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황진이 <제3, 4話>

太兄 2023. 4. 5. 17:32

* 황진이 <제3話>

양곡과 명월의 말이 나란히 걷는다.
풍악산(금강산의 가을 山名) 유람 길에 올랐다.
잠자리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양곡은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어젯밤의 서너 번의 방사로 기진맥진한 상태다.
명월도 사타구니가 얼얼하여 걷기조차 거북하지만 추호만치도 내색이 없다.
사내에게 지기 싫어서다.

또한 그녀는 사내를 맞을 때마다 우리나라 최초 여왕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여근곡(女根谷)에서 백제군을 섬멸한 역사를 상기시켰다.

양곡이 ‘30일 동거’ 후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하여 특히 잠자리에 신경 쓰고 있다.

명월은 양곡의 ‘30일 동거’는 허풍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토하고 있는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친구들한테 고백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개성에 온지 30일 후에 개선장군처럼 한양에 나타나 번듯한 요릿집에서 한턱내며 “나는 역시 인간이었다.”라고 일갈 하려는 배포를 무참히 꺾으려는 속내다.

가을의 금강산은 풍악산으로 불린다.
늦 단풍이 붉게 타고 있다.
바람이 쌀쌀하다.
어젯밤에 태상주 술기운에 둘은 밤새는 줄 모르고 욕심껏 육체의 향락을 즐겼음이 지금은 과욕이었다는 것을 둘은 한 몸처럼 느끼고 있다.
그들은 박연폭포에서 점심을 먹고 말고삐를 돌렸다.

명월이 먼저 말을 꺼냈다.

“소녀 엊저녁에 대감께서 너무 깊이 사랑해 주셔서 더는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풍악산은 다음에 구경하시고 오늘은 이만 돌아감이 어떠하실 지요?”

“그래도 되겠느냐?”

양곡은 방금 본인이 하려는 말을 명월이 대신 해준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목소리는 쇳소리가 나고 입에선 단내가 풀풀 풍겼다.
자칫하다가는 말 등에서 떨어질 뻔 아찔한 순간까지 있었다.
하지만 박연폭포까지 와서 그냥 바람처럼 떠나갈 명월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물줄기가 골짜기를 갈 듯 뿜어내니/
용추에 떨어지는 백 길 물소리 우렁차라./
솟아 내리는 물줄기 쏟아지는 은하수인가 싶고,/
노한 듯 가로 드리운 물줄기 바로 흰 무지개일세./
소쿠라지는 물벼락 온 골짜기에 가득하고,/
물보라는 부서지는 옥인 양 갠 하늘에 사무치네./
유람객이여, 여산폭포가 낫다는 말은 하지 마오./
천마산의 박연폭포 우리나라의 으뜸이라오.’

황진이의 《박연폭포》다.

그들은 풍악산으로 가려다 천마산의 박연폭포 늦가을 단풍에 취하여 있다 귀가 하였다.
그들의 온몸에선 늦가을 단풍향이 향수처럼 풍겨 나왔다.
명월의 특이한 선향(仙香 )과 단풍향이 어우러진 향이 양곡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달구었다.
방에 들어서자 양곡은 명월을 힘껏 쓸어안았다.

양곡은 내일 한양으로 갈 몸이다.
명월은 양곡이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뜨거운 입김엔 어젯밤 열정의 단내가 얼굴을 감쌌다.

“명월이 나하고 한양에 가지 않으련? 개성보다 한양이 명월에겐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장악원(掌樂院)에 들어가 예악연구를 더하여 이론을 만들어 놓으면 후세가 그것을 배우지 않겠느냐?”

“소녀를 소실(小室)이 되라는 말씀인가요?”

초롱초롱하면서도 가을 호수같이 평온하였다.

표정이 먹이를 노리는 맹금류(猛禽類)눈초리로 변하였다.

“그런 뜻이 아니고 개성도 좋은 고장이고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이 있어 유명한 도시이긴 하지만 조선의 중심은 역시 대궐이 있는 한양이지. 그곳에 가서 명월의 명성을 더욱 높였으면 하는 생각이지... 내 다른 뜻이 있어 한 말은 아니네!”

“뜻은 고마우시나 소녀는 개성의 몸으로 태어나 고려여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렵니다.”

명월의 진지함이 흡사 출사표를 던진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표정이다.

“내 알았느니라... 너의 미색과 학식이면 한양에 가면 이곳보다 더 뜨겁고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네 의향을 물어본 것 뿐이니라...”

양곡의 검은 마음을 첫마디에서 알아차렸다.

