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3% 부족한 존재이다’라고 생각하자 >
세계적으로 강한 신앙공동체, 종교국가로서 이스라엘이 있다. 그들은 유대교를 신봉하며, 그 이념을 중심하고 결속하고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있다. 유대인의 인구는 이스라엘에 약 700만명, 미국을 비롯한 북미와 유럽 등에 700만명 등으로써 약 1400만명 내외이다. 그 외에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을 합하여서 1700만여명이다. 하나의 국가가 경제와 국방에서 자립하고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려면 인구가 2억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이에 비하면 이스라엘 인구는 아주 적은 숫자이다. 그러나 경제, 정치, 문화, 등의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올까? 그 배경에는 엄격하고 강인한 신앙의 힘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님(여호와) 앞에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데서 솟아난다. 비우는 그 부분을 여호와께서 채워주시니까 지혜가 생시고 힘이 생긴다.
유대인들에게는 많은 종교문화들이 있지만, 그것들 중의 하나가 아미다(amidah)이다. 이는 찬양 요청 감사를 포함하여 19개 부분으로 된 기도이다. 그런데 이 기도를 하기 전에 뒤로 세 걸음 물러갔다가 다시 앞으로 나가서 기도를 한다. 기도를 끝내면 다시 뒤로 물러간다. 일상생활로 돌아간다는 자세를 의미한다. 이런 태도는 왕이 되시는 여호와의 현존(現存) 앞에 겸손하고 낮추는 자세를 가지는 것을 상징하며, 최대한의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즉 자기는 온전하지 않고 3% 부족한 존재라는 고백이다. 3%는 뒤로 물러나는 세 걸음이 주는 상징적 의미를 숫자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은 비우는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다. 비움은 곧 겸손이다. 이들은 온전하게 삶을 살아가는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태도이다. 인간에게서 3%는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영역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몸, 마음, 정신(情神), 감성(感性), 영성(靈性)’의 다섯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다섯 가지가 건강해야 종합적으로 건강한 개체가 된다. 여기서 영성이 3%에 해당한다. 이 다섯개의 각 부분들이 다시 건강하려면 역시 조금 부족하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음식을 먹을 때도 너무 포만감이 있게 먹지 말고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때, 수저를 놓는 것이 건강에 좋다. 위(胃)를 가득 채우면 위장병이 생긴다. 마음에도 약간의 여유, 빈공간을 두어야 한다. 그 틈으로 내적 성찰의 눈길이 들어갈 수 있다. 정신의 주요 기능은 인식과 판단력이다. 정신에도 공간을 두어야 한다. 나의 판단이 늘 옳고 절대적이라는 자세를 자제하고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감성 또한 그러하다. 자기의 기분이나 감정만 앞세우면 인간관계가 멀어지거나 단절될 수 있다. 남의 기분이나 감정을 헤아리는 여유를 두어야 한다. 남을 수용하는 감성의 공간이 있어야 그 자리에 이웃이 들어올 수 있고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
특히 영성은 인간의 중심에 있다. 영성은 하나님(天, 神, 여호와, 上帝, 알라, 궁극적 존재)이 우리 안에 내재할 수 있는 빈자리이다. 수레바퀴를 비유로 들면, 중심 축(軸)에서 뻗어 나온 바퀴살이 바퀴의 각 부분으로 직결되어 있다. 하나라도 축(軸)과 연결되지 않으면 바퀴는 일그러지고 부셔지게 된다. 따라서 축이 존재하도록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 곳이 꽉 차면 축을 연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현인 현자들이 삶에서 비움을 강조하였다. 비워야 영성이 자리하게 되고, 그곳에서 하늘의 뜻을 받고 전달하고, 실천하면서 사는 천손(天孫) 백성, 만물의 영장(靈長)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영성은 인간의 각 부분에 직결된다. 영성과 몸이 연결될 때에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주신 고마운 선물임을 깨닫고 몸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내 몸의 주인은 하늘이라고 깨달아야 진정으로 몸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 살상(殺傷)이나 전쟁을 금지할 수 있다. 영성과 마음이 연결될 때에 평안이 찾아온다. 영성이 없는 마음은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우굴쭈굴하고 여유가 없다. 영성이 정신과 연결될 때에 사리사욕을 콘트롤하고 합리적이고 도덕적이고 건전한 판단이 가능해 진다. 영성이 감성의 중심에 있을 때에 사랑과 희생과 자비의 자세가 나오게 되고, 공감(共感) 능력이 향상되어서 이타적(利他的) 생활이 가능하다. 즉 영성은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내면에 찾아오시고 안주하시면서 사랑과 진리를 베푸시고 가르치시는 왕좌(王座)와 같은 자리이며, 거기서 빛나는 광채가 솟아난다. 그럴 때에 우리의 인체는 음양오행이 결합된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신광체(身光體)가 된다.
각 분야에서 최고라는 자의식을 갖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면 교만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최고라는 의식의 중심에 영성(비움)을 두어야 한다. 3%부족하다는 인식을 가질 때에 남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화합과 협동과 조화가 이뤄지게 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큰 공간을 갖는데, 그 안에서 일하는 의원들의 마음에는 공간이 없거나 부족해 보인다. 날마다 싸우고 고함을 친다. 씁쓸하다. 좀 더 영성을 키우고, 여유를 갖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국민은 고대한다. (一光 趙應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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