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이 <제11話>
한양은 송도와 달랐다.
송도는 색향(色香)으로만 떠들썩하게 알려졌지 실속은 없어보였다.
진이는 번개처럼 시상(詩想)이 떠올랐다.
‘옛절은 쓸쓸히 어구 곁에 있고/
해질 무렵 교목에 사람들 시름겹도다./
연기와 놀은 쓸쓸히 스님의 꿈결을 휘감고/
세월만 첩첩이 깨어진 탑머리에 어렸다./
누런 봉황새 날아간 뒤 참새 날아들고/
철죽 꽃 핀 곳에서 소와 양을 치는데/
송도의 번화했던 날을 추억하니/
어찌 지금처럼 봄이 가을 같을 줄 생각이나 했으랴...’
《만월대를 생각하며》다.
한양은 생기가 있다.
고려를 역사의 뒷길로 밀어 붙이고 새 역사를 써가는 조선의 중추다.
경복궁 앞 육조(六曹)거리는 붐볐다.
진이는 옥인동 이사종 집으로 들어온 이후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육조거리를 살폈다.
그때마다 진이는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1345~1398)의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를 떠올렸다.(* 다음회 12화 참조하세요~손)
그리고 진이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877~943)의 29명의 부인도 동시에 상기시켰다.
경복궁의 위용과 육조거리의 질서 정연함과 활기찬 모습에 고려 초기 개성 모습이 동시에 떠올라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나 혼란을 느꼈다.
진이는 조선에 태어났어도 고려 여인임을 자부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한양에 와 경복궁과 육조의 거리를 걸어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고려의 여인으로 자부함은 어느 남성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려는 태도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이사종의 소실(小室)로 한양에 와 있지 않은가!
이율배반의 자신의 행동에 전율을 느끼며 서둘러 옥인동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가을 해는 짧았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하고 육조거리를 거쳐 청계천까지 둘러보고 집에 왔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딜 그렇게 매일 다니오?”
이사종의 볼멘소리다.
“육조거리와 청계천과 피맛골을 둘러보느라 늦었네요! 미안해요. 서둘러 저녁준비를 하겠어요...”
진이의 옥인동 계약결혼 3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 동안 진이는 새로운 세상을 많이 배웠다.
말로만 들었던 소실생활을 자청하여 들어왔다.
짐작은 했었으나 조강지처가 얼마나 당당한 자리이고 소실의 위치가 얼마나 굴욕적 자리인가를 몸소 생활해 보고 있는 것이다.
소실로 들어오란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는데 지금 진이가 이사종의 소실이 되었다는 소문이 한양에 퍼지면 세상 사람들이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수군댈 것이 뻔하다.
세상이치로만 보면 그것이 맞다.
소세양을 비롯한 송도의 거부와 신분은 낮으나 고대광실을 가진 의원이 소실자리를 제의 했을 때에는 콧방귀를 뀌었는데 무관직 정삼품에 지나지 않는 선전관(宣傳官)의 소실자리에 들어간 천하의 진이를 비웃으며 빈정댈 것이 뻔하다.
한양 아낙네들의 수군대는 소리에 귀가 따갑다.
“남녀관계란 알 수 없어. 천하의 송도 진이가 한양에까지 와서 이사종의 첩이 될 때에는 뭣이 있겠지? 아마 속궁합이 기가 막히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고관대작의 소실자리도 팽개치고 고작 선전관 소실로 들어갔을 때엔 무엇이 있어도 있어... 이사종이 천하제일의 소리꾼에 허우대야 어느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지! 아마 진이가 그 허우대에 빠졌을 거야...”
빨래터의 아낙들의 얘기가 딱 맞았다.
진이는 이사종의 사회적 지위나 재물에 팔려온 것이 아니라 옥골선풍에 달콤한 밤 자리도 빼 놓을 수도 없다.
화대를 받고 몸을 내줄 때에는 돈 값을 해주기 위해 인형처럼 움직여 주며 코맹맹이 소리도 적당히 내주어 사내의 기쁨을 안기는 기생이었으나 이사종과는 몸과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아닌가!
그런 관계를 빨래터의 아낙들이 알 리가 없다.
