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
이탈리아의 바람둥이 카사노바, 우리는 그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니 아예 알아볼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카사노바는 마냥 바람둥이로 살지만은 않았습니다.
카사노바는 30년 동안 무려 122명의 여자와 관계를 했습니다.
후작 부인의 두 자매를 동시에 건드리고, 수녀님과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친딸'에게 청혼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는데, 아뿔싸, 그 여인의 엄마가 카사노바의 한 때 애인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친 딸이었습니다.
바람둥이, 난봉꾼, 호색가, 한량, 유랑 백수 바로 '카사노바'...
본명은 "조반니 지아코모 카사노바" 입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는데, 사실 카사노바는 억울해 할 수도 있습니다.
후대에 '바람둥이'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카사노바는 마냥 여자 뒤만 쫓아다니던 놈은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카사노바는 요즘 말로 '난 놈' 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 들었습니다.
어린 18살 때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5개 국어 이상을 구사했고 문학, 자연과학, 예술에도 밝았습니다.
학교에서는 그에게 '더 가르칠 게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카사노바는 '광대' 였던 부모님의 밑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오직 능력!
능력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신분 상승의 유일한 방법은 '교회 사제'나 '군인'이 되는 거 였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카사노바는 사제의 길을 택했습니다.
사제 입문 1년 만에 신학 강의를 할 정도로 승승장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결국 사건이 터지는데 두 자매를 동시에 탐해 버린 것입니다.
카사노바의 나이 열일곱, 그 때부터 카사노바는 쾌락에 눈을 떴습니다.
성(聖)스러움 대신, 성(性)을 택합니다.
높은 지식과 화려한 언변으로 카사노바는 사교계의 스타가 됐습니다.
1775년 종교재판에 회부되는데 죄명은.. '문란한 사생활' 이었습니다.
결국 카사노바는 악명높은 '피온비'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 곳은 수감자를 납판으로 눌러놓는 아주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사노바가 누구입니까? 1년 반 만에 탈옥에 성공합니다.
그 이후 카사노바의 이름은 더 유명해졌습니다.
'전설의 탈옥범' 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으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 나도 자유를 찾아 떠나면서 당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겠소"
카사노바가 탈옥하며 남긴 그 유명한 메모입니다.
그리고 프랑스로 갔습니다.
프랑스로 떠난 뒤에는 루이 15세를 만나 '왕실 재정난 해소'라는 중책을 맡습니다.
카사노바는 복권 사업을 추진해서 200만 프랑을 왕실에 벌어다 줬습니다.
아, 그리고 카사노바가 모차르트랑 친구였다는 거 아십니까?
오페라 '돈 조반니' 가사도 카사노바가 고쳐준 것입니다.
프라하에 있는 모차르트 박물관에는 카사노바 그림이 지금도 떡하니 걸려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카사노바는 뛰어난 작가였습니다.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 '20일 이야기'도 카사노바의 작품입니다.
그것 말고도 40권이 넘는 책을 썼습니다.
'해저 2만리'의 쥘 베른 등도 카사노바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카사노바는 생애 3분의 2를 유럽 전역을 유랑하며 보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여왕의 초상화를 그려줬고, 폴란드 왕과는 정치 문제를 논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철학자 볼테르와 논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직업만 해도 수십 개였는데 '바람둥이'로만 기억한다니 카사노바로서는 좀 억울할것 같습니다.
물론 카사노바가 여자들을 좋아했던 건 맞습니다.
하지만 미녀만 밝히는 호색한은 아니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여성들과 많이 애정행각을 했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카사노바는 늘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나도 상류사회에서는 늘 아웃 사이더습니다.
카사노바의 인생은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투쟁기였고, 여자를 많이 만난 것도 같은 이유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카사노바하면 '바람둥이'만 떠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카사노바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나는 미치도록 여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언제나 여자보다 자유를 더 사랑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대로 자신의 삶을 이어갑니다.
과연 어떤 삶이 옳은 것이냐는 것은 자신이 내리는 몫이 아닙니다.
평가는 역사가 말해주고, 타인들의 평판이 좌우합니다.
과연 카사노바는 희대의 파렴치한 호색한인가 ?
아니면, 영원한 자유를 꿈꾼 낭만의 사람인가?
'교 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집에서 가을 구경 (1) | 2025.11.12 |
|---|---|
| 지혜로운 어른 (1) | 2025.11.11 |
| 영국의 이튼 칼리지(Eton College) (0) | 2025.11.10 |
| 플라톤처럼 이데아를 고심하며 살아보자 (0) | 2025.11.10 |
| 늙으면 나중이란 없습니다 (1) | 2025.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