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이진숙 한 명 보내려 17년 된 기관 없애는 정권"

太兄 2025. 11. 2. 17:38

"이진숙 한 명 보내려 17년 된 기관 없애는 정권"

[인터뷰]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풀려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 집단은 무엇이든 한다"

입력 2025.11.02. 03:00업데이트 2025.11.02. 14:42
공직선거법·국가공무원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10월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압송돼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뉴시스

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0월 2일은 그가 공직(公職)에서 잘리고 자유인이 된 첫 날이었다. 오후 3시경, 남편과 산책을 하려고 차를 몰아 주차장을 막 빠져나왔을 때 건장한 체격의 두 남성이 차를 막아 세웠다. ‘근처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창문을 내리자 말했다.

“영등포서에서 나왔습니다. 체포영장을 집행하겠습니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차를 돌려 집 주차장에 세우고, 남편이 집에서 황급히 챙겨 온 정장을 차 안에서 갈아입었다. 건장한 사나이들은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호송차로 옮겨 실었다. 난생 처음 차보는 수갑, 생각보다 가볍다고 느끼며 생각했다.

‘내가 대체 긴급하게 체포될 만한 어떤 잘못을 했지?’

긴급체포 당한 전직 장관급

이진숙(李眞淑) 전(前)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장)의 연휴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전 위원장은 10월 1일 자로 방통위장에서 면직되고,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일 경찰에 전격 긴급체포됐다. 경찰 출석 요구에 6회 불응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통상 긴급체포는 피의자가 도주의 위험이 있을 때 집행한다.

방통위장은 장관급 인사다. 대한민국의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이 벌건 대낮에, 그것도 명절 연휴를 앞두고 긴급체포되는 일이 생겼다. 이진숙 전 위원장은 2박 3일 동안 경찰 유치장에 구금됐다가 10월 4일에 법원의 체포적부심사를 통해 풀려났다. 이 전 위원장을 지난 10월 13일에 강남 모처에서 만나 2박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넉 달간 그가 출석한 국무회의와 국회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었다. 인터뷰 자리에는 서울고검 검사 출신으로 이 전 위원장의 변호를 맡은 임무영(林武永) 변호사가 동석했다.

“호송차를 타고 가면서 제가 했다는 범죄 혐의를 생각해 봤습니다. 유튜브에 4번 출연, 페이스북에 1회 의견 게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한 번 발언한 것이 다였습니다. 제가 경찰 출석을 여섯 번이나 거부했다는데, 사실을 알고 나면 그것은 허울뿐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 호송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들이 깔렸더군요.

“명절 전이라서 강남 집에서 영등포경찰서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호송차에서 내리기 전에 담당 경찰에게 ‘차라리 수갑을 씌운 커버를 벗겨라’라고 요청했더니 ‘인권 보호 차원에서 안 된다’고 하더군요. 멀쩡한 생사람을 긴급하게 체포하면서 이제 와서 인권 보호라니요? 내려서 작심 발언을 했습니다. ‘이재명이 시켰느냐, 정청래가 시켰느냐, 개딸이 시켰느냐’라고요.”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싶었다”

조배숙 의원(오른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월 4일 오후,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체포적부심이 열리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이 전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이진숙 전 위원장은 바로 영등포경찰서 조사실로 갔다. 수사과를 통과해 지나는데 TV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 출석 요구 6회 불응, 이진숙 체포’

그는 “평생 법을 지키면서 살아왔는데, 범죄 전과 0범인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싶었다”고 했다. 경찰 조사실에 들어서자 저녁 시간이니 주문을 해준다고, 또 수사관들이 저녁을 먹는다며 8시가 넘어서야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임무영 변호사가 “심야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니 경찰은 수사를 종료하고 이 전 위원장을 유치장에 넣었다. 임 변호사는 곧장 사무실로 가서 ‘체포적부심사(수사기관의 체포가 적법한지를 법원이 심사하는 제도) 청구서’를 작성했다.

