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톤처럼 이데아를 고심하며 살아보자 >
철학 역사에 있어서 태두(泰斗)를 차지하는 플라톤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현실세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이데아(Idea) 세계를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습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BC.469~399)는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면서 인간 각자(各自)가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진리체로서 살게 하기 위한 각성(覺性) 운동을 하다가 혹세무민 죄로 몰려서 독배를 마시고 사망하였다. 플라톤은 이 장면을 목격하면서 충격을 받았고, 삶의 진수(眞髓)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해야 고통과 고난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좀 더 진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심하였다. 마침내 이데아라는 단어를 창안하였다.
그가 말한 이데아란 시공을 초월한 비물질적, 절대적인 영원의 실재이며,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로서 순수한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지이다. 환언하면, 이데아는 현상계에 가려진 사물의 본성이자 원형을 의미하며, 죄악, 고통, 부조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순수, 영원, 불변의 이상 세계를 말한다. 중세에는 이데아가 신(神) 안에 존재하는 만물의 원형(原形)으로 인식되었고, 오늘날에는 관념 또는 이념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즉 플라톤은 철학자로서 최상의 깨달음의 경지가 이데아와 일치되는 삶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를 종교의 개념으로 바꾸면, 신(神)과 일체가 되는 생활을 하라는 선언이었다. 종교들이 추구하는 수련의 최상은 신인일체의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먼저 종적(縱的)으로 신을 모시는 자세를 갖고서 횡적(橫的)으로 이웃과 더불어 도덕적 양심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양태(樣態)를 구분하면 두 가지로 압축된다. 몸과 마음, 육신과 영혼(영인, 영인체), 유형과 무형, 물질(Mammon)과 도덕과 양심이다. 이 둘이 존재의 기본 토대이기 때문에 늘 양면(兩面)의 모습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 두 가지가 다 중요하지만, 이 둘 중에서 주체가 되는 것은 무형의 존재(마음, 양심, 신령, 영혼)이다. 따라서 한쪽만 바라보면 애꾸눈이 되어서 자기가 살고 있는 모습이 적합한지 아닌지를 정확히 모르게 된다. 맘몬이란 단어는 예수의 가르침에 기인한다. “너희는 하나님보다 재물(財物, Mammon)을 더 숭배하지 말라.”(마태6:24)고 경고를 하였다. 즉 삶의 중심이 무형의 가치, 진리, 신을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靈長)인 만큼, 유형과 무형, 육계와 영계, 물질적 진리와 영적 진리, 두 세계와 가치관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물질에 너무 치우치면 동물처럼 살게 되고, 무형의 진리에 너무 집중하면 일상생활에 균형이 깨어진다. 건전하고 건강한 시민이 되려면, 양쪽 존재와 진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둘 중에서 무형의 진리를 중심하고 유형의 진리를 찾고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 정도(正道)이고, 궤도(軌道)이다.
세상이 온통 맘몬이즘(Mammonism)으로 뒤덮인 것 같다. 땅, 지하자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싸우고 전쟁을 일으킨다. 극단적으로 같이 죽자는 의도로 개발된 극단의 핵무기를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옥토를 차지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가 이제는 러시아가 먼저 망하게 될 상황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곳을 군사기지화를 하여서 국제법을 위반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의 서해에도 그런 야망을 이루려고 하는가 보다. 일본은 독도를 갖고서 늘 자기 땅이라고 외친다. 친교, 친화가 더 중요시되어야 할텐데… 물질도 좋지만 인간 자체를 중시하고 존중하면 평화세계가 실현될 것인데… 진리의 애꾸눈이 되어서 그런지 보이는 물질세계에만 집착한다. 이들은 종교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 종교를 박해하고 없애려고 한다.
한국 자체는 또 어떤가? 단군 이래 가장 큰 부정부패 사건인 대장동 혐의를 덮어버리기 위하여 검사가 항소(抗訴)를 하려는 것을 법무부 고위 공직자가 멈추게 했다는 의혹이 폭발되었다. 이로 인하여 국회는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게 되었다. 여당이 국회의원 숫자로 야당의 주장을 주저앉히려는가? 또 애국시민들에게 한바탕 걱정의 쓰나미를 갖다 퍼붓고 있다. 물가 폭등, 환율 폭등, 관세 등으로 등골이 휘어질 정도로 힘든 서민의 삶에 또 다시 무거운 짐을 얹혀 주고 있다. 국민 모두, 특히 정치인, 법관, 교사들이, 이데아를 두고서 고심한 플라톤처럼, 무엇이 삶의 진실인지를 생각해 보기를 권장한다. 범죄를 은닉하고 싸우기에 바쁜 이들이 잠시라도 이데아를 찾는데 시간을 내어보기를 바란다. 거룩하고 고상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배부른 돼지로 살다가 죽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의 안식처가 없어진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一光 趙應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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