이사종과 진이의 관계는 하늘도 땅도 모르고 오직 당사자인 둘만이 알고 있는 잠자리 비밀이다.
진이의 계약결혼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소세양과 30일의 계약결혼이 그렇게 맺어졌다 헤어졌으며 이사종과의 관계도 역시 약속된 6년 후엔 또한 그렇게 미련 없이 진이는 송도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진이는 삼봉의 《한양찬가》인 《진신도팔경시》에 관심이 끌렸다.
송도엔 《송도팔경》이 있는데 그에 비교가 되어서다.
특히 진이는 《도성궁원》(都城宮苑)에 마음이 끌렸다. (* 다음회 12화 참조하세요~손)
‘성은 높아 천 길의 철옹이고/
구름은 봉래오색을 둘렀구나./
해마다 정원에는 앵화(鶯花:꾀꼬리 날고 꽃이 만발함) 가득하고/
세세로 도성사람 놀며 즐기네.’
송도와는 너무도 다른 풍광이다.
그렇게 진이의 한양생활에서 첩살이는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놀았다.
낮에는 부엌일에서 아이 가정교사 역할에 밤엔 이사종과 속궁합을 맞춰가며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육신은 고달프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달콤한 잠자리의 행복에 낮의 고단함이 묻혔다.
송도에서 진이와 한양에서의 진이는 공주와 무수리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진이는 행복하다.
그토록 오매불망했던 이사종을 곁에서 볼 수 있고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마음껏 품을 수 있다는 데에 욕망의 나래를 접었다.
“후회하지 않소?”
이사종은 뜨겁게 살을 섞고 나면 꼭 묻는다.
“왜 서방님은 후회 하세요?”
진이의 말이 떨어지면 그들은 다시 이합(二合)에 들어갔다.
일합(一合)으로 육체의 허기를 채우고 이합은 더 길고 느긋하게 밀고 당기며 사랑의 진수를 음미하려는 것이다.
진이는 이때마다 옥섬이모가 말해 준 잠자리 기술을 행동으로 옮겼다.
“참으로 서방님은 참 잘생기셨어요! 진이의 눈엔 천하의 남정네 중 가장 헌헌장부예요.”
진이의 손이 이사종의 뿌리를 움켜쥐었다.
이합까지 즐긴 뿌리는 오뉴월 엿가락처럼 쳐졌다.
진이의 손이 닿자 번개를 맞은 듯 놀라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진이는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리어 이사종의 등을 끌어안았다.
이사종이 입을 커다랗게 벌려 백합처럼 흰 진이의 탱탱한 젖가슴을 잘 익은 사과를 깨물 듯 깊게 물었다.
진이의 몸도 해일처럼 일어나며 출렁이기 시작하였다.
이사종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진이의 방을 찾았다.
조강지처 정씨의 허가 받은 합방이다.
몇 시간의 양해지 밤새 허가는 아니다.
하지만 계약결혼 3년이 부득부득 다가오자 이사종은 조강지처의 눈치는 아랑곳 않고 진이 방에 들어오면 동창이 밝아올 때까지 송도 명월관에서 알몸뚱이로 사랑을 할 때를 연상케 하는 방사(房事)를 즐겼다.
* 황진이 <제12話>
이별의 날을 세어 나가는 이사종의 마음은 촌각이 아까웠다.
그는 아침저녁 잠시 진이를 볼때도 표정을 유심히 살폈으며 열흘에 한번은 나들이를 꼭 나섰다.
송도도 아름답지만 한양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육조거리와 사대문 안팎의 풍광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봄에는 성 밖 북둔(성북동)으로 함께 말을 타고 복사꽃 장관 속을 거닐었고 흥인문 밖 낙산아래 휘늘어진 봄버들 길도 구경시켜주었다.
“어떻소? 한양 풍광 구경이 마음에 드오?”
진이는 묵묵부답이다.
진이의 몸은 한양에 와 있어도 마음은 송도에 가 있었다.
한양이 역동적이면서 마음에 조금씩 정이 붙어 가면 갈수록 고향 송도가 그리워지고 종적을 알 수 없는 어머니가 몸서리 쳐지도록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 착 달라붙는 이사종과의 하루하루도 싫지 않았다.
