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이 <제16話>
불덩이 같은 아침 해가 불끈 솟아오를 때 진이와 이생은 다정한 부부모양 두 손을 꼭 잡고 천왕봉(天王峯)에 올랐다.
곱게 물든 단풍에 천지사방이 불속처럼 뜨겁게 아름답다.
진이는 천왕봉에 오르자 태양을 향해 삼배하며 역시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어머니가 진이를 황진사에게 맡기고 송도를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풍문을 들었을 뿐 그 후 종적을 몰라 늘 염두에 두고 극락왕생을 기도하였다.
엄수(嚴守) 거문고 스승한테 지리산에서 거문고를 타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어언 십 수 년이 지났다.
예성강에 장님 시신이 떠올랐다는 소식에 비만 오면 거문고를 타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풍문 등으로 미루어 보아 어머니 현학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확신이 선지 오래다.
아침 해가 불끈 솟은 태양을 보고 어머니를 위해 극락왕생을 빌은 진이의 전신에 맥이 풀렸다.
상무주암에서 방사까지 즐기며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고 올라왔으나 체력이 바닥이 났다.
어둠은 깊었으나 만공산에 명월이 가득하다.
춥고 배도 고프다.
상무주암에서 가지고 온 주먹밥으로 허기를 메웠으나 몸이 떨리고 눈이 들어갔다.
“내려갑시다. 더 있을 수가 없네...”
진이는 이생에게 업히다시피 하여 저녁 늦게 상무주암에 도착하였다.
기진맥진 상태다.
진이는 몸이 아무리 무거워도 거문고는 갖고 다닌다.
정신이 혼미하고 육신이 녹초가 되었어도 거문고를 타면 영혼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내일 금강산을 향해 떠날 생각인데 지금 몸 상태론 불가능한 상태다.
이생이 진이를 부축하여 말에 몸을 맡긴다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녁을 먹고나니 몸은 더욱 파김치가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진이는 거문고에 세상 시름을 떠 넘겼다.
주지스님에게 맡기었던 거문고를 찾아 타기 시작하였다.
중국 죽림칠현 완적(阮籍)의 《영회시》(詠懷詩)다.
‘깊은 밤 잠 못 이루어/
일어나 앉아 거문고를 타려니/
엷은 휘장으로 밝은 달빛 비치고/
맑은 바람 옷깃에 스며드는데/
외로운 큰 기러기 들판에서 애처롭게 울고/
둥지를 찾아드는 새 북쪽에서 우짖는다./
배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근심스런 심사에 홀로 마음만 상할 뿐이네‘
그랬다.
이생이 옆에서 손발이 되어 보살피나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사종과 6년간 계약결혼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조선팔도 유람 길에 여자 혼자는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다.
서로 필요한 관계인 남자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생은 어느새 표정만 봐도 지금 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완적의《영회시》가 진이의 거문고 음률을 타고 상무주암의 밤공기를 휘감았다.
“손님의 거문고 솜씨가 천하의 일품이네요!”
족히 쉰은 넘어 보이는 주지스님이 혀를 차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아씨가 누구인지 아시고 하는 말씀이세요?”
옆에 있던 이생이 노복(奴僕·사내종)의 모습으로 어깨를 으슥해 보이며 주지스님의 말에 끼어들었다.
“이 아씨가 누구신가요?”
“예 우리 아씨는 그 유명한 명월(明月) 아씨예요. 그런데 지금은 해어화(解語花·말하는 꽃·기생)가 아니에요...”
주지스님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쩐지 거문고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거문고를 타면 중국 장강(長江)에서 흑두루미가 날아온다는 현학금의 따님이신가요?”
라고 말하며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어머님에 비하면 이 진이는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조용히 수행하시는 주지스님께 속세의 바람을 불어 넣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동창이 밝는 대로 떠나겠습니다.”
“아닙니다. 소승도 출가하기 전엔 송도의 한량이었지요! 그때 현학금의 거문고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진이는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 주지스님이 생사를 모르는 어머니 얘기를 하여 지금 당장 떠나고 싶으나 산사(山寺)의 밤이다.
진이는
‘잘 쉬고 갑니다. 송도에 오시면 명월관을 한번 찾아오세요.’
라는 쪽지를 남기고 여명이 밝자 주지스님에게 인사는 않고 떠났다.
‘송도에서 놀았다’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서 하루 이틀 더 쉬었다 떠나려 했었으나 서둘러 금강산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말 등에 오른 진이는 이인로의 《매화》(梅花)를 떠올렸다.