체포 이틀째이자 연휴 첫날인 10월 3일 오전 10시 23분경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다. 사안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물었는데 이 전 위원장 측이 조목조목 반박하니 조사가 중단됐다가 재개되기를 반복했다. 총 조사 시간은 4시간 3분, 하지만 실제로는 2시간 반 정도였다. 임무영 변호사의 얘기다.

“통상적인 경찰 조사는 피의자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겁니다. 피의자의 예상 반론, 또 그 예상 반론에 대한 잘못된 점을 지적합니다. 당사자에게 경찰의 입장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판사에게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통상은 경찰은 합리적으로 질문했고 피의자는 엉터리 소리를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죠. 그러나 이번의 경찰 조사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서로 인정하는 바인데, 저희 측은 그 사실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조목조목 반박했거든요.”

경찰과 날짜 조율하고 출두 의사 밝혀

이진숙 전 위원장이 긴급체포를 당한 것은 경찰이 6번이나 출석을 요구했는데 불응하고 출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영등포경찰서가 이 전 위원장에게 처음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낸 것은 그가 아직 방통위장이던 8월 12일이었다. 경찰은 8월에만 3번에 걸쳐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이 위원장은 “변호사를 아직 선임하지 않았고 방송 3법(法) 관련해서 불규칙한 국회 일정이 있다”며 “일정 조정을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영등포경찰서의 수사2과장은 9월 9일 오전 10시에 방통위원장실로 전화했다. 이 위원장은 “9월 27일 오후 2시에 경찰에 출두하겠다”고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임무영 변호사를 선임했고, 임 변호사가 다시 영등포경찰서의 수사2과장과 통화했다. 임 변호사는 변호사 선임계와 의견서를 써서 우편으로 보내며 “자세한 내용은 27일에 출석해서 소명하겠다”고 했다.

영등포경찰서는 9월 9~27일 사이에도 세 번의 출석요구서를 집으로 보냈다. 이 요구서는 이 전 위원장의 남편이 우편함에서 직접 받았다. 이 위원장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먼저 전화로 출석을 협의하고, 출석 날짜가 정해지면 기록 차원에서 출석요구서를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9월 27일에 출석을 하기로 했는데 ‘9월 12일에 나오세요’ ‘19일에 나오세요’라고 출석요구서가 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잖아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9월 27일엔 영등포경찰서에 출두했습니까?

“9월 들어 방통위법과 관련된 일들이 속사포처럼 터져나왔습니다. 방통위 비서실장이 위클리(주 단위)로 일정을 알려주는데, ‘이번 주에 과방위는 언제이고, 법사위는 언제이고’라는 식입니다. 국민의힘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비롯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모든 법안에 대해 9월 25일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방송 3법 관련 필리버스터가 세 차례(30시간) 예정돼 있는데 방통위장이 참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9월 27일 국회 출석은 ‘의무참석’”

한쪽은 웃고, 한쪽은 당당했다. 9월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방통위 폐지’ 논란의 한복판에서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방통위 폐지 관련 ‘무제한토론 종결동의의 건’ 기표를 마친 뒤 미소를 지었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두 사람의 온도 차가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겼다. /남강호 기자

―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9월 25일에는 국회에 계셨다는 거군요.

“이전에는 대리참석이 가능했습니다. 가령 기관장이 앉아 있다가 식사 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우면 국장이 대신 자리에 앉아 있는 거죠. 하지만 24시간 동안 진행되는 필리버스터가 워낙 길어서 자리를 일절 비우지 않고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졸지도 않았습니다. 가령 10초만 조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혀도 어떤 후폭풍이 올지 알고 있으니까요.”

― 경찰 출석이 예정된 9월 27일에는 어땠습니까?

“과방위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거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법’이 9월 25일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습니다. 그리고 27일에 국회는 기존의 방통위를 폐지하고 방미통위를 설치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여당 주도로 통과시켰습니다. 탄생한 지 17년 된 방통위를 없애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이 경우는 대리참석이 불가능한, 위원장이 계속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의무참석이었습니다. 다른 부처의 기관장이 필리버스터 때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의무참석’이라는 내규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 그래서 영등포경찰서에 출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렸습니까?