사내들은 마음에 드는 기생을 노류장화(路柳墻花) 쯤으로 보고 소실로 집에다 앉혀 놓으려는 심보를 명월은 숱한 사내들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쳤던 것이다.
명월의 싸늘한 표정을 등 뒤로 느끼면서 양곡이 지필묵을 주섬주섬 챙겼다.

“지금 떠나시려고요?”

“가려하느니라...”

양곡답지 않은 풀죽은 목소리다.

명월은 말 등에 실린 거문고를 연두(몸종)에게 가져오라 하여 자신이  만든 곡을 타며 창을 불렀다.

‘낙양성 동쪽에 핀/
복사꽃 오얏꽃/
꽃잎이 날아가면 뒤 집에 떨어지나!/
낙양에 사는 계집애들은/
얼굴이 시들까봐/
떨어지는 꽃잎만 봐도/
긴 한숨을 내 쉰다네./
금년에 핀 꽃지고 나면/ 얼굴 다시 여위리니/
그 누가 와서 보여주리.’

이백(李白)의 《늙음을 서러워하며》다.

명월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와 거문고에 떨어졌다.
그때다.
명월을 젖먹이가 어미를 바라보듯 바라본 양곡이 갑자기 지필묵이 싸인 보따리를 들고

“진이야! 나를 예성강까지 배웅을 해주면 어떠하겠느냐?”

라는 말을 등 뒤로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느새 해는 지고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의 하늘엔 벌레 먹은 사과모양의 달이 기우뚱하게 떴다.
말 두 필이 준비되었다.
양곡은 대명천지에 명월관을 나서고 싶지 않아 계획적으로 밤에 길을 나서는 것이다.

“대감! 왜 제 기명인 명월을 부르지 않으시고 본명인 진이를 부르셨습니까?”

“기명으로 부르지 않는 것이 궁금하더냐?”

“그러하옵니다.”

“진이는 기명으로 부르는 것 보다 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려서 내 앞으로는 그리 부르기로 마음먹었느니라... 명월이란 기명은 너무 멋스럽고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워 쉽게 다다가기가 어려우니라. 하늘에 두둥실 떠 있으면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명월을 품을 수 있겠느냐? 앞으론 네 본명을 부르고 내 주위의 친구들에게도 진이로 부르도록 입소문을 낼 것이니라...”

그 후 명월이란 기명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예성강에 그들이 도착하자 나룻배 한 척이 대기하고 있다.

“내 한양에 가 정무를 처리하고 곧 다시 올 것이니라.”

진이는 왼손 약지의 은가락지를 뽑아 양곡에게 건넸다.
나룻배의 횃불이 강 건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한 진이는 밤이 이슥해서야 명월관에 도착하였다. 

 

* 황진이 <제4話>

양곡은 젊은 시절에 여색에 빠진 자는 남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명월이 시재(詩才)와 미모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과 약속을 하였다.

“내가 그 여자와 30일을 동숙(同宿)하고 이별을 못하고 하루라도 더 머물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약속을 했으나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 했는데 사대부의 나라에서 친구들에게 한 약속을 선비가 지키지 않았다.
그것도 천재지변이나 연로한 부모의 갑작스런 병고나 몸담고 있는 벼슬길에서 왕명도 아닌 한낱 노류장화(路柳墻花)인 기생으로 사내대장부가 친구들과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쳤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동네 청년들이 이웃집 예쁜 아가씨를 놓고 한 약속이 아니다.
당시 송도 명월의 소문이 한양에까지 퍼져 한량들의 마음이 온통 들떠 있을 때였다.

고려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 넣고 조선을 세운 신흥 사대부들은 체면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국교(國敎)로 대대로 이어오던 불교를 과감히 유교(儒敎)로 교체했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世不同席)과 삼종지덕(三從之德)등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 인격체로 규정하여 사회적 제약을 법적(종모법 從母法)으로 또는 도덕적 올가미를 씌워 놓았다.

세계사적으로도 여성의 사회활동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으나 조선은 그 정도가 특히 더 하였다.
그런 역사 속에서 잘 나가는 사대부 양곡이 일개 기생인 명월(本名 황진이 이하 진이)에게 빠져 ‘남아일언중천금’이란 세상에서 일탈하여 약속을 어겼다.

사대부의 나라 조선도 허리 밑엔 별수 없이 약했을 터다.
하지만 지체 높은 양곡이 진이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허리 밑도 봄꽃처럼 피어나는 즐거움도 기쁨이지만 바다 같고 만리장성 같은 문화예술세계에 탄복했을 것이다.

이웃인 일본은 사무라이(武士)의 나라로서 허리 밑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선비의 나라 조선에선 일본과 달리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하지 않았던가!

