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14회 황진이 <제26, 27話>

太兄 2023. 5. 1. 19:24

* 황진이 <제26話>

집으로 내려온 진이는 계절이 바뀐 어느 여름날 다시 지족암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직성이 풀리지 않아 어젯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샜다.

“중놈 주제에 내가 제자로 들어가겠다는데 거절을 해?”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졌다.

“천천히 가자! 나는 너의 발걸음을 따라 갈 수가 없구나...”

사실 진이도 숨이 턱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봄에 지족선사에 당한 모욕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더 관능적으로 춤을 추려한다.
마침 연못엔 연꽃이 절정이다.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 진이가 풍덩 빠졌다.
고혹적 춤을 한바탕 추면 지족선사도 물에 빠진 중생을 그냥 하산하라 매몰찬 말을 못할 것을 노린 계략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했듯이 진이는 기어코 지족선사를 자신의 품으로 오도록 하는 꿈을 접지 않는다.

진이에게 포기는 없다.
그녀가 사대부집 딸에서 서녀의 신분으로 바뀐 충격에 장님이 된 역경을 거치면서 사내들에 대한 분노로 기생의 길을 택했으며 그 같은 생각은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일종의 복수이기도 하다.

모녀는 똑같이 장님이 되었다.
어머니 현학금은 끝내 세상을 다시 보지 못했으나 진이는 기적적으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이승을 다시 볼 수 있는 광명을 찾았다.

지금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자유인으로 선언한 이후 숱한 역경 속에서도 남성위주 사회에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는 것도 그 전략의 하나다.
승무는 독무(獨舞)로 고혹적인 동시에 예술성도 높다.

그 춤을 지금 진이가 춘다.
춤을 추는 주인공의 역량에 따라 춤의 예술성과 내용이 달라진다.
진이의 승무에선 그녀의 삶과 예술의 세계가 농축되어 나온다.
붉은 가사에 장삼을 걸치고 백옥 같은 고깔에 버선코가 유난히 돋보이는 차림으로 염불·도드리·타령·굿거리·자진머리 등의 장단 변화에 따라 일곱 마당의 춤이다.

신음하듯 움틀 거리는 초장의 춤사위에서부터 열반의 경지까지 범속을 벗어날 수 있다는 법열(法悅)이 불변의 진리와 더불어 표상된다는 말미의 춤사위에 이르기까지 뿌리고 제치고 엎은 장삼의 춤사위가 혼화(渾和 : 순수한 온화로움)로 소쇄(瀟灑:기운이 맑고 깨끗함)속에 신비로움과 정교로움의 조화의 극치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의 고혹적 매력이라고 하겠다.

진이가 결국 이겼다.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버티다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다.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정복자인 진이의 가슴이 뻥 뚫어진 느낌을 받으며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689~740)의 《만산담에서》를 번개처럼 떠올렸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미워졌다.
30년이나 벽면하며 극락왕생을 꿈꾸었을 한 사내의 영혼을 울린데 대한 자책감과 옹졸함에 울고 싶어졌다.

‘낚시 드리우고 넓은 바위에 앉으니/
물 맑아 한가롭기 그지없다./
고기들은 연못가 나무 아래로 모이고/
원숭이는 섬에 자란 등나무를 타고 논다./
그 옛날 여인의 허리의 옥을 풀어 주었다는 얘기가/
바로 이 산에서 전해졌던가./
그녀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달빛 타고 노래하며 노 저어온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목표가 있다.
어떤 삶의 목표를 이루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목표가 없는 삶은 망각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진이가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하룻밤에 도로 아미타불로 만들어 놓고 당나라 시인 맹호연 시를 떠올린 것은 의외다.
30년 벽면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거운 하룻밤의 운우지정으로 접수했으면 통쾌하여 춤을 추며 콧노래를 불렀을 터인데 진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맹호연은 화가이며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와도 친교가 두터운 도연명을 존경하는 전원주의 시인이다.
그런데 유독 진이가 맹호연의 시를 떠올렸음은 좀 더 지조를 갖고 버텼으면 자신이 뜨겁고 향기로운 가슴으로 품기를 포기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레고리(풍자하거나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표현 방법)한 것은 아닌지 보여지는 시다.