“최종적으로 국회의 일정을 확인한 것은 9월 26일이었고, 이날 오전 8시에 임 변호사가 경찰 측에 연락했습니다. 경찰은 ‘국회 일정 때문에 출석하지 못한다니 불출석사유서를 보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임 변호사가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2시 사이에 5번 통화를 했고, 담당인 수사2과장이 출근하지 않은 날이어서 조사 담당자인 이모(某) 경사와 소통하며 오후 1시 반에 불출석사유서를 팩스로 보냈고, 곧장 등기우편을 보내 29일에 경찰서 측이 이를 받았음을 확인했습니다.”

동석한 임무영 변호사는 “불출석사유서를 보낼 테니 다음번 일자를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이 소환하지 않을 것처럼 얘기해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도주한다는 건 제 인생을 날리는 일”

황우섭 미디어연대 상임대표가 10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진숙 축출, 방송장악 민주당 독재 규탄’ 시민단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영등포경찰서에서 8월 이후에 6번의 출석통지서를 보낸 것은 통상적인 일일까, 9월 27일에 출석이 예정돼 있는데 9월 26일에 불참을 통보한 것이 법률적으로 어긋날 일은 아니었을까 싶어 임무영 변호사에게 물었다.

― 정상적인 절차입니까?

“일반인이라면 출석요구서를 이렇게 자주 보내지 않습니다. 경찰은 통상 유선상으로 출석 협의를 합니다. ‘변호사는 있느냐, 날짜는 언제가 좋겠냐, 변호사 선임 이후에 전화를 다시 달라’고 합니다.”

― 출석 전날 취소한 것이 문제는 아닐까요?

“전날 취소하면 날짜를 다시 잡습니다. 물론 경찰에 출석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도주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긴급체포를 하기도 합니다.”

이진숙 전 위원장의 얘기다.

“완벽한 삶은 아니었지만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50대 이상 분들에게는 ‘종군기자 이진숙’으로, 20~30대에게는 방통위장으로 알려질 만큼 알려졌습니다. 제가 도주를 하기는 어디로 합니까. 제 딸아이에게도 창피한 일 아닙니까. 도주를 한다는 것은 제 인생을 날리는 일인데 제가 그런 일을 왜 합니까? 그렇다면 제가 대전MBC 사장 시절의 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사후에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왜 대전 유성경찰서까지 가서 조사를 받았겠습니까?”

“현 단계에서 체포 필요성 없다”(영장 당직 부장판사)

임무영 변호사가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한 것을 법원이 받아들여, 10월 4일에 법원 결정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임 변호사는 이진숙 전 위원장에게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말했단다. 임 변호사는 “체포적부심 청구의 인용(認容)률은 사실상 0%”라고 했다.

 

― 법원이 체포를 번복시킬 확률이 없었다는 거군요.

“청구 사례 자체도 없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전 위원장이 경찰 구치소에 4~5개월 정도 있지 않을까 예상했습니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시라고 일러 뒀습니다.”

서울남부지법의 체포적부심 심사는 10월 4일 3시로 예정돼 있었다. 김동현 영장 당직 부장판사의 주재로 심사가 시작됐다. 임무영 변호사의 변론이 시작됐다.

〈경찰의 소환은 부당하다. 당사자와 협의를 하지, 일방적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소환 협의서를 6번 보냈다. 9월 14일에 받은 출석요구서에는 ‘9월 12일까지 출석하라’고 하는 등 출석 날짜가 지나고 보냈거나, 출석할 시간적 여유를 두지 않고 보냈다. 청구인(이진숙 전 위원장)은 방통위장으로 있으면서 과거의 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대전 유성경찰서에도 출석했는데 왜 영등포경찰서는 가지 않겠느냐? 청구인을 긴급체포할 명분이 없다. 더구나 청구인의 범죄는 두 가지 이유로 성립되지 않는다. 공무원의 국가공무원법 위반은 ‘집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출판해야 한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은 사람이 많은 곳도 출판물도 아니다.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해도 범죄 사실 소명이 있어야 하는데, 소명도 안 돼 있다. 체포의 필요성도 인정되지 않는데 긴급체포를 한 것은 대한민국이 경찰국가 되겠다는 것 아니냐.〉

김동현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며 이 전 위원장을 석방했다. 당시 이 전 위원장은 면회를 온 박용찬 국민의힘 영등포을 당협위원장,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고 있었다.

