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아무 데나 씨 뿌리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겠나

이재명 대통령이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국가 살림을 하다 보니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이 없어 참 고민이 많다”며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나라 살림을 농사에 비유해 “봄에 뿌릴 씨앗이 없어 밭을 묵힐 생각을 하니 답답하다”며 “지금 씨를 한 됫박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경제 발전과 국민 복지 향상을 위해 필요한 분야에는 빚을 내서라도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빚부터 내기에 앞서 경제를 활성화해 세수를 늘리고, 불필요한 지출 구조 조정을 통해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설사 빚을 내더라도 우선순위를 철저히 따져 불요불급한 지출은 자제해야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 발언은 돈을 어디에,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자체가 없다. 무조건 빚부터 내야 한다는 식이다.
같은 날, 국정기획위원회는 5년간 공약 이행에 필요한 210조원의 재원 마련 계획을 발표했다. 세제 개편과 세입 기반 개선 등으로 94조원을, 지출 삭감·기금 활용 등으로 116조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세수를 늘리고 지출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위원회 발표 어디에도 빚을 내겠다는 계획은 없다. 5년 나라 살림의 로드맵을 발표하는데 대통령과 국정기획위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국민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부의 ‘무원칙 재정’은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매년 100조원씩 국가 채무가 늘어날 정도로 재정 확장 정책을 폈다. 문 정부 때 늘어난 국가 채무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나라 곳간이 비어 국가 채무가 계속 늘어나는데도 “곳간에 작물을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리게 마련”이라고 해서 논란을 불렀다.
이재명 정부도 당선 축하금 성격의 전 국민 소비 쿠폰 지급에 13조9000억원을 쓰는 등 선심성 지출을 늘리고 있다. 반면 사업성이 떨어지는 국책 사업을 걸러내는 기준인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은 5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등 방만한 재정을 견제하는 장치에는 무관심하다. 재정 준칙 제정도 기약이 없다. 이대로 5년이 지나면 재정 중독에 빠졌던 ‘문 정부 시즌 2’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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