‘고야산(姑射山·신선이 사는 곳) 신선의 얼음 같은 살결 눈으로 옷 지어 입고/
향그린 입술에 새벽이슬 구슬을 마시네./
속된 꽃술들이 봄에 붉은 빛으로 물듦을 못마땅하게 여겨/
요대(瑤臺·신선이 사는 달)를 향해 학을 타고 가려하네.’
진이의 마음이 평정을 잃을 때는 늘 시를 떠올려 거문고 선율에 의지했었으나 말 등 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진이의 독특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였다.
진이의 노래는 절창 이사종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금강산을 향하는 말 위가 아니라면 거문고를 타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꽉 막힌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이생은 말을 천천히 몰았다.
“형님, 제 허리를 꼭 잡으세요!
길이 험해 말 등이 요동이 심합니다...”
진이는 느슨하게 잡았던 이생의 허리에 힘을 넣었다.
늦가을의 새벽바람은 제법 쌀쌀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속까지 텅 비어 오한이 솔솔 몰려오고 있다.
“형님 추우시죠? 조금만 더 내려가면 주막이 있습니다. 올라올 때 봐 두었지요!”
이따금씩 몸서리치는 진이의 몸 흔들림을 이생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명이 밝고 아침 해가 새벽안개를 걷었을 때 주막에 도착하였다.
산에서 먼저 내려온 사람들은 벌써 국밥을 먹고 주막을 떠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주모 여기 고기도 넉넉히 넣어 국밥 두 그릇과 모주 두 잔도 주시게...”
이생이 진이를 안아 말에서 내려놓고 성큼 주막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켰다.
돈이야 진이가 내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행동을 해주는 이생이 고맙고 같이 오길 참 잘 했다고 생각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또 그런 생각을 하였다.
밤엔 때때로 잠자리 상대가 돼주고 낮엔 충실한 노복 행세를 해주니 입안의 혀가 따로 없음이다.
국밥 한 그릇에 모주 한 잔은 산에서 내려온 그들에겐 더 이상의 성찬이 없다.
“너는 모주 한 잔 더 하려무나!”
“아닙니다. 한 잔으로 족합니다.”
남장한 진이의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여자 아냐? 하는 표정들이다.
진이와 이생은 따가운 시선을 등 뒤로 하고 주막을 총총히 나와 말 등에 올랐다.
* 황진이 <제17話>
지리산에서 금강산으로 오는 사이에 겨울이 훌쩍 지났다.
이사종과 삼년이나 한양에 살았으나 자유의 몸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엔 가보지 못해 이번엔 관심 있는 곳을 둘러보려 하는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은 역시 장악원(掌樂院:현 국립국악원)이다.
소세양과 계약결혼을 했을 때 자기 소실로 들어와 장악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더 하여 이론은 더 배워 후세에 남기면 어떠냐고 제의했을 때가 떠올라서다.
이제 진이는 기생이 아니다.
떳떳한 자유인이다.
하지만 한량들은 진이가 여전히 기생으로 알고 돈으로 사려한다.
진이는 그것이 싫고 남자의 여자가 아닌 여자의 남자들은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들을 뛰어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조선은 사대부(士大夫)의 나라다.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조선에선 엄격한 신분제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이 뚜렷하다.
사(士) 다음에 농(農)이 있음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사대부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면 대부분 고향과 시골로 내려간다.
다음 과거에 나올 생각에서다.
장사 등 직업을 가지면 아예 과거 볼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내로 태어났으면 등과(登科)하여 어사화(御史花)를 꽂고 금의환향하여 사대부의 위상을 보여주고 싶을 게다.
그런 사대부의 나라에서 진이는 여자의 남자를 찾았다.
소세양·이사종·지족선사·이생 등을 품었으나 화담 서경덕은 끝가지 노력했으나 스승으로 삼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한양의 풍류객들은 새로운 것을 찾았다.
한양기생들에게선 더 이상 새로운 사랑과 풍류를 찾을 수 없어 색향 송도의 명월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진이는 화대를 받고 몸을 내주는 것이 싫었다.
자유를 찾아 아버지와 결별하고 기생이 되었으나 사내들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었다.
불을 본 부나비 같이 달려드는 사내들을 피하여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를 자유의 몸으로 돌려 놓으려 했던 것이다.
기생이 아름답고 학문이 아무리 높아도 기생은 기생이다.
시기(詩妓)·악기(樂妓)·의기(義妓)·무기(舞妓) 등이 그 이름이다.
