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딥스테이트' 응징 시작됐다
바이든 때 각 부처서 백악관 NSC에 파견된 150명에 "즉시 건물 떠나라"
미운털 박힌 밀리 전 합참의장 초상화, 국방부 청사서 제거 지시
51명의 전직 고위 정보 관리들에 대한 기밀 접근권 박탈
이란의 살해 위협 받는 존 볼턴에는 "경호 서비스 중단" 조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딥스테이트(Deep State)’에 대한 응징이 시작됐다. 트럼프와 트럼프 진영은 미국 연방 정부 내 곳곳에 포진해서 민주당의 이익을 추구하며 트럼프의 정치적 의제를 방해한다고 보는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을 ‘딥스테이트’라고 비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린 제1호 딥스테이트 제거 대상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자신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지만 마찰이 잦았던 존 볼턴이었다. 볼턴은 미 대선 기간에도, 트럼프를 ‘미 대통령 직에 부적합하고 무능하고” “개인적 정치 이익을 위해 미 외교 정책을 남용한” 인물로 비난했다.
트럼프는 취임식 수 시간 만에, 볼턴의 기밀ㆍ보안 정보에 대한 접근권한을 박탈하고, 볼턴에 대한 경호 인력 서비스도 중단시켰다.
볼턴이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 직에서 해임된 2019년 9월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이란핵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던 볼턴의 목숨을 노린다는 보도가 나왔고,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도 그에 대한 경호 서비스를 연장했다.
◇CIA 수장 5명 등 51명의 反트럼프 인사들, 기밀 접근권 박탈
그러나 트럼프는 이날 볼턴과 전직 중앙정보국(CIA) 국장 5명을 포함한 51명의 전 고위 정보 관리들에 대한 기밀 접근권을 박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우리가 왜 볼턴의 여생에 경호 인력을 붙여줘야 하느냐. 그는 매우 멍청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볼턴은 “내가 비판했던 바이든 대통령도 경호 서비스 제공을 철회하지 않았다. 실망스럽지만, 놀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들 51명의 고위 정보관리들에 대해 “미국 대선에 영향을 주려 했다”는 이유로 기밀 접근권을 박탈했다.
이들은 2020년 트럼프와 바이든이 맞붙은 대선을 앞두고 그해 10월, 바이든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개인 랩톱 컴퓨터에서 발견된 자료들이 러시아 정부의 왜곡정보 작전의 일환일 수 있다는 공개 서한에 모두 서명했다. 그러나 랩톱에서 나온 자료가 러시아의 허위 공작에 따른 것이었다는 증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는 작년 유세 때 “정보 관리들이 선거에 개입하고, 민감한 정부 문서를 부적절하게 공개한 것에 대해”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의 민주당 대통령 하에서 CIA 국장과 국장 직무대행을 한 5명의 CIA 최고위직이 포함됐다.
트럼프의 연방수사국(FBI) 국장 지명자인 캐시 파텔도 그동안 “딥스테이트를 뿌리 뽑으려면, 이들의 기밀 사항에 대한 접근 허가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 미운털 박힌 밀리 전 합참의장에 대해선 “초상화 떼!”
트럼프 취임과 동시에, 미 국방부 청사 홀에서도 트럼프 1기 때 합참의장(2019년 10월~2023년 9월)을 지냈던 마크 밀리 대장의 초상화가 제거됐다. 미 국방부 청사에는 역대 합참의장들의 초상화가 모두 걸려 있고 밀리의 초상화는 1월 10일 이곳에 걸렸다. 그러나 트럼프 백악관은 마크 밀리의 초상화를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밀리는 트럼프에 의해 합참의장이 된 인물이다. 그러나 2020년 대선을 전후해서 스스로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020년 대선 4일 전인 10월 30일 자신의 중국 카운터파트인 리쭤청 중앙군사위 합동참모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이 중국에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확인시켜 줬다. ‘중국 측이 미국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당시 미군 정보 보고에 따라, 중국 측을 안심시키려는 것이었다.
또 미 의회 난입 사건이 발생한 이틀 뒤인 1월 8일에도, 리쭤청에게 전화해 “미국 정부는 안정적이고 모든 것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둘 다 트럼프에게는 알리지 않은 비밀 통화였다.
밀리는 또 미 대선 이후 트럼프의 정신 상태가 쇠약해지고 있다는 자신의 판단을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민주)에게 알렸다. 이런 내용은 2021년 9월 밥 우드워드의 저서 ‘페릴(Peril)’에서 처음 공개됐고, 트럼프는 배신감을 느꼈다.
