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5년 뒤에는 AI인간이 우리와 같이 살게 된다. 좋을까? 나쁠까? >
인간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하늘이 부여해 주신 창조력의 위력이 마음껏 발휘되고 있다. 광대한 우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하여 미국이 1958년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1961년에는 유인 우주선이 발사되었고, 1962년에는 지구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이 발사되었다. 마침내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였고, 인류 전체가 흥분했다. 그 이후로 시작하여 대기 중에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우주선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우주정거장도 세워졌다. 그리고 우주시대를 장악하여서 군사적 패권을 잡으려는 시도가 대세이다.
그리고 땅에서도 AI 로봇이 인간과 동행 동거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휴머노이드(Humanoid)로 불리는 ‘AI 인간 로봇’이 앞으로 5년 후가 되면, 2030년 쯤에는 우리가 걸어 다니는 인도(人道)에 우리의 친근한 이웃처럼 같이 걸어 다닐 것이다. 외모로 보면, 치장(治粧)을 잘하고 옷도 잘 입어서 우리와 다른 점이 없다. 걸어 다니는 인공 인간이다. 일본에서는 아시모(Asimo), 보스턴에서는 마음대로 운동을 하는 아틀라스(Atlas), 테슬라에서는 산업현장에서 생산 노동을 하고 가정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옵티머스(Optimus)가 개발되었다. 인간처럼 감정표현을 잘 하는 페퍼(Pepper)도 등장하였다.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한 시대가 열렸다.
이미 사람 대신에 로봇이 자동차를 척척 만들고, 무거운 짐을 운반하고, 병원에서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진료도 하게 된다. 식당에 가면 로봇이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이제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당연하고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AI의 전성시대가 도래하였다. 한국의 현대자동차회사가 AI를 생산 공정에 투입하려고 하자 근로자들이 결사 항전한다. 자기들의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우려해서이다. 강성노조가 해마다 1년에 평균 한달 정도를 급료 인상하여 가히 철밥통 직장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친인척 채용하기, 정치 선동 등으로 투쟁을 하더니, 이제는 세계적인 추세인 로봇시대를 거부한다. 병원에서도 15년 동안 끌어오던 비대면 진료를 이제야 수용하게 되었다. 노사(勞使)관계에서 사측(社側)은 좀 더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고심을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24시간 일하고, 위험한 환경에서도 일을 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이 주목을 받게 된다.
이런 시점에서 노사(勞使)는 투쟁이 아니라 공생(共生)을 위하여 더 지혜로운 방법을 선택해야한다. 1828년, 약200년 전에 마르크스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하면서 노동자가 할 수 있으면 자본가에 대항하여 데모를 하고 기물을 부수라고 선동을 한 것이 지금도 지켜지는 안타
까운 실정이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노동을 하고 휴식을 취하는 생체 리듬을 갖고 있다. 이를 따를 때에 건강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제부터 AI가 법정을 맡을 때가 되었다. 너무나 법조인들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면서 위증을 하고, 편견에 잡힌 판단을 하다보니까, 이제 국민들이 AI 법조인(검사, 판사, 변호사)의 등장을 요구하고 있다. 또 부정부패를 막기 위하여 AI정치인의 등장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5년 뒤, 2030년에는 길거리에 사람과 같은 AI인간이 우리의 이웃처럼 거닐게 될 것이며, 현재의 기술발전으로 보면, 그 기간이 더 단축될 수도 있다. 이는 희망찬 서곡(序曲)이기도 하고, 재앙의 시작이기도 하다. 행여나 지배욕망이 비뚤게 작동하여서, AI에 소프트프로그램을 음흉한 마음을 갖고 투입하여서 AI가 인류를 죽이고 지배하도록 할까 걱정이다. 이런 것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영화에 등장한 것이다. 그런 픽션(Fiction, 상상) 영화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AI는 상업, 국방, 교육, 치안, 소방 등의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그만큼 살기도 편하지만 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인간이 만물의 주인으로서 정직하고 인류한가족 사상에 바탕을 둔 AI개발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진짜 끔직한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 만물의 영장(靈長) 자리를 AI에게 빼앗길 수 있다. 진정한 만물의 영장이 되어서 AI도 잘 주관하여 유토피아를 이룰 것인가? 아니면 얄팍한 영장이 되어서 오히려 AI의 노예가 될 것인가? AI가 종말을 좌지우지하는 좋고도 무서운 시대의 문턱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핵무기 못지 않게 겁나는 시대이다. 따라서 참가치관을 중심하고 참인간, 참주인, 참윤리의 등장이 시급히 요구된다. 인문학과 공학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때이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一光 趙應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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