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晉州) 이야기
우리말 속에 특정한 고장을 가리킨 것들이 회자 되고 있다.
조선시대 때부터 전해오던 ‘함흥차사’ 와 ‘안성맞춤’이 있고 한국전쟁 때 생긴 ‘원산폭격(대가리 박아)’과 '낙동강 오리알' 도 있다.
또 삼천포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다’라는 말도 있다.
천년고도 진주에는 이런 말이 없을까?
'진주라 천리길' 이란 것이 있고 '진주난봉가'라는 노래도 있다.
'진주라 천리길'은 한양에서 멀다는 것이다.
옛날의 진주는 경상우도로서 도시가 제법 컸다.
신라 때는 9주5소경 중 하나였고 일제시대에는 진주가 도청소재지였다.
선비가 진주에 올 때는 관직에 임명받고 내려오는 곳이지 유배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진주라 천리길이란 말은 오지의 대명사인 삼수갑산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천리길 진주'란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대중가요의 영향이 크다.
이규남이 부른 ‘진주라 천리길’은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 뒤 진주가 낳은 불세출의 가황 남인수와 이미자, 김용임이 같은 노래를 리메이커 했다.
한때 진주의 관문인 새벼리 도로변에 ‘천리길 진주, 잘 오셨습니다’라는 대형 입간판이 세워졌던 적도 있다.
천리길 진주는 미인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다.
'南晋州 北平壤'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색향(色鄕)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선비는 평양 아니면 진주로 발령받아 가고 싶었던게 당시 한양도련님의 로망이었다. 왜냐하면 교방소속의 관기가
모두 기관장 차지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잘 났다는 것을 재색(才色)이 구비되었다고 한다.
재색을 '달란트'라고 하는데 오늘날의 탈렌트(talent)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요즘 탈렌트를 옛날말로 하면 기생(妓生)이다.
기생은 비록 신분이 천민이지만 아는 것이 많고 교양이 있는 문화인이었다.
이들은 노래, 춤, 악기, 학문, 시, 서화를 알고, 말씨나 행동이 고상하여야 했다.
기생은 선배인 퇴기로부터 기본적인 춤과 노래, 시조 등을 배웠으며, 높은 관리를 대하는 매너와 에티켓도 배웠다. 물론 교양과목 외에 필수전공인 사내 애간장을 녹이는 테크닉과 팜므파탈의 요술도 익혔다.
기생의 세계에도 등급이 있다.
- 일패 : 궁중에 출입하는 최고등급의 관기로서 얼마 전에 인기리에 방영한 '대장금'과 같은 의녀를 말한다. 현대적 표현으로 탈렌트.영화배우에 해당된다.
- 이패 : 지방 관아에 속해있는 기녀다.
나오는 대로 관리나 선비, 양반자제가 주 고객이다. 요즘말로하면 룸싸롱의 언니다.
- 삼패 : 이 부류는 생활기생이라고 한다. 약속다방의 김양이나 퇴폐주점의 마담이다.
진주에는 일패와 이패가 주류를 이루었다.
당연히 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인 교방이란 것이 있었다.
성리학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조선시대의 특목고로서 관기(官妓)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있었다고 하니 진주가 확실히 교육도시인 것이 사실이다.
일제시대에는 권번이라고 불렀고 그 후로 기생조합으로 변천했다.
현재 KT진주지사 자리가 조선 시대 진주목사가 업무를 보던 관청이었다.
진주 목사 관사 맞은편에 '진주교방' 이 있었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시청옆에 시청소속 룸싸롱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갤러리아백화점 주차장이 바로 교방터이다.
그 곳은 풍수지리상 음기(陰氣)가 가득한 곳으로 먼 옛날 선비들을 유혹하는 도화기운(桃花氣運)이 있기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한 남학생들이 그곳을 다녀오면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정신집중이 안 된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이후의 남정은 음기를 받아 좋다.
이곳에서는 풍류가 넘치고 문화가 있다.