“석방됐어요.”

오후 6시경 임무영 변호사가 경찰서 유치장으로 뛰어들어 오며 말했다. 추석 연휴 내내 언론을 뜨겁게 달굴 ‘이진숙 긴급체포’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방통위 案을 만들어 보라”(이재명 대통령)

이진숙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9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무제한토론을 듣고 있다. 사진= 뉴시스

시간을 거꾸로 돌려 보자. 2024년 7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이진숙 위원장을 방통위장으로 임명했다. 이 위원장이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국무회의에 처음 참석한 것은 올해 6월 5일이었다. 참석자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국무위원이 대부분이었다. 첫번째 국무회의에서 관심이 집중됐던 사안은 ‘3특검’ 심의 의결 건이었다. 당시 이 위원장이 평소 친분이 있던 Y 장관에게 이 사안이 어떻게 될 것인지 물었더니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우리의 입장을 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3특검이 될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었으나, 방통위장은 국무위원이 아니라 배석자였기 때문에 심의의결권이 없었다. 그래서 Y 장관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물었다고 한다.

첫 번째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어색하지만 웃으면서 얘기하자”고 했다. 3특검을 심의하는 자리에서 이진숙 위원장이 한마디 했다.

“대통령은 선거운동 전에도 그랬고 당선된 이후에도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는데, 특검을 추천하는 데 국민의힘이 배제되면 정치보복으로 비치지 않겠느냐”고 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참고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다음번 국무회의에 참석했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말했다.

“방송 3법 논의는 국회의 논의 사안인데 내가 중단시켰다. 나는 방송 장악, 언론 장악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으니, 방통위 안(案)을 만들어 보라”

이 대통령의 말을 들은 이진숙 위원장은 곧장 방통위 사무처장을 불러서 ‘방통위 안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방송 3법을 2015년에 논의했을 때 국회 공청회, 시민단체 공청회 등으로 대안을 만드는 데 1년이 걸렸습니다. 민주당에서 논의하는 방송 3법은 공영방송을 사실상 민노총 영향력 아래로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상당히 고무적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로 방통위 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휴가 신청’ 전말

―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했다는 거죠?

“제가 국무회의에 참석했을 때 국무위원 20명 이상이 자리에 있었으니 다들 들었을 겁니다. 물론 자신들의 사안이 아니라서 흘려듣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제가 대통령의 지시를 받지도 않고 사무처장을 불러서 방송 3법과 관련한 방통위 안을 만들자고 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 대통령도 이후 방송사 사장 모임에 참석해 ‘방송 3법은 속도 조절을 하겠다’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 대통령 지시니까 실행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국회 과방위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대통령이 지시한 것 맞느냐’ ‘국무조정실 통해서 전달받은 거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 그 얘기대로라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랑 국회가 엇박자가 난 건데요?

“맞습니다. 국회에서는 저를 몰아붙였고, 제가 아무래도 대통령한테 직접 보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국무회의에서 ‘보고드릴 게 있다’고 했더니 대통령이 ‘하지 마세요. 그만두세요’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김민석 국무총리가 ‘(발언을) 그만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국회에서는 최민희 과방위원장, 김현 민주당 의원이 수시로 ‘현안 질의’ ‘청문회’라는 이름을 들어 방통위장을 불렀고, 주위에서 “사퇴하라”는 압박이 들어왔다.

