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심(下心, look up)과 상심(上心, look down) >
불교에서는 하심(下心, 마음을 낮춘다)을 가지려고, 이를 화두(話頭)로 삼고서 힘든 수행을 한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상심(上心)과 아집(我執)을 내려놓는 기본적인 수도(修道) 행각(行脚)이다. Under stand의 위치에 서서, 남보다도 더 자기를 낮추는 자세를 가지며, 그래서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비판보다도 경청을 우선하며, 비교보다 존중을 앞세우며, 본연의 모습을 자각하는 것을 강조한다. 달리 말하면 늘 부드럽고 겸손한 자세로써 다른 사람을 대하면서 귀하게 여겨주는 것이다. 따라서 하심(下心)은 Servant Leadership을 발휘하는 것이다. 세상 이치가 다 주고 받는 수수작용(授受作用)의 관계가 있기에, 그런 자세를 가진 사람은 또 남들로부터 존중을 받고 섬김을 받는다. 내가 남을 섬기면 남이 나를 섬겨준다. 섬김의 부메랑 법칙이다.
오늘은 12월 25일, 성탄절(聖誕節)이다. 2천년 전, 어머니 마리아가 출산을 하려는 데에 마땅히 머물 방이 없어서 말구유에서 예수를 출산하였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탄생부터 고난을 당하였다. 세상을 주관하는 사탄(Satan)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탄생을 방해한 것이다. 죄가 있는 인간은 의인이 흘리는 고난과 피흘림을 보면서, 자기가 모순된 존재임을 자각하고, 본연의 무죄한 모습으로 조금씩 전진한다. 자기 내면에서 솟아나는 깨달음의 빛에 의하여 죄의 두꺼운 껍질은 조금씩 벗겨져 나가게 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이 법칙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까 죄악의 역사가 길어졌고, 무신론(無神論)을 주장하는 사람도 나오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녀로 지으시고,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세상만물을 광대하고 빛나는 선물로 주셨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인간이 감사를 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상이나 논문이나 책을 출판하여 세상에 난무할 때에 그 심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 동안 영광의 하나님이 아니라 상처입은 하나님, 고통과 한(恨)이 많으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지내오셨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기적을 베풀고 그것을 보고 놀라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서, 그런 분위기에서 예수공동체를 이끄는 권한을 갖는 출세를 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심정적으로 스승과 하나가 되려는 마음보다 세상 관점의 출세욕이 그들을 에워쌌다. 그래서 예수는 “나는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러 왔다.”(마가복음10:45)고 당신의 사명을 선포하면서 하심(下心)의 태도를 갖고서 살도록 가르쳤다. 점잖게 꾸중하였다. 그는 십자가에 처형을 당할 때까지 Servant Leadership을 솔선수범하였다. 그를 이해한 순수하고 진정한 제자는 아무도 없었고, 홀로 숨을 거두셨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한 오른편 강도를 제자와 친구로 삼고서 그를 데리고 낙원으로 가셨다.
또 예수가 보여주신 하심(下心)의 자세는 남을 지배하고 갑질하려는 상심(上心, look down)의 욕망에 휩싸인 군중들에 의하여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자기의 혈통에 내재한 자기가 최고이기에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늘 준동(蠢動, 꿈틀거림)한다. 남을 짓밟으면서 자기가 대단한 존재임을 드러내려는 불의한 욕망은 수시로 표출된다. 그래서 남의 허점을 찾기에 눈을 부릅뜨고, 작은 꼬투리라도 발견되면 그것을 빌미로 하이에나처럼 공격을 한다. 의인이 흘리는 피를 보면서 히득거린다. 그런 자일수록 Follow Leadership을 강조한다. 당연히 그런 자가 득실거릴수록 국민들은 고통을 당하게 마련이다.
“나는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러 왔다.”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명 선언을 우리 각자도 선포해 보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섬길 때에 평화세상, 천국이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법칙이 실천으로 연결되기에는 까마득한 거리(gap)가 있다. 그 차이를 연결시켜준 본보기 삶을 사신 분들이 성인(聖人), 현인(賢人), 철인(哲人), 성자(聖者)였다. 그 분들이 세상을 이끌어오셨고, 저 의인들의 가르침 덕분에, 범죄가 충만한 세상이 종말의 심판을 받아서 소돔과 고모라처럼(창세기 19장) 폭싹 망하지 않고, 힘들게 버티며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이 안 계셔서가 아니라, 의인들의 공로로 인하여 불의한 자들도 심판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종말 심판의 보류(保留) 현상인 것을 알아야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전등불이 반짝인다.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거리를 거닐면서 즐기는 사람들이 모두 하심(下心)을 갖고서 반짝이는 인격을 발현해 주기를 소망한다. 상심(上心)이 사라지고, 전등(電燈)보다 더 밝게 하심(下心)의 빛이 반짝거리기를 기원한다. 삼천리반도가 아름다운 금수강산인데, 여기에 한민족이 내뿜는 하심에서 분출되는 사랑과 섬김과 모심의 인격의 빛이 가득히 뒤덮어서 명실상부한 동방의 등불, 세계의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기 예수의 성탄을 축하드린다. 역사를 바꾼 그의 업적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억울하게 고통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속히 해방의 기쁜 소식이 선포되기를 소망한다. 죄인의 모습임을 알지 못하고, 순간의 짜릿한 욕망에 이끌려서 더 많은 죄업(罪業)을 만들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 회개하기를 촉구한다. 제발 상심(上心)을 버리고 하심(下心)을 갖기를 기원한다.(一光 趙應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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