진주교방에서 전승한 무형문화재중에 진주검무, 진주구락무, 진주교방굿거리춤, 진주한량무가 있다. 조선 말기에 진주교방이 폐지되자 진주 관기들이 생업을 위해 기생조합을 결성했다. 조합을 일본용어로 권번이라 했는데 전국적으로 많이 생겼다. 지금의 우리은행 진주지점 뒤편 차 없는 거리에 권번터임을 알리는 표지가 세워져 있는데 온갖 좋은 소리만 써 놨다.
일본인이 쓴 <진주대관>에서 따르면 '시내 중심가인 대안동에서 진주예기 권번, 그곳은 평양에 겨룰 수 있을 만큼 규모가 대단했는데 500평 가량의 큰 기와집에 넓은 마당, 대청마루, 소리, 가야금과 춤을 배우던 큰 연습방이 3개나 됐다'고 하니 지금의 SM 타워 정도 되었는지 짐작만 해본다.
진주 기생의 대표격으로 논개(論介)가 있다.
논개를 칭할 때 반드시 의기(義妓)라고 한다.
기생이 갖추어야할 핵심역량이 미(美). 가(歌). 무(舞). 창(唱)인데 논개가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췄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영정사진을 보면 수심이 가득차 있는 40대의 중년으로 보인다.
논개가 순국할 때 19세이니 황진이나 춘향과 비교하면 노숙해 보인다.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으로 4갑술생 사주를 가졌다.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로서 굉장히 드문 사주를 가졌다.
경상도 사투리로 '낳다'를 '놓다'라고 하는데 논개가 태어날 시점에 서당의 훈장을 하던 아버지가 만세력을 놓고 사주를 계산해보니 온통 개판이어서 개를 놓았다고해서 논개라고 불렀단다.
진주에서는 '논개제'와 논개시장등 논개 브랜드로 의기(義妓)의 기백을 이어가고 있다.
의기 논개 말고도 역대 진주기생으로는 승이교(勝二喬)· 계향(桂香).매화(梅花), 옥선(玉仙)등 빼어난 명기(名妓)들이 있었다.
'조선해어화사'등에 진주기생에 대한 기록들이 보인다.
해어화(解語花)란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란 뜻이다.
월정화(月精花)는 기록상 나타나는 진주 최초의 기녀다.
당시 진주 사록(司錄) 벼슬에 있던 위제만(魏齊萬)을 유혹해 그의 부인을 결국 울화병으로 죽게 만든 기녀다. 진주 사람들이 위제만의 부인을 추모하고 위제만의 방탕한 생활을 풍자하기 위해 불렀다는 '월정화'라는 고려가요의 내용은 알 길이 없으나, '진주난봉가'의 내용과 월정화의 이야기가 설화적 배경이 유사하다.
또다른 이야기로 강혼과 기녀의 로맨스가 있다
목계(木溪) 강혼(姜渾)은 젊은 시절 한때 아리따운 관기와 깊은 사랑을 불태운 일이 있다.
강혼이 기녀와의 사랑에 빠져 있을 무렵, 공교롭게도 진주목사가 부임해왔다.
강혼의 연인이 목사의 눈에 들어 수청을 들게 되었다.
강혼은 사랑하는 기녀를 속절없이 빼앗기게 되었다.
더욱이 관기였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강혼은 북받쳐 오르는 분함과 연정을 주체할 수 없어 수청을 들러 가는 기녀의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한 수의 시를 소매에 써주었다.
기녀의 소맷자락에 쓰인 시를 발견한 목사는 그 연유를 물었다.
시의 작자가 누구냐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기녀는 밝히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는 잡아들이라는 호통이 떨어졌다.
강혼이 붙들려 왔다.
수청 기녀는 말할 것도 없고 아전들은 큰 변이 일어났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는데, 사또는 뜻밖에도 주안상을 준비케 하고 백면서생 강혼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사또는 기생의 소맷자락에 쓰인 시를 보고 그의 글재주와 호기에 마음이 끌려 한 잔 술은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수청을 들 뻔한 기생도 되돌려 주고자 작정한 것이다.
목사가 멋지다.
이만한 러브 스토리이면 로미오와 쥴리엣 보다 더 심금을 울린다.
