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일반상식

내란의 전말

太兄 2025. 12. 5. 22:47

강석두ㆍ포항공대교수 (인용)
아래 글을 자세히 읽어보고 내란의 전말을 알아야 대한민국의 국민이랄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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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으로 단정하고 탄핵한 논리가 완전히 깨져 버렸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형사재판에서다.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올해 5월부터 본격화됐다. <이 법정에서 나오는 증언들과 제출되는 증거들이, 헌재가 2025년 4월 4일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할 때 근거로 삼았던 핵심 내용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헌재는 세 가지를 근거로 윤 대통령을 내란으로 몰았다. 한덕수 전 총리의 “<국무회의 절차 위반>” 증언,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대통령이 의원 체포 명령>” 증언,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의 “<체포조 운영 메모>”. <이 세 기둥 위에 내란 판단이 세워졌고 8대 0 만장일치> 탄핵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 형사 법정에서 이 세 기둥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11월 5일, 통화 기록이 말하는 진실
11월 5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증인으로 섰다. 변호인단은 비화폰 통화 기록을 스크린에 띄웠다.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당일의 통화 내역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곽종근이 예하 부대 지휘관들에게 "국회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한 시각은 오후 12시 20~30분 사이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곽종근의 통화 시각은 오후 12시 31분이었다.
법정에 침묵이 흘렀다. 순서가 맞지 않는다. 곽종근은 헌재 심판에서 분명히 이렇게 증언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국회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그 명령을 받아 즉시 예하 부대 지휘관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문영배 재판관은 여러 증인 중에서도 곽종근의 증언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탄핵 선고문을 보면 곽종근의 증언을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으며 신뢰할 만하다"고 기록했다. 실제로 곽종근은 특전사령관이라는 고위 군 지휘관 신분으로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당사자였다. 헌재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없었을 것이다. 이 증언이 '내란' 인정의 핵심 고리였다.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장악하고 의원들을 체포하려 했다는 주장의 유일한 직접 증거였다.
그런데 통화 기록은 정반대 사실을 보여준다. 곽종근이 먼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11분 뒤에 대통령과 통화했다. 만약 대통령이 명령을 내렸다면 통화가 먼저 있어야 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군 지휘 체계의 기본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변호인이 차분하게 물었다. "곽 사령관님, 이 통화 기록을 보시면 사령관께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시각이 12시 20~30분이고 대통령과의 통화는 12시 31분입니다. 대통령과 통화하기 전에 이미 명령을 내리신 것인데, 어떻게 대통령께서 지시하셨다고 헌재에서 증언하실 수 있었습니까?"
곽종근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이렇게 답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법정이 술렁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확인하지 않고 추측으로 증언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명령했을 거라고 짐작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확인 없이, 통화 시간 확인도 없이, 그저 그럴 것 같아서 헌재에 증언한 것이다.
그러자 곽종근은 책임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께서 먼저 그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변호인이 다시 통화 기록을 제시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과 사령관님의 통화 시각은 12시 35분입니다. 사령관께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이후입니다. 시간상 이진우 사령관으로부터 먼저 들으신 것이 아닙니다."
곽종근이 또 말을 바꿨다. "그럼 김용현 국방부 장관께서..."
"김용현 장관과 사령관님의 통화는 해당 시간대에 기록이 없습니다."
모든 변명이 숫자 앞에서 무너졌다. 통화 기록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시간은 조작할 수 없다. 비화폰 통화 내역은 모두 서버에 기록되고 백업된다. 통신사 시스템이 자동으로 생성하는 객관적 데이터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곽종근은 왜 이런 증언을 했나. 악의가 있었나, 아니면 단순한 착각이었나. 악의가 있었다면 누구의 지시를 받았나. 착각이었다면 왜 헌재는 이렇게 중요한 증언을 통화 기록과 대조해보지 않았나. 어느 쪽이든 심각한 문제다.

