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이 <제24話>
자유인이 된 진이는 마음에 없는 사내와는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화대로만 몸을 팔 때에는 영혼이 통곡을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옥섬이모가 꼭 접대해야할 한양손님이라 하여 하룻밤을 잤는데 그 후 보름을 앓았다.
그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송도가 고려의 수도에서 한양이 조선의 서울이 된 이후 진이의 명성은 절대에서 상대적으로 바뀌었다.
한양엔 물 좋은 미녀들이 많다.
당시 한양에서 송도 진이와 겨뤄 볼 명기(名妓)는 성산월(星山月)과 관홍장(冠紅粧) 등에 불과하다.
그들은 장악원에서 노래와 춤 등을 배워 한양의 한량들은 물론 고고한 학자 관료인 사대부들에게도 밤엔 질펀한 향연의 대상이 되었다.
한양의 물 좋은 기녀들에게 싫증이 나면 그들은 송도에까지 원정 사랑놀이에 빠졌다.
상대는 진이였다.
당시 한양은 변화와 화려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으나 세련 된 멋과 아름다움의 극치 외에 송도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소위 송도삼절(서화담·박연폭포·황진이)외에 삼천리금수강산이 그것이다.
한양의 한량들이 송도에 오면 진이가 누구나 먼저다.
하지만 제일 먼저 찍는 것은 자유지만 상대를 고르는 선택권은 진이에게 있다.
몸의 당사자인 진이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내는 소세양과 이사종이다.
그들과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계약결혼을 맺어서다.
그런데 지금 벽계수와는 이별의 순간이 시계소리처럼 찰칵찰칵 다가옴이 왠지 싫다.
여명이 밝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진이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마음이다.
견디다 못해
“여보! 당신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
라고 깊은 잠에 빠진 벽계수에게 혼잣말을 하였다.
시간이 꽤 흐른 뒤다.
벽계수의 새벽물건이 벌떡 일어나있다.
사내 물건을 한 두번 본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그 물건이 신기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 물건을 여자에게 넣고 욕정을 채우는 사내들이나 그 물건이 들어오면 감정이 달아오르는 여자의 심정을 진이는 번개처럼 떠올렸다.
정복감이다.
사내는 자신이 나온 자궁을 다시 정복하는 것이고 여자는 정복자를 사로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전쟁이다.
뺏고 뺏기는 남자와 여자의 영토전쟁에서 진이는 정복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소세양과 이사종, 그리고 벽계수도 진이의 사람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지금 그가 날이 밝으면 한양으로 떠나려 한다.
그는 한양에 가서 진이를 정복하고 왔다고 포효할 것이다.
사실은 진이가 벽계수를 포로로 만들었는데 제가 정복하고 영토까지 만들어 놓았다고 호언장담할 것이 뻔하다.
아무튼 벽계수에게 지금까지 어느 남자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뜨거운 연정을 느꼈다.
그래서 하루 이틀 더 있다 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말하고 싶지는 않다.
벽계수 스스로 더 있도록 유도하려는 속내다.
‘낭군께 권합니다./
귀 달린 금 술잔을/
가득 따르겠사오니/
사양하지 마시옵소서./
꽃피면 비바람 되 심하게 분다지요./
인생 백년이라지만/
이별 없는 날이 몇 날이나 될까요.’
당나라 우무릉(于武陵)의 시다.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육체의 허기를 채운 벽계수는 새벽 물건이 일어나자 다시 진이를 끌어당겼다.
여자는 생각하지 않고 제 욕심을 급히 채우고는
“내 몸이 안 좋아서 하루 이틀 더 쉬고 가야겠소!”
라고 빙그레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진이의 생각은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그러면 그렇지. 네 놈이 첫 결심에 떠날 놈이 아니지!’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화대는 넉넉히 받았으니 더 내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각 방을 쓰는 거예요. 당초 계약은 오늘까지니까요“
진이의 태도가 단호하다.
그러면서 고려가요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를 떠올렸다.
‘넋이라도 임과 한곳에/
남의 일로만 여겼더니/
넋이라도 임과 한곳에/
남의 일로만 여겼더니/
어기던 사람 누구였던가, 누구였던가./
오리야 오리야/
어린 비오리야/
여울은 어디 두고 소에 자러 오는가./
소 곧 얼면 여울도 좋습니다./
여울도 좋습니다.’
