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이재명 앞에서 보수마저 길을 잃을 수 없다

太兄 2024. 12. 17. 18:33

[김대중 칼럼] 이재명 앞에서 보수마저 길을 잃을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이재명 정치
지금은 한가한 분열의 시간 아냐
잘못 인정하고 부끄러워해야
한국 보수는 절체절명 순간마다
나라 지켜낸 역사 가지고 있어
보수 근간은 법치·자유민주주의
이제 보수가 자정 기능 발휘할 때

입력 2024.12.17. 02:09업데이트 2024.12.17. 13:52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을 접견하며 발언하고 있다. /뉴스1

12·3 비상계엄 파동은 이미 좌·우로 두 쪽 난 한국 사회에서 보수를 두 쪽으로 가르고 있다. 좌파가 이 사태를 즐겁게 관망하는 가운데 계엄-탄핵-헌재의 과정을 두고 보수끼리 윤석열 대통령이 옳으니 계엄은 반민주적 폭거라는 등 대립하고 있다. 친윤과 친한은 크게 갈리고 있고 국민의힘도 분열의 위기에 있다. 윤 대통령의 대응이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로 한국의 보수는 양분하고 있는 상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계엄 이후의 상황도 가관이다. 국회에 나와 계엄을 비난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어느 군인, 뒤늦게 태도를 돌변해 내란죄 운운하며 미래 권력의 눈치를 보는 일부 검찰·경찰, 이제 와서 마치 정의의 수호자인 양 찬(贊)표를 공개하는 국힘 의원들, 그리고 통합보다 분열의 아이콘이 돼 버린 한동훈 전 대표–이 모두에게서 기회주의, 보신주의, 그리고 배신의 신맛을 본다. 지난 2년여 보수층은 정치 얘기만 나오면 김건희 여사의 처신, 윤 대통령의 집착, 주변 인물들의 기회주의, 그리고 ‘용산’에 대한 불만으로 화제를 삼았다. 그 사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언급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이 대표의 모든 문제적 언행은 더 이상 보수의 화젯거리도 아니었다. 보수는 이재명보다 윤 대통령과 그 부인을 더 입에 올렸다.

비상계엄의 불가피성을 긍정하는 보수층마저도 윤 대통령이 몇 개월만 기다렸으면 이재명 대표의 항소심 재판 결과도 나왔을 것이고 바라건대 그의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지면 국회의 기능도 호전될 수 있었음에도 비상계엄이라는 극약을 먼저 처방한 것을 개탄하기도 한다.

또 세계의 움직임도 그의 비상계엄 카드는 시의(時宜)를 잃은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새 대통령을 뽑아 변신의 몸부림을 치고 세계가 기존 세력을 대체하는 전환기에 접어든 것 등을 고려한다면 이런 절박하고 긴박한 시간에 자기 살자고 계엄의 카드를 꺼낸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 국민에게는 계엄에 대한 공포랄까, 저항감이라 할까 그런 거부감이 있다는 국민 정서를 무시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이 모든 잡음과 이견과 다툼을 접고 이제 보수가 자정(自淨) 기능을 발휘할 때다. 왜냐하면 앞으로 다가올 이재명의 정치가 너무 불안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가한 분열의 시간이 아니다. 보수는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할 줄 안다. 적어도 민심의 동향 면에서 보수는 부(否)표를 던지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돌아서는 것도 단호해야 한다.

 

만일 윤 대통령이 비난받고 있는 사안들이 이재명 대표 등에게 일어났다면 좌파들은 어떻게 나왔을까? 그들은 이를 덮고 호도하는 데 급급했을 것이다. 형수 욕설 사태 등 지금까지의 예로 보면 가짜 뉴스를 만들어 역(逆)공작하고 애써 감추거나 축소하는 데 열을 올렸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대표 측의 재판 대응 태도를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그런 방식으로 변방의 시장(市長)에서 도지사로, 거기서 여당 대통령 후보로, 국회의원으로, 당대표로, 그리고 이제 다시 대권 제1인자로 등극(?)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라면 스캔들로 가득한 그는 정계 초입에서 벌써 제거되거나 탈락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좌파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끄러워하면 지는 것’이라는 것을 철칙으로 믿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때로 보수·우파들도 좌파를 닮았으면 하는 망상을 한다.

길게 보면 윤석열의 퇴장은 보수·우파의 아픈 교훈이고 거울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삼아야 한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정치, 틀렸으면 멀어도 돌아서 갈 줄 아는 정치가 보수의 정치라고 알고 있다. 한국 보수는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나라를 지켜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보수는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여기서 보수의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보수의 가치를 지킬 의지가 있느냐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재명의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이 나라를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갈지는 그동안의 이재명의 언급과 좌파 정책의 방향을 보면 안다. 민주당이 마구 휘두른 예산의 칼질 내역을 보면 그들이 나라를 어디로 몰고 갈지가 보인다. 나라의 건전성을 지키는 것–보수의 향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