대비해서 18개월로 줄어든 군 복무 기간을 다시 늘리든지, 여성도 징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복무 기간 연장은 정치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성 징병제는 병력 충원 외에 성(性) 평등에 대한 쟁점을 포함하는 사안입니다.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여성 징병제 논의는 군의 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성 평등을 둘러싼 쟁점만 야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병력 자원의 감소도 ‘확정된 미래’지만, 앞으로는 병력의 수에 의해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확정된 미래’입니다. 결국 AI(인공지능)를 중심으로 한 첨단 과학 기술 역량이 전쟁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 그래도 병력 수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에도 보면 동양의 수백만 군대가 대포 몇 방에 무너졌잖아요? 과거에 최전방 GOP에 병력을 쫙 깔아놨어도 다 뚫렸어요. 사람의 눈으로 보고 느끼는 데는 한계가 있거든요. 병사들이 오로지 임무 수행에만 집중해 철저하게 살피면 좋겠지만, 사람의 몸이 그럴 수가 없어요. 이제 기정학(技政學)의 시대, 과학 기술 결정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결국 여기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기술군으로 가서 ‘저병력 고효율’ 체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울러 병력 구조도 합리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수송 등 비전투 임무는 민간에 위탁하고, 군인들은 전투 위주로 국방 운영을 혁신해야 합니다. 여기에 기계의 도움을 더 받게 되면 이를 다루는 간부들은 장기(長期) 복무를 하는 방향으로 가야겠지요.”
“군의 허리와 몸은 기계가”
- 하지만 현실적으로 초급 장교, 부사관들이 군을 떠나고, 충원이 잘 안되고 있는 게 현실 아닙니까.
“잘 아시겠지만, 젊은이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는 경제적·문화적 보상이 충분한지, 미래 비전이 있는지, 일과 휴식의 조화가 되는 근무 환경인지, 자아(自我) 실현의 기회가 있는지 등을 따집니다. 최근 보도를 보면 몇억원을 준다고 해도 지방에서 의사 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군인들은 어디서 복무합니까? 강원도나 경기도 북부 접경 지역, 해상, 격·오지에서 근무합니다. 문화 소외 지역이고, 친구들과 소통도 안 되고, 이성(異性)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군에서도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정말 국민들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예산 등을 안 주면서, 군인들이 어떻게든 해결해 보라고 하는 건...”
- 군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다행히 작년에는 정부에서 배려를 많이 해줘서, 경계부대 시간 외 근무수당 상한 시간 100시간 확대, 당직 근무비 2배 인상, 단기복무장려금(수당) 33% 인상, 임관 3년 차 미만자 주택수당 월(月) 16만원 지급 등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핵의 역설’
- 최근 북한이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 250대를 최전방에 배치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추진해 온 3축(軸) 체제(킬 체인, 미사일 방어 체계, 대량응징보복) 구축 속도에 비해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 고도화 속도가 빠른 것 아닌가요.
“3축 체제는 한국 자체의 능력이고, 한미가 함께하는 ‘일체형 확장 억제’ 체제로 북한의 도발은 충분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해도 한미가 갖고 있는 핵 억제력보다는 못할 겁니다. 북한은 그동안 핵·미사일을 개발해서 위협하면 한미동맹이 멀어지고, ‘미국이 LA나 뉴욕의 안전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서울을 지키겠느냐’는 담론이 통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핵 능력을 고도화해 왔지만, 그럴수록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북한은 더 위험해지는 ‘핵의 역설(逆說)’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이 핵·미사일로 위협할 경우 미국이 LA나 뉴욕의 안전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서울을 지키려 들까요.
“김정은이 미국을 향해 공갈을 칠 수는 있겠지만, 정말 LA나 뉴욕에 미사일을 쏜다면, 그 순간 멸망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살자고 개발한 핵을 죽자고 쓸 수는 없겠죠. 설사 북한이 실제로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미국의 다층(多層) 방어망을 뚫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드골 대통령이 ‘미국이 뉴욕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프랑스를 지켜주겠느냐?’면서 독자 핵개발을 할 때와는 전략도, 무기체계도 달라졌습니다.”