작자 미상이다.
《만전춘별사》는 정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특히 기녀들 세계에선 비록 돈을 받고 몸을 내주었으나 살을 섞고 나면 야릇하게 정이 들어 헤어질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었다.
진이도 사랑엔 약하다.
화대를 받고 몸을 내어주어도 영혼까지 울리는 사내가 더러 있다.
벽계수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이 사내를 훌쩍 떠나보내면 두고두고 영혼이 통곡할 것 같아 겁이 덜컥 났다.
하루 이틀 더 있는 다니 천만다행이다.
마음속으로 더 있기를 바랐던 것이 성사되어 가슴이 벌렁거리게 기쁘나 표정을 숨기었다.
별방을 써야 한다는 조건도 사실은 일부러 붙인 조건에 불과하다.
바로 옆방인데 문지방만 넘으면 되는 방이다.
분 냄새까지 건너가는 거리다.
이튿날부터 진이는 겸상으로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다정한 잉꼬부부모양 행동하였다.
거기까지였다.
잠자리는 문지방 건너 방에 차렸다.
평소 잠자리 옷차림과 달리 오늘은 남청색 치마에 미색 저고리로 트레머리를 단아하게 틀어 올리고 기초화장만 한 채 자리에 들었다.
창밖엔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진이의 아랫도리엔 속곳이 없다.
벽계수가 문지방을 넘어 올 것이 뻔하여 일부러 입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깊고 새벽닭이 홰를 쳐도 벽계수는 문지방을 넘어오지 않았다.
한양 사대부와 송도 기생의 자존심 싸움이다.
여명이 밝자 진이는 스스로 부엌에 나가 아침을 지어가지고 들어왔다.
“잘 주무셨어요?”
벽계수는 말 대신 빙그레 웃었다.
낮엔 말을 타고 병부교와 대동강을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말도 별로 없이 쓸쓸한 표정이다.
이튿날도 진이는 속곳을 입지 않은 채 별방에 자리를 폈다.
벽계수는 저녁을 먹을 때 태상주를 두 병이나 비웠다.
그리고는 일찌감치 코를 골며 잠들었다.
새벽이 되어도 벽계수는 문지방을 넘어오지 않았다.
진이가 넘어갔다.
깊은 잠에 빠진 벽계수 물건은 물푸레나무처럼 땅땅하고 튼실하게 일어나 있다.
속곳을 입지 않은 진이가 하늘이 되었다.
벽계수는 끝내 모르는 척 진이에게 몸을 맡기고 마음껏 황제가 소녀경(素女經)을 즐기듯 기쁨을 만끽하였다.
벽계수 작전에 천하의 진이가 속은 듯 속아주었다.
진이는 벽계수가 한양으로 가는 길에 예성강까지 배웅하였다.
* 황진이 <제25話>
초하루에 시작된 고려미인의 화장은 보름이 되는 날에 절정을 이룬다.
벽계수와 헤어진 후 송도팔경을 유람하고 진이는 고려미인 화장에 열중이다.
그동안 소세양·이사종·이생 등과 뜨거운 살을 섞으면서 몸이 다양하게 속물화 된 것을 정화하려는 속내다.
기생의 몸이 돈이 되는 사내라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음이나 진이는 여느 기생과는 다르다.
몸은 청루가 즐비한 청교방 거리에 있으나 영혼은 선계(仙界)에 있다.
진이가 기생이 된 것은 사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신분이 바뀌면서 출발되었다.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호의호식하는 어느 날 사대부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하지만 본래 서녀였으니 사대부집 며느리는 당치않은 일이라며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압력을 못 이겨 포기하고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진이가 기생이 된 사연은 또 있다.
이웃집 총각이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그의 상여가 집 앞에 와 멎어 옴짝달싹 하지 않아 남녀칠세부동석의 사회에 속곳으로 상여를 덮어주어 상여를 떠나보냈다.
영혼이지만 처녀가 총각의 여자가 되었다.
진이는 그 후 더럽혀진 몸으로 기생이 되어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삶으로 갔다.
기구한 삶이다.
지금 고려여인으로 곱게 몸단장과 화장을 하는 것은 천마산 지족암서 30년 벽면 수행을 하는 생불(生佛)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품으려 하는 것이다.
