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5회황진이 <제9,10話>

太兄 2023. 4. 12. 22:42

* 황진이 <제9話>

진이가 마련한 집은 그림 같은 풍광이다.
자삼동 동쪽 선죽동 선죽교 이웃에 자리 잡았다.
행랑방이 두 개씩 붙은 솟을대문과 사랑채로 드나드는 샛문을 따로 갖추고 사랑채와 안채와 별채 사이에 담과 중문을 두었으며 사랑채 뒤쪽으론 대숲을 경계로 사당이 모셔졌다.
지체 높은 사대부 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진이는 이곳에서 손님을 맞는다.


이사종(李士宗)과 계약결혼을 하여 여자노릇을 제대로 해보려는 속내다.
마음에 쏙 드는 사내이니 영혼까지 바쳐 사랑을 불태우려는 것이다.
화대를 받고 몸을 내줄 때는 돈값을 해주어야 하니 억지로 웃고 상대의 성정에 들도록 몸도 움직여 주어야 하지만 내 남자라고 생각한 상대엔 몸과 마음이 기쁨에 넘쳐 영혼까지 콧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다.

이사종과는 관아의 기생시절 풋사랑으로 예비꽃잠(첫날밤)이 있었다.
그때 진이는 이미 이사종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진이가 이사종에게 넋을 잃은 것은 헌헌장부이기도 하지만 소리에 반했기 때문이다.

이사종은 팔도에서 명실 공히 소리를 제일 잘하는 사내다.
몇 십 명이 그와 대결을 청하여도 당당히 응해주었으며 하루 종일도 쉬지 않고 소리를 할 수 있는 풍부한 레퍼토리도 갖고 있었다.

그 소리의 매력에 진이의 영혼이 빨려들었다.
그래서 관기시절 잠시 풋사랑을 나누었으나 못 다한 사랑을 불태우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풋사랑을 나누고 헤어질 때 사내는 책임 있는 몸으로 진이는 자유인이 되어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지금 진이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이사종은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진이는 자유인이 되었다.
계약결혼은 진이가 먼저 제의하였다.
이사종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즉시 승낙을 했을 것이다.

사실 이사종은 계획적으로 진이에게 접근하였다.
시·서·화 삼절(三絶)에 가무까지 능통한 진이에게 접근하여 사랑은 물론 기예(技藝)대결도 해보고 싶었던 욕망이 꿈틀댔던 것이다.
그런데 진이가 이사종이 천수원(天壽院)에서 유혹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마침 이곳을 지나던 그녀와 인연이 되어 풋사랑을 나눈 후 극적으로 5년 만에 해후하여 일부종사의 사랑을 하는 계약결혼에 들어갔다.

“내가 당신을 서방으로 우리 집에서 3년간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3년은 서방님 집에 가서 살도록 하렵니다...”

진이의 표정은 절대자에게 맹세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단호하면서도 어미 앞에서는 어리광스럽게 순진한 눈망울을 보이는 젖먹이 같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묘한 여인의 얼굴이다.

방금 하늘에서 하강한 선인(仙人)의 모습 그대로였다.
화촉동방은 명월관에서 가장 뒤쪽인 선죽교가 빤히 보이는 별채에 차렸다.
이 방을 화촉동방으로 잡으며 아마 정몽주(鄭夢周:1331~1392)의 ≪단심가≫(丹心歌)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이 시조는 이방원(李芳遠:1367~1422 후에 태종)이 ≪하여가≫(何如歌)를 부르며 정몽주를 회유했으나 ≪단심가≫로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고려의 충신의 길을 걸었다.
정몽주는 그 후 선죽교에서 타살 당하였다.

진이는 그 선죽교를 바라보며 이사종에게 정조(貞操)를 지키리라 마음먹었을 것이다.
이사종은 진이와 풋사랑을 나눈 후 헤어져 한양으로 가 무과에 응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3년간 전하의 침소 경호에 공로를 인정받아 외직인 풍덕군 군수로 부임하였다.

후원이 내려다보이는 별채엔 남녀의 뜨거운 호흡이 끊이지 않는다.
후원엔 봄꽃들이 만발하였다.
산철죽·모란·연산홍·자목련, 그리고 나무로는 매화·동백·복사꽃·살구꽃 등이 흐드러지게 되었다.
진이는 특히 연산홍과 매화꽃을 사랑하였다.
지금 진이는 이사종과 뜨거운 살을 섞으면서도 창문너머 후원의 꽃들을 연상하고 있다.

이사종의 뜨거운 호흡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진이의 두 팔이 이사종의 등을 끌어안고 그 가파른 흥분을 동시에 타고 올라갔다.

“너무 보고 싶었소! 내 영혼은 항상 당신 곁에 있었소!”

진이는 이사종의 입술과 뺨에 두 눈과 입술을 맞추었다.
이사종은 급히 진이를 눕히고 속바지를 벗겼다.
진이는 스스로 저고리 고름과 가슴 띠를 풀었다.