강제로 수청을 들게 했으면 진주판 변사또가 되는 것이고 춘향이는 빛을 보지 못했을 뻔했다.
춘향이 하나로 울겨먹고 사는 남원시는 이 목사의 공덕비라도 세워 찬양해야 한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진주기생 스토리도 있다.
진주 남강 변에서 1919년 3월 19일 진주기생들이 태극기를 선두로 촉석루를 향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진주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기생이 있다.
바로 매국노를 꾸짖은 진주기생 산홍(山紅)이다
'매천야록' 에 “진주기생 산홍(山紅)은 얼굴이 아름답고 서예도 잘하였다. 이때 을사오적의 하나로 지목되는 매국노 이지용(李址鎔)이 천금을 가지고 와서 첩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자.
산홍은 사양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대감을 5적의 우두머리라고 하는데 첩이 비록 천한 기생이긴 하지만 사람 구실하고 있는데, 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이지용이 크게 노하여 산홍을 때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글도 잘 쓰고 얼굴도 예쁜 진주기생 산홍이 이지용의 첩이 되길 거부한 것은 당시로서는 큰 사건이었으며 기생들의 자존감을 높혀주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받은 글)
💖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봄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계절을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봄처럼 설레던 시절도 있었고, 여름처럼 뜨겁게 달리던 날들도 있었으며,
가을처럼 깊어지던 시간도, 겨울처럼 고요히 견디던 순간도 있었지요.
살아온 세월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웃음뒤에 눈물이 있었고, 성공뒤에 좌절이 있었으며, 만남 뒤에 이별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을 견디고 건너온 당신은 그 자체로 한 권의 두꺼운 책입니다.
여전히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젊음은 속도였지만, 지금은 깊이입니다.
예전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고, 하늘도 올려다 볼줄 압니다.
이 깊이는 세월이 준 선물입니다.
나무가 오래될수록 나이테가 촘촘해지듯, 사람도 오래 살아낼수록 마음의 결이 단단해집니다.
혹시 요즘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끼십니까?
기억이 깜빡거리고, 무릎이 먼저 반응하고, 밤잠이 깊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약해짐이 아니라, 오래 써온 몸이 보내는 솔직한 신호입니다.
수십 년을 쉼 없이 사용해 온 몸이니 고마워해도 부족합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억지로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이 세상이 당신을 증명해 주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종종 "젊을 때가 좋았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까요?
그때는 몰랐던 소중함을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급해서 보지 못했던 풍경을 지금은 천천히 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당연했던 하루가 지금은 감사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일,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일,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걷는 일,
이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기적임을 우리는 이제 압니다.
삶은 길이보다 결입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내일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제를 너무 붙잡지 말고, 오늘을 정성껏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꽃은 한 번만 피지 않습니다.
봄마다 다시 피어납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설렘은 다시 옵니다.
사랑도, 기쁨도, 웃음도 다시 찾아옵니다.
오늘 하루,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조금 천천히 걸으십시오.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 보십시오.
스스로 다독이며 말하십시오.
"잘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봄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함께 이 길을 걸어가니 외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있어서 나의 인생은 아직 따뜻합니다.
< 생산자(生産者)가 어찌하여 폭산자(暴産者) 망산자(亡産者) 사산자(死産者)로 변질되었는가? >
미국에서 판매된 현대자동차 제품 중의 하나가 사고를 쳤다. 운전을 하는 부모가 뒤에 있는 짐칸을 확보하려고 버튼을 누르고 뒷좌석이 앞으로 덮치게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뒷좌석에 두 살된 아이가 있었는데, 그만 의자에 깔려서 질식사하고 말았다. 자동센서기가 있었다면 아기가 눌려서 사망하지 않았을 것인데, 센서기가 없어서 귀한 아기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었다.
짐을 싣고서 운전을 하던 부모가 뭔가 느낌이 이상하여서 차를 스톱하고 급히 뒷좌석의 아기를 살펴보았는데,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통곡할 일이 생긴 것이다. 부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현대자동차 본사에도 알렸다. 본사에서는 당장 사과(謝過)를 하고, 10만대 정도의 해당 차량에 대해 리콜을 지시했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한국이라면 운전자 부주의라고 우기고 끝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 될 수 있지만, 안전과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생긴 사건이기에 긴급 뉴스로 미국에 알려졌고, 현대자동차 이미지에 먹칠을 하게 되었다.