진이는 그것이 싫었다.
기명(妓名)인 명월(明月)이 있으나 그녀는 진이(眞伊)를 고집하였다.
명월이라 부르는 손님은 받지 않았다.
진이를 상징하는 명월관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명월관은 있어도 명월은 없고 진이만 남았다.
묘향산의 보현사를 시작으로 두류산의 골짜기 골짜기를 거쳐 한양을 들러 고향 송도에 왔다.
이제 여자의 남자를 데리고 금강산 유람을 떠나려 한다.
1만2천봉 골짜기 사찰을 찾아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 것이다.
진이는 첫 걸음으로 유점사(楡岾寺)를 찾았다.
주지스님을 찾아 정성껏 시주를 하고 어머니 현학금에 대한 기도부터 올렸다.
두류산의 천왕봉까지 올라갔다 온 진이는 전신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금강산은 두류산에 비해 정감이 가는 동네 산이다.
대웅전 뒤에 자그마한 방을 배려 받아 그들은 짐을 풀었다.
짐이래야 거문고와 타고 온 말이 전부다.
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곯아 떨어졌다.
오뉴월 엿가락처럼 녹초 된 상태에도 이생의 손은 진이의 사타구니를 찾았다.
주지스님은 진이도 사내로 보고 한방에 넣었다.
송도에서 진이를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몰골이 말이 아니라 주지스님은 사내로 착각했을 것이다.
이생의 손이 사타구니로 오면서 진이는 어느새 그곳에 뜬금없이 달콤한 꿀이 나오면서 꿈속으로 빠져 들었다.
비몽사몽 상태가 되었다.
이생의 손이 그곳에서 재미를 보는 사이에 진이는 어릴 때 송도로 돌아갔다.
버드나무 부드러운 바람을 훑고 보슬비 꽃다운 들에 날리는 동교(東郊)와 비단처럼 밭이랑 펼쳐있고 맛 좋은 막걸리에 취한 농부들의 흥겨운 노랫소리의 서교(西郊)에서 깔깔대며 어머니와 뛰어놀았던 시절로 빠져들었다.
진이는 팔도유람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어머니의 극락왕생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사대부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갔던 일들이 떠올랐다.
당시엔 내색을 할 수 없었으나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이제 세월의 무게에 눌린 상열지사(相悅之詞)의 애틋했었던 순간을 문득문득 떠올렸다.
‘들 절간에 송화 꽃은 떨어지고/
비갠 냇가엔 버들 솜이 날리네/
타고 갈 백마에겐 재갈을 물려놓고/
떠나려 해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네/
모이면 헤어짐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진데/
인간의 공명은 꿈이 아니고 무엇이랴/
청산은 남몰래 꾸짖으며 나무라기를/
누가 소광(疏廣)과 소수(疏水) 두 사람을 아꼈으랴?’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청교송객》(靑郊送客)이다.
그랬다.
남녀가 만났다 헤어짐에 어찌 석남(石男)·(石女)가 될 수 있을까?
진이가 제아무리 여중호걸(女中豪傑)이라 하여도 가녀린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어느새 진이도 이십 고개를 넘어 삼십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호의호식하며 허리 밑으로 사대부와 한량들을 줄을 세웠던 나날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사랑을 하면 정이 들고 뜨거운 살을 섞으면 욕심이 생겨 헤어지기 싫은 것이 남녀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진이를 거쳐 간 사내들은 수도 셀 수 없을 만치 많으나 그중에서도 소세양과 이사종이 특히 이따금씩 몸서리쳐지도록 간절하다.
한양이 남성적 도시라면 송도는 여성적 도시다.
진이는 송도에서 소세양과 삼십여 일을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사종과는 육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송도와 한양을 오가며 사랑의 싹을 키워 꽃피웠다.
지금 삼남(三南·충청·전라·경상) 지방을 휘돌아 다시 송도에 오니 흘러간 애틋한 세월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다.
밤새 이생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나 몸은 오히려 가뿐해졌다.
처음엔 못이기는 척하다 차츰 몸이 달아오르자 여러 사내를 통하여 터득한 사랑의 기술이 저절로 나왔다.
이생의 물건이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엉덩이가 저절로 따라 움직여 호흡을 맞춰 주었다.
이생은 의아해 하면서도 모르는척하며 처음으로 진이에게서 흡족한 욕정을 채웠다.
진이는 동창이 밝자 아침도 거른 채 산행에 나섰다.
고향에 다시 돌아오니 힘이 다시 솟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