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문직 비자 수수료 인상에 인도가 직격탄 맞은 이유
H-1B 비자 수혜자 약 70%가 인도 출신
美 진출 印 기업들, H-1B로 대규모 인력 유치해
인도 대표단 방미 하루 전 서명…모디 외교 '시험대'
기업들 '탈(脫)미국' 계기 될 수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IT 기업들의 핵심 인재 유치 경로인 ‘전문직 비자’(H-1B) 제도를 정면 겨냥하면서 인도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인도계 기업들은 관세 부과에 이어 막대한 비용 부담을 추가로 떠안게 됐으며,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또 한번 외교 시험대에 오르며 골머리를 앓을 것으로 관측된다.

19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외국인 전문 인력 대상 H-1B 비자 발급 수수료를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기존에 이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추첨 수수료 215달러를 포함해 평균 1500달러 정도 소요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문턱을 대폭 높인 것이다. 행정명령의 효력은 21일 새벽부터 발생하며, 1년 뒤 만료 예정이나 연장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미국에 진출한 인도계 기업 및 인력일 것으로 전망된다. H-1B 비자는 숙련된 미국 근로자가 충분하지 않은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외국인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비자로 연간 8만5000명만 신규 발급받을 수 있는데, 인도인이 매년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H-1B 소지자(39만9395명) 중 인도인은 28만3397명으로, 약 71%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인도계 기업들은 H-1B를 적극 활용해 업무를 전개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도 뭄바이에 본사를 둔 IT 컨설팅 기업 타타컨설턴시, 미 증시에 상장된 인도 IT 기업 인포시스 등은 트럼프 1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H-1B 의존도를 줄이고 현지 채용을 확대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H-1B를 통한 인재 확보는 중요한 상황이다. 예컨대 인포시스는 미국 텍사스·인디애나·노스캐롤라이나 등지에 H-1B 소지자 수천 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아웃소싱 기업들 또한 H-1B 소지 인력을 업계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현지 기업들 또한 반발하고 있다. 미 이민국에 따르면 매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애플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외국인 전문 인력을 대거 고용하고 있는데, 이번 조치로 고용에 들어가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고용주들이 내년에 올해와 비슷한 규모로 외국 전문 인력을 고용하려면 약 140억달러(약 19조5118억원)를 써야 한다.
이번 조치로 경색된 미국-인도 관계가 더욱 냉각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 대표단이 무역 협상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기 하루 전인 19일 본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인도 측을 압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H-1B 비자 문제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인도는 현재 대미(對美) 관세 50%가 부과된 상태로, 이미 야당 의원들은 “모디 정부가 또다시 인도의 이익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공세를 퍼붓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정학적 영역 싸움(geopolitical turf war)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에서 인공지능(AI) 기업을 운영 중인 찬더 구르나니 대표는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인 유학생 및 근로자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반(反)이민 물결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오히려 미국 기업들이 활동권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MS, 구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이 인도 현지에 대규모 글로벌 역량 센터(GCC)를 운영하고 있는데, 비용 압박이 커질수록 인도 사업을 키우는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기업 디지털씨의 바스카르 라오 CEO는 “미국 기업들은 해외 인력을 유치하기 어렵다면 오히려 해외로 주력 시장을 옮길 수도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유권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국의 발전에 도모하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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