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6 16:42:55
♥ 이맥의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동방 한겨레의 시원 문자의 발전과정(10)
한글과 한자는 본래 우리의 것
고조선의 진한과 부여와 왜국은 혹 횡서하고 혹은 노끈을 맺고(結繩), 혹은 나무에 새겼는 데, 오직 고구려는 붓글씨를 썼다(摸寫穎法),생각컨대 필시 환단(桓檀)의 상고 시절에 문자를 본떠서 새기는 방법이 있었으리라.
일찌기 최치원이 신지(神誌)가 옛 비문에 새겨 놓은 '천부경'을 얻어 다시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했으니, 낭하리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자와 함께 확실히 모두 실제했던 자취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시시대에는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 선생 때는 우서(雨書)가 있었고, 치우천황 때는 화서(花書)가 있었다고 했는 데, 투전문(鬪佃文) 등은 바로 그것이 오늘날 남아있는 흔적이다. 복희 때는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 때는 신전(神篆)이 있었는 데, 이러한 문자는 백두산, 흑룡강, 청구, 구려지역에 널리 사용되었다.
부여 사람 왕문(王文)이 처음으로 전서(篆書)가 복잡하다 하여 그 획수를 줄여 새로 부예(符隸)를 만들어 사용했다. 진(秦)나라 때 정막(程邈)이 사신으로 숙신에 왔다가 한수(漢水)에서 왕문의 예서 필법을 얻어 그 획을 조금 변형시켰는 데, 이것이 지금의 팔분(八分)체이다. 진(秦)나라 때 왕차중(王次仲)이 해서(楷書)를 만들었는 데, 차중은 왕문의 먼 후손이다. 이제 글자의 내력을 살펴 고찰해보면 모두 배달신시 시대부터 내려온 법이다. 지금의 한자도 역시 그 한 갈래를 계승한 것이 분명하다.
*결승~문자가 없던 시대에 새끼나 가죽끈을 매어 그 매듭의 수나 간격 등으로 의사소통을 하던 방법이다.
*모사영법~목판에 판각하거나 바위에 암각된 원본을 붓으로 베껴 쓰는 방법이다.
*첩~문서, 탁본 등을 뜻하는 말이다. 비석에 새긴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 내는 일, 또 그 박은 종이를 탁본이라한다.
최치원은 단순히 탁본이 아니라 번역하여 두루마리를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정막~진나라 때 하두사람, 전서에서 복잡한 것을 생략하여 예서로 만들었다. 사실은 왕문의 예법을 배워 간 것이다.
*팔분~전서와 예서의 중간되는 한자 서체, 중국 한나라 채옹이 만들었다.
*왕차중~중국 후한의 장제 때의서예가, 해서를 만들었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529~530
#한자원문해설은 이맥의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을 참고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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