기생의 길로 들어선 이후 손에 물 한 방울 걸레질 한번 안 해본 자신이 지금은 부엌에도 들어가고 걸레질도 하는 보통의 아낙이 되었다.
이사종의 덕분이다.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진이는 이제야 알았다.
한참 침묵이 흐르는 사이에 진이와 이사종을 태운 말은 한강 노들 녘에 다다랐다.
“이 진이는 한양에 와서 늘 삼봉의 《한양찬가》중 《서강조박》(西江漕泊)에 관심이 높아요. 《한양찬가》는 이제현의 《송도팔경》을 연상케 하는 시(詩)지요! 그 중에서도 《제방기포》(諸坊碁布)에 매료 됐어요...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네요. 진이가 점심을 간단하게 준비했어요!”
진이는 간단히 먹을 것과 송도의 명주 태상주를 꺼냈다.
“허허허, 언제 점심 준비까지 했소이까? 나는 이곳을 잠시 둘러보고 종로 피맛골에 가서 요기를 하려 했는데...”
이사종은 그윽한 표정으로 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태상주 한병을 비운 그들은 흐드러지게 늘어진 버들이 바람에 춤을 추는 분위기에 맞추어 노래를 주고받는다.
이사종은 《송도팔경》에서 《백악청운》(白嶽晴雲)을 불렀고 진이는 《한양찬가》 중에 《열서성공》(列署星拱)을 절창하였다.
피맛골에 들려 옥인동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조강지처 정씨가 도끼눈을 뜨고 불호령을 떨어뜨렸으나 이제 계약결혼 3년이 얼마 안 남아 눈을 감아 주는 분위기다.
오히려 정씨가 아쉬워하는 태도다.
진이가 시어머니에겐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었고 아들에겐 선생님이 되어주어 고마운 존재가 되었었다.
어느새 그들은 날카롭게 물어뜯는 적에서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로 발전하였다.
진이의 헌신적 노력이 만들어 낸 가족적 분위기다.
“형님, 제가 송도에 가더라도 형님의 따뜻한 사랑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진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밥상을 정씨한테서 받고는 두 눈에서 눈물을 와락 쏟아냈다.
더욱이 이사종과 겸상차림이었다.
계약결혼 만기는 이제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떠날 때까지 잠자리를 매일 허락한다는 조강지처 정씨 말에 이사종은 밥을 먹다말고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진이 내 그동안 독하게 대한 것 양해해 주시게! 자네도 내 처지가 돼보면 여자마음 알걸세...”
정씨는 정말 아쉽고 미안했다는 표정이다.
무거운 침묵이 잠시 흐른 뒤 정씨는 주섬주섬 밥상을 정리해 들고 나갔다.
3년 사이에 조강지처와 소실은 언니동생이 되었다.
떠날날이 다가오자 진이는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잠자리도 매일 밤 양해를 받았으나 되도록 피했다.
마음은 보이지 않으나 몸은 행동이 보여 떠날 때일수록 아름답게 정리하고 싶어서다.
이사종은 매일 밤 운우지락을 하려 했으나 진이는 매정하게 거절하였다.
한양의 마지막 밤에 최후의 몸을 활짝 열어 주려고 마음을 다 잡았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달이 휘영청 밝은 보름밤이다.
그날만은 진이가 아닌 명월(明月)이 되어 철저한 이사종의 여자가 되었다.
송도로 갈 날짜가 내일이다.
진이는 오랜만에 거문고를 꺼냈다.
그동안 첩살이를 하면서 거문고를 탈 만큼 여유 있는 생활이 아니었다.
아무리 너그러운 조강지처라도 첩이 예뻐 보일 여인은 이 세상엔 없다.
씨앗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하지 않았던가!
진이는 오랜만에 거문고 꺼내 타면서 《한양찬가》 중 《북교목마》(北郊牧馬)를 불렀다.
‘숫돌같이 평평한 북녘들 바라보니/
봄 오자 풀 무성하고 물맛도 좋아/
만마가 구름처럼 모여 뛰놀고/
목자는 마음대로/
여기저기 서성이네.’
진이의 노래에 이사종이 곧바로 이었다.
