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먹는 하마' 된 극한 기후… 한반도가 말라간다
온난화로 건조 현상 심해져

지난 3일 오후 충북 충주시 주덕읍 한 사과 과수원. 보통 11월 초쯤이라면 빨갛게 익어야 할 사과들이 녹갈색 빛을 띠고 있었다. 사과의 빛깔과 과육은 사과나무가 제때 알맞은 습도·햇빛·온도 등에 노출돼야 붉고 달게 익는데, 특히 올해는 상황이 달랐던 탓이다. 이곳에서 30년째 과수원을 일궈온 한수덕(66)씨는 “여름에 비가 고루 안 내리고 확 퍼부었다가 길게 가물다 보니 제때 수분 공급이 안 됐다”며 “그러다 느닷없는 가을비로 수확 시기에 땅이 젖으면서 낙과가 늘고 색도 물들다가 말았다”고 했다.

온난화 여파로 삽시간에 많은 비가 퍼붓는 ‘극한 호우’가 늘고 있지만, 여름 한철만 제외하곤 우리나라가 점점 말라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름은 비, 겨울은 눈이 전국 곳곳에 고루 내려 땅과 대기에 수분이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는데, 강수가 극단적으로 변하면서 눈·비 소식이 없을 땐 건조 현상이 전국적으로 심해진 것이다.
4일 본지가 기상청에 의뢰해 1980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의 평균 상대 습도를 연대별(10년 단위)로 조사한 결과, 1980년대(1980~1989년) 평균 72%였던 습도는 2010년대(2010~2019년) 들어 68%로 4%포인트 떨어졌다. 상대 습도는 55%를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습하고, 낮으면 건조하다는 뜻이다. ‘평균 68%’라는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가 비교적 습한 것처럼 오인할 수 있지만, 이는 여름철에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서 생긴 ‘착시 현상’이란 설명이다.

기상청은 “40년간 4%포인트가 줄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름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 건조도가 급격하게 심해졌다”고 했다. 평균 상대 습도가 4%포인트 떨어졌다는 얘기는 한 해 우리나라 땅이 머금고 있는 수분이 평균 6~8%가량 줄어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권역별로는 충북이 72%에서 66%로 6%포인트, 대전·충남이 76%에서 71%로 5%포인트 떨어져 충청권의 건조화가 가장 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아직 2020년대(2020~2029년) 상대 습도 분석은 이뤄질 수 없지만, 2022년 한 해 수치만 보더라도 습도가 67%로 떨어진 상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상대 습도가 1% 떨어지면 지표의 수분 증발량이 1.5~2%가량 늘어난다고 본다. 한국처럼 여름이 고온 다습하면 공기 중에 이미 수분이 많아 땅도 마르지 않지만, 한랭 건조한 바람이 부는 가을과 겨울, 이듬해 봄에는 가뭄과 산불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은 “봄철에 상대 습도가 1%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산불 발생 빈도가 1.4% 증가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같은 건조화 현상은 온난화 여파로 세계 각국이 겪고 있다. 습도는 눈·비 등 강수 영향이 가장 크다. 비의 경우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퍼붓는 비’의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었는데도 비가 내릴 땐 홍수가, 비가 내리지 않을 땐 가뭄이 극심해진 것이다. 이렇게 내린 비는 강수 지역이 좁아 비구름대가 오지 않은 지역은 심하게 가뭄을 겪게 만들고, 비가 내린 곳도 대부분 하천으로 빠르게 유출된다.
더 문제는 ‘눈’이다. 기온 상승 여파로 내리는 눈이 적어지면서,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습도가 줄어들고 있다. 그동안 겨우내 쌓인 눈이 봄으로 갈수록 서서히 녹으며 땅에 수분을 공급해 왔는데, 이젠 날이 더워지다 보니 눈 대신 비로 바뀌면서 이전처럼 눈이 쌓여 있다가 서서히 땅에 수분을 공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평균 기온은 1980년대만 해도 11.9도였지만, 2020년대엔 13.5도까지 올라갔다. 같은 기간 평균 적설량은 38.3㎝에서 21.9㎝로 줄었다.
유희동 연세대 대기과학과 특임교수는 “온도가 올라갈수록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은 늘어나지만, 한국처럼 겨울이 춥고 건조할 경우엔 ‘수증기 그릇’이 텅 비어버려 건조도가 오히려 심화된다”며 “여름엔 홍수, 봄엔 가뭄과 산불이 극심해지는 것이 극단적 기후변화의 공통적 양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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