지족암에서 진이와 화촉동방의 뜨거운 밤을 보낸 지족선사는 그 후 종적을 감추었다.
조계(曹溪)에 부끄러웠을 것이고 스스로도 맑은 정신으론 대명천지 하늘 아래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낱 기생으로 인해 30년 벽면 수행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세상 사람들을 맨송맨송한 정신으로 대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제 정신이 아닌 수도승이었을 터다.

아무튼 성리학 나라 조선의 사대부 사회에서 진이의 명성은 하늘을 찌른다.
양곡 소세양·종실의 후예 벽계수 등 내로라하는 남정네들은 그녀의 품에 들어오면 힘을 못 쓰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명월(진이 妓名)의 신비다.
세상 사람들이 겪어 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신비가 아니다.
명월의 신비는 겪어본 사람도 품을 떠나면 다시 그 신비함에 아리송해 하는 것이 바로 명월의 신비함이다.

진이는 지족암에서 하산 한 후 오늘로 열흘째 몸져누웠다.

“이 미음이라도 먹어야 하느니라.”

옥섬이모의 간곡함이다.
옥섬이모는 어머니 현학금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옥섬의 말엔 어머니가 딸의 건강을 염려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겼다.

“알았어요... 거기 놓고 나가 보세요...”

진이의 눈엔 지금도 지족선사가 자신의 음부에 들어와 천둥번개를 맞듯이 놀라움과 기쁨을 동시에 표시했던 얼굴 표정이 생생하다.
맹수가 사냥하여 먹이를 한입 크게 물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놀라움과 경이로운 감흥이 함께 섞인 울음의 분위기였다.

진이는 그 표정이 가여웠다.
그리고 지족선사의 의 말이 새삼 귓가에 생생하다.

“이 작은 절이 움직인다 하여 세상이 달라지겠소이까?”

다시 진이는 맹호연의 《국화담 주인을 찾아가서 만나지 못하고...》를 떠올렸다.

‘국화담에 다다르니/
마을 서편으로 해 이미 저물었네./
주인은 높은 곳에 오르러 떠났고/
닭과 개만 남아서 집을 지킨다.’

진이가 지족선사를 처음 지족암으로 찾아 갔을 때 위의 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이는 옥섬이모의 애정 어린 간곡함에 그날 오후 흰죽 한 그릇을 먹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이는 언제 자리에 누워 있었느냐는 듯이 그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에 쓰려는지 거문고 연습에 밤낮이 없다.
그런데 거문고 음률이 기쁨과 환희의 소리가 아닌 처연하고 가슴이 시린 황량한 음률이었다. 

 

* 황진이 <제28話>

몇 년 만에 극적 해우로 정염을 불태운 진이와 이생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제 정신을 찾았다.
동창으로 새벽달이 들어와 알몸뚱이 남녀를 감싸고 있다.
접동새 울음이 멀리서 들려오고 있다.
밤새 풀무질을 하고도 성이 안찼는지 이생의 손이 진이의 사타구니로 뱀처럼 기어온다.

진이도 싫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사내의 살 내음을 맡은 지 얼마만인가?
한양에도 송도에서도 진이가 마음만 먹으면 사내는 굴비를 꿰듯 꿸 수 있으나 그녀는 화담 서경덕 같은 사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제2 화담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래도 그녀는 계속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는 순간 진이의 삶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그녀가 존재하는 한 제2의 화담 찾기는 지속될 것이다.
이럴 때면 진이는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떠올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진이의 집념은 서릿발 같다.
숱한 사내들을 품에 안았으나 화담으로 향한 마음은 변치 않았다.
30년 면벽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겁게 품었으나 그녀의 펄펄 끓는 가슴을 식힐 남심(男心)은 아직 찾지 못하고 오늘도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진이는 전국을 바람처럼 거침이 없이 마음 가는대로 나도는 남사당을 찾았다.
진이의 기질과 딱 맞는 느낌을 받았다.
구경꾼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단원의 한사람으로 참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생이 나타났다.

하룻밤 정도는 미륵(彌勒)같은 존재일지는 모르나 진이의 마음을 채워줄 영혼의 사내는 결코 아니다.
그들은 새벽 운우지락을 한바탕 즐기고 낮 동안은 밤새 뜨거운 살을 섞으며 육체의 허기를 채울 때와는 다르게 뜨악한 분위기로 있다 날이 저물자 다정한 부부모양 남사당패 놀이마당을 찾았다.

