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한다

太兄 2025. 7. 31. 23:39

<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한다. >

 

데카르트(1596-1650)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명제(命題)를 뒤집어서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한다.”(Ergo sum, cogito)라고 규정을 하고서 각종 위기를 극복해 보자. 그래야 인류가 소망해 온 평화와 통일의 세계가 앞당겨 질 것이다.  
  세계 역사를 바꾼 인물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데카르트가 빠지지 않는다. 그는 이 명제 하나로써 ‘근대철학의 아버지’ 자리에 올랐다. 그는 1000년간 내려온 중세의 가톨릭 신앙 중심의 삶의 패턴을 생각, 이성(理性), 사유(思惟) 중심으로 뒤집었다.

 

  그로부터 6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혼돈 상태이다. 신앙도 많고, 사상(思想)도 수도 없이 많이 등장했고, 물질도 풍요로워다. 그러나 생명 경시 풍조, 전쟁 갈등, 욕망의 올가미는 변함이 없이 인류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그래서 새 대안(代案)이 필요하다. 이는 “눈에 보이고 경험할 수 있는 몸의 가치를 중심하고 ‘존재(存在)’를 우선시 해보자.”는 것이다. 일단 모든 사람은 우주보다도 귀한 존재로 태어났기에 모든 인류의 생존 자체가 기본적으로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사상이 달라도, 사람들의 몸은 공통점이 많아서 굳이 ‘왜?’라는 물음을 상대방에게 던질 필요가 없다. 즉, 누구나 물, 음식, 공기 등을 먹고 마셔야 하고, 의복, 약품, 주거 등의 생필품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를 채워주려고 유엔이 인정하는 적십자 차량이 전쟁터를 누비면서 아군과 적군을 막론하고 부상을 당한 이들을 돕는다. 아군과 적군이 총을 겨누고 마주 보고 대치할 때에는 상대방이 뿔이 달린 괴상한 인간으로 여겨졌지만, 정작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고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을 받는 환자가 되면, 아군과 적군의 피아(彼我) 구분이 필요 없다. 그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기본 욕구를 가진 인간임을 확인하게 된다. 병원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자매이고 식구이다.

 

  따라서 무형의 가치에 해당하는 생각, 사고(思考), 이성(理性) 등의 공통점을 찾기 위한 노력도 좋지만, 그것에 앞서서 공통점을 금방 발견할 수 있는 유형의 몸의 욕구를 서로 충족시키기 위해 도와주면서 공생(共生) 공영(共榮)의 문화를 만들어 보자. 그것이 인류의 꿈인 평화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이 가자(Gaza) 지구(地區)에 갇힌 상태에서 기본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는 팔레스틴 주민들에게 각종 생필품을 보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 한 것이다. 우선 생존권을 보장해 주고, 차츰 서로 다른 가치관의 간격(間隔)을 좁혀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생존의 삶(존재)을 가치관이나 사상보다 앞세워야 할 것이다.
  이를 한반도에 연결시켜 보면, 극빈 상태에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해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깝게는 수재를 당하여 고통당하는 이웃들에게 우선적인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노조(勞組) 데모로 인하여 기업이 외국으로 떠나고 직장이 문을 닫는 사태의 위기 상황도 극복이 가능할 것이다. 직장이 존재하는 목적은 경영자와 근로자가 함께 합심하여서 돈을 잘 벌고, 잘 살려는 것이다. 서로 원수의 감정으로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면 결국 공멸(共滅)하게 된다.

 

  한때 잘 나가던 울산시, 포항시, 군산시, 아산시에 있던 자동차, 조선(造船), 철강 분야의 큰 회사들이 과도한 노조 운동으로 인하여 직장 폐쇄라는 최악의 경지에 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주민이 급감하고, 화려하던 도시는 암울한 폐허로 변하고 있다. 휘파람을 불면서, 휴가를 즐기면서, 멋지게 살던 직장인들은 졸지에 노숙자 신세 혹은 떠돌이가 되었다. 행복한 웃음이 사라지고 비참한 절규가 나오게 되었다.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이런 교훈들을 우리는 심각히 받아들이자. 무엇보다도 공생(共生) 공영(共榮)의 자세로 함께 생존 자체를 보장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 생각(사상, 가치관)의 차이를 좁혀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비유로 말하면, 머리가 너무 크면 몸이 지탱을 못하게 된다. 일단 건강한 몸부터 만들어야 한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과 생각과 감정도 건강하게 된다. 사유(思惟) 중심 시대에서 몸을 중심한 존재(存在) 시대로 전환하자. (一光 趙應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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