- 하지만 한미 일각에서는 독자적 핵무장론이 나오고 있고, 국민들도 절대다수가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와 러·북 군사 협력 강화에 따른 우리 국민들의 우려와 자체 핵무장 여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체 핵무장 추진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재(制裁)와 논란이 불가피하며, 국제 관계가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이 균열될 우려가 있습니다. 핵무장을 위해서는 이러한 위험을 감내하겠다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합니다. 결국 현시점에서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해법은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한미 확장 억제 협력을 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
- 트럼프 미 공화당 후보가 재집권할 경우, 한미동맹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가 있지만,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한번 봅시다. 1950년 한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된 것은 당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미국은 1973년 베트남도 버릴 수 있었고, 1992년에 수빅만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를 버리고 필리핀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3년 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撤軍)했죠. 지금 우크라이나 역시 초기에 그렇게 분전(奮戰)하지 않았으면, 전략적 가치만 놓고 볼 때에는 미국이 버렸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손을 떼면, 미국은 어떻게 될까요? 중국에 1등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이상, 미국은 그럴 수 없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우선 미·중의 전략적 경쟁이 가장 첨예한 지역이 여기입니다. 한국이 갖고 있는 이런 지정학적 위치뿐 아니라, 반도체, 2차 전지, 원전(原電), 그리고 한국에 투자해 놓은 미국의 여러 자산, 경제적 상호의존성 등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는 대단히 높습니다. 반도체와 관련해서 칩4라는 얘기도 많이 하는데, 이 글로벌 사슬에서 한국이 빠져나간다면, 미국뿐 아니라 자유세계의 모든 문명 자체가 몇 년 동안 암흑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삼성전자, 하이닉스를 대체할 만한 메모리 반도체를 몇 년 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힘을 믿고 좀 당당히 나가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강, 끝’
- 국방부 장관으로서 문재인 정권 시절의 잘못된 국방 정책들을 얼마나 바로잡았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장관이 되기 전 이종섭 장관 시절에 이미 국방혁신 4.0의 얼개가 거의 되어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국방혁신위원장을 직접 맡아 계속 회의를 주관하셨고, 김관진 전 장관께서도 사실상 부위원장으로 큰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방향이 바로잡혔고, 저는 이렇게 방향이 잡힌 것을 좀 더 현실감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 일각에서는 즉(즉시) 강(강력히) 끝(끝까지) 같은 구호에만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더군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니, 그에 대해 제가 뭐라고 평가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원래 군은 구호를 외치고, 그 구호를 실천하는 조직입니다. ‘조용히 알아서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 분도 있지만, 그렇다면 장병들이 왜 군가(軍歌)를 부르고, 함성을 지르겠습니까? ‘말의 위력(威力)’, 함성을 지르고 내뱉은 위력이 엄청난 것입니다. 저는 병사들이 ‘북한이 도발하면 즉, 강, 끝 하겠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이 우리 군을 바꾸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즉, 강, 끝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대통령께서도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힘’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체력 단련인가요, 보디 빌딩인가요? 일선 장병들이 이해할 수 있게 ‘힘’을 정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북한이 도발할 경우 우선 우리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행동을 하게 되죠. 방패를 가지고 막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창(槍)을 가지고 적을 찌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응징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방패로 막기만 하고 응징을 하지 않는다면,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인 것입니다. ‘힘에 의한 평화’에서 ‘힘’은 응징력입니다. 그 응징력이 바로 적의 도발이 있다면 억제해서 평화를 지키는 힘입니다.
응징을 하되 즉각 해야 합니다. 생각하면서 주춤해서는 응징이 안 됩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강도로 훨씬 더 강력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해야 합니다. 적이 굴복해서 다시 도발하면 손해라고 느낄 때까지. ‘즉, 강, 끝’은 ‘힘에 의한 평화’를 최하급 제대(梯隊) 현장에서 전투 행동으로 구현하자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직접 장병들을 현장 지휘해 본 사람은 구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구호를 중심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을 매일매일 신념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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