동그랗고 아담한 얼굴, 자그마한 아래턱, 다소곳한 콧날과 긴 코, 약간 통통한 뺨과 작고 좁은 입, 흐리고 가느다란 실눈썹과 쌍꺼풀 없이 가는 눈에 정적인 얼굴....
지금 진이가 그렇게 화장을 하여 30년 벽면 수행하는 지족선사를 보통의 세상으로 데려오려는 속내다.
그 동안 진한 화장으로 하루하루를 세상 남자들을 황홀하게 해주었으나 지족선사는 사람 자체가 다르다.
청정 인간이다.
진이는 청정 인간이 원할 여인이 되려고 벌써 열흘째 몸을 꾸미고 승무(僧舞)까지 익히고 있다.
진이의 승무는 환상적이다.
남색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갑, 흰 고깔, 붉은 가사, 양손엔 부채를 들어 마치 선녀의 학춤 같은 춤새다.
송도엔 여전히 고려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다.
도성에서부터 고을고을마다 사람들의 풍습과 언행이 아직까지 억불승유(抑佛崇儒) 정책이 착근되지 못한 상태다.
진이가 지금 고려여인이 되어 승무를 추면서 지족선사를 뜨겁고 화려하게 품으려 한다.
쉽지 않은 목표다.
이번엔 아름다운 여인의 승무가 무기다.
이 전략이 통하지 않으면 청상과부로 변장하여 유혹하려한다.
두 계획이 모두 불교와 연이 닿는다.
천마산의 봄은 아름답다.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엔 못 미치나 천마산도 계절마다 절경이다.
오늘 진이는 거문고를 메고 천마산 지족암으로 향하였다.
지족선사를 뜨겁고 아름답게 품으려는 속내다.
진이 옆엔 옥섬이모가 따랐다.
“천천히 걷자! 이 늙은이는 숨이 차서 못 걷겠다!”
“길이 멀어요... 자칫 가기도 전에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해요?”
진이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지족선사는 오후 늦게는 매일 지족암 연못가에서 산책을 즐긴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때 산책하는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진이가 손을 내밀어 거부한 사내는 없다.
지족선사도 그러하리라 믿고 지금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산사의 오후는 짧다.
진이 일행이 지족암에 도착했을 때는 지족선사가 산책을 마치고 선방(禪房)으로 들어가려는 찰나다.
진이는 넙죽 큰절을 하고 제자로 삼아 달라고 애원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준비한 대로 옥섬이모의 거문고에 맞춰 승무를 추기 시작하였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냥 하고//
이 밤사 귀뚜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4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린 조지훈(趙芝薰·1920~1968)의 《승무》다.
당시 진이가 지족선사 앞에서 추었을 《승무》는 더 고혹적 춤새일 것이다.
술에 장사 없다 하듯이 미녀를 막무가내로 손 사례를 칠 사내가 있을까?
더욱이 천하일색 진이의 고혹적 유혹을 30년 벽면수행의 지족선사인들 마지막까지 석남(石男)인 냥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당나라 헌종 때 위와 같은 역사가 있다.
대 문장가 한유가 불교를 배척하는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곳(潮洲 : 조주)의 영산 축융봉에 태전선사가 있는데 고명한 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한유는 대학자답지 않게 울화가 치밀어 명기(名妓)로 이름난 홍련(紅蓮)에게 10일 내에 태전선사를 파계 시키면 큰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소위 미인계(美人計)다.
하지만 미인계는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홍련의 치마폭에 태전선사가 써 보낸 시는 이러하다.
‘십년동안 축융봉을 내려가지 않고/
색(色)을 관(觀)하고 공(空)을 관리하니, 색이 공일 뿐이네/
어찌 조계(曹溪)의 한 방울을/ 홍련의 한 잎새에 떨어뜨리겠는가!’
이 시를 본 한유는 감탄하여 태전선사에게 불법(佛法)의 요지를 되려 배웠다는 아이러니 한 역사다.
아무튼 진이는 위의 역사를 틀림없이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는 사내가 자신을 가지고 주인행세 하는 것을 어느 것 보다 싫어한다.
아니 저주한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진이는 사내가 자신의 불두덩 위에서 씩씩대며 황홀경에 빠져 있어도 어머니 품에 안긴 젖먹이 정도의 재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해도 그녀는 자존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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