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화가의 천도복숭아 *
‘초토의 시’로 기억되는 시인 구상과, 소를 그린 그림으로 우리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 화가 이중섭은 오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친구였다.
말이 많지 않아도 서로의 삶을 다 알고 있는 사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닿는 그런 관계였다.
어느 해, 구상은 폐결핵으로 폐 절단 수술을 받았다.
몸의 병은 의사의 손에 맡기면 되지만, 병상에 누운 마음은 사람의 온기로 치유된다고 그는 믿었다.
그래서 병실에서 가장 많이 떠올린 얼굴은 단 한 사람이었다.
이중섭.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 교류가 많지 않던 지인들까지 병문안을 오갔지만, 정작 이중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림은 섭섭함으로, 섭섭함은 걱정으로 바뀌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다 죽어가는 몸으로, 멀쩡한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그 순간 구상은 비로소 친구의 사정을 헤아리고 있었다.
마침내 이중섭이 병실 문 앞에 섰다.
반가움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구상은 애써 표정을 숨기고 퉁명스레 말했다.
“자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누구보다 먼저 올 줄 알았는데…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이중섭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정말 미안하네.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 그만 늦었네.”
그가 내민 꾸러미를 풀자, 그 안에는 천도복숭아가 그려진 그림 한 점이 들어 있었다.
“어른들 말씀이 그러지 않던가.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고.
이걸 보고, 이걸 먹는 셈 치고, 어서 일어나게.”
그 순간 구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과일 한 상자 사올 형편조차 되지 않았던 친구가, 대신 자신의 시간과 혼을 들여 그림을 그려왔다는 사실이 가슴을 저렸다.
늦은 방문의 이유가 가난이었음을,
그리고 그 가난을 부끄러움 대신 진심으로 건너왔음을 그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구상은 그날 이후 천도복숭아 그림을 서재에 걸어두었다.
세월이 흘러 병에서 회복한 뒤에도, 삶이 다시 흔들릴 때마다 그 그림 앞에 섰다.
그리고 2004년 5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 그림을 곁에 두고 살았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말없이 건네진 한사람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오늘 다시 꺼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진심은 가난을 핑계로 미뤄지지 않고, 조건이 없어도 반드시 도착한다.
우리도 누군가의 삶 앞에서, 빈손일지라도 마음만은 늦지 않게 건네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