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선택과 책임(미국 모병제) 외3.

太兄 2026. 7. 22. 18:21

선택과 책임

ㅡ미국 모병제에서 배우는 국가와 개인의 약속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군대는 의무다.”
그러나 세상에는 군대가 ‘선택’인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현역 병력은
약 133만 명 - 모두 스스로 선택해  입대한 사람들이다.
미국은 1973년에 징병제를 폐지한 이후, 강제 징집 없이 완전한 모병제 국가로 전환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는 그곳에 왜 사람들은 스스로 들어가는가 ?
답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군대는 그들에게 ‘기회(Opportunity)’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서 군은 단순한 전투 조직이 아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 즉 라이프 체인지(Life Change)의 출발점이다.

학비가 없는 청년, 직장이 없는 청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에게, 군대는 도망이 아니라 도약이다.
이병(E-1)의 월급은 주거와 식비 포함 약 2500~3500달러.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급여가 아니다.
36개월 복무 후 4년제 공립대 등록금 전액 지원, 주택 지원, 생활비 지원, 학자금 대출 최대 6만 5000달러 탕감.
가족까지 포함된 의료 지원. 그리고, 20년 복무 시 평생 연금.
이것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건네는 하나의 약속(Promise)이다.

“너의 청춘을 맡기면 나는 너의 미래를 책임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반드시 따라붙는 한 문장이 있다.
책임(Responsibility).
입대는 선택이다.
그러나 입대한 순간부터는 완전한 의무다.
미국 군인은 ‘통일군사법전(UCMJ)’의 지배를 받는다.
명령 불복종 -
전시에는 사형, 평시에도 징역형.
“나는 전쟁에 가지 않겠다.” -
이 한 마디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법적 위반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구조를 본다.

선택과 의무.
자유와 책임.
기회와 대가.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
이것이 미국 모병제의 본질이다.
나는 이 구조를 보며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국가는 무엇을 주고 있는가 ?
그리고 국민은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가 ?
우리는 선택만 원하고, 책임은 피하고 있지는 않는가 ?

우리는 권리만 요구하고, 의무는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는가 ?
한 나라의 힘은 무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약속을 지키는 구조’에서 나온다.
국가가 약속을 지키고, 국민이 책임을 다할 때 그 나라는 강해진다.
군대는, 그 구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나는 확신한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공정한가?”
“얼마나 책임지는가?”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한 사람의 선택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그 선택들이 모여 국가의 미래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한다.
선택은 가볍게 하지 말고, 책임은 끝까지 져야 한다.
그것이 개인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는 길이다.

 

어느 노인의 삶

나는 매달 연금 130만 원을 받았다.

그중 80만 원은 늘 아들 집에 보탰다.
그런데 아들이 나한테 한 말은 이거였다.
“엄마, 그냥 시골집에 내려가서 사는 게 어때. 며느리가 엄마한테 노인 냄새가 난대.”
나는 한마디만 했다.
“그래.”
더 말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바로 방으로 들어가 짐부터 쌌다.
옷장에 있는 옷은 대부분 며느리가 안 입는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자주 입던 옷 몇 벌만 골라서 낡은 여행가방에 넣었다.
머리맡에 두던 혈압약, 혈당 측정기, 평소 쓰던 보온병도 하나씩 챙겼다.
30분도 안 걸렸다.

아들 집 물건에는 손대지 않았다.
며느리 얼굴도 굳이 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말을 더 보태 봐야 나만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아들은 거실 입구에 서서 내가 짐 싸는 걸 보고만 있었다.
붙잡는 말은 끝내 없었다.
내가 가방을 끌고 나가려 하자 그제야 4만 원을 내밀었다.
길에서 뭐라도 사 먹으라고 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손만 한번 저어 보이고 그냥 나왔다.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시골집으로 내려가는 시외버스표를 샀다.
세 시간쯤 걸리는 길이었다.
창밖만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잠잠했다.
서운함보다 먼저 든 건 해방감이었다.
시골집은 오래된 단층집이다.
대문 자물쇠도 녹이 슬었고, 마당에는 마른 잎이 수북했다.
방 안 가구마다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먼저 마당을 쓸었다.
그다음 탁자랑 의자를 닦고 물을 끓였다.
뜨거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집은 낡았어도 내 집이었다.
눈치 볼 사람도 없고, 괜히 맞춰 줄 사람도 없었다.
아들 집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며느리는 담백한 걸 좋아했고, 아들은 간이 센 음식을 찾았다.
나는 그 입맛 맞추느라 매일 다르게 차렸다.
밥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바닥 닦고, 부엌 정리했다.
오후에는 시장에 가서 장을 봤고, 저녁도 내가 했다.