트럼프는 2023년 9월 “밀리는 반역죄를 범했으며 처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리는 그러나 같은 달에 있었던 자신의 퇴임식 연설에서 “우리는 왕이나 폭군, 독재자 같은 개인이 아니라, 헌법ㆍ미국이라는 사상에 맹세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 해안경비대 사령관인 린다 페이건을 “다양성ㆍ평등ㆍ포용(DEI) 정책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국경 경비를 잘못 다뤘다”며 해임했다.
◇NSC, 북한核, 우크라 다루는 150명 관리들에 일제히 ‘대기명령’
마이클 월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2일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의 가치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솎아내기 위해, CIAㆍNSA(국가안보국) 등의 정보기관과 국방ㆍ국무부 등 정부 부처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파견된 150명의 직원에 대해 일제히 “추후 복귀 요청이 있을 때까지, 즉시 건물을 떠나라”고 지시했다.
월츠의 비서실장인 브라이언 맥코맥은 이날 2분이 채 안 된 통화에서 타(他)부처 파견 관리들에게 “트럼프 행정부가 임명한 고위 책임자들로 구성된 상급자들의 요청이 없는 한 복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이란과 북한의 핵 확산, 사이버 첩보, 우크라이나 전쟁 등 문제를 다루는 수십 명의 관리들이 포함됐으며 월츠 보좌관이 이들에 대한 “전면 검토”를 승인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그는 “월요일(1월 20일) 오후 12시 1분 이후부터, 인사 검토와 평가에 기반한 결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조치가 “NSC 직원들이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의제를 이행하고, 세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 헌신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츠 보좌관의 결정이 전격적이어서, 일부 NSC 관리들은 출입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 백악관 단지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 직원들이 일일이 수동으로 문을 열어줘야 했다.
월츠 보좌관의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1기때 NSC에서 유럽 담당 국장으로 파견 근무했던 미 육군 중령 알렉산드르 빈드먼과의 악연(惡緣)에서 비롯했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빈드먼은 2019년 7월 트럼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간 통화 내용을 모니터했고, 이에 대한 우려를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두 정상간 통화에서 트럼프는 바이든과 아들 헌터의 우크라이나 내 ‘부패’를 수사하라며, 이를 미국의 군사원조와 연계하는 발언을 했다. 빈드먼의 상부 보고는 결국 언론에 누출됐고, 트럼프 대통령의 1차 탄핵 소추로 이어졌다. 트럼프 반대파는 미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경쟁자[바이든]를 약화시키려는 권력 남용이라고 주장했지만, 트럼프는 “완벽한 통화”라고 반박했다.
일부에선 행정부 전환기에 이토록 많은 경력직 관리들이 NSC를 한꺼번에 떠나는 것은 새 국가안보팀이 주요 사안을 처리하는 데 더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취임 연설에선 “국가 권력이 다시는 정적들을 박해하는 무기 돼선 안 된다”
트럼프의 법무장관 지명자인 팸 본디도 과거 트럼프에 대해 러시아와의 선거 내통 의혹을 조사한 FBI 수사관들과 탄핵 관련 조사를 했던 검사들을 겨냥해 “수사관들이 수사를 받을 것이고, 나쁜 검사들은 기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과거 자신에 대한 수사가 ‘마녀 사냥’이며, 자신은 연방정부의 희생양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번 취임식에서도, 트럼프는 “다시는 국가의 막대한 권력이 정치적 적(敵)들을 박해하는 데 무기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신은 ‘딥스테이트’로 간주하는 정보기관들과 정부 부처들에 대해 “적절한 행동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이들 기관을 전면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승인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뉴욕대 로스쿨의 라이언 굿먼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과거 정부의 잘못을 사후(事後) 조사하는 것 자체엔 문제가 없지만, 이번 명령은 적(敵)의 명부를 손에 든 장관들을 위해 마련됐다. 민주주의를 위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바이든, 선제적 사면 실시
트럼프는 과거에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특별검사를 지명해 수사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바이든은 이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여겼다.
그래서 퇴임하는 1월20일 오전에, 자신의 형제들과 직계 가족,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 코로나 방역을 책임졌던 앤서니 파우치 미감염병연구소(NIAID) 전 소장, 2021년의 미 의회 난입 사태 조사위원들,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의 선봉이었던 리즈 체이니 전 하원의원 등에 대해 선제적인 사면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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