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2 22:55:47
역사인식
리콴유가 쓴 자서전 ‘The Singapore Story’에는 한 인간의 집념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방대한 기록과 함께 숨기고 싶은 치부까지 꾸밈없이 드러낸 것이 이 책의 매력입니다.
자서전에는 일본군 점령 당시 일본군 보도부에서 15개월간 부역한 전력이 나옵니다.
그 후에는 암시장에서 브로커로 활약하면서 보석을 매점해 돈을 벌기도 하고
전쟁 후에는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으면서도 서서히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능수능란한 정치력을 발휘했습니다.
아마 한국이었으면 그는 친일파에, 경제사범에, 이중간첩으로 몰려 감옥에서 비참하게 인생을 마쳤을지 모릅니다.
IBM 창업주인 토머스 J 왓슨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파고를 넘으면서 ‘컴퓨터 왕국’을 열었지만
오욕의 역사 또한 그와 함께 했습니다.
그는 히틀러 정권이 유대인 말살과 독일군 전력 증강을 목적으로 IBM 천공카드 작성기를 이용할것을 알면서도
적극 협력해 나치가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십자훈장까지 받습니다.
지금에 와서 리콴유와 왓슨을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스스로를 깎아 내리고 학대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씨라고 현판을 부수고
친일파의 손길이 닿았다고 해서 소중한 문화재가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공덕비 비문을 썼던 이가 명필인 오준이었습니다.
오준은 병자호란 후에는 우리 땅을 침략한 청 태종의 덕을 기리는 ‘삼전도비’의 비문을 써야 했습니다.
인조 임금이 청나라 군복을 입고 땅에 이마를 비비며 청 태종한테 술잔을 바쳤습니다.
욕되고 수치스러워 오준은 미쳐버렸습니다.
이경석은 주화(主和)론자였습니다.
’삼전도비’의 문장을 지은 문장가였습니다.
침략자의 송덕비문을 써야 했습니다.
뒷날 성리학자 송시열은 이경석을 ‘만고역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소설가 김현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것이 한 국가가 살기 위한 생존의 몸짓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국토와 민족, 언어를 보존하기위해 인조가 무릎을 꿇은 것을 훌륭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 굴욕 안엔 현실을 극복하려는 장엄함이 있어요."
명분으로 ‘과거사’를 말하긴 쉽지만, 과거란 단순하지 않습니다.
역사란 복잡다단한 현실이고, 총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한홍구 교수가 지은 대한민국史에 이런 귀절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는 테러리즘에 반대할 것입니다.
저 멀리 유럽이나 중동에서 이름도 생소한 아랍의 무장세력에 의한 테러행위가 발생하기만 하면
예외 없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테러리즘을 비난해 왔으니까요.
안중근 ‘의사’는 어떻습니까?
기차에서 내리는 비무장 정치인을 암살한 행위, 바로 전형적인 개인테러행위 아닐까요?
그런데 테러리즘이 나쁜 것이라면 유독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훌륭한 행위일 수 있을까요?
문제는 관점과 기준입니다.
일어난 일은 분명 하나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분명 이토 히로부미를 쏴 죽였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그 행동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국의 의병장으로서 우리를 침략한 일본국의 수괴 이토를 사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입장에 서느냐,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느냐,
아니면 일제의 입장과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모든 개인테러행위를 비난하는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그 행동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래서 역사는 골치 아픕니다."
나라나 개인의 역사에는 잘잘못이 있게 마련입니다.
잘못된 일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되고, 잘한 일에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평가해줘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의 만용이
반성과 용서를 통한 민족적 화해와 통합을 이루기보다는
상처를 오히려 더 키우고 있습니다.
지나친 도덕적 결벽증에다가 관용정신이 부족한 탓입니다.
인간관계나 국가관계가 무모와 무지로 인해
파탄을 겪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책읽고밑줄긋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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