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를 넘어서 본질적 평화로 전환하자

太兄 2026. 2. 2. 21:20

<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를 넘어서 본질적 평화로 전환하자 >

 

  평화학(Peace Studies)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은 요한 갈통(John Galtung, 1930-2024) 교수이다. 그는 노르웨이 출신이며 사회학자 평화연구자이다. 1959년에 오슬로국제평화연구소를 설립했고, 평화학 이론 정립과 실천운동가로서 활약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 나라나 지역에 맞는 평화 커뮤니티(Peace Community)를 제안하여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70년대 이후로 남한을 많이 방문했고, 강연과 학술행사의 주인공으로서 열변을 토했다. 1989년과 2000년에는 북한도 방문했다. 그는 ‘한반도의 중립화를 통한 공동번영’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한반도 평화설계안’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갈퉁이 유명한 인물이 된 계기는 기존의 ‘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이다’는 정의(定義)를 더 세분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라고 불렀고, 이보다 진일보하여서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전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 차별적 제도, 식량과 의료의 불평등, 유무형의 억압과 같은 구조적 폭력까지 없는 상태, 그리고 정의, 평등, 인권이 실현된 상태가 적극적인 평화라고 규정했다. 이 새 개념이 세계평화 구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다. 각종 국제기구, NGO, 인권과 관련한 담론(談論)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필자는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를 넘어서 ‘본질적 평화’(intrinsic peace)를 주창한다. 이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에 맞는 평화이론과 실천을 하자.’는 것이다. 즉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되는지? 등을 먼저 파악하고서, 이를 근거로 평화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유를 들면, 환자가 있으면 정확한 진단을 하고서 처방을 해야 효과가 있듯이,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 자체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알아야 평화이론과 실천 프로그램이 올바로 작동할 수가 있다.
  그러면 인간이란 어떤 특징을 가진 존재인가? 그것은 세가지이다.

 

첫째, 종적(縱的)으로 하늘(天, 神, 佛, 하나님, 上帝,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자세를 가지면서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는 개성진리체가 되어야 한다. 즉 내면에 하늘을 섬기는 자세를 갖고서,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온유 겸손하고 감사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마음의 중심에 “내가 모시고 섬겨야 할 대상이 계시는구나!”는 영성(靈性)을 가질 때에 참평화, 본질적 평화가 시작된다. 북미(北美)의 원주민들은 “우리는 영성이 없이 사는 것 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하늘을 공경하는 애천(愛天) 경천(敬天) 사상과 문화를 만들었다. 그들의 삶은 화려한 물질문명 속에서 자승자박(自繩自縛)하면서 고통을 자초(自招)하는 물량적 인간들에게 청량(淸涼)한 이미지를 남겼다. 따라서 종교를 믿지 않는 자라도 신기하고 경이롭고 영원한 순환을 하는 대우주 앞에 모래알처럼 극소(極小)한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겸손하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인류한가족이라는 개념에서 횡적(橫的)으로 가정, 다양한 공동체, 국가, 세계를 형성해야 한다. 가족은 서로의 장단점을 배우고 보완해 주고, 곤경에 처하면 기꺼이 돕는다. ‘남’이라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오색인종의 만인(萬人)이 나의 가족이다.”라는 큰 사랑(Great Love), 위대한 가족(Great Family)의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이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시원(始原)이 되는 적대감을 극복하는데 초석(礎石)이 된다.

 

  셋째, 지구와 우주에 산재하는 천혜(天惠)의 자원(資源)들은 인류의 공동 소유라는 인식을 하면서 최대한 공유 공생하는 체제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자원을 독점하기 위하여 남이나 다른 국가를 배제시키고 굴종시키게 만들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전쟁을 할 것이 아니라, 보물과 같은 천혜의 보고(寶庫)인 대자연을 같이 즐기고 개척하면서 행복을 증진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사랑의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본질적 평화사상을 가지면, 소극적 평화나 적극적 평화를 동시에 아우르는 효과를 낳는다. 이제 우리 모두는 ‘평화의 사람, 평화의 아버지와 평화의 어머니, 평화의 아들과 평화의 딸’이 되어서, 인류대가족으로서 함께 하늘을 섬기고 공경하는 ‘애천 경천의 평화공동체’를 이루어 보자. 그것이 유토피아가 실현된 천국이고 극락이 아니겠는가? 창문이 닫히고, 짙은 커튼을 쳐 놓은 방에는 곰팡이가 생기고 악취가 난다. 그러나 커튼을 재치고 창문을 활짝 열면, 금방 햇살이 들어와서 방안이 환해지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서 칙칙한 내음이 사라지게 된다. 이처럼, 우리 모두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서 마음을 열고 서로 마주하면서 본질적 평화의 공동 주인공이 되어 보자.
  세계 도처(到處)에서 군사 전쟁과 정치 정쟁(政爭)이 혹독하다. 의인(義人)이 구속(拘束) 수감이 되어 있고, 빈곤과 질병의 고통이 심하다. 이제 분연(憤然)히 일어나서 폭음(爆音), 굉음(轟音), 신음(呻吟), 비명(悲鳴)소리를 잠재우고, 평화의 사람들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 사랑의 노래, 행복의 노래’ 소리가 지구촌에 울려 퍼지게 해 보자. 하늘이 감동하시고 우리에게 영광과 천복(天福)을 내려주시지 않겠는가?(一光 趙應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