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7회 황진이 <제13, 14話>

太兄 2023. 4. 16. 17:22

* 황진이 <제13話>

가을에 한양으로 떠났다 가을에 송도로 돌아왔다.
3년 사이에 송도는 많이 변해 있었다.
진이는 문득 이제현의 송도팔경 중 《용산추만》(龍山秋晩)을 떠올렸다.

‘지난해 용산에 국화꽃 피었을 때/
술병 들고 산 중턱에 올랐네./
한줄기 솔바람 부니 모자가 떨어지고/
붉게 물든 단풍잎 옷에 가득한 채/
술에 취해서 부축 받으며 돌아왔네.’

시를 다 읊은 진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늦가을의 보름달이 두둥실 떴다.

명월(明月)이다.
진이의 두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소나기가 쏟아지듯 떨어졌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눈물이다.
이사종과 계약결혼을 연장하지 않고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때렸다.

명월관은 그동안 가꾸지 않아 정원 등에 잡풀이 우거져 집 전체가 폐가처럼 보였다.
옥섬은 나이 들어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다.

진이는 이생(李生)을 불러들였다.
명월관을 정리한 뒤 금강산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진이가 부르면 조선팔도에서 몇몇 사내를 빼고는 안 올 사람이 없다.
한양에 이생은 밤새 연락을 받고 이튿날 저녁 늦게 송도에 도착하였다.
이사종이 천하의 소리꾼에 헌헌장부로 진이의 가슴을 들뜨게 한 사내였다면 이생은 왠지 마음이 편해 긴 여행에 동행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순수한 사대부로 자유로운 영혼의 주인공이라 더욱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세양과 이사종을 통해 사내들의 내면에 있는 여자에 대한 깊은 생각도 이젠 정립되어 선입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내들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확고해졌다.
조선팔도 사내들은 허리 밑으로 어느 누구든 정복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어머니 현학금이 연산군의 사랑놀이 대상의 여자가 되기 싫어 약을 먹고 장님이 되었으며 진이 자신도 금지옥엽 귀염을 독차지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서녀(庶女)신분이 된 충격으로 한 때 장님이 되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문제는 사내들이었다.
어머니 현학금은 임금인 연산군이었으며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다.
그 같은 신분이 세습되어진 자신은 기생신분이었을 때 어느 때부터는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이 아닌 꽃이 주인공이 되어 나비를 불러들이는 꽃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진이는 지금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결심하였던 것을 행동하려 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두터운 사대부 벽을 부수려 하는 것이다.
한양에서 이사종과 3년을 살고 와서 그 마음이 더욱 굳어졌다.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가는 송도의 향기를 보여주고 싶고 여근곡(女根谷)의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선덕여왕(善德女王)의 기개를 되살리려는 야심도 생겨서다.

사실 퇴기이모 옥섬의 얘기가 천번만번 옳아 잠자리에서 입증되는 사례를 진이는 수도 없이 실천해 왔다.
겉으론 천하를 쥐고 흔들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호언장담 하지만 그 말은 계집 앞에서 기죽기 싫어 허언(虛言)을 했음이 날이 새면 드러나지 않는 사내는 진이는 지금껏 몇 명보지 못하였다.

송도는 여성적 도시이고 한양은 남성적 도시임을 진이는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
한양의 사대부들이 평양을 색향(色香)이라 함도 진이는 한양 살이 3년 동안에 터득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진이는 자신의 자유영혼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데 소세양과 이사종의 계약결혼이 산지식이 되었다.

사내가 이젠 무섭지가 않은 것이다.
자신이 품으면 조선팔도 어느 사내도 어린아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이는 한양에선 미처 몰랐던 것을 송도에 와서 삼봉(정도전의 호)의 《한양찬가》가 얼마나 사내다운 시(詩)인가 새삼 느꼈다.
익제(이제현의 자)의 《송도팔경》은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화(詩化)했으나 《한양찬가》는 왕업(王業)의 위대함을 노래 불렀다.

진이는 어느새 삼봉의 팬이 되었다.

‘줄지어선 관청은 우뚝하게 서로 마주서서/
마치 별이 북두칠성을 끼고 있는 듯/
새벽달에 관가는 물과 같으니/
명가(鳴珂:말굴레 장식품)는 먼지 하나  일지 않누나.’

《한양찬가》중 《열서성공》(列署星珙)이다.
진이는 거문고에 두 도시의 찬가를 동시에 실었다.

이번엔 《송도팔경》중 《자동심승》(紫洞尋僧)이다.

‘바위 옆을 돌아 냇물 건너가며/ 숲을 헤치고 봉우리 밑을 올라가네./
사람을 만나 절을 물어보니/
종소리 나고 연기 나는 데로 향해 가라하네./
풀에 맺힌 이슬은 짚신을 적시고/
송화가루는 중의 적삼에 점찍어 놓네./ 
탑 앞에 앉아 세상만사 잊고 있으니/
산새는 어서 돌아가라 재촉하네.’

거문고를 가슴에 품은 진이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하다.
옆에 있던 이생이 입을 열었다.