부하들의 증언, 전언의 연쇄
"그래도 곽종근 외에 다른 군인들도 같은 내용을 증언하지 않았습니까? 이상현 여단장, 김현기 특전대대장, 안효령 등이 모두 대통령이 명령했다고 들었다고 증언했지 않았습니까?"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헌재 심판 과정에서 여러 군 간부들이 증인으로 나와 비슷한 증언을 했다. "대통령께서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을 들었다"는 취지의 증언들이었다.
그런데 사실 관계를 정밀하게 확인해보자.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적이 있나.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대통령의 명령을 직접 들었나. 역시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헌재에서 증언한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곽종근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주고받는 말을 옆에서 주워들은 것이다. 곽종근이 "대통령께서 그런 지시를 하셨다"고 말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들은 것이다.
MBC가 보도한 내용을 자세히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한 부하 지휘관이 곽종근에게 물었다. "대통령께서 그런 지시를 하셨습니까?" 곽종근은 "응"이라고 짧게, 조심스럽게, 주저하는 목소리로 답하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부하는 곽종근의 그 짧은 대답을 듣고 대통령이 명령했다고 이해했고, 헌재에 가서 "곽 사령관께서 대통령이 명령하셨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이것이 전언(傳言)의 구조다. A가 어떤 말을 한다. B가 A의 말을 옆에서 듣는다. B는 "나는 A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다. 이 증언이 A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독립적 증거로 제시된다. 그런데 문제는 B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A로부터 전달받은 것이라는 점이다. A의 말이 사실이면 B의 증언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A의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B의 증언은 무엇이 되나. 거짓말이 전달됐다는 사실만을 증명할 뿐이다. 거짓말의 내용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곽종근의 증언이 통화 기록으로 무너지면, 곽종근의 말을 전달받은 부하들의 증언도 자동으로 무너진다. 모래 위에 세운 탑이었다. 기초가 무너지면 위에 쌓아올린 것도 함께 무너진다.

홍장원의 메모, 원본은 어디에
11월 중순,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변호인이 차분하게 물었다. "홍 차장님께서 2024년 12월 3일 밤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체포 대상자 명단을 구두로 전달받아 직접 작성하셨다는 1차 메모를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홍장원이 답했다. "1차 메모는 제출할 수 없습니다."
"왜 제출할 수 없습니까?"
"없어졌습니다."
"없어졌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분실하신 겁니까, 아니면 폐기하신 겁니까?"
"기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변호인이 계속 물었다. "그럼 보좌관께서 홍 차장님의 지렁이 글씨를 정서했다는 2차 메모는 제출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도 없습니다."
"그것도 없어졌습니까?"
"예."
"그렇다면 지금 헌재에 제출되었고 형사재판 증거로도 제출된 이 메모는 정확히 무엇입니까?"
"12월 4일 오후에 보좌관이 기억을 되살려서 다시 작성한 3차 메모입니다."
"기억을 되살려서요? 원본을 보고 베낀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해서 재작성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홍장원은 '체포조 운영'의 유일한 증인이다. 다른 누구도 체포조 운영을 목격했다거나 관여했다고 증언하지 않았다. 방첩사령부와 정보사령부의 관계자들은 오히려 한결같이 "체포조 운영 자체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홍장원의 주장은 이렇다. "12월 3일 밤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전화로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줬고, 저는 그것을 메모했습니다." 이재명, 박찬대, 우원식, 한동훈 등 주요 정치인 18명의 이름이 그 메모에 적혀 있다. 헌재는 바로 이 메모를 근거로 윤석열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내란 인정의 결정적 물증이었다.
그런데 원본은 없다. 원본을 베꼈다는 2차 메모도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사건 발생 이틀 후인 12월 4일 오후, 보좌관이 기억에 의존해 재구성한 3차 메모와, 여기에 추가로 가필한 4차 메모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본의 실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12월 3일 밤에 메모가 작성됐는지, 그 메모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누구의 손으로 작성됐는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

변호인이 계속해서 추궁했다. "1차 메모를 작성하신 장소가 어디였습니까?"
"국정원 바깥 뜰이었습니다."
"확실하십니까?"
"예, 바깥 뜰에서 작성했습니다."
변호인이 준비한 자료를 제시했다. "국정원 본관의 CCTV 기록을 확인한 결과, 홍 차장께서는 해당 시각인 12월 3일 밤 11시부터 12시 사이에 바깥 뜰에 나가신 기록이 없습니다. 계속 본관 사무실 안에 계셨습니다."
홍장원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그렇다면 제가 기억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사무실 안이었나 봅니다."
"장소를 잘못 기억하신 겁니까? 메모를 작성한 장소는 중요한 정황이 아닙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홍 차장님, 메모를 작성하실 당시 음주 상태였습니까?"
홍장원이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예, 술을 마신 상태였습니다."
"얼마나 마셨습니까?"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변호인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1차 메모의 형태가 어땠습니까? 어떤 종이에 작성하셨습니까? 어떤 필기구를 사용하셨습니까? 세로로 쓰셨습니까, 가로로 쓰셨습니까? 몇 장이었습니까?"
홍장원이 침묵했다. 5초가 지났다. 10초가 지났다. 14초가 지났다. 답하지 못했다. 재판장이 "증인,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재촉했지만 홍장원은 여전히 침묵했다.
직접 썼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이다. 종이의 종류도, 필기구도, 쓴 방향도, 장수도 모른다. 본 적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존재하지 않는 원본. 번복되는 장소. 음주 상태에서의 작성. 기억에 의존한 재구성. 14초의 침묵. 이것이 '체포조 운영'이라는 중대한 혐의의 유일한 근거다.

