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학습효과? 朴탄핵때와 달리 우파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월간조선]
[심규진의 이슈분석]
12·3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이후 지지율 급락과 탄핵, 구속이 일사천리로 이어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자 대통령과 거리 두기에 바빴던 국민의힘 의원들이 관저로 몰려가 체포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 역시 ‘박근혜 탄핵’ 때는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보수(保守) 복원(復元)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에 한번 살펴보았다
1. 학습효과와 민주당의 무리수
박근혜 정권 탄핵과 그 후 촛불 집회의 결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고, 이는 5년간의 실정(失政)과 친북(親北) 노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험은 대중에게 일종의 면역(免疫) 효과를 남겼다. 과거에는 선동적인 가짜 뉴스를 쉽게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휘둘리지 않고 있다.
조기(早期) 대선이 치러질 경우 다음 대권을 잡을 유력 야당 주자가 그때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고, 지금은 이재명 대표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박근혜 탄핵 당시 문재인의 비호감도는 46%였다. 이재명 대표는 조사에 따라 그 수치가 60%에 육박한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설 경우 더 큰 사회적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위기감에 보수가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와 친북 노선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가 이탈한 중도층조차 쉽사리 이재명 지지로 돌아서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역효과 부른 ‘내란 수괴’ 프레임
‘내란 수괴’라는 과장된 프레임도 중도층에게는 큰 역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 성향 유권자들은 대체로 “계엄은 잘못됐다”거나 “탄핵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계엄령 선포가 곧 내란이라거나 윤 대통령이 ‘내란 수괴’라는 프레임에는 좀 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내란 프레임을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전과 4범이자 공직선거법 1심에서 2년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대표이기 때문이다. 1심에서 유죄(有罪)를 선고받고도 자신은 ‘무죄(無罪) 추정의 원칙’에 의거해 결백하다는 사람이 아직 기소도 되지 않은 상대방을 향해서는 ‘내란범’이라고 단언한다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계엄을 전후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행보도 박근혜 정부 때와 달리 보수의 결집을 부른 요인이다. 계엄 전 민주당은 독자적인 예산 삭감, 노란봉투법이나 양곡법 등 위헌적(違憲的) 법안 등을 발의했으며, 대통령이 거부하자 줄탄핵 등으로 행정부의 기능을 상당 부분 마비시켰다.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에는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를 이유로 한덕수 대행을 탄핵한 데 이어 최상목 대행까지 탄핵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점령군 혹은 볼셰비키의 소비에트 체제를 연상시키는 이런 무리한 행보가 보수는 물론 중도층마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2. ‘親美-反中’ 대 ‘反美-親中’ 전선
‘친미-반중’ 대 ‘반미-친중’ 전선(戰線)이 나타난 것도 박근혜 탄핵 때와 구별되는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좌우 진영 간의 단순한 대결이었지만,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상황의 경우는 ‘친미-반중’과 ‘반미-친중’이라는 지정학적(地政學的)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전선이 형성된 결정적 계기는 1차 탄핵안 문구였다. “가치 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하고,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하며, 일본 중심의 외교 정책을 고집했다”는 문구가 2차 탄핵안에서는 삭제됐지만, 이는 민주당과 좌파 진영이 윤석열 정부를 ‘친미-반중’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뒤집어 말하면, 탄핵 찬성 진영이 스스로를 ‘친중-반미’임을 자인하는 듯한 자충수(自充手)가 됐다.
또한 이 문구는 계엄과 탄핵 사태가 단순한 국내 정치 싸움을 넘어 국제 질서의 재편 속에서 한국을 두고 벌어지는 지정학적 갈등의 일환일 수 있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당선에 1등 공신 역할을 하며 ‘퍼스트 버디(first buddy)’가 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의 언행도 화제가 됐다. 그는 한국의 탄핵 반대 집회에 “Wow”라고 코멘트를 남기고 윤 대통령의 X(옛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친중 성향이 강한 이재명 대표의 집권을 트럼프 정부가 반기지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하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근거가 약한 희망적 사고로 보는 의견이 있지만, 계엄과 탄핵 사태가 단순한 내정(內政) 문제를 넘어 미중(美中) 패권(覇權) 경쟁이 격화되는 시점에 벌어진 지정학적 이슈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3. 미디어 지형의 변화와 이대남의 참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또 다른 이유는 미디어 지형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신문이나 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 달리, 지금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놀라울 만큼 커졌다. 이를 통해 탄핵 반대 진영도 ‘이념의 진지전(陣地戰)’이 가능해졌다.