“왜 그리 슬픈 표정이요? 금방 울 듯하오!”

진이의 거문고 소리가 끝나자 옥섬이모가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우선 목부터 축이세요... 이 진이가 소문으로만 듣던 이생 선비님을 모시려고요...”

이생은 벙벙한 표정이다.

조선 사내치고 명월을 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내가 없는데 자신을 명월이 스스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꿈만 같기 때문이다.

“자 어서 한잔 드세요!”

진이가 손수 잔 하나 가득 따라 권한다.
이생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인이 하듯 진이의 말에 따랐다.
태상주는 독한 술이다.
주거니 받거니 태상주 몇 병이 삽시간에 비워졌다.

해는 어느새 땅거미로 변했다.

“이제 그만 잡시다.”

진이가 잠자리에 앞장섰다.
진이는 잠자리에 들면 늘 옥섬이모의 말이 떠올라 꽃잠을 연출하였다.
사내들은 누구나 여자는 자기가 처음이기를 바라는 심리를 알고 있어서다.

진이는 술상을 뒤로 밀어내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농익은 복숭아 빛의 한 쌍의 유방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생은 안절부절 못하였다.
진이의 도발에 남성성이 삽시간에 고개 숙였다.
기가 죽었다.
창문으로 아직 석양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이리 오세요! 나를 품으려고 허겁지겁 오신 것이 아닌가요? 자 이 진이를 마음껏 보시고 즐기세요!”

진이가 홀라당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생이 누구인가!
어엿한 사대부 집 헌헌장부인데 지금 시기(詩妓) 진이 앞에서 눈 둘 곳을 찾고 있다.

“어서 오늘 저녁은 이 명월을 마음껏 즐기세요! 그리고 팔도강산 유람 할 때는 제가 상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내일이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연인처럼 연리지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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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올립니다.

* 송도팔경

‘송도팔경(松都八景)’은 고려 말 이제현(李齊賢)의 『익재난고(益齋亂藁)』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등의 기록에 남아 있어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유행한 주제였음이 확인된다.

「송도팔경도」의 여덟 장면은
① 자동심승(紫洞尋僧)
     자하동의 중 찾기
② 청교송객(靑郊送客)
     청교의 손님 배웅
③ 북산연우(北山烟雨)
     북산의 연기와 비
④ 서강풍설(西江風雪)
     서강의 바람과 눈
⑤ 백악청운(白嶽晴雲)
     백악의 갠 구름
⑥ 황교만조(黃郊晩照)
     황교의 저녁노을
⑦ 장단석벽(長湍石壁)
     장단의 돌벽
⑧ 박연폭포(朴淵瀑布)

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① 곡령춘청(鵠嶺春晴)
     곡령의 맑게 갠 봄날
② 용산추만(龍山秋晩)
     용산의 늦가을
③ 자동심승(紫洞尋僧)
     자하동의 중 찾기
④ 청교송객(靑郊送客)
     청교의 손님 배웅
⑤ 웅천계음(熊川禊飮)
     웅천의 액막이로 모여 마시는 술자리
⑥ 용야심춘(龍野尋春)
     용야의 봄 찾기
⑦ 남포연사(南浦烟莎)
     남포의 안개속 도롱이
⑧ 서강월정(西江月艇)
     서강 달밤의 고기배

으로 구성되기도 했다. 

 

* 황진이 <제14話>

밤새도록 사랑놀이를 하고도 진이와 이생은 피곤한 기색 없이 말에 올랐다.
말 등엔 거문고와 점심에 먹을 간단한 음식이 실렸을 뿐이다.
어차피 얻어먹으며 유람생활을 할 것을 이것저것 가지고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묘향산을 출발하여 지리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 갈 생각이다. (말도 안되는 코스구만~손)
그래도 진이의 속주머니엔 외숙부가 건넨 비상금이 있다.

진이는 자신의 몸뚱이를 여행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다.
돈이 떨어지면 이 절 저 암자를 찾아 구걸을 하고 그것이 안 되면 몸을 달라면 주려는 속내도 가졌다.
그런 생각까지 하니 무서울 것이 없다.
호위무사로 이생이 있으니 짐승한테 물려 갈 염려도 없으니 진이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이생은 이생대로 마음이 즐거웠다.
아버지는 포의(布衣:벼슬 없는 선비)로 정암(靜庵:조광조 호)과 의기투합 했었으나 곤궁하여 그를 배신하여 선비로서 자격이 없다하여 15살의 이생이 이름을 버리고 팔도를 유랑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한양에서 진이와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정암과 의기투합이 잘 되었다면 출사는 못했어도 높은 학문의 세계에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준 이름을 버리고 세월을 낚으며 팔도를 유랑했던 것이다.

이생이 진이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것이다.
그토록 조선팔도 사내들이 품에 넣고 싶어 했던 명월을 매일 곁에 두고 밤잠까지 할 수 있으니 횡재 중에서도 상 횡재한 사내가 되었다.

