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3회 황진이 <제5, 6話>

太兄 2023. 4. 7. 21:00

* 황진이 <제5話>

동쪽 동인문 밖 물가에서 거문고를 타면 아득히 먼 중국의 장강(長江·揚子江의 본명) 이남에서 흑학들이 떼 지어 날아와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춤을 주었다.
현학금(玄鶴琴)이 거문고를 타면 학들이 날아와 춤을 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이의 모친인 진(陳) 현학금(진현금)의 이름에 대한 유례다.

현학금은 열한 살에 기적(妓籍)에 올라 비파와 가야금을 거쳐 거문고에 빼어난 기량을 보여 열다섯 살에 악사(樂士) 기생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학금은 이때부터 어디를 가든 자신보다 훨씬 큰 거문고를 가로로 메고 다녔다.

현학금의 열아홉 살 단풍이 풍악산(금강산 가을 山名)에 곱게 물든 가을 어느 날이었다.
1504년 연산군(燕山君:1476~1506)의 집권 10년이 되는 해다.
처음엔 성군의 자질을 보였으나 친어머니(폐비 尹氏)의 참극을 안 후 그는 폭군이 되었다.
국정은 팽개치고 원수 갚기와 계집질로 세월을 보냈다.
홍문관을 없애고 정치 논쟁을 금하기 위해 경연(經筵)을 폐지했다.

조선 불교의 산실인 원각사(圓覺寺)는 장악원(掌樂院)으로 바꾸어 기생들의 교육장으로 바꾸었다.
한양에서 마음에 드는 미녀가 모자라자 전국으로 채홍준체찰사 라는 대신과 채홍준사와 채청사라는 급조된 관리들이 송도에까지 내려왔다.

그때 송도 관아엔 현학금도 있었다.
빼어난 미모의 현학금도 여러 미녀들과 새로 설치된 운평에 갇힌 채 자색을 평가 받았다.
현학금은 뛰어난 절색에 거문고의 기예까지 갖추어 최고 점수인 천과흥청이 되었다.
천과흥청과 지과흥청의 미녀는 대궐에 들어가 임금의 성은을 입는다.
임금의 특명이었으므로 고을의 유수조차 미처 손 쓸 겨를이 없었다.

현학금은 경악하였다.
악사기녀로서 은밀하게 자존심을 지켜왔는데 그 자존심이 일순간에 무너짐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 끝에 의동생 기생 옥섬에게 비상약을 짓게 하였다.
단호한 현학금의 부탁에 옥섬도 거부 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약을 먹은 현학금은 하룻밤 사이에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변하였다.

채홍준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연산군의 마음에 쏙 드는 미녀를 뽑아오면 특별진급이나 두둑한 상금이 걸려있어 현학금이 딱 마음에 들었는데 그만 낭패가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의원을 불러 검사를 해봤으나 장님이 틀림없다는 결론이다.
그들은 현학금의 두 눈을 뒤집어 보기까지 하였다.
채홍준사는 현학금을 체념하고 기적에서 빼내주어 운평에서 나와 집으로 왔다.

현학금은 채홍준사와 채청사들이 한양으로 올라간 후 금강산에 몸을 의탁하였다.
약을 먹고 억지 장님이 되어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사찰로 다니며 걸식을 하면서도 거문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렇게 걸인 악사로 봄엔 금강산, 여름엔 봉래산, 가을엔 풍악산, 겨울엔 개골산 등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6년의 세월을 보냈다.

현학금의 거문고 연주는 신기(神技)에 이르렀다.
그녀는 장님 악사로 소문이 퍼져 관아의 연회 때마다 단골로 초대되었다.
현학금이 초대되었다는 연회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현학금의 천상의 거문고 음률에 세상시름을 실어 보내 화병을 앓던 사람이 낫고 무릎이 내려앉은 앉은뱅이는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소문은 소문을 낳고 현학금의 거문고 기적은 송도의 일상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다.

“현학금 언니, 집에 있으면 뭐해! 병부교에 나가서 바람이나 쐬지....”

현학금은 이웃아가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부교 빨래터에 나갔다.
그날도 현학금은 천상의 음률로 거문고를 탔다.
고단한 아낙들의 세상시름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현학금이 비록 앞을 보지 못할 뿐 마음속으로 천상의 음률에 서경덕이 평생 흠모한 송(宋)의 시인 소옹(邵雍·1011~1077)의 《수미음》(首尾吟)의 일부를 실어 보내고 있다.