이미 이런 사건의 징후가 몇차례 있었다고 한다. 즉 뒷좌석에 있는 고양이나 강아지가 눌려서 사고를 당한 적이 있고, 이를 현대자동차에 신고를 했다. 그러면 당장 이를 중요한 사건으로 분류하고 적극 대처를 했다면 좋았을텐데, ‘설마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하면서 안이하게 대처를 한 것이다. 안전민감증이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발동한 것이다.
현대자동차 본사는 심각한 분위기였다. 과장(誇張)하면,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현대자동차 노조들은 사고재발을 위하여 차량을 개선할 방안을 두고서 고심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지난 3월 5일, 임직원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컴퓨터, 의자, 화분 등을 파괴하면서 난동을 부리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유가 무엇인가? “왜 자기들이 마음대로 회사 출입을 못하게 하면서 인권을 탄압하느냐?”는 것이다.
즉 근무시간에 밖으로 나갈 경우에 이름, 행선지, 누구를 만나는지, 만나는 목적 등을 일지에 적어야 하는데, 이것이 인권 탄압이라도 주장한 것이다. 어느 회사든지 근무시간에 직원이 함부로 외출을 못하게 통제를 한다. 업무에 집중하고, 회사 기밀 유출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큰 혼란에 빠진다. 이런 기본을 무시하고 폭력 행위를 하는 것이 노조의 태도인가? 지켜야 할 선(線)을 넘어선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의 질서 유지 의무를 망각했고, 직책의 고하(高下)를 외면했고, 자유가 아닌 광적(狂的)인 방임(放任)을 자유로 착각한 것이다. 민주 시민 교육의 기본이 안 된 것이다. 이성(理性)은 없고, 마음에 안 들면 마음대로 난폭한 언행을 하는 광성(狂性)만 있고, 대화 이전에 폭력을 행사하는 조폭(組暴)의 태도를 발휘한 것이다. 실로 유감(遺憾)이다.
우수한 자동차 생산자(生産者)가 되어서 회사를 살리는데 주력(注力)해야 하는데, 이와 반대로 폭력을 자행하는 폭산자(暴産者), 회사를 망치는 망산자(亡産者), 사람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산자(死産者)로 변질된 것이다. 언제쯤 과도한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인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80년전, 1848년에 선포된 ‘공산당 선언’의 취지를 따른 것이 아닐까? 경영자, 자본가를 원수로 여기고,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진 것이 사단(事端)의 출발로 보인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이런 사태를 두고서 경영진은 무엇을 생각할까? 사람 생산자 모집을 중단하고, 빨리 로봇을 현장에 투입해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1억원이 넘는 연봉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자들에게 철퇴가 내려질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격려하는 시민의 소리도 많다고 한다.
노동자 조합원 중에는 부수고 파괴하고 난동을 부리는 일을 주업(主業)으로 삼고, 정치활동에 개입하고, 현장 노동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연봉이 1억원이 넘는 귀족 노조가 많다고 한다. 저들은 왜 타도의 대상이 안 되는가? 논리적 모순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금수저, 철밥통 직장을 스스로 파괴하는 바보짓이 아닌가? 감사할 줄 알고, 근면 성실하게 일을 하고서, 부지런한 자유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살면서, 공생 공영하는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생산자가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독기(毒氣), 광기(狂氣), 살기(殺氣)가 가득한 눈길과 목소리를 낮추고, 건전하고 건강한 시민, 회사원, 생산자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자식을 잘 키우고 성장시키려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직원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잘 살게 해주려고 고심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려고 주야로 고심하는 경영자, 고도의 정신근로자인 경영자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뜻밖의 사고로 졸지에 하늘나라로 간 두 살된 아기의 원한 맺힌 영혼을 위로하고 조의를 표한다.(一光 趙應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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