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일반상식

시진핑은 공자(孔子)인가? 아닌가?

太兄 2026. 1. 9. 19:13

< 시진핑은 공자(孔子)인가? 아닌가? >

 

  3일전, 1월 6일, 한중(韓中) 정상(頂上) 회담에서 시진핑(1953년생, 73세)이 이재명(1964년생, 62세)에게 특별한 부탁(협박?)을 하였다. “한중(韓中) 관계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역사의 올바른 편(right side of history)에 서야 한다.” 이는 미중(美中)의 갈등 속에 끼어 있는 한국이 미국을 선택하지 말고, 중국과 협력적 노선을 취할 것을 은근히, 거의 노골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는 사실 국제간 정상회담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대화(일방적 지시, 강요)였다.
  이 발언은 한국에 있어서는 매우 민감하고 긴장된 내용이었다. 그래서 언론 기자들이 이재명의 브리핑 자리에서 질문을 하였다. “시진핑의 말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즉 기자는 “시진핑의 의도대로 한국이 중국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미국편에 설 것인가? 이에 대해서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재명은 “공자(孔子)가 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응답했다.
  이 대답의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시진핑(1953.6.15. 베이징에서 출생)은 물리적으로 볼 때에 이미 고인(古人)이 된 공자(孔子, B.C.551~479, 72세 사망, 중국 산둥성 노나라에서 활동)가 아니다. 될 수가 없다. 지금으로부터 2800년 전에 탄생한 공자와 지금의 시진핑이 같을 수가 없다.
  그러면 이 말은 무슨 암시인가? 상징인가? 정치적 대화술인가? 거짓말인가? 이에 대해서 긍정적 부정적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노련하게 답변을 잘 했다.”는 것이 긍정적 해석이고, “이 무슨 선문답(禪問答)인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적당히 넘어가려는 엉터리 정치적 언론 플레이인가? 시진핑의 의중(意中)을 알면서도 음흉하게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수작이다. 국민들 앞에 또 거짓말 사기를 친 것이다.”라고 비난하는 부정적 해석이다.
공자는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이고, 아버지가 일직 사망하고 어머니가 그를 키웠다. 청년기에 생계를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예(禮), 음악, 역사, 시(詩), 정치 등에 관해서 전통학문을 넓게 학습하였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사학(私學)을 개설하였고, 처음으로 평민교육을 실시한 공적을 남겼다. 50대 초반에 이르러서 노나라 관리가 되었고, 사구(司寇, 법무부장관)까지 승진했다. 그는 덕치와 예치를 통하여 사회개혁을 시도했지만 정치적 갈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임하였다.

 

  그 후 약 14년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덕치와 예치를 가르쳤지만 대부분의 군주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68세에 귀향하여서 5년간 제자들을 가르쳤고, 고전 정리에 몰두했다. 시경, 서경, 예기, 주역, 춘추를 정리하고 편찬했다. 제자가 4천명이 넘고, 그들 중 72명이 두드러진 제자였다. 73세로 사망했다. 사후(死後)에 제자들이 <논어>를 집대성했고, 이를 중심으로 유가(儒家)사상이 확대되었다.
  시진핑(1953 생)은 공산당 혁명을 일으킨 아버지 시중쉰의 원로 가문에서 탄생했다. 문화대혁명(1966~1975) 때에 아버지가 실각하였고, 15세에 산시성의 농촌으로 가서 7년간 머물렀다. 이 시기에 농민들과 동고동락했다. 현장과 민생을 중시하는 사고(思考)를 가졌다. 여러차례 공산당 입당을 거부당했으나 마침내 1974년에 입당했다. 칭화대학에서 화학전공을 하고 박사가 되었다. 1974~1980년사이였다. 중앙군사위원회 등에서 근무를 했고, 지방 행정 경험을 쌓았다.
  1980~2007년 사이에 청렴한 공무원 생활을 했고, 경제성장과 안정을 중시했고, 특히 강한 조직과 장악력을 얻었다. 중앙 지도부에 진입하였다. 본격적인 정치생활이 시작되었다. 2013년에 최상의 권좌인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조석이 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주석 자리를 강행하던 2022년부터 장기집권체가 시작되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그가 국가 질서, 인정, 대외적 위상강화가 적었다고 한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은 그가 권위주의를 강화하였고, 개인권력을 집중 강화하면서 장기집권하였고 중국몽을 갖고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권력욕의 확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자와 시진핑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보자. 공자는 고생을 하다가 50세에 공무원에 취직하였다. 그러나 공무원사회의 부도덕한 모습에 4년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덕치(德治)와 예치(禮治)를 가르치기 위하여 14년간 순회하였다. 어떤 정치인도 그의 사상을 수용하지 않았다. 68세에 귀향하여 5년간 제자를 가르치면서 책을 편집하였다.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사후에 제자들이 <논어>를 편찬하였다. 
  시진핑은 21세에 공산당에 입당하였고, 27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7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였고, 59세(2012년)에 국가주석이 되었다. 그런데 두 번의 주석 임기가 끝났는데, 부당한 권력욕이 생겨서 물러나지 않고 69세 때(2022년)에 장기집권체제로 들어섰다. 달콤한 권력의 늪에 빠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심각한 저항과 다툼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까지 독재정권을 4년간 유지하고 있다. 지금 내부에서는 치열한 권력다툼이 있고, 위선적인 모습에 신뢰하지 못하는 외국 기업들이 대거 탈중국을 하고 있고, 그래서 경제적 혼란이 큰 실정이다.

 

  공자와 시진핑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보자. 공자는 68세에 귀향하여 제자를 가르치면서 국가 및 인류의 미래 비전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시진핑은 69세에 장기집권 권력에 빠져서 세계를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부정선거, 마약밀거래, 석유 밀거래, 등을 지휘하고 있다. 또 도로 건축 등을 개발해준다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척 하지만 실제는 돈을 빼앗아 간다. 이런 중국을 따르는 대표적인 나라가 베네수엘라 마두로대통령의 독재 정권이다.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크다. 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서 미국이 1월 3일(현지시간) 새벽에 마두로를 체포했다. 세계 석유량의 37%를 갖는 베네수엘라 석유를 정상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하여서 베네수엘라와 미국 및 세계의 유가(油價) 하락에 이바지하고 세계평화실현을 하려는 것이다. 이제 베네수엘라는 친미(親美)와 반미(反美) 두 그룹으로 갈라졌다. 피터지게 싸운다.
  중국은 한국을 제2의 베네수엘라고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재명을 새해 벽두(劈頭)부터 불러다가 친중국 정권을 강화하라고 지시하였다. 시진핑의 이런 지시의 의도를 이재명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공자와 시진핑의 가치관 및 업적의 차이는 하늘 땅과 같은데도 불구하고, 굳이 시진핑을 공자와 같다고 능청을 떨고 아첨을 하였다. 앞으로 한국을 심각한 위기로 끌고 갈 것이다. 국정이 파행(跛行)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애국 시민들은 더욱 초조하고 걱정이다. 시진핑과 이재명은 공자의 거룩한 뜻을 배우고 따르기를 촉구한다. 진정한 위정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공자의 이름을 함부로 인용하면 안 될 것이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공자께서 화를 내실 것 같아서 이 또한 걱정이다.(一光 趙應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