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가 무례" "트럼프 행동 보라" 착잡한 뉴욕 우크라 타운
뉴욕 우크라이나 마을 현장 르포
"푸틴 편 들면 좋아할 사람 없어"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될지 의문" 의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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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가 무례했다고요? 난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백악관에 불러 놓고 트럼프가 한 행동을 보세요.”
2일 오후 미국 뉴욕 도심 맨해튼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브루클린 브라이튼 비치의 식당 ‘유로아시아’ 앞.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지인과 대화하고 있던 미국 거주 우크라이나인 코로스티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8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말싸움 끝에 정상회담이 파행으로 치달은 것과 관련해 “젤렌스키가 무례했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껄껄 웃으며 “이 동네에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물어도 같은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 한 뒤 식당으로 들어갔다.
뉴욕에는 영주권자·유학생 등을 비롯해 15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살고 있다. 브라이튼 비치에는 1만5000명이 모여 사는 우크라이나인 밀집 지역이다. 뉴욕은 미국의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이지만 지난해 대선 개표 결과 이 지역 유권자들은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국을 침공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군사 지원한 민주당 조 바이든 행정부를 지지하면서도, 조기 종전을 약속한 트럼프의 현실적 공약 사이에서 고민하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본격적으로 조기 종전에 팔을 걷어붙인 상황에서 자국 배제에 반발하는 젤렌스키를 노골적으로 면박 주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자 미국 거주 우크라이나인들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들의 말에서는 “조국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과 “그렇다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적으로 돌릴 수 없다”는 부담이 교차했다.
브라이튼 비치 거리 곳곳에는 우크라이나 국기 색인 노란색과 파란색 간판이 보였다. 술집 ‘앤바스’ 앞에서 흡연하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정상회담을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목청을 높이며 말했다. “젤렌스키에 대한 감정을 떠나 트럼프가 푸틴 편을 들면 좋아할 우크라이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매장을 온통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꾸민 스티커 사진 가게 주인은 “이민 온 지 30년이 지났다. 워낙 민감한 문제라 내 의견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무언가를 말하려다 체념한 듯 고개를 흔들고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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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거주 우크라이나인들은 2022년 2월 러시아가 고국을 전면 침공했을 때만 해도 일치단결해 푸틴에 맞선 젤렌스키 정부의 항전을 열렬히 응원했다. 하지만 전쟁이 3년 넘도록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고국이 피폐해지자 누구의 편을 들기에 앞서 종전과 평화 정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브라이튼 비치를 지역구로 둔 우크라이나계 이나 베르니코프 뉴욕 시의원은 X에 “정상회담 결과는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이 전쟁을 끝내고 우크라이나 국민이 안전과 주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젤렌스키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브라이튼 비치의 자영업자 이나 키르씨는 뉴욕타임스(NYT)에 “젤렌스키가 (미국의 지원에) 감사할 줄 모른다는 트럼프의 말이 맞는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우크라이나인 밀집 지역인 맨해튼 로어 이스트 지역의 ‘우크라이나 빌리지’ 주민들도 착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음식점 베셀카의 점원은 “(장사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젤렌스키를 응원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이스트 빌리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부부는 “솔직히 젤렌스키의 행동이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NYT는 “트럼프와 JD 밴스가 젤렌스키를 질책하는 장면은 뉴욕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 결렬의 여파로 주말 동안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보스턴 등 동부와 서부의 주요 도시에서는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보스턴의 시위대는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원하고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면서 “모든 것이 공정한 조건으로 이뤄지기를 원하고 특별히 안보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LA에서는 시위대가 트럼프의 최측근 일론 머스크 소유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건물 앞에 모여 우크라이나 지지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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