이 전 위원장은 재직 중일 때 매주 월요일 사무처장과 점심을 먹으며 현안 논의를 했다. 7월 중순 무렵 어느 날, 사무처장이 “위원장님, 휴가는 언제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제가 한가롭게 휴가 생각할 여유가 있을 리 없잖습니까. 그런데 사무처에서 방통위 직원들의 휴가 일정을 짠다고 해서 저도 ‘가겠다’고 했는데, 장관급 기관장들은 휴가 일주일 전에 대통령실에 통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실에 휴가 신청을 했는데 모 신문에 ‘이진숙 위원장 휴가 신청’이라고 기사가 떴습니다. 이어서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단에 공지를 띄워서 ‘이진숙 위원장 휴가 신청 반려’라고 발표했습니다. ‘재난 상황에 장관급 공무원이 휴가를 가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출마 생각할 겨를 없다”

‘재난 상황’의 관할 부서는 행정안전부다. ‘방송 재난’은 방통위 소관이다. 재난방송은 전국 각지에 폭우가 내리거나 시민이 피해를 받는 경우다. 물론 재난과 관련한 방송에 방통위가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24시간 방송 모니터를 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방송사에 재난방송을 요청하기도 한다. 반면 방송 재난은 방송사 송신탑이 망가지는 등의 경우에 해당한다. 당시 이진숙 위원장은 “그 와중에 ‘재난 상황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어서 입을 닫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강유정 대변인이 “이진숙의 직권면직을 검토한다”는 얘기를 했다. 우상호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진숙이 (2026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거면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하면서 사퇴 압박을 이어 갔다.

이 전 위원장의 얘기다.

“제 임기는 내년 8월까지였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임기를 채우겠다고 했고요. 그러면 자동으로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는데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 싶었습니다.”

― 얘기 나온 김에 여쭙겠습니다. 내년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할 겁니까?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은 헌법재판관들이 ‘반(反)헌법적 이진숙 축출법’을 무효로 돌려 주시기만 간절히 바랍니다.”

이 전 위원장은 면직된 10월 1일 그날로 방미통위법에 대한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헌법재판소에 낸 상태다.

― 일부에서는 “이진숙이 자기정치를 한다”고 합니다.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경찰서 유치장에 가보셨나요? 요즘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걸어서 한 바퀴를 도는 데 10초도 되지 않습니다. 제가 제 정치를 하려고 일부러 경찰에 불출석하고, 2박 3일을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는 얘기입니까?”

“잘못한 것 없는데 왜 물러나나”

― 애초 경찰이 문제로 삼은 유튜브 출연은 누가 요청했습니까?

“제가 묻겠습니다. 제가 먼저 유튜브 출연을 제안했을까요? 저에 대한 논란이 심해지자 유튜브 진행자가 먼저 요청했고 출연하게 됐습니다.”

― 정권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는데 방통위원장을 사퇴할 생각은 안 했습니까?

“전혀요. 제 임기는 보장돼 있었습니다. 물론 사퇴 압박에 못 이겨서 제가 그만두고 나왔다면 방미통위는 탄생하지도 않았겠지요.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만뒀다면 즉시 공영방송, 특히 KBS 이사진을 바꾸고 사장을 교체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대전MBC 사장 시절에 유용했다는 법인카드든 뭐든, 저는 잘못한 것이 없기에 조사를 받았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제가 왜 물러나야 합니까?”

― 법인카드 유용 혐의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8월 5일에 신정훈 민주당 행안위원장이 유재성 검찰청장 직무대행을 불러다 ‘이진숙 위원장 수사가 지지부진하고, 혐의점이 드러나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구속 수사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니까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신속히 수사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나중에 유 직무대행은 ‘의례적으로 답변했다’고 하더군요. 대전 유성경찰서에서 법인카드 건으로 네 번 조사를 받았고, 7월 5일에는 휴대전화가 압수수색됐습니다.”

“앞으로도 민노총-언론노조에 대해 계속 얘기할 것”

이진숙 전 위원장과는 공식적으로 세 번째 인터뷰였다. 인터뷰 때마다 느끼지만 그는 날짜, 시간, 정황상 흐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모노톤의 음색을 유지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다.

