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세브란스

太兄 2026. 2. 11. 19:29

 세브란스
 
미국에서 은행에 다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1859년 세계최초로 석유갱이 발견되자 친구 록펠러와 함께 석유회사를 세웠습니다.
사업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고, 그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고향 클리블랜드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사업을 벌였습니다.
도시 곳곳에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는데, 누구나 갈 수있는 학교, 병원,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완공된 건물을 시에 기증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세브란스입니다.

그는 빈민과 고아를 돌보았던 부모님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생 자선 활동에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1900년 어느 날 그는 뉴욕 카네기 홀 에서 연설을 듣게 되었는데 연사는 당시 조선에서 의료봉사 활동 중이던 의사 에비슨선교사였습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이렇게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조선에 있는 병원들은 병원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빈약합니다. 간호사도 없이 한 명의 의사가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이 연설을 들은 세브란스는 흔쾌히 기부를 했고, 4년 후 경성 (서울)에 조선 최초의 종합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세워졌습니다
현재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의 모체이며 당시 기부한 금액은 현재 가치로 약 500억원 이상으로 추정 됩니다

조선의 왕부터 백성까지 누구나 진료 받을 수 있는 자선병원 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세브란스 자신의 주치의였던 어빙 러들로 도 조선으로 보냈습니다.
어빙 러들로는 26년 동안 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낙후된 조선의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어빙 러들로'가 미국 본국에 입국한 이듬해 세브란스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낡은 수첩에는 기부금을 약속한 여러곳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기금까지 마련해 두었으나, 정작 자신 명의 의 집은 
한 채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생전에 기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받는 여러분들 보다 주는 내가 훨씬 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