조태용의 폭로, "오버입니다"
조태용 국정원장도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계엄 직후 홍장원 차장에게 체포조 운영 여부에 대해 확인하셨습니까?"
"예, 확인했습니다."
"언제 확인하셨습니까?"
"12월 4일 오전입니다. 계엄이 해제된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홍 차장을 불러 확인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물어보셨습니까?"
"체포조 운영이 있었느냐고 직접 물었습니다."
"홍 차장의 답변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버입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오버가 무슨 뜻입니까?"
"군 용어입니다. 그런 것 없다는 뜻입니다. 명확한 부정의 의미입니다."
법정이 술렁였다. 계엄 직후, 그러니까 12월 4일 오전에 홍장원 본인이 국정원장에게 체포조 운영이 없었다고 보고한 것이다. 그런데 왜 나중에는 체포조 메모를 들고 나왔나.
조태용 원장의 증언이 계속됐다. "홍장원 차장은 12월 4일 저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에게 전화해보라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에게요? 어떤 맥락에서 그런 제안을 했습니까?"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이재명 대표와 접촉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원장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즉시 거부했습니다. 정치적으로 극도로 민감한 시기에 국정원장이 야당 대표에게 전화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홍 차장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12월 6일자로 해임했습니다."
"해임 사유가 무엇입니까?"
"직무 태만과 부적절한 정치적 접촉 시도입니다."
홍장원의 행적이 명확해졌다. 계엄 직후 12월 4일 오전에는 "체포조 운영 없다(오버)"고 국정원장에게 보고했다. 같은 날 이재명에게 연락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다 12월 6일 해임됐다. 그리고 해임된 바로 그날부터 '체포조 운영 메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2023년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홍장원을 질타하는 대목이다. "홍장원 차장, 문재인 정부 시절 나한테 사람을 통해서 일곱 차례나 인사 청탁하지 않았습니까?" 홍장원은 부인했다. "그런 적 없습니다." 박지원은 재차 추궁했다. "없어요? 그럼 내가 거짓말하는 겁니까? 증거 다 있습니다."
박지원은 또 다른 의혹도 제기했다. "대북 공작금 유용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홍장원이 답하지 못하자 박지원은 "이 자리에서 답변 안 하시면 나중에 문제 됩니다"라고 경고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게 약점이 잡혀 있는 인물. 계엄 직후 이재명에게 연락하라고 권유한 인물. 해임되자마자 체포조 메모를 들고 나온 인물. 이것이 '내란' 서사를 만들어낸 핵심 증인 홍장원의 배경이다.

한덕수, "제가 헌재에서 위증했습니다"
탄핵 인용의 또 하나의 축은 "국무회의 절차 위반"이었다. 그 핵심 증인이 바로 한덕수 전 국무총리다.
형사재판에서 한 전 총리는 대통령실 CCTV 영상이 재생된 뒤 이렇게 말했다. "제가 헌재에서 위증을 했습니다."
그는 헌재에서 "계엄 관련 문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국무회의에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헌재는 이를 받아들여 계엄 선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재생된 CCTV에는 국무위원 11명이 회의실에 입장하고, 계엄 관련 문건이 배포되고, 한 전 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그 문건을 펼쳐보고 넘기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재판부는 "계엄을 말리지 못한 것 아니냐", "군 동원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여러 차례 던졌고, 한 전 총리는 계엄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이 제때 막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쉽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탄핵 인용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던 한 전 총리의 진술이, 정작 형사 법정에서 본인 입에 의해 사실과 달랐다고 시인되었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헌재 탄핵 논리의 또 다른 기둥에 균열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헌재는 무엇을 보고 판단했나
이제 정리해보자. 헌재가 2025년 4월 4일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할 때 의존했던 세 기둥은 무엇이었나.
첫째, 한덕수 전 총리의 "국무회의 절차 위반" 증언. 이것은 형사재판에서 한 전 총리 본인이 "위증이었다"고 시인했다. 대통령실 CCTV 영상은 국무회의 정족수 충족, 문건 배포, 문건 열람 정황을 보여준다.
둘째,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대통령이 의원 체포 명령" 증언. 비화폰 통화 기록은 부대 명령이 먼저, 대통령과의 통화가 그 이후라는 시간 순서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명령을 전달했다"는 증언과 시간상 충돌이 발생한다.
셋째, 홍장원 전 국정원 차장의 "체포조 운영 메모". 1차 원본과 2차 정서본은 사라졌고, 사건 이틀 뒤 기억에 의존해 재작성했다는 3차·4차 메모만 남아 있다. 작성 장소·상황·형식을 둘러싼 진술이 번복되면서 신빙성 논란이 커졌다. 계엄 직후 "체포조 운영은 없었다(오버)"고 보고했다는 국정원장 증언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세 기둥이 무너졌다. 헌재는 CCTV를 보지 않았다. 통화 기록을 확인하지 않았다. 문서 원본을 검증하지 않았다. 증언만 믿었다. 그 증언들이 지금 형사 법정에서 하나씩 거짓으로, 혹은 근거 없는 추측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형배 재판관이 "CCTV를 봤다면 한덕수를 탄핵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 대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헌재가 적어도 일부 핵심 증거를 보지 않고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을 스스로 시사하는 발언이다.