이런 맥락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MZ 세대 청년 디지털 인플루언서들의 참전(參戰)이다. 청년의 목소리로 보수의 논리를 설파하는 이들은 반중 정서가 강한 청년들로 하여금 탄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령,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그라운드씨’는 이번 사태를 통해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인물 중 하나다. 탄탄한 우파적 이념과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한 그의 방송은 동시 접속자 5만 명을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신남성연대, 트루스포럼을 비롯한 기독교 청년 단체들도 이번 탄핵 사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디지털 의병단’은 기존 정치적 어젠다를 넘어선 새로운 문화적 전쟁의 주역으로 부상(浮上)하고 있다. 그간 이들은 부동산, 재테크, 영화 리뷰 등 다양한 주제의 채널들을 운영하며 국내 정치 현안에 거리를 두었으나 이번 비상계엄 사태, 탄핵 국면과 관련해서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거 정치적 중도 성향을 유지하던 사람들조차 계엄과 탄핵 이슈와 관련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를테면 종교인들은 종교 채널을 운영하며 교계 내 보수 목소리를 전하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재테크 채널을 통해 민주당과 이재명 정권 등장 시 경제적 불안을 강조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대통령 탄핵을 막아야 한다>는 영상을 올려 1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더 이상 김어준과 민주당에 속을 수 없다”는 말로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을 선언하며 다양한 분야와 세대를 아우르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2030 남성들의 참전
이런 ‘디지털 의병단’의 출현은 젊은 세대에 팽배한 젠더(gender) 갈등의 산물이기도 하다. 뉴진스, 소녀시대 등 인기 연예인들이 이대녀 중심의 탄핵 찬성 촛불 집회를 지원하자 극단적 페미니즘과 PC 문화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대남과 우파 진영이 항거에 나선 것이다.
과거 86운동권은 독재 정권에 맞선 반독재 투쟁의 명분을 내세워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투쟁 방식은 왜곡되어 침묵할 권리를 억압하고, 타인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전체주의적 행태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마치 반동(反動)분자 낙인을 찍듯 이견(異見)을 가진 소수(少數)를 향한 집단적 폭력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억압적 문화는 단순히 과거의 운동권적 태도에 머무르지 않고, 온라인 공간으로 확산되어 더욱 심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여초 사이트에서 나타나는 집단행동은 1990년대 아이돌 팬덤 문화와 닮아 있으며, ‘온라인 부족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억압적 문화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다 같은 한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워 자신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 인물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대표적으로 임영웅과 차은우가 표적이 되었는데, 임영웅은 자신은 가수이기에 정치적 발언은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저항’을 했다는 이유로, 차은우는 단지 화보를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여초와 좌파 커뮤니티에서는 “시대를 읽지 못한다”거나 “기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이들 연예인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며, “대한민국 국민 자격이 없다”는 등의 막말로 집단적 왕따와 모욕을 일삼았다.
이러한 행동은 과거 운동권의 ‘반동분자’ 딱지 붙이기와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감정적 보복에 가깝다. 과거 운동권이 정치적 명분을 내세웠다면, 여초 사이트의 집단행동은 “내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혼내겠다”는 식의 개인적 감정 해소에 가깝다. 이러한 문화는 팬덤의 갑질 문화와 결합해 연예인의 침묵할 권리를 침해하며, 임영웅과 차은우 같은 인물을 공적 비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여초 사이트와 페미니즘-다양성 담론에 고무된 이대녀와 아이돌 팬덤이 탄핵 찬성의 전면에 나서자 ‘부정선거’ ‘반중’ ‘반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2030 남성들이 참전하면서 뜻하지 않게 우파 진영의 우군이 된 셈이다.
개념 연예인’의 쇠퇴
이대남의 참전은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다른 차이점을 뜻하지 않게 또 하나 만들었다. 바로 ‘개념 연예인’의 쇠퇴다. 물론,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지난 박근혜 정권 탄핵 당시처럼 개념 연예인을 선점하려는 시도는 빈번했다. 이를테면 국민가수로 불리는 아이유는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 빵 200개, 음료 200잔, 떡 100개, 국밥 300그릇을 선결제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8년 전 “박근혜 나와”를 외쳐 개념 연예인으로 부상했던 정우성과 같은 성과는 얻지 못했다.