그녀는 하늘의 침묵을 대변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요부는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요부가 사랑할 수 있을 때/
이미 마음을 쓸 때는 마음을 쓰고/
말을 가하지 않은 곳엔 말을 가한다./
사물엔 모두 이치가 있는데 나는 무엇인가/
하늘이 말하지 않으니 사람이 그것을 대신한다./
자연 조화의 무한한 말을 대신하는 것이니/
요부는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

현학금은 눈만 보이지 않을 뿐 눈을 뜨고 삼라만상을 보는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상사를 탁월한 감수성의 발달로 범인들의 수준을 뛰어 넘었다.
게다가 천상의 음률을 타는 거문고의 명인에 절세미인이었다.

이때다.
마침 이곳을 지나는 한량이 있었다.
황진사(黃進士)다.
그의 눈에 현학금이 들어왔다. 황진사는 이미 현학금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송도가 넓다고 하지만 저잣거리에서 나도는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금방 전 송도로 퍼져 나갔다.

병부교(兵部橋) 아래의 빨래터 아낙들의 입방아에 올라오면 그 소문은 바로 송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현학금의 거문고 소문을 황진사가 모를 리 없다.
아낙들의 성화에 현학금은 천상의 음률을 관아의 연회가 아니면 타지 않는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오늘도 현학금은 아낙들의 성화에 떠밀려 병부교 빨래터에 나와 거문고를 탔던 것이다.
현학금의 천상의 거문고 음률에 빨려들었다.
청춘남녀가 만나면 서로의 콤플렉스에 빠진다.
황진사와 현학금도 그러했을 것이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라 했으니 그들도 예외 없이 사랑의 만리장성을 쌓았을게다.

그때 현학금은 사랑의 만리장성을 쌓고 임신하여 조선제일의 여류시인이며 송도삼절(서경덕·박연폭포)의 하나인 황진이(黃眞伊)를 낳는 어머니가 되었다.
그들은 이 시(詩)를 떠올렸을 것이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버리고 가시리 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太平聖代)//
날러든 어이 살라하고/
버리고 가시리 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
잡사와 두어리 마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위 증즐가 태평성대//
설온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위 증즐가 태평성대’

고려가요 《가시리》다.
황진사와 현학금이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헤어질 때 《가시리》의 내용과 별 온도차이가 없을 심정이었을게다.. 

 

* 황진이 <제6話>

천재는 세상에 쉽게 나오려하지 않았다.
임신 소식을 우서(羽書·서찰)로 황진사에게 알리자 얼굴이 백짓장 같이 질려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장님 기생을 건드려 임신 시켰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직 출사도 제대로 못하였는데 출세 길이 영영 막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황진사는 오자마자 낙태를 권하였다.
하지만 현학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황진사는 겁쟁이에다 철부지였다.
현학금은 황진사가 돌아간 후부터 초승달이 뜨면 추렴을 걷고 섬돌에 내려앉아 그리운 님을 생각하며 깊은 상념에 빠지고는 하였다.

그녀의 폭넓은 학문의 세계로 아마도 당(唐)의 이단(李端:743~782)의 《초승달에 절함》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주렴을 걷도 초승달을 보고는/
섬돌에 내려 다소곳이 절하나니/
속삭이는 하소연은 아무도 못 듣는데/
북쪽 바람이 치마 띠를 휘날린다.’

분위기가 너무나 흡사하다.

조선에 당나라 시를 그들의 수준만큼 이해하고 쓰는 소위 삼당시인(三唐詩人:백광훈·최경창·이달)을 존경의 시선으로 볼 정도이니 당시 시 문학이 차지하는 문화예술 수준이 어느 정도였다는 것이 짐작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사실 왕조시대엔 규방(閨房)문화는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으나 상대적으로 기방(妓房)문화는 극소수이지만 힘차게 맥을 이어왔다.

현학금은 보통 기생이 아니었다.
요즘말로 하면 예술가다.
하지만 그녀도 여자였다.
임신을 하고는 엄마가 될 준비에 들어갔다.
황진사와 뼈를 녹인 애틋한 순간에 매몰되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왔다.
가려야 할 음식을 경계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의남초(宜男草:허리에 차면 아들을 낳는다는 약초)를 허리에 차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데 출산할 장소가 문제였다.
하지만 거문고를 타고 노래 부르는 것은 복대를 두르고도 출산 며칠 전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현학금의 옆에는 친정 동생과 의동생 옥섬이 그림자처럼 있었다.
해산달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현실로 밀려왔다.

