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일반상식

- 정초에 종교를 생각한다 -

太兄 2026. 1. 11. 20:26

- 정초에 종교를 생각한다 -

 

이제는 고요 속으로 들어가신 법정스님과 다툰 적이 있다. 무소유를 설파하신 고승께서 사바의 일에 관여하시는 모습에 실망한 까닭이었다. 법정스님께선 4대강 사업에 두 팔을 걷어부치고 반대하셨다.

 

우리는 강도 다듬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온갖 오물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물을 가로막고 있는 오물들과 구불구불한 사행천은 해마다 수해를 불러오고 있었다. 그러므로 강도 개발해야 했다.

 

우리는 전두환의 한강 개발을 높이 평가한 적이 있다. 수도 서울을 감싸고 흐르는 한강이 오늘날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바뀐 것은 전두환의 개발 덕분이었다. 다른 강도 그렇게 해야했다.

 

세속을 떠난 불가(佛家)의 스님들이 반대를 하고, 이에 법정께서도 나선 것이다. 고승은 얼굴을 붉히며 강의 개발을 국토파괴라고 말씀하셨다. 논리를 저버린 이 막무가내에 우리는 할 말을 잊었지만, 불가는 이미 좌파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지 오래된 일이었다.

 

6.25 때 산을 누비고 다니던 산사람들이 어디로 갔겠는가. 국군 토벌에 쫓겨 산사에서 머리를 깎은 빨치산들이 어디 한 둘이었는가. 혁명 이후 깡패 소탕에 몰려 입산한 자들이 또한 적은 수였겠는가. 시대를 대표하던 깡패들도 있었다. 전두환의 삼청교육대에 잡혀들어가기 싫어서 산으로 도망친 범법자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대한민국의 종교는 현실 정치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불교뿐만 아니라 천주교는 더욱 짙게 변색되었다. 맥아더장군 동상을 끌어내리던 개신교 목사들은 그 자체로만 봐도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미군 철수가 하나님의 뜻이라던 종교는 좌파이념 속에서 붉게 변색되었고, 이 와중에 부처의 자비와 십자가의 평화를 따르던 신도들만 북의 대남전략에 이용당하고 있었다.

 

종교의 이탈엔 도덕성의 몰락도 작용하고 있었다. 장성 백양사 호텔에서 양주를 마시며 도박판을 벌인 스님들과 종권을 차지하고자 폭력배까지 동원하던 스님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산사(山寺) 입구에 빨치산 토벌을 기념하던 곳에 금줄을 치고 관광객의 출입을 막은 스님들은 또 왜 그랬을까.

 

제주해군기지마저도 세우지 못하게 주민들을 선동하며 패악을 부리던 천주교 신부는 과연 어떤 색깔의 십자가를 들고 있었을까. 사드기지에 진을 치고 있는 신부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떤 신념을 지니고 나타났을까.

 

어디 이뿐이랴. 도시의 야경 속에 수없이 올라온 십자가들. 도시를 벗어나 농촌마을까지 점령한 십자가들. 그리고 십자가 밑에서 자기 왕국을 세운 유병언과 신천지 교회.

 

우리 스님은 적멸의 공간에서 수행에 정진하는데, 도둑질 하는 중은 절과 산을 차지하고, 십자가는 도시의 야경을 차지하고, 사이비종교는 사람을 지배하는 나라 대한민국.

 

보수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종교적 괴리(乖離)와 이념의 반역에 대해 어떤 대책이 있는가. 성폭행을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동포의 피를 흘리게 하고, 인간의 권리를 압살(壓殺)하는 자들을 위해 영생(永生)을 빈다는 종교인들을 보면서, 보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있지도 않은 천국을 노래하면서, 납세의 의무를 저버리고 국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며 살아가는 수백만에 이르는 종교인들. 죽음 이후 지옥과 천국행에 대한 위협을 받으며 묵묵히 이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어찌하여 그들이 제주해군기지 같은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가로막고, 신도를 종처럼 부리며 국가를 지배하려 드는가.

 

이 모든 종교적 병폐와 악행과 온갖 폐단에 대해, 평소 필자(筆者)는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대한민국 종교에 관한 한, 우리는 사회주의를 한번은 해야 한다.”

 

나라가 무너지면, 종교 역시 무너진다. 우리가 일제 36년을 겪으며 처절하게 배운 경험이다. 일제는 우리 신앙의 중심을 파괴하고자 하였다. 단군은 물론 동네 성황당까지 없애던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거기에 일본왕을 숭배하는 신사(神社)를 세웠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종교와 국가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만약 부처님과 십자가가 세워질 곳에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세워진다고 생각해보라. 조상의 위패가 모셔질 곳에 김일성김정일 사진이 놓여져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이라는 프랑스에 사는 중이 있다. 베트남이 패망 직전 얼마나 지독한 반미시위에 휘말렸던가를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베트남의 스님들은 분신자살(焚身自殺)을 하며 평화를 위해 미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틱낫한도 반미주의자 그 중의 한 명이었다.

 

결국 미군은 베트남인들의 극단적인 반전(反戰) 시위와 미국 내 반전(反戰) 분위기에 휘말려 베트남을 떠나갔다. 그 즉시 월남은 패망하였고, 미군철수를 요구하던 스님들은 모조리 붙잡혀 재교육대상자로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 공산(共産) 베트남에 사원은 종교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스님들은 없다. 평화를 외치며 미군철수를 요구하던 틱낫한도 베트남을 탈출하여 프랑스로 갔다. 반미(反美)를 외친 그가 차마 미국으로 갈 수는 없었으리라. 틱낫한의 나이 50세 무렵이었다.

 

그런 자가 가끔씩 한국에 오곤 하였다. 24명에 이르는 수행원을 거느리고 마치 드높은 고승(高僧)인양 한국에 와서 설법을 하고 간다. 반미를 선동하던 그런 자를 누가 불렀을까. 틱낫한처럼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불교계의 그 누구는 아니였을까.

 

그러므로 좌파 신부와 목사, 붉은 스님들은 종교적 죄악 속에서 영원히 갇혀 사는 사탄과 마구니(魔軍)들이리라. 영혼은 사악한 공산(共産) 악령(惡靈)에 사로잡혀 있고 진리는 떠나가는데, 누가 저 지옥불 속에서 수행정진 중인 우리의 스님과 신부님들을 구해낼 수 있으리.

 

보수는 종교의 적화(赤化)를 바라만 보고 있지 말라. 종교의 자유도 종교의 진리가 허용한 만큼이라고 분명히 태도를 취하라. 종교라고 무한한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신앙의 원점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라. 그리하여 사이비종교에 신음하는 국민을 구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보수다.

 

부처 곁에서 마군(魔軍)들을 몰아내서 청정도량을 수복하고, 십자가 곁에서 사탄을 몰아내기를 바란다. 관음의 미소가 피어오르고, 마리아의 손길에 향기가 피어오르기를 바란다.

 

2026. 1. 11.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