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한가위 부녀 이야기

太兄 2025. 10. 7. 18:31

한가위 부녀 이야기

옛날 충남 공주 땅 팔봉산 자락에 효심이 지극한 청상과부가 병든 시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본래 밭고랑 하나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다 그나마 시집 온지 삼년만에 들일을 나갔던 서방이 벼락을 맞아 죽는 바람에 졸지에 남편을잃고 기력없는 시아버지만 떠안고 묵묵히 살았습니다.
말을 하기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은 과연 몇 해나 버틸거냐고 허구한날 수군거렸지만, 청상과부의 효성은 벌써 일곱해를 하루같이 변할줄 몰랐습니다.
시아버지의 병구완은 변함없이 지극정성이었으며 봄이면 날품팔이, 여름이면 산나물과 약초를 캐다 팔아 힘든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아가야, 이제 그만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그만큼 고생했으면 됐다. 이제 좋은 상처 자리라도 만나 배나 곯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 세상천지에 널 탓하고 나무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만 돌아가거라!”
병든 시아비는 틈만 나면 며느리의 손을 잡고 통사정을하며 호소했습니다.
"아버님, 제 집이 여기인데 왜 저를 자꾸만 내치려 하십니까? 저는 아무데도 안갑니다.
살아도 이 집 며느리요, 죽어도 이 집 귀신이 될 제가 가기는 어딜 간단 말입니까?
제발 그런 말씀 마시고 어서 몸이나 쾌차하십시오. 아버님!”
몹시 흉년이든 어느해 가을, 추석 명절이 돌아왔습니다. 그나마 받은 품삯을 시아버지 약값으로 다 쓰고보니 정작 차례를 지낼 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틀 후면 한가위인데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빈상에 냉수만 올리고 제사를 지낼수는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병든 시아버지의 낙심을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며느리는 방문앞에서 시아버지에게 인사를 올렸습니다.

"아버님, 저 읍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며느리가 쪽마루를 내려서는데 시아버지는 그날 따라 안간힘을 써가며 문구멍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사립문을 나서는 며느리의 가련한 모습을 보면서 시아비는 피를 토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정처없이 어딘가를 향해 걸었습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두 다리는 돌덩이를 매단듯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습니다. 걷다 힘이 부치면 냇가 미루나무 아래서 쉬고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벼 이삭을 주우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한없이 야속하기만한 서방의 얼굴이 어른거려 쉴새없이 눈물만 쏟아졌습니다. 걷고 또 걷고, 얼마나 걸었는지 어느새 해는 한나절이 지나고 서쪽 하늘이 봉선화꽃잎을 흩뿌린것처럼 군데군데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재를 넘으니 마침내 오매불망 그리던 친정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딸은 실로 몇해만에 보았을 친정을 내려다보며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어둡기를 기다리며 그토록 서럽게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후 딸은 친정집 광속에서 제법 묵직한 자루 하나를 들고 나와 미친듯이 재를 넘고 있었습니다.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딸은 뒤를 돌아볼새도없이 정신없이 오던 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뭄이 들었다지만 요행히도 친정집은 아직까지 보릿가루며 보리 기울이 넉넉한지라 이고 갈만큼을 퍼 담았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곡식 자루를 이고 뒷동산을 넘고 있을때 말없이 소변을 보러 나오다 우연히 딸이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친정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뒷동산을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불쌍한것!
어찌 이다지도 박복하더란 말이냐? 오죽이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이 한가위에 친정 울타리를 다 넘었겠느냐? 아이고... 불쌍한 내 딸아!”
며느리는 새벽녘이 다 돼서야 온몸이 땀에 절어 돌아왔습니다.
그 머나먼곳을 다녀왔지만 그녀는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하나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습니다.

한가위 아침에 산나물 반찬에 밀가루 전을 부쳐 흰쌀밥을 올려서 조상은 물론이요, 시어머니와 서방님께 제사를 올릴수 있다고 생각을하니 고단함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한없이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그리고 추석이지나 20여일 되었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날 이른 새벽에 사립문 밖에서 소란한 기척이 들려 밖을 나가보니 서너 말이 됨직한 좁쌀 자루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 흉년에 누가 이 귀한 낱알을 두고 갔을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짐작이 갈만한 구석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궁색한 살림살이지만 남의 곡식을 덥석 축낼수가 없어 며칠 새벽잠을 설치며 전전긍긍하는데, 어느날 또다시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몇 날 며칠을 기다렸던터라 며느리는 죽을 힘을 다해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 사이, 등에 지게를 걸머진 남자가 번개같이 담을 돌아 논둑길을 내려서고 있었습니다.
"보셔요, 잠시만 저를 보셔요..."
어느새 남자의 등뒤까지 따라간 며느리는 그만 낚아채던 남자의 팔을 놓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멋쩍은듯 웃으며 돌아선 이는 다름 아닌 친정 아버지였습니다.
"이것아! 집에 왔으면 어미나 보고 갈일이지...
고구마다. 허기질땐 꽤나 양식이 되지.
정 힘들면 대낮에 다녀가거라. 네 어미에게는 아직 말을 안했다!”

"아버지, 절 보셨으면 왜 한번 불러주지 않으셨어요?"
딸은 어찌할 바를 몰라 목 놓아 울고 있었습니다.
"들어가거라... 어서! 동네사람이 볼까 무섭다. 어서!"
돌아서는 아버지의 볼에서도 어느새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가난했던 옛시절, 부녀의 사랑이야기입니다!
한가위에 느껴지는 "부녀의 뜨거운 사랑"이 우리들 가슴에 서려있는 보편적인 정서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근본 마음"이 아닐까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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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행 사용설명서

성질은 한번에 내지 말고 12개월 무이자로 조금씩 내고 상대에 대한 배려는 일시불로 지불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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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는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통깨처럼 조금만

열정은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 해서라도 마음껏쓰고 은혜는 대출이자처럼 꼬박꼬박 상환하고
추억은 이자로 따라오니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리움은 끝끝내 해지 하지말것
의심은 단기 매도로 처분하고 아픔은 실손보험으로 처리하고 행복은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에 넣어둘것
추석 차례후 음복 한잔도 절대 안됩니다!!

 

살며시 찾아온 가을.
하늘의 ☁☁ 하얀뭉게 구름이 쉬어가는 참 아름다운 계절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조석으로 기온이 차가우니 감기조심 하시고 사랑은 나누시고 건강은 지키시고 늘 웃는일만 가득하시길 항상 기도합니다.

이제 정겨운 추석과 긴연휴가 시작되네요.
경제적인 위기로 모든것이 넉넉하지 않지만 마음만은 풍성한 명절되시고
행운도 함께하시고 허락된 10대 복과 천천만만의 복을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