봄날의 환한 햇살 속에서 뼈를 녹이는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은 알몸인 채 까슬까슬한 홑이불을 감고 아랫도리가 얼얼한 채 두 손을 꼭 잡고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내가 왜 풍덕군수가 된지 알겠소?”

이사종이 진이의 불두덩에 손을 얹으며 말하였다.

“글쎄요! 사내대장부 속내를 어찌 계집이 짐작하겠어요? 더욱이 한양에 계신 서방님의 속내를 머나먼 송도의 진이가 어찌 상상이나 하겠어요!”

진이의 반응은 의외로 신통치 않았다.

“나는 한양에 몸이 있으나 한시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소이다. 한양에 올라가 나는 장가를 들어 아들이 세 살이나 되었소...”

"그만하세요. 진이는 이사종 개인을 원할 뿐 그 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6년 동안은 저만 사랑해 주세요. 3년은 저의 집에서 살고 3년은 한양 서방님 집에서 살고 저는 다시 송도로 내려옵니다...“

이사종이 풍덕 관아로 들어가잔 말을 사전에 막기 위해 6년 후의 계획까지 말하여 버렸다.

사내들은 진이와 뜨거운 살을 섞고 난 후엔 예외 없이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한다.
이사종도 풍덕 관아로 들어오란 말을 할 것이 명약관화해서다.

“저는 관아에서 통제하는 관기가 아니에요! 저는 서방님이 저를 다시 찾아오리라 믿고 자유인이 되었어요. 기적에서 나온 지 벌써 3년이 지났어요...”

진이가 아사종의 엉덩이를 다시 끌어 당겼다.

진이가 영업은 하지 않고 이사종에 빠져있자 옥섬이모가 몸이 달았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놔야 자신과 같은 꼴이 되지 않는데 사내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걱정이 태산이다.
옥섬은 퇴기로 청교방거리 뒷방에서 장죽에 담배를 피우며 죽을 날만 기다리다 현학금과의 의동생 신분으로 진이를 만나 생기를 되찾아 살만한데 이 시간이 짧아질까 노심초사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이의 생각은 다르다.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 예고 가는고’

그랬다.
진이도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유인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려한다.

외화내빈의 몸을 파는 기생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진이는 한양으로 가기 전에 송도팔경을 보려한다.
등하불명이라 했듯이 진이는 송도에 살면서 송도팔경 중 단 한곳도 보지 못하여 소리꾼 이사종을 데리고 구경에 나서는 것이다.

태상주를 마시며 천하의 절창 이사종의 노래를 들으며 송도 절경을 구경하면서 진이는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적선(謫仙:인간 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 되려는 욕망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딸을 돌보듯 자신을 보살피는 옥섬이모의 걱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 황진이 <제10話>

송도팔경 구경 채비에 부산하다.
한양으로 올라가기 전에 팔경을 모두 보지는 못해도 몇몇 곳은 보고 가려는 속내다.
진이는 신이 났는데 옥섬은 시무룩하다.
며칠 전부터는 식사도 거를 때도 있다.
진이가 송도팔경을 구경하고 한양으로 올라가면 옥섬은 다시 퇴기신세로 돌아갈 우려 때문이다.


옥섬은 퇴기생활이 무섭다.
진이가 황진사 딸로 어느 사대부 집 며느리로 들어갔으면 오늘의 고대광실의 명월관에서 살기는커녕 구경도 못할 신세인데 후원을 오가며 행복을 누리는 삶이 깨질까 벌써부터 겁이 나서다.

진이는 옥섬이모의 심정을 익히 알고 있다.

“이모 진이가 송도를 떠나 명월관을 없앨까 걱정하시는 것 같은데 마음 놓으세요! 명월관은 이모 생전엔 진이가 주인으로 있을 거예요... 진이가 한양에 올라가더라도 이모가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 드리고 갈게요! 진이는 한양에서 3년만 살고 송도로 다시 옵니다!”

“진이야, 내가 이 한 몸뚱이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낭랑(朗朗)18세란 것이 있단다! 이 바닥(기생의 세상)엔 낭랑18세 때 한몫 잡아야 퇴기 때 설움을 당하지 않아. 진이 너도 어느새 낭랑18세를 넘어가고 있어...”

옥섬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와 진이 손등에 떨어졌다.

“이모 걱정 말아요! 이 진이만 믿고 지금처럼 사세요.”

옥섬을 끌어안은 진이의 두 눈에서도 비 오듯 눈물이 쏟아졌다.

옥섬을 볼 때마다 진이는 십수 년째 생사를 모르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때다.
팔경 구경 할 채비가 다 되었다고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사종은 옥섬의 눈엣가시다.
이사종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진이가 한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사종은 옥섬의 눈에 되도록 띄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밥도 사랑채에서 혼자 먹고 후원에서 주로 낮 시간을 보낸다.

관아의 정무는 명월관에서 출근하여 처리해 되도록 진이와 낮 시간을 보내려 한다.
관아의 아전(衙前:관아의 말단 실무자)들은 제 세상이다.
상전이 정무만 간단히 처리하고 자리를 비우니 눈치 보지 않고 잇속을 차리고 관기(官妓)까지 희롱하면서 노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모른다.

