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생명의 언어

太兄 2024. 9. 30. 17:54

생명의 언어  

고대사를 보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항상 첩자를 보내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민심을 교란시켰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카더라 통신", "아님 말고", "일단 퍼뜨리고 보자"는 식으로 거짓 소문과 비방으로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선악과를 먹어 타락한 공동체는 책임회피, 이기심, 시기, 질투, 다툼, 수치감, 불안, 두려움, 불신, 미움, 상처로 가득한 공동체입니다. 
생명의 언어가 아니라 죽음의 언어가 난무하는 곳, 옳고 그름으로 늘 상대방을 정죄하는 곳입니다. 
생명나무 공동체의 특징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들은 많지만 소통하며 극복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생명력이 넘치는 곳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는 “너 안 만났으면 난 어떻게 살았을까?
난 제대로 못 살았을 거야!” 라고 말하다가, 갈등에 빠지면 “어쩌다 너 같은 인간을 만나서 이모양 이 꼴로 사나… 난 너 때문에 제 명대로 못 살고 죽을거야!” 하고 말합니다. 
사랑 할 때는 상대방이 좀 섭섭한 일을 하거나 잘못해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이해하지만 갈등이 심해지면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하고 날카롭게 각을 세웁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 : 4~5)" 
뱀처럼 우리의 언어도 죽음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늘 유혹합니다. 
나는 지금 아내(남편)에게 생명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나요? 
죽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나요? 

말에는 씨가 있습니다. 
말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은 아내를, 남편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70년을 함께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제 백발의 할머니가 된 아내가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이는 뭘 줘도 ‘당신이 해 준 건 정말 맛있어요’ 하고 맛있게 드셨어요. 그리고 나한테 반말을 하지
않았어요” 
이 부부가 70년을 한결같이 행복하게 산 비결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명의 언어로 생명나무를 키운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꿈도 생명나무 공동체의 회복이었습니다. 

성육신의 사건으로 인류가 구원을 얻었기에 우리들의 가정에도 성육신의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선악과 공동체로 변해 버린 우리 가정을 생명나무 공동체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가정의 제사장인 남편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곳마다 생명의 언어로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내가 은혜의 여성으로 꽃피고, 자녀는 주님이 주신 꿈을 키우며 성취해 나가며, 남편은 존경받는 멋진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아름다운 아내와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존중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나무 공동체를 가꾸시길 기도합니다. 

(참고: 김성묵의 "남자, 아버지가 되다" 공감하는 남편, 소통하는 아버지)중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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