내 연금 130만 원 가운데 내가 쓰는 돈은 50만 원뿐이었다.
나머지 80만 원은 전부 아들한테 줬다.
주택담보대출 갚는 데 보태고, 아이 키우는 데 보태라고 했다.
나는 내 몸에서 냄새날까 봐 늘 신경 썼다.
매일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세탁할 때는 며느리가 좋아하는 향의 섬유유연제까지 썼다.
그런데도 결국 돌아온 건 핀잔이었다.
시골로 내려온 뒤에는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가 없어졌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됐다.
아침엔 죽 한 그릇 끓여서 김치랑 먹었다.
소박했지만 편했다.
오후에는 동네 장터에서 채소를 샀다.
신선했고 값도 덜 부담스러웠다.

마당 한쪽 빈 땅은 다시 뒤집었다.
거기에 푸성귀랑 대파, 고추를 심었다.
반찬거리 하나는 내 손으로 해결됐다.
할 일 없을 때는 마당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근처 사는 나이 든 이웃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하루가 천천히 갔다.

연금 130만 원이면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남았다.
읍내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도 다시 받았다.
의사는 내가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혈압이 흔들렸던 것 같다고 했다.
지금처럼 마음이 편해지면 수치도 안정될 거라고 했다.
나는 나를 위해 새 옷도 샀다.
이불도 새로 들였다.
집 안을 다시 정리해 놓고 보니 숨이 좀 트였다.
누구 허락 없이 내 돈으로 내 생활을 챙긴 게 참 오랜만이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며느리가 요즘 돈 문제로 자꾸 싸운다고 했다.
내가 매달 주던 80만 원이 끊기고 나니 생활이 팍팍해졌다고 했다.
대출 갚는 것도 벅차다고 했다.
며느리도 잘못한 걸 안다면서, 다시 들어와 살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이제는 절대 그런 말 안 하겠다고도 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난 여기서 잘 지낸다. 안 돌아간다.”
너희 살림은 너희가 꾸려야 한다.
나는 이제 늙어서, 내 집 지키면서 조용히 살고 싶다.
아들은 더 말하려고 했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아들은 가끔 전화를 했다.
나는 짧게만 받아줬다.
다시 돈을 좀 보태 달라는 말도 했지만, 나는 응하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자식 인생까지 끝까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는 걸.
나는 평생 가족 챙기느라 내 몫을 미뤘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되는 나이다.
지금 내 생활에는 고부갈등도 없고, 돈 때문에 끌려다닐 일도 없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내가 정한다.
나는 그게 좋다.
늙어서야 비로소, 내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 님의 '老後'모두에게 응원합니다. 

 

🧡가슴 찡한 이야기!
소록도에서 거주하고 있는 K신부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주실 수 없습니까?"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신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그저 해본 소리는 아닌 듯 사뭇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K신부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모두 여덟 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전, 그 아이가 열 한 살 때였지요.

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 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 발 두 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 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 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해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오남 이녀의 일곱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올라와 함께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 펴주면 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 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 셋째, 넷째...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 소록도라는 섬에다 내다버린 아이,
내 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일곱 명의 자식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공부까지 시켜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 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게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를 해도 모자랄 텐데 ...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 된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일곱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 버린 한 포기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신부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이곳에서 믿음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애는 내가 여기로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 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그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일곱명의 아이들에게선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눈빛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 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신부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얘기가 있죠.
화초로 키운 내 새끼는 응답 안하고, 잡초로 키운 새끼가 응답 한답니다.