내란은 누구의 것인가
이제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내란'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 붙어야 하는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 해제 요구가 들어오자 6시간 만에 이를 수용한 대통령인가. 아니면 위증 시인, 시간 순서와 어긋나는 진술, 원본이 확인되지 않는 메모, 이런 불완전한 증거들에 기대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끌어내린 세력인가.
표의 주인은 국민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주권주의 국가다. 국민이 투표로 선택한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때 필요한 것은 어떤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탄탄한 사실과 증거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형사재판 기록을 종합해 보면 객관적 증거인 CCTV, 통화 기록, 원본 문서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거나 그 의미가 헌재 판단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진술의 신빙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상태에서도 "내란"이라는 가장 무거운 단어가 사용됐다.
내란은 처음부터 하나의 정치적 프레임으로 작동했다. 그 프레임 위에 세워진 탄핵은 지금 형사재판에서 드러나는 사실들 앞에서 중대한 하자를 드러내고 있다. 정당하게 선출된 대통령을 취약한 증거 구조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진술에 기대어 자리에서 끌어내린 행위야말로 장기적으로 헌정 질서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탄핵을 주도한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
민주당은 지금 '내란 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관련 재판을 맡은 판사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벌어졌다. 사법부에 대한 압력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서둘러야 하는가.
그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윤석열 개인의 형량이 아니다. 형사재판 과정에서 기록과 증언들이 축적되며 자신들이 만든 '내란' 프레임의 실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프레임이 벗겨지면 프레임을 씌운 자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누구의 진술을 어떻게 선택적으로 강조했고 어떤 자료를 어떻게 채택·배제했는지 모든 것이 시간과 함께 기록으로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위증 교사나 거짓 증언 유도, 증거 조작·왜곡과 같은 중대한 의혹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싸워야 한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지금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윤석열을 버려야 한다." "계엄을 사과해야 한다." "국민께 고개를 숙여야 한다."
민주당과 다수 언론이 만들어 놓은 '내란' 프레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 사과하는 순간 "우리가 한 말이 맞다"는 정당성을 그들에게 공식적으로 부여해주는 꼴이 된다. 저들은 상대가 고개를 숙였다고 거기서 멈추는 세력이 아니다. 사과를 약점으로 삼고 더 거세게 몰아붙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사과 경쟁이 아니라 형사재판에서 드러난 객관적 사실들을 토대로 탄핵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다시 묻는 일이다.
한덕수 전 총리의 위증 시인. 곽종근 전 사령관 증언의 붕괴. 홍장원 메모의 신빙성 논란. 통화 기록과 CCTV 기록이 보여주는 팩트들. 이것들을 무기 삼아 싸워야 한다.
"내란은 윤석열이 아니라 헌정 질서를 뒤흔든 탄핵 정치에 더 가깝다." 이 프레임으로 싸우지 못한다면 보수는 앞으로도 영원히 남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변명만 하며 끌려 다니게 될 것이다.

진실의 심판은 계속된다
헌재의 탄핵 결정은 법적으로는 이미 확정됐다. 현행 헌법 체계에서 이를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진실의 심판, 역사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형사재판은 계속되고 있다. 통화 기록, CCTV, 증인들의 번복과 새로운 진술, 메모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 이 모든 것이 하나하나 법정 기록으로 쌓이고 있다.
역사는 8대 0이라는 숫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역사는 어떤 증거 위에 세워진 결정이었는지를 기억한다.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명예 회복과 더불어 이 탄핵 과정을 둘러싼 권력 남용 여부 또한 역사와 국민 앞에서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권경희 | 메가포커스 발행인 겸 대표기자, 복음언론인협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