― 경찰의 긴급체포, 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를 찍어 내리기 위해서겠지요. 사퇴를 시켜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으니까. 그 뒤에는 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동조합이라는 어마어마한 조직이 있고요. 저는 아직도 공영방송 내에서 언론노조 조합원 비율이 높고, 민노총이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민노총 언론노조의 주도하에 공영방송은 버젓이 편파 보도, 사실 왜곡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방송의 중립성은 더구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민노총 강령에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있습니다. 민노총 간부들이 북한 김씨 일가에 충성을 서약한 사례도 있고, 공영방송 뉴스에서 당시 우리나라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윤석열 대통령을 박근혜씨, 윤석열씨라고 서슴없이 불렀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예전 인터뷰에서도 ‘민노총·MBC 대(對) 이진숙 싸움이었다’고 말해서 정치 편향성 문제로 비판을 받았는데, 여전히 같은 말을 하시는군요.

“죽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살 만큼 살기도 했고…. 120만 명의 회원을 가진 이들, 뭐든지 할 수 있는 집단, 저라고 민노총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2012년에 MBC 170일 파업 때 현장에 있으면서, MBC를 좌지우지하는 민노총의 실체를 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얘기할 겁니다.”

―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조사를 받아야 할 사건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물러난 것이 아니라 잘렸고요. 감사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조사, 공수처 고발, 검찰, 경찰 조사까지 많습니다. 이 집단은 누구 하나를 죽이려고 하면 전방위로 몰려오니까요.”

‘이진숙, 힘내라!’

지난 9월 2일, 경기 과천시 정부 과천청사 인근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응원하는 화환들이 놓여 있다. 사진=뉴시스

― 지난번 헌재의 방통위장 탄핵 기각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변호사 비용을 사비로 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의미 있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종 조사와 재판이 저라고 귀찮지 않을 리 있습니까. 공개적으로 망신도 당하지만, 저는 이런 것들을 감당하는 이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저를 고발하려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분도 세비를 쓰지 말고 개인 돈으로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이제 공인이 아니라 사인(私人)입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긴급체포 때 변호사로부터 앞으로 4~5개월 동안 구치소에 수감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풀려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풀려난 것은 양심적인 판결을 해주신 판사 덕분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생각합니다. 왜 문재인 정부를 거쳐 이재명 정부에 이르기까지 말도 되지 않는, 비정상이 정상처럼 느껴지는 ‘뉴노멀’이 생겼을까, 그런데 왜 우리 국민은 여기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어야 하는지 싶습니다. 경상도 표현에 ‘같잖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심하고 무능하다는 소리죠. 국민에게 거짓말하는 같잖은 정부는 결국 망합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국민뿐입니다.”

― 국민이라,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며 일면식도 없는 많은 사람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개딸’을 만난 것은 두어 번뿐이고요. 한번은 화장실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한 분이 제 손을 잡으며 ‘저희, 생활지원금 20만원 안 받아도 돼요. 그런 거 안 줘도 되니까 나라가 잘 굴러가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건널목을 건너는데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분이 제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면서 ‘존경합니다’라고 하더군요. 제가 영등포경찰서 조사실에 있는데 밖에서 ‘이진숙, 힘내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연휴 전날에 제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아직 이런 국민이 있기에 이 나라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꽤 강심장이라고 자부하는데 이분들을 만날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까지 하는 정부’

― 지금도 울컥해 보이는데요.

“시민의 목소리, 결집한 힘이라고 말할 밖에요. 저는 ‘말’과 ‘몸’ ‘돈’으로 얘기하라고 합니다. 부당함을 참지 말고 말로 얘기하고, 몸으로 집회에 참석하든 시민에게 힘을 보태셔야 하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지원하시고요. 그것이 시민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혁명’입니다.”

― 방통위장으로서 하고 싶은 일도 있었을 텐데, 17년 만에 방통위가 없어지고 자동 면직이 됐으니 아쉽지 않습니까?

“기관을 없애 가면서까지 이진숙을 잘라 낼 궁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기관을 없앤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이 집단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곳이며,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방통위를 방미통위로 만들고, 10월 1일 새벽에 정부 과천청사에 있던 방통위 현판을 철거했다고 합니다. 현판 교체, 사무공간 안내도 교체, 개인별 명패 등에 2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똑같은 기관을 이름만 바꿔서 이런 비용을 들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정 농단 아닙니까?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시즌 2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표방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나쁜 쪽으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까지 하는 정부’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