낮에는 논·밭으로 나가 일하고 해가 서산으로 고개를 숙이자 농부들은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몇 백 년은 됐을 소나무 밑에 차려진 남사당놀이는 어둠이 깔리자 횃불로 사위를 밝히고 판이 벌어졌다.

진이는 어름사니 재주에 마음이 쏠렸다.
기생이 되기 전에 남사당을 알았다면 어름사니가 되었으리라 생각하였다.
언듯언듯 횃불에 비치는 얼굴이 당차 보였다.
자신보다는 어려보이지만 줄 위에서 날렵하게 자유자재로 재주를 부리는 개성 있는 연기에 매료되었다.

진이는 어름사니가 부러웠다.
몇 년 전에만 이 같은 남사당놀이를 알았다면 기꺼이 입단하여 어름사니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앞섰다.

“뭘 그렇게 골돌이 생각하고 보시오? 가서 국밥으로 저녁이나 먹읍시다...”
이생이 잡아끄는 대로 국밥집에 가서 이화주(梨花酒)에 국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주막으로 온 이생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오뉴월 들소모양 진이에게 달려들었다.
한바탕 제멋대로 육체의 허기를 채운 후

“나하고 아주 삽시다. 지난번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에 갔더니 나는 할 일이 없었소이다. 나는 아버지가 싫어 집을 뛰쳐나왔는데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 않고 유산을 남기셨더라고... 그 유산이 만만치 않아 우리 둘이 넉넉히 여생을 즐길 정도야! 그 동안 나하고 재미있는 추억이 많았지 않소?”
의기양양한 이생의 말투다.

진이의 귀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광평의 쇠처럼 굳은 심지 일찍 알았으니/
내 본래 잠자리 같이 할 마음 없었네./
다만 하룻밤 시 짓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
풍월을 읊으며 꽃다운 인연을 맺고 싶을 뿐...’

고려시대 기생 우돌(于咄)의 《국섬에게》다.

진이가 이생이 자기와 평생을 같이 살자는 제의에 갑자기 우돌의 시가 떠올라 사내 손을 버러지인 냥 소스라쳐 떨쳐버렸다.

진이에게 남자는 화담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몽주가 단심가로 고려 충신으로 영원히 남았듯이 진이가 번개처럼 포은(정몽주 호)의 단심가를 떠올린 것은 이승에선 화담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끝내려 하는 것이다.

포은은 이방원이 《하여가》 (何如歌)로 회유했으나 끝까지 버티다 선죽교에서 포살되었다.
목숨을 건 고려 충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포은은 역사에 영원히 역사로 살고 있다.

진이도 그렇게 하려는 의지다.

“왜 대답이 없소? 아버지에게 성(姓)은 받지 않았으나 유산을 받아 어차피 불효자로 찍혔으니 진이의 남자로 여생을 살고 싶소!”

“이생 서방님은 아직도 진이의 마음을 모르고 계십니까? 삼남을 비롯하여 금강산·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저의 온갖 것을 다 보고서도 더 보고 싶은 것이 남았습니까? 정신 차리세요! 이 진이는 어느 한 남자의 여자로 애초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말을 퍼붓고 벌떡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별이 총총하다.
몸에선 이생의 정액이 비릿하게 풍겼다.
유람할 때 수없이 느꼈던 익숙한 향기 같은 냄새다.
몇 년 전의 일이 어젯밤 정사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갈피를 못 잡아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려는 듯이 진이가 부리나케 남사당놀이 마당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구경꾼들의 요란한 함성과 박수에 신명나는 예쁜 어름사니는 줄 위에서 멋진 곡예를 부렸다.

저벅저벅 이생도 진이 뒤를 따랐다.
남사당놀이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보름달은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자 하늘의 자리를 내어주며 서쪽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넓디넓은 하늘의 자리에서 떠나기가 서러운지 붉은 태양이 아침 하늘에 불쑥 솟구치고서야 겨우 자리를 비켜주었다.

태양은 천상 사내여서인지 보름달이어도 여자는 수줍은 표정으로 하늘자리를 계속 버티지 않았다.
진이는 말로는 이생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으나 마음 한 구석엔 따뜻한 양지를 만들었다.
이생 정도면 마음을 터놓고 투정을 부리며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세양과 이사종은 넘치고 처졌다.
어쩌면 이생이 자기에게 딱 맞는 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화담이 홀연히 나타나 학춤을 추며 힐긋힐긋 진이를 훔쳐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