미국인 우파 유튜버 ‘천조국 파랭이’는 이를 비꼬며 “아이유를 CIA에 신고했다”며 윤석열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지하는 연예인들을 조롱하는 영상을 게시했다.
해당 영상에서 그는 “이런 깨어 있는 연예인들의 행보를 널리 알리자”며 아이유를 비롯해 가수 이승환, 소녀시대 유리, 뉴진스, 봉준호 감독 등의 윤 대통령 탄핵 지지를 ‘반미 행위’로 규정하고, ‘CIA 신고 리스트’를 공개했다. 물론 실질적 효과보다는 풍자와 조롱, 젊은 세대에 익숙한 ‘디지털 놀이’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가수 이승환이 “나는 반미가 아니다”라고 해명하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오히려 네티즌들의 비웃음을 사며 풍자의 효과를 강화했다. ‘CIA 대첩’으로 불리는 이번 사태는 청년 세대가 탄핵 반대 캠페인을 펼치며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며, 놀이와 정치가 결합하는 독특한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우파 내부에서의 새로운 청년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민의힘과 우파 정치권은 그동안 ‘이준석 포비아’에 빠져 청년 세대의 어젠다를 제대로 제도권 정치에서 의제화하지 못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한 이유도 이준석을 내친 후 새로운 청년 리더를 세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청년 정치의 가능성
이준석의 등장과 대통령과의 끊임없는 충돌은 우파 정치권에서 ‘청년 울렁증’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청년 세대는 특정 인물에 충성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득에 민감하며, 여가부 폐지와 할당제 폐지 같은 실력 기반의 공정한 보상 체계를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에 제도권 정치가 응답했다면, 이준석에 대한 논란을 넘어 청년들과의 접점(接點)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료주의와 보신주의(補身主義)에 젖은 우파 정치권은 이를 위협으로 간주했고, 청년 관련 의제를 외면하는 우(愚)를 범했다.
청년 정치를 트로피 공천과 병풍 역할에 머무르게 한 우파의 접근은 청년 세대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이준석 개인은 배제하더라도 그의 어젠다와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전략적 유연함은 보여줬어야 했다.이러한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는 제도권에서 소화하지 못한 청년 세대를 끌어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제2차 ‘윤석열 팬덤’ 현상은 조국(曺國) 사태와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심판 과정에서 일절 저항을 포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결사항전(決死抗戰)의 의지를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세(反騰勢)를 이어간다면,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탄핵 반대 진영의 구심점(求心點) 역할을 자처할 것이다.
이는 보수우파의 체질적 전환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과거 엘리트-기득권 중심의 ‘식물성 우파’로 불리던 방어적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강경하고 대중적이며 싸울 줄 아는 ‘동물성 우파’로의 변화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팬덤 정치는 우파 진영에서도 중요한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식물성 우파’에서 ‘동물성 우파’로
민주당의 팬덤 정치가 가져온 부작용이 우파 진영에도 이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팬덤을 기반으로 한 대중정치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계엄 사태 초기 우파 진영은 ‘레거시 미디어 대(?) 뉴미디어’ ‘엘리트주의 대 대중주의’ ‘제도권 대 장외’로 갈려 극단적인 분열 양상을 보였으나, 대통령 지지율 반등과 함께 보수 진영도 다시 전열(戰列)을 가다듬고 결집하는 형국이다. 어쩌면 이는 ‘대중주의 우파’가 대두되는 과정의 성장통이자 체제 전환의 초기 단계일 수 있다. 민주당이 과거 친문(친 문재인) 패권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하며 정치적 결사(結社)를 이뤘듯, 우파 진영 역시 이념적·정치적 결속을 위한 산고(産苦)를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국민의힘은 정통 우파에서 성장한 검증된 정치인들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첨병으로 떠오른 MZ 세대 인플루언서 간의 조화로운 팀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코리아 퍼스트’와 ‘신뢰할 수 있는 강한 리더십’이라는 노선 아래 정치적 승리와 민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 갈 길은 멀지만, 보수우파는 이번 사태를 통해 재편과 도약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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