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48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고대사 2015-03-22 08:18:46 사마천의 사기 지혜롭고 용병이 능하였던 두릉장군은 서기 기원전 99년 겨우 5천 명의 보병을 거느리고 북방의 흉노를 토벌하기 위하여 떠났다. 두릉은 계속되는 전투에서 적들을 격파하고 적진깊숙히 까지 들어갔다. 용맹스럽게 전투에서 많은 적을 무찌르고 돌격한 두릉장군은 그러나 적진에 너무 깊숙히 들어가고 후미와 떨어지게 되었고,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최후까지 잘 싸웠으나 말에서 떨어져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 소식이 왕에게 까지 전해지는 동안 그는 장렬히 전사한 것으로 전해졌고, 많은 사람들은 이에 애도하였고 어떤 부하는 따라서 자결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봄이되자 두릉장군이 사실은 전사한 것이 아니라, 포로가 되어 오히려 적군의 중신으로..

고대사 2023.03.19

궁예

궁예 -고대사 2014-12-25 21:44:24 궁예 궁예 왕건이 세운 고려의 기반을 마련해준 궁예. 하지만 통치자로서 궁예의 면모는 패자라는 이유로 그늘에 가려졌고 미치광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만이 남게 되었다. 정치가로서 궁예의 모습, 그리고 후삼국 시대 역사의 주역으로서의 궁예를 재평가 해야 할 것이다. 1. 궁예가 살아있는 철원 땅 철원은 궁예가 세운 나라 ‘태봉’의 수도였다. 지금도 철원에서는 궁예를 이 지역을 다스린 왕으로 추앙하며 ‘태봉제’라는 축제를 연다. 궁예가 살았던 궁궐과 궁예도성 터는 현재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궁예도성, 천년이 지난 지금도 궁예의 꿈은 그곳에 묻혀 있다. 2. 몰려드는 사람들 궁예는 현실에 불만을 가진 농민을 흡수해 독자적인 세력을 ..

고대사 2023.03.17

19대광개토 대왕

19대 광개토대왕에 대한 -고대사 2014-12-25 21:36:25 19대광개토 대왕에 대한...... 한국의 알렉산드로스’ 광개토대왕의 능과 비석, 벽화… 그 옆에 있는 장수왕릉 산수원 산악회를 주축으로7월 백두산 등정후 관람했던 광개토 대왕릉및 장수왕릉!! 내 팽개치듯 아무도 보살핌 없는 유역은 잡초만 무성하고 대왕릉의 봉분은 토사가 흘러내린채 방치된 모습을 우리는 개탄 스럽게 보았다. 중국의 동북 공정에 우리가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명칭을 피해 호왕,호태왕이라고 어물적 명명하고 장수왕은 왕명도 없이 장군총이란다. 이나라 정부는 뭐하고 있으며 문화재 관리국은 왜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십노라.! 분노에찬 선구자의 한말씀 ‘한국의 알렉산드로스’로 불리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서양의 정복왕 알렉..

고대사 2023.03.17

檀君十誡命

檀君十誡命 2014-12-14 13:52:10 옛날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귀여운 어린 아이를 어르고 귀여워할 때 어르는 말고로 쓰이는 "곤지곤지" "쥐암쥐암" '도리도리" "짝짝궁짝짝궁" 하는 용어에 이런 깊은 뜻이 있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것들이 모두 [단군 10계명]이라니 놀랍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지금은 핵가족이 대부분이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어르고 귀여워할 기회도 별로 없을 것이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모두가 귀여워 하면서 아이의 장래를 축복해주는 기도와 같은 주옥 같은 말인데 말입니다.

고대사 2023.03.15

코벨 박사 “단군(고조선) 전 환국·배달국 실존”

2014-12-14 11:09:01 코벨 박사 “단군(고조선) 전 환국·배달국 실존”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내년 해방70년, 이래도 되나 일본의 역사왜곡 포장은 명치유신사(明治維新史)와 함께 태평양전쟁사에서도 드러난다. 1961년 9월 우에야마(上山春平)의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의 사상사적 의의(意義)’가 일본 중앙공론(中央公論)에 게재(揭載)됐다. 그는 전시 중의 대동아전쟁사관(大東亞戰爭史觀), 점령군의 태평양전쟁사관(太平洋戰爭史觀), 맑시즘의 제국주의전쟁사관(帝國主義戰爭史觀), 모택동의 항일전쟁사관(抗日戰爭史觀) 등에 대해 논했다. 그는 이 같은 사관(史觀)들에 대해 “일본, 미국, 구소련, 중국이 말하는 특정의 국가권력의 이해를 중심으로 해서 가치척도를 만들..

고대사 2023.03.15

튀르키예(터키)와 한국과의 3천년 관계

[튀르키예(터키)와 한국과의 3천년 관계] 그들은 피가 섞인 우리들의 형제국 입니다. 2022년부터 국호를 터키에서 튀르크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크예로 변경되었다 그렇다면 왜? 터키와 대한민국은 형제국가인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터키’ 하면 형제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터키가 6·25 때 미국, 영국에 이어 1만4936명이라는 세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하여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21명 전사에 2,147명이 부상 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또 전사했을까요? 라는 질문을 하면 그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건 궁극적인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

고대사 2023.03.13