사실 사내들이 여자를 찾는 것은 찰나적이나 마초(macho)의 본능에 충실하려 한다.
색향(色鄕)으로 소문이 난 송도에 가려함은 허리 밑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이 강하다.
양곡도 진이와 30일이란 기간을 정하고 소위 계약 동숙(결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이는 평소에 양곡이 생각하였던 노류장화가 아니었다.
계약결혼 마지막 날 시(詩) 한 수에 그의 영혼은 넋을 잃었다.

‘달빛어린 뜨락에 오동잎 다 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는데/
누각이 높아 하늘이 한 척 이요/
사람이 취해 술이 천 잔이라/
흐르는 물은 거문고 가락에 맞춰 서늘하고/
매화는 피리소리에 들어 향기롭구나/
내일 아침 서로 헤어지고 나면/
그리는 정은 푸른 물결처럼 길게 뻗치리라.’

양곡은 진이의 이 시를 듣고 한양의 친구들에게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할 용기가 생겼을 것이다.

진이를 알게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소문으로 떠도는 진이를 직접 만나 뜨거운 살을 섞고 보니 저잣거리에 나도는 풍문이 얼마나 잘못 알려졌음을 알수 있었다.
노류장화나 말하는 꽃이 아닌 지식인 진이라는 것을 알게 됨에 스스로 그녀 앞에 겸손하여 졌음일 게다.
아마도 진이가 한시, 시조에 능통한 자유인으로 남자로 태어났다면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남명 조식, 하서 김인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학자 위치에서 경륜(經綸)을 논하며 문화예술세계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양곡은 그 후 두 번 더 진이를 찾았다.

계약결혼이란 세기적 발상은 조선사회를 경천동지(驚天動地)케 했을게다.
낭만과 문화의 나라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여성해방운동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1929)보다 378년 앞섰으며 영화감독 문여송과 소설가 김이연과의 계약결혼보다는 무려 400여년이나 앞선 선구적 페미니스트였다.
양곡은 진이의 시·서·화의 삼절(三絶)을 넘어 춤·노래·거문고 등으로 당시 조선이 상국(上國)관계로 있는 중국 문화에도 정통하였던 그녀에게 녹아든 것은 어쩌면 사내로서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진이는 옥섬(진현금의 의동생)으로부터 잠자리 기술도 배웠다.

“네가 싸늘하면 사내 역시 싸늘할 것이요. 네가 뜨거우면 사내도 뜨거워 질 것이고 네가 깊어지면 사내 또한 깊어질 것이다. 헛되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질러서 힘을 빼지 말고 깊이 숨을 마시며 음기를 몸 전체에 고루 모아 낮은 소리로 한없이 속으로 빨아들이거라... 사내란 겉으론 천하를 움직일 듯 하지만 알고보면 연약하느니라...”

라고 꽃잠(첫날밤)의 기술을 가르쳤다.

이토록 진이는 여자로서도 완벽하였으며 학자(지식인)로서까지 조선의 사대부 수준에 손색이 없었다.
화담 서경덕의 수제자 허엽과 동문수학했으나 오히려 그의 학문수준을 훌쩍 뛰어 넘었지 않았나 싶다.

허엽의 딸 허난설헌이 역시 조선시대에 출생하여 남성사회에서 그녀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27년이란 짧은 삶을 마쳤다. 허난설헌은 사대부집 고명딸로 태어나 엄격한 사회적 제약으로 기를 펴지 못했으나 진이는 달랐다.

진이는 과감히 자유를 선택하였다.
양가집 딸에서 어느날 갑자기 얼녀(孼女)로 전략하여 소실의 길 정도를 선택할 수 있었으나 그녀는 과감히 자유인 기생의 길로 들어섰다.
억압의 비단길보다 자유의 자갈밭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녀생활 3년 만에 기적(妓籍)에서 빠져 나와 자유인이 되어 지족선사(知足禪師)·소세양·벽계수(碧溪水)·이생(李生)등을 품어 진이의 세상을 만들었다.

진이의 경륜과 문화예술세계는 외숙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머니 진현금의 DNA로부터 이어 받은 천부적 예능의 자질은 외숙부가 원천(源泉)이다.
외숙부는 비록 하급 악사였으나 사대부 못지않게 학문이 높았으며 그의 서재엔 만여 권의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런 가족사를 진이는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그 같은 진이의 세상에 대보름달이 휘영청 뜬 분위기에 남녀칠세부동석과 삼종지덕의 사내들이 불을 본 부나비처럼 하나 둘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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