그들은 묘향산 보현사에 다다랐을 때는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하늘을 덮은 고목들로 밤 같은 분위기다.
그들은 길 위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으나 허기가 졌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주지스님을 찾았다.
진이도 남장차림이다.
이생만이 진이를 여자로 알고 있을 뿐이다.

주지스님은 저녁을 주고 방까지 내주었다.
허기를 채우자 그들은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이생이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코에 선향(仙香)이 들어왔다.
보현사 특이의 향이려니 하고 다시 잠을 청했으나 선향은 점점 더 짙게 느껴졌다.

옆에서 곤히 잠든 진이한테서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향기였다.
이생은 처음엔 자신이 진이한테 홀려 느끼는 착각이려니 생각하기도 했으나 진이가 숨을 내쉴 때마다 선향이 자신을 구름처럼 휘어 감았다.

꿈이 아니었다.
창문으로 푸른 달빛이 들어와 진이의 얼굴에 머물러있다.
신선이 누워 있는 것이다.
이생이 진이를 여자로 보고 사내 역할을 하려던 욕망을 접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묘향산엔 향목·동청(冬靑) 등 향기로운 나무들이 많아 묘향산(妙香山)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생은 처음엔 그런 향기려니 생각했었는데 방안에 점점 더 향기로운 향이 짙어졌다.

진이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향기로운 향취가 안개처럼 퍼졌다.
진이는 어느새 이생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선

‘세상 가는 곳 마다 환락의 장소에는/
음악소리가 호화로운 집 울리지만/
쓸쓸한 산가(山家)에는 즐길만한 것 없어/
하늘이 새들 시켜 피리퉁소 불게 하네.’

원감(園鑑)의 《새벽에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를 떠올리며 잠꼬대를 하였다.

명월이 이생의 품에서 꿈틀댔다.
첫날의 합방은 얼떨결에 몇 번의 방사를 했으나 태상주 기운에 비몽사몽 상태라 진이의 깊은 맛을 미쳐 느껴보지도 못하였다.
이제 흡족하고 멋지게 즐길 수도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왠지 명월이 무서워졌다.

둘이 있을 때엔 형 아우로 하고 뭇사람들이 있을 때는 상전과 하인으로 하자 했는데 첫날부터 상전으로 느껴졌다.
여자가 분명한데 젖먹이가 어미를 대하는 심정이다.

진이의 체온이 서서히 옮겨져 오고 있다.
진이의 두 팔이 벌어져 이생을 끌어안았다.
이생의 숨결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진이가 쾌락의 대상이 아닌 예사롭지 않은 경계해야 하는 존재로 느껴져 무서워져서다.
진이는 더욱더 뜨거워진 몸으로 이생을 끌어당겼다.

그때 진이의 입에서 시가 나왔다.

‘기다려도 기다리는 사람 오지 않고/
스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
오로지 숲 속에는 새들만 있어/
지저귀는 소리에 술 생각이 나는구나.’

이인로(李仁老)의 《천수사 벽에 쓰다》다.
진이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으나 고려 여인으로 긍지를 잊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벤치마킹한 강좌칠현(江左七賢)을 경모(敬慕 : 깊이 존경하고 사모함)하였다.(강좌칠현 : 고려 후기에 명리(名利)를 떠나 사귀던 일곱 선비. 이인로, 오세재, 임춘, 조통,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를 중국 진나라 때의 죽림칠현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칠현 중에서 특히 문장에 뛰어나고 절행(節行 : 절개를 지키는 행실)으로 추앙받는 함순(咸淳)을 늘 마음속에 두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역시 강좌칠현의 일원인 이인로의 작품을 진이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암송하였다.

지금 진이가 꿈속에서 함순을 만나고 있으면서 입에서는 이인로의 시가 나왔다.
이생은 진이를 가슴에서 떼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으슥한 밤이다.
산사(山寺)의 깊은 밤은 적막하다 못해 무덤 속 같이 고요하다.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았으나 진이가 깼다.
이생이 옆에 없자 진이도 밖으로 나왔다.

“밤이 깊었소! 잠을 더 자고 일찍 길을 떠납시다.”

말을 남기고 진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오란 말투다.
이생은 잠시 아버지를 떠올렸다.
영웅심에 들떠 정암을 고발하고 순간적으로 들떠있던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버리고 비렁뱅이가 된 것에 대한 반추(反芻 :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함)다.

이생 아버지의 정암 모함으로 촉발된 기묘사화(己卯士禍)는 숱한 사림파 선비들이 죽거나 벼슬에서 쫓겨났다.
사대부 집안의 체면이 아니다란 신념으로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팽개치고 팔도를 유랑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대단한 도덕군자도 아닐진대 라고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총총히 진이가 다시 들어간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방으로 들어온 이생은 마음을 굳게 먹고 진이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진이도 말없이 사내가 하는 대로 몸을 움직여주었다.
명월관에서 첫 방사를 할 때보다 이생은 몸과 마음이 흡족하였다.
몸과 마음을 흡족히 나눈 그들은 산사의 새벽종이 울리기도 전에 총총히 발길 닿는 대로 길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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