출산 며칠 전까지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른 것은 유수와 아전들에게 뇌물을 써 입을 막으려는 술책이었다.
그렇게 하여 몇 주간의 출산휴가를 얻어 박연폭포를 거슬러 올라 실상암 관음굴로 숨어들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출산을 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아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사흘 밤낮의 산통을 하면서도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양수도 터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자궁은 오히려 체면을 지키려는 듯이 조개모양 더욱 오그라들었다.

현학금은 파죽음이 되어 갔으며 친정 동생과 의동생 옥섬은 본인보다 더 앉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이다.
이때도 현학금은 마음속으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잊지 않았다.
몸은 고달프나 곧 나올 새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출산의 고통으로 인해 잃지 않으려는 치열한 자기 체면이다.

‘미인이 환하고 환하여/
얼굴이 능소화 같구나./
운명이지 운명이로다./
천시(天詩)를 만나 태어났건만/
아무도 나를 아리땁다 하지 않는구나.’

조(趙)나라 무령왕의 꿈에서 처녀가 거문고 타는 모습의 장면을 연상한 맹요의 《열녀전》을 애기하는 것일 게다.

비록 지독한 산통으로 정신을 잃을 아찔한 찰나에까지 이르렀으나 중국의 신화 《산해경》의 애기들을 계속 떠 올렸다.
그같이 극락과 연옥을 오가며 뱃속의 아기와 씨름을 하는데 새벽 종소리에 놀란 듯 놀랍게도 지궁이 열리며 툭하고 어미를 떠났다.
박연폭포처럼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에 신고를 하였다.

진이의 탄생은 관음굴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밤 현학금은 아이를 안고 동생을 따라 관가로 가지 않고 집으로 갔다.
그의 집은 사대부 가문은 아니었으나 중인(中人)의 악사집으로 체면을 중시하고 분수를 아는 집안이었다.

고려 때부터 대대로 이어지는 악사(樂士)집안으로 예인(藝人)의 DNA가 전통이다.
현학금이 비록 군왕(郡王)을 잘못만나 비장의 결의로 장님이 되는 비극적인 운명이 되었으나 자존심은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
현학금이 기녀신분이나 사대부 못지 않은 문화예술세계를 가졌으며 그 같은 시가(詩歌)의 재능은 진이한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황진사는 출산 며칠 후 현학금 앞에 나타났다.
진이를 데려다 조강지처가 낳은 딸로 키우려는 속내다.
진이의 탄생을 본가 동생과 의동생, 그리고 유수와 몇몇 아전들만 알 뿐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맹인의 딸로 키우려는 것이냐? 내가 네가 원하는 딸 이상으로 데려다 키울 것이다...“

한량 진이의 아버지 진정성에 현학금도 계속 버티지 못하고 진이를 품에서 내어주었다.
진이는 보쌈 하듯 칠흑 같은 어둠에 황진사 집으로 옮겨졌다.
조강지처 신씨(申氏)품에 안겨 친딸처럼 쑥쑥 컸다.

진이를 황진사에게 넘긴 이튿날 현학금은 거문고를 메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말만 듣던 금강산을 직접보고 몸소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일만 이천 봉 퍌만구암자 골짜기마다 거문고 소리에 맞춰 신명나는 유람을 하려는 속내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야 핏덩이를 떼어놓고 떠나는 간장을 녹이는 어미마음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은 아름답고 실로 경이롭다.

진이는 현학금의 생각대로 총명하고 아름답게 성장해 주었다.
배다른 동생 난(蘭)이도 “언니 언니”하며 잘 따랐고 두 살 위 오빠 경(敬)이 역시 배다른 동생 티 안내고 슬기롭게 처신하였다.
누가 봐도 의이 좋은 삼남매다.
황진사와 조강지처 신씨도 그 같이 의이 좋은 삼남매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진이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키워준 어머니 신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진이의 신분이 사대부집 딸에서 서녀로 둔갑되었던 것이다.
맹인 몸에서 출생했으나 범상치 않은 미색(美色)에 영리하기 까지 한 진이에게 천성이 착한 신씨는 배 아파 낳은 자식과 차별 없이 키웠다.
경이와 난이와는 다르게 자고 깨면 아버지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는 모습에 겉으론 드러내지 않으나 속으론 키운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였다.

진이도 철석같이 신씨가 친 엄마로 알고 15년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소실로 들어가라는 아버지 황진사의 권고를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 소녀 집을 나가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큰절을 넙죽하고 입던 차림 그대로 집을 나와 기생의 길로 들어갈 결심을 굳혔다.
자유인이 되려하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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