2026년 6월 

오늘도 감사와 사랑으로 이웃과 자신을 사랑하며 ~~
유난히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달려오다 보니,
벌써 일주일의 마무리가 보이는 토요일이 닿았습니다.
많이 덥고 지쳐서 힘이 들 때도 있지만, 다가올 행복한 주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기분 좋게 채워갔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이 최우선이니 무더위에 건강 상하지 않도록 수분 보충 잘하시고,
오늘도 서로 응원하며 힘차게 보내세요!

엡6:1~3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멘
(옮김~읽는 내내 가슴이 멍해지는 이야기 입니다.
피맺힌 아비의 마음. 일생동안 멍쩡한 자식들만 위해 살아왔지만---
늙으니 갈곳 없는 신세!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
병들어 버려진 자식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병을 이기고 살아오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품고 살아오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병들었던 흔적이 있었겠지만 찾아오신 아버지를 모시고자 한 아들이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 흐를 것입니다.

요즘 불효시대???
부모를 멀리하고 살면서 아무렸지 않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 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자식 노릇도 잘 못하는 영적 불효자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용서 하소서---!“) 

 

   - 용  서-

" 용서는 정신적인 치유고,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

□ 빠삐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스티브 매퀸이 연기한 실제 주인공은 프랑스의 '앙리 샤르에르' 다.
1931년 당시 25살 이었던 앙리는 파리에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 근처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수사를 맡았던 검사가 인근에 있던 앙리를 혐의자로 지목해 재판에 넘겨진다.
검사는 자신의 명성을 의식해 거짓 증인까지 내세워 앙리를 살인자로 유죄판결을 받게 한다.
이후, 투옥된 앙리는 자기 인생을 망친 그 검사에게 복수하고자 무려 아홉 번이나 탈출을 시도 했다가 실패했고,
결국 감옥생활 14년째인 1944년, 그의 나이 38세에 '악마의 섬'으로 불리는 감옥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빠삐용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다음은 그가 탈출한 이후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앙리는 탈출한 후 남미로 도망쳐 곳곳을 전전하며 온갖 고생을 다해 돈을 모았다.
프랑스는 형법상 30년이 지나면 범죄시효가 만료 되는데, 그 30년이 되던 1961년 55세가 된 앙리는 드디어 파리로 돌아왔다.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검사와 거짓 증인들을 죽이기 위해서다.
파리에서 그는 자기가 젊었을 때 다니던 거리 부모님과 함께 걸었던 골목 친구들과 놀던 장소 특별히 그가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고 체포당한 곳을 거닐면서 조금씩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결국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복수를 포기하고 용서하겠습니다".
"그 대신 저와 같은 비극적 사건이 더는 생기지 않게 해주십시요."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겼다".
"앙리 샤리에르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네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에 있다".
"네 원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마라".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이고 너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이 비극적 일에 관계된 사람 가운데 네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앙리 샤리에르'는 오랜 세월 한 맺힌 복수심에서 해방된 것이다.
용서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용서는 치유의 문제다.
정의만으로는 절대 내 안의 상처와 울분을 치유할 수가  없다.
(루이스 스미즈/ "용서의 기술" 중)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은 탈출이지만, 앙리 샤르에르의 인생에서 진짜 탈출은 복수를 내려놓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감옥의 문을 부수고 나온 것은 그의 몸이었지만 미움의 사슬을 끊고 나온 것은 그의 영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흔히 용서를 상대에게 베푸는 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용서는 상대를 놓아주는 일이기 전에 내 마음을 붙잡고 있던 원한과 분노를 놓아주는 일입니다.
상대를 벌하지는 못해도 용서의 순간 내 마음의 사슬에서 나를 풀어줄 수는 있습니다.
결국 용서는 상대를 향해 내가 “당신을 놓아줍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이제 "나를 놓아 줍니다”라는 고백 인지도 모릅니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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