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시운 (時運)과 천명 (天命)

太兄 2024. 12. 7. 16:04

시운 (時運)과 천명 (天命)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구름이 있고,사람은 아침, 저녁에 있을 화와 복을 알지 못한다.
지네(蜈蚣)는 발이 많으나 달리는 것은 뱀을 따르지 못하고, 닭은 날개가 크나 나는 것은 새를 따르지 못한다.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으나 사람이 타지 않으면 스스로는 가지 못하며,
사람은 구름을 능가하는 높은 뜻이 있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문장이 세상을 덮었던 공자도 일찍이 진(陳)나라 땅에서 곤욕을 당 하였고,
무략이 뛰어난 강태공도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보냈다.
도척이 장수 하였으나 선량한 사람이 아니며, 안회(顔回)는 단명 하였으나 흉악한 사람이 아니다 .
요순(堯舜)은 지극한 성인 이나 불초한 자식을 낳았으며,고수는 우매한 인물이나 도리어 아들은 성인(聖人)을 낳았다.

장량(張良)도 원래는 한미한 선비 였고, 소하(蕭何)는 일찍이 작은 고을의 현리(縣吏)였다.
안자(晏子)는 키가 오척 미만이나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제갈공명은 초려에서 은거 하였으나 능히 촉의 군사(軍師)가 되었으며, 한신(韓信)은 닭을 잡을 힘도 없었으나 한나라의 대장군이 되었다.

풍당(馮唐)은 나라를 편안케 할 경륜이 있었으나 늙음에 이르도록 그 자리에 등용되지 못 하였고,
이광(李廣)은 호랑이를 쏠 수 있는 위력이 있었으나 종신토록 봉후(封侯)의 반열에 오르지 못 하였다.
초왕(楚王)은 비록 영웅이나 오강(烏江)에서 자결함을 면치 못 하였고, 한왕(漢王)은 비록 약하나 산하만리 를 얻어 황제가 되었다.

경륜과 학식이 가득 하여도 백발이 되도록 급제(及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재능과 학문이 성기고 얕아도 소년에 등과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먼저는 부유 하였으나 뒤에 가난한 사람도 있고, 먼저는 가난 하였으나 뒤에 부유한 사람도 있다.
교룡(蛟龍)이 때를 얻지 못하면 물고기와 새우 들이 노는 물속에 몸을 잠기며, 군자도 시운을 잃게 되면 소인의 아래에서 몸을 굽힌다.

하늘도 때를 얻지 못하면 해와 달이 광채가 없으며,땅도 때를 얻지 못하면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물도 때를 얻지 못하면 풍랑이 일어 잔잔할 수 없으며, 사람도 때를 얻지 못하면 유리한 운 이라도 뜻이 통 하지 않는다.
옛날 내가 낙양에 있을 때 하루는 승원(僧院)의 차가운 방에서 하룻밤을 신세 지게 되었는데
홑겹의 베옷 으로는 몸을 가릴 수 없었고 멀건 죽으로는 그 배고픔을 이길 수 없었다.이때 윗 사람들은 나의 무능함을 미워하고
아랫 사람들도 나를 위압 하였다. 사람 들은 다 나를 천(賤)하다고 말한다. 이에 나는 말 하기를 이는 천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운(時運)이며 또한 천명(天命)일 뿐이다.
그 뒤 나는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이 극품(極品)에 이르러 지위가 삼공(三公)의 반열에 올랐다.
직분은 만조 백관을 통솔하고 탐관 오리를 징벌하는 권한을 잡았으며,밖으로  나가면 채찍을 든 장사들이 호위하고
집으로 들어가면 미인이 시중을 들어 준다.입는 것을 생각하면 능라금단(綾羅錦緞)이 쌓여 있고,
먹는 것을 생각하면 산해 진미가 가득 하다.
이때 윗 사람은 나를 총애하고 아랫 사람은 나를 옹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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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 우러러 사모하며 나를 귀 하다고 말한다.이에 나는 말하기를 이는 귀한 것이 아니다.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운 이며 또한 천명 일 뿐이다.
대저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부귀 만을 받드는 것은 옳지 않으며,
빈천함 을 업신 여기는 것도 또한 옳지 못하다.이는 천지가 순환하며 마치면 다시 시작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송나라 태종 때 강직 하고 후덕 했던 명재상 여몽정(944~1011) 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