아침을 먹는 둥 시늉만 하고 이사종과 말에 올라 팔경 구경 길에 올랐다.
이사종도 옥섬의 따가운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어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서방님, 오늘은 우선 팔경을 모두 볼 수 없으니 서강풍설(西江風雪)과 장단석벽(長湍石壁)만 구경하시죠! 이 두 곳이 진이는 팔경 중 제일 마음을 사로잡아요. 팔경은 고려 대학자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익제난고》에 최초로 나옵니다. 하지만 팔경은 중국의 북송(北宋)화가 송적(宋迪)의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유래했어요! 이를 고려 말 송도의 아름다운 여덟 곳에 응용한 것이지요! 한문을 중국에서 들여다 우리 것으로 만들 듯 고사성어 등 각종 문물도 중국의 것을 모방한 것들이 많아요!”

진이의 표정이 상기되기까지 하였다.

소리꾼 이사종은 갑자기 진이의 진지한 표정에 엄숙한 자세를 취한다.

“진이는 특히 《서강풍설》에 매료되었어요! 제가 곡을 붙였어요.

‘눈은 강변가의 지붕을 덮었고/
바람은 포구가의 돛대를 흔들어 놓네/
정자에 올라가 남창을 열고 보니/
구름 낀 바다는 아득하기만 하네./
은실 같은 생선회를 썰어 놓고/
술 단지 기울여 한 잔 마시네./
예성강 굽어보며 한 곡 부르니/
하두강은 애간장 끊어지는 듯 아프리라.’

이 얼마나 멋과 풍류가 있나요?”

진이의 거문고 반주에 명창 이사종의 노래가 서강풍설의 아름다움에 화룡점정 시켰다.

서강풍설을 구경한 뒤 말 채찍에 힘을 가해 장단석벽을 거쳐 그들은 서둘러 명월관으로 돌아왔다.
어젯밤에도 허리가 아프도록 욕정을 채웠으나 그 밤이 그리워졌다.
진이는 숱한 사내들의 욕정을 채워 주었으나 이사종은 자신이 좋아 계약결혼까지 한 사내이니 마음 놓고 육체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상대다.

더욱이 송도생활 3년은 모든 것을 자신이 대고 한양의 3년은 소실(小室)의 자리로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철저하게 계획된 생활을 하루하루 뜨겁게 보냈다.
그토록 뜨거운 세월은 세 번의 봄과 세 번의 가을을 향하여 이미 유수같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식지 않았다.

“내일 한양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한양에 가면 3년은 송도에 올 수 없으니 장단석벽을 한 번 더 보고 떠나면 어떨까요?”

아침을 먹고 관아로 출근하려는 이사종에게 의사를 물었다.
풍덕군수는 엄연히 매일매일 정무가 있는 몸이다.

“내 관아로 가서 잠시 정무를 보고 곧 돌아오리다...”

이사종은 말에 올라 바람처럼 사라졌다.

진이는 옥섬이모가 걸렸다.
명월관엔 옥섬이모 말고도 여러 식구가 있다.
한양으로 진이가 올라가면 명월관은 임금 없는 대전(大殿)같이 썰렁해져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퇴기생활을 했었던 옥섬이 더욱 노심초사한다.

“이모 걱정하지 마세요. 진이가 이모가 3년 동안 편히 사실 수 있게 모든 준비를 해 두었으니 편히 계세요! 진이가 3년 후 가을에 정확히 송도로 돌아올 거예요! 이 아름다운 송도팔경을 두고 어디로 떠나겠어요...”

진이는 또 장단석벽에 거문고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구름은 산 높이 떠 있는데/
공중에 눈썹 같은 절벽 열렸네./
고기와 용은 굴 구비로 굴러가네./
백리나 푸른빛이 감도네 그려./
달은 파리한 물속에 잠겼는데/
꽃은 비단처럼 곱게 쌓였네./
화려한 배에서 술 마시고 풍악 치며/
돌고 또 돌아 천 바퀴나 돌았네.’

오늘따라 진이의 노래가 옥섬의 귀엔 장송곡(葬送曲)처럼 들렸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자 이사종이 돌아왔다.
점심도 거른 채다.
진이가 겸상을 하여 대낮이지만 태상주를 곁들였다.
얼큰하게 달아오른 그들은 송도의 마지막 밤이 되기도 전에 뜨겁게 엉켰다.
진이는 이사종의 움직임에 옥섬이 가르쳐 준대로 몸을 움직였다.

아직 몸은 달아오르지도 않았는데 선수를 쳤다.
숨을 몰아쉬고 콧구멍을 벌름벌름 대며 입을 벌리고 두 다리에 힘을 넣어 뻗기까지 하였다.
이사종이 의아해 하면서도 덩달아 몸을 움직여 주자 진이는 가식이 아닌 송도팔경을 보며 막연히 그리워하였던 신선세계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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