《송도팔경》 중 《청교송객》(靑郊送客)이다.
‘들 절간에 송화꽃은 떨어지고/
비 갠 냇가엔 버들 솜이 날리네./
타고 갈 백마에겐 재갈을 물려놓고 /
떠나려해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네./
모이면 헤어짐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진데/
인간의 공명은 꿈이 아니고 무엇이랴/
청산은 남몰래 꾸짖으며 나무라기를/
누가 소광(疏廣)과 소수(疏受) 두 사람을 아꼈으랴!’
노래를 마친 이사종은 진이를 덥석 안았다.
진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거문고를 팽개치듯 옆으로 제쳐놓고 이사종의 품에 안겼다.
이 밤이 밝으면 진이는 이사종의 여자가 아니다.
사내는 성급히 달려들었다.
여자도 그런 사내가 싫지 않았다.
오늘밤은 영원히 밝지 않기를 그들은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한 몸이 되었다.
이사종이 진이의 두 다리를 벌리고 밀고 들어왔다.
뜨거운 신음소리를 내는 진이의 두 눈엔 알 수 없는 눈물이 쉼없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파도에 배가 흔들리듯 이사종은 진이의 몸에서 신명나게 연자방아를 찧는다.
뜨거운 살이 교합되자 이사종이 몸을 틀어 진이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으려 한다.
“아니 됩니다. 더렵혀진 몸입니다...”
진이는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아니요. 내가 당신을 깨끗이 씻어 주리다. 이 시간 이후 당신은 옥황상제께서 이승으로 잠시 휴가를 보낸 선인(仙人)이 되는 겁니다...”
이사종은 돌아누운 진이를 다시 돌려서 정성껏 청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화냥년(환향년)들이 세검정에서 몸을 씻듯 깨끗이 정화시켰다.
그리고 이사종은 금방 코를 골며 잠들었다.
알몸이다.
반듯한 이마와 깊이 그늘져 감긴 눈과 오뚝한 콧날에 꼭 다문 입과 턱... 진이는 밤이 새도록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이사종의 모습을 가슴속에 담았다.
먼동이 트면 말을 타고 송도로 갈 준비가 되었다.
이사종도 이제 자신의 삶에서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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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로 올립니다.
편집하느라 힘들었네요.^^ ~ 손
* 삼봉 정도전의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
‘새 수도(한양)의 여덟 곳의 빼어난 경치를 읊은 시를 드리다’라는 뜻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면서,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인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의 문집 『삼봉집(三峰集)』 제1권에 실린 6언 4구, 8수로 된 연시의 한시다.
8수의 시를 내용별로 요약하면, 한양의 지세, 성곽과 궁궐, 문물제도의 완비, 시가지의 모습, 군대의 위용, 풍부한 물자, 번화한 한양, 평화로운 정경 등을 차례대로 노래하여, 신도읍지 한양이 수도로써의 역할과 기능을 다 하고 있어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임을 강조하고 있다. 주 내용은 신도읍지 한양의 송축이다.
이는 한성팔경 혹은 서울팔경의 찬가라 해도 무방하겠다. 이 시에 등장하는 당시의 서울팔경은 이렇다.
첫째는 기전산하(畿甸山河).
서울이 위치한 지역의 산하(山河)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沃饒畿甸千里(옥요기전천리)
表裏山河百二(표리산하백이)
德敎得兼形勢(덕교득겸형세)
歷年可卜千紀(역년가복천기)
기름지고 풍요로운 천리의 경기(京畿)
안팎은 산하가 험준하여 요새지로구나.
도덕(道德)과 교화(敎化)를 겸한 형세이니
왕업의 연대는 천 년을 점칠 수 있으리로다.
둘째는 도성궁원(都城宮苑).
새롭게 지은 경복궁을 비롯한 도성의 궁전과 정원이 웅장하고 아름답다는 말이다.
城高鐵甕千尋(성고철옹천심)
雲繞蓬萊五色(운요봉래오색)
年年上苑鶯花(연년상원앵화)
歲歲都人遊樂(세세도인유락)
성은 높아 철옹성이 천 길이고
